〈 10화 〉 [9화]버그 리포트 후일담
* * *
"조금 충격적이긴 하지?"
도미닉 경은 경비가 술 한 잔 사겠다는 말에 넋을 놓고 따라갔다.
기사의 모닥불이라는 이름의 술집에서 가볍게 모듬 튀김과 맥주 2잔을 시킨 경비는 도미닉 경이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안다고 말했다.
"나도 처음엔 그랬어. 그런데 하다 보니 익숙해지더라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오징어 튀김을 하나 집어 든 경비는 말을 이어갔다.
"진짜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였다니까. 오죽했으면 스토리 팀 애들은 전부 지옥에서 뽑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하고."
경비는 힐끗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맥주의 거품이 꺼질 때까지도 가만히 있었다.
이거 충격이 너무 컸던가.
경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인공지능이 너무 강해도 문제군.
"제가."
다시 맥주를 마시려던 경비의 손이 멈칫했다.
도미닉 경은 말을 꺼냈으나, 그 말은 혼잣말과 같았다.
"이렇게 싸우는 게 진심으로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 싶습니다."
이번엔 경비가 멍해질 차례였다.
"농노 출신에 배우지를 못 해서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대신 모르는 만큼 하나에 집중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지지 않습니까."
정리되지 않은, 두서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말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경비가 당황했음에도 도미닉 경의 말을 계속해서 듣는 이유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집중할 수 없을 때 저는 행복하지 못한 겁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도미닉 경은 맥주를 마셨다.
오크 나무로 만든 고풍스러운 맥주잔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스스로 세운 기준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중하고, 또 몰입되었는데도 억지로 행복하다고 스스로 속이는 기분이 들어요."
충격받은 건 그쪽이었습니다.
라고 말한 도미닉 경은 잠깐 말이 없었다.
경비는 그런 도미닉 경을 보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무언가를 죽이거나, 혹은 자기 적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고는 했다.
그러나 눈앞의 기사는 조금 달랐다.
그는 스스로에게 혹독한 사람이다. 라고 경비는 생각했다.
스스로 세운 기준에서 움직이는 사람. 그러나 그 기준을 벗어나면 한없이 약해지는 사람.
...이라고 분석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경비는 다시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크. 사람이 완벽할 수 있나. 그랬다면 순위는 왜 매기고, 특성 분류는 왜 하겠어. 다 불완전하니까 그런 거지."
경비는 도미닉 경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원이 부족하니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급하게 뽑은 감은 있지만, 도미닉 경은 업무 수행 능력을 스스로 입증해냈다.
그러면서도 인격도 나쁘진 않았다.
자신이 처음 긴급 상황이 주어졌을 때, 상황 파악 못 하는 직원들이 너무 꼴 보기 싫어 폭행 건으로 징계를 받지 않았던가.
오랜 기간 동안 야근과 눈부신 모니터에 시달린 직원들의 이상한 성격을 겪고도 화를 거의 내지 않았다는 사실도 추가 점수였다.
"아."
경비는 문득 자신이 후배라고 부르는 이 눈앞의 기사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급한 나머지 통성명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묻지 않았구만."
"도미닉 경입니다."
"서 도미닉? 어디 서씨야?"
"아뇨,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요."
"아. 작위였구만. 진짜 기사였네. 내 이름은 왈록이야. v.a.l.l.o.c. 브 발음이 아니라 우 발음으로 하니까, 기억해 둬."
"왈록이군요. 알겠습니다."
통성명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도미닉 경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에서 있었던 한 존재를 떠올렸다.
언데드 중에서도 괴짜였던 대학자 데스피스를.
도미닉 경의 마족과 언데드, 그리고 오크에 대한 강렬한 증오는 개체의 구분이 없었지만, 데스피스는 조금 예외로 두어야 했다.
'난 바빠. 난 바쁘단 말이다. 바쁜 일을 계획해야 해서 바빠. 그리고 그 계획을 계획하는 일을 또 해야 하지. 아, 바쁘다 바빠!'
데스피스는 지식에 대한 탐구욕으로 인해 언데드가 된 케이스였다.
언데드의 특성상 생자에 대한 분노가 모든 본능을 앞서지만, 그는 지식에 대한 집착과 집념으로 그 본능을 모두 뛰어넘어 버린 괴짜.
마족들이 이계의 지식을 미끼로 걸어 마족들의 편에 섰으나, 정작 그는 제대로 싸우는 법이 없었다.
그마저도 마족들의 시체로 연구하고 싶다는 열망에서였지만.
'너무 바빠. 너무 바빠서 사람들의 이름을 외울 시간조차 없어.'
'아, 세상에. 또 너야? 엉망이군. 계획이 모두 엉망이야. 더 바빠지잖아!'
'세상은 지식을 쌓기에도 이리 바쁜데, 왜 나에게 이렇게 시련을 내리지?'
그런 그였으나, 최후의 전투에서는 결국 서로의 이름을 교환했다.
'넌... 무식하군. 그래서 마음에 들어. 무식한 너도 이리 바쁜데, 내가 조금 더 바쁠 수도 있겠지! 이름이 뭐지?'
...좀 짜증 나는 부류이긴 했지만 말이다.
도미닉 경이 과거 회상에 빠져 있을 때, 왈록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에 잠기는 건 좋지만, 멀쩡한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왈록 자신도 꼰대 같은 말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그런 꼰대 같은 말이 일상인 페럴란트 출신이었다.
"죄송합니다."
상념에서 벗어난 도미닉 경은 빠르게 사과했다.
"뭐, 대화가 이어지도록 계속 말을 걸지 않은 내 잘못이지. 좋아. 그럼 대화 주제를 좀 바꿔보자고."
왈록은 맥주잔을 내려놓고 절반은 진지한 표정을, 절반은 무언가를 꾸미는 표정으로 말했다.
"목적이 뭐야?"
"네?"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그러나 왈록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가차랜드에 온 사람은 상승의 욕구가 넘치는 사람들이야.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다들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격을 높이려하지. 좋아. 이해하기 위해서 나부터 말해볼까?"
왈록은 남은 술을 전부 입안에 털어내고 맥주 2잔을 더 시켰다. 마침 도미닉 경의 술잔도 비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야. 목적이 돈이라고. 평생을 먹고살 돈을 얻을 거야. 여기선 가치에 따라 영생할 수도 있으니, 정말 무한한 돈이 필요하겠지."
왈록은 계란 튀김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고 씹어댔다.
"난 사실 탐욕스러운 사람이야. 다 가지고 싶거든. 그런데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어. 그렇다면, 내게 있어 무한한 돈은 목적이 되는 셈이지."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자유민스럽습니다만."
도미닉 경은 중산층이나 평범한 시민이라는 말을 몰랐기에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평범한 이들을 말했다.
"코인에 손을 댔거든."
왈록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보를 알고 있었으니 돈이 복사가 된다고 여겼지. 상대도 정보를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왈록은 그때만 생각해도 분통이 터지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때부터 정직하게 벌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했지. 라고 작게 말하면서.
"좋아. 내 목적은 말했으니 네 목적은 뭐지? 기사답게 명예?"
왈록의 물음에 도미닉 경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싸움이요."
"싸움?"
"네. 모든 것을 잊기 위한 싸움."
왈록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새롭게 놓인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후."
착잡한 표정이 된 왈록은 도미닉 경의 눈을 바라보았다.
"싸움은 목적이 아니야. 오히려 내가 보기엔, '잊는다.'라는 게 목적이지."
도미닉 경은 다소 충격을 받았다.
싸움은 목적이 아니라고? 그럼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평생 싸워왔고 앞으로도 싸울"
"그러니까."
왈록이 단호하게 도미닉 경의 말을 끊었다.
"너는 무언가를 잊고 싶어서 싸우는 거야. 싸움에 온전히 집중하면 무언가를 잊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보기엔"
왈록은 잠시 말을 끊었다.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지 스스로 생각하다가 나름 순화시켜서 말했다.
"이미 절반 이상은 잊은 것처럼 보이고."
도미닉 경은 연속으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무언가를 잊으려고 한다고? 도대체 무얼?
"내가 보기엔, 네 목표는 목표가 아니야. 목표라고 믿을 뿐, 목표가 될 수 없는 거지."
술기운 탓일까? 왈록의 말은 두서 없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의 말 속의 뜻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그럼, 지금부터 무얼 하면 좋을까요?"
도미닉 경은 수동적인 사람이다.
농노 출신으로, 장원의 관리자가 말하는 것만 하면 되었다.
병사가 되었을 때, 지휘관의 말만 들으면 되었다.
기사가 되었을 때도, 그저 전쟁이라는 목적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있어 스스로 목적을 만든다는 선택지가 없었다.
"글쎄."
왈록은 난감했다. 도미닉 경이 이렇게나 절박하게 나올 줄 몰랐던 탓이다.
대충 생각을 정리하던 왈록은 나름 회심의 제안을 꺼냈다.
"자잘한 목적부터 만드는 것은 어떨까."
"자잘한 목적이요?"
"그래. 아무래도 큰 목적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일단 자잘한 목적들... 그러니까 네가 생각할 수 있는 아주 괜찮은 목적부터 생각해 봐. 이왕이면 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으로."
"하지만..."
도미닉 경은 세 번째로 당황했다.
"하지만이고 자시고! 이 이야긴 여기서 끝! 재밌으려고 하는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졌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고."
왈록은 술맛이 뚝 떨어지려는 것을 참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여전히 목적이라는 생각에 가득 차 왈록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목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