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8화]버■ 리■■ ■지■ ■■■ ■■ 마■■.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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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 3페이즈에서 데스 메탈이 나온다면 반대로 행동하세요.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여야 해요.'
도미닉 경은 코더의 말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고블린 왕의 북채엔 검고 불길한 연기가 휘감겨 마치 낫처럼 보였는데, 낫을 휘두를 때마다 머리 위에 생긴 도트로 된 하트 또 하나가 사라졌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라..."
도미닉 경은 이제 하트가 하나 남았다.
분명히 코더가 그 뒤에 무슨 말을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전투에 돌입해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돌고 있는 도미닉 경의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탓이다.
"죽음은 마치 음악과 같지! 아무리 거절해도 결국엔 받아들일 것이다!"
"분명히 무슨 말을 했는데..."
고블린 왕 콩가는 중간중간 쉬는 박자마다 낫을 크게 휘두르며 무언가를 말했으나, 도미닉 경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전히 공략법이 떠오를 듯 말 듯 그를 괴롭혔으니까.
잠깐, 낫?
'고블린 왕의 낫은 대미지가 없어요. 흔한 클리셰지만, 처음 이 기믹을 본 사람들이 속기엔 충분한 트릭이죠.'
기억났다.
도미닉 경은 코더의 말을 기억하고 콩가의 검은 낫의 범위에 들어섰다.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말.
낫은 저승사자, 즉 죽음의 상징이었다.
"이익! 어째서 베질 못 하지?"
고블린 왕 콩가는 정해진 대사를 내뱉으며 무작정 낫을 휘둘러댔다.
그러나 낫은 도미닉 경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빗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어째서! 이 밀림의 템포와 시간, 그리고 죽음마저 내 손에 있거늘!"
고블린 왕의 발악은 처절했다.
왕의 품격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일개 고블린 졸개보다 못한 추한 모습이었다.
"흐."
도미닉 경은 흐리게 웃었다.
만일 이 기믹을 모르고 싸웠더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은 혹시 모를 변수를 막기 위해 방패를 들어 올리고 조심스럽게 티라노사우르스에게 다가갔다.
고블린 왕의 애완동물인 이 티라노사우르스는 리듬에 맞춰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기에 도미닉 경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콕. 하고 검의 끝이 티라노사우르스의 다리를 찔렀다.
"으아! 넘어간다!"
티라노사우르스는 머리를 격하게 흔들며 어지러운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통증에 그만 그 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고블린 왕 콩가는 쓰러지는 티라노사우르스에서 떨어졌으나, 이내 다시금 티라노사우르스 위에 올라탔다.
그러나 그에게 능력을 쥐어 준 금속의 가면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감히! 감히 왕의 노래를 방해하느냐! 얘들아! 뭐 하냐!"
고블린 왕은 다시금 랩터와 고블린들을 불렀다.
'패턴은 이렇게 3개네요. 끝나면 다시 1페이즈 반복.'
코더의 말이 옳았다.
도미닉 경은 다시금 방패를 치켜들었다.
랩터의 공세를 막아 낼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랩터가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버그로 중복해서 나왔던 고블린과 랩터들이 하나둘 데이터화하며 사라지고 있었기에.
"해냈어!"
스테이지의 뒤편 배경에서 경비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42분이 걸렸지만, 해냈다고!"
"너무 기뻐하진 마세요. 아직 삭제가 진행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긴 했으나 코더도 내심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고 있었다.
"복구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
코더는 너무나 슬퍼져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보스 방의 코드는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안을 위해서 모든 직원들이 이 방의 보안을 하나씩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야근에 지친 직원들이 코더에게 가끔 보안 작업을 짬 처리하면서 비밀번호를 알아두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여기에서 갇혀 죽을 때까지 공룡이나 잡고 있어야 했겠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현실을 도피하는 코더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막 삭제해도 괜찮은 건가?"
경비는 조심스럽게 코더에게 물었다.
그도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 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이런 작업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죠. 백업이 있기를 바랄 수밖에. 백업은 팀장님 권한이거든요."
코더는 착찹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만일 백업본이 없다면, 지금보다 2배는 더 야근을 해야 할지도 몰랐기에.
"안 돼! 안 된다고! 이럴 순 없어! 포르티시모!"
고블린 왕 콩가는 쓰러진 티라노사우르스에게 다가가 끌어안았다.
아니, 다가가 끌어안고 싶었다.
갑자기 쓰러져 데이터화 되어 사라지는 티라노사우르스를 본 콩가는 지금이 전투 중이라는 사실도 잊었다.
티라노사우르스는 콩가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었다.
'밀림의 왕인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는, 무려 폭군과 왕의 이름을 동시에 가지고 있단다.'
어머니의 말이었다.
밀림의 왕이 되고 싶다.
그날, 콩가는 티라노사우르스가 되는 꿈을 꾸었다.
크리스마스 날, 콩가의 어머니는 콩가에게 티라노사우르스의 알을 선물로 주었다.
기뻤다.
콩가는 애정으로 알을 보살폈고, 이내 작은 공룡이 태어났다.
공룡은 쑥쑥 자라나 순식간에 콩가의 키를 넘어섰으나, 여전히 콩가에겐 귀여운 애완동물이었다.
평생을 같이 한 친구.
그런 친구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포르티시모...템포스트..."
털썩. 하고 밀림의 왕이 주저앉았다.
충격에 다리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콩가의 두 다리도 데이터화되어 날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콩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데이터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의 추억과 감정 모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도.
그러나 그에겐 이 밀림이 집이었고, 눈앞의 티라노사우르스는 자기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두 다리가 없었지만 양손으로 땅을 짚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티라노사우르스는 이미 머리만 남아 슬픈 눈으로 콩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콩가는 그런 티라노사우르스를 위로해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이 닿는 일은 없었다.
티라노사우르스보다 몸이 작았던 콩가는, 그의 애완동물보다 먼저 삭제되었다.
티라노사우르스는 콩가의 마지막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내 그 눈물마저 사라졌지만.
"...이거 찝찝하군."
도미닉 경은 찝찝한 기분에 괜히 우울해졌다.
밀림의 왕 콩가의 기억이 생생하게 보였다.
'혹시나 성공했을 때 말인데요. 절대 충격받지 마세요. 픽션은 픽션으로 받아들이셔야 해요.'
코더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나 아직 이 세계가 어색한 도미닉 경은 차마 이 찬란하게 살아간 고블린 왕의 생애를 무시하지 못했다.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방패를 오른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왼손을 가슴에 얹고 고개를 숙였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의 예법은 몰랐지만, 페럴란트의 예식대로 콩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행복한 전투를 하게 해준 적에 대한 예우로서.
[축하합니다! 고블린 왕 콩가를 처치하ㅅ]
[보상으로 3■]
[■■한■]
도미닉 경은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상태창이 보였으나 멀쩡해 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코더와 경비 쪽에서 무언가를 한 거겠지.
반투명한 상태창 너머로 점점 사라지는 세상이 보였다.
그 너머엔 모눈종이같이 하얀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어이쿠. 해결되었나 보네."
"아이고, 장비는 멀쩡하려나..."
도미닉 경의 시야에는 엉망이 된 사무실의 풍경이 보였다.
반쯤 박살 난 책상들과 여기저기 널브러진 서류들. 그리고 사무실 가득 보이는 쓰레기들.
아, 사람들이 쓰레기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캔이나 병 같은 쓰레기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거지 꼴의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돌아왔네요."
"음."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코더와 경비였다.
도미닉 경은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후배, 괜찮... 안 괜찮아 보이는군."
"몰입이 심했던 걸까요?"
멍하게 생각을 정리하던 도미닉 경에게 상태창이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축하합니다! 히든 직업 목 애호가(Neck Romancer)를 획득하셨습니다!]
히든 직업? 갑자기?
도미닉 경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경비를 쳐다보았다.
주입된 지식에도 없던 일이었기에 설명이 필요한 참이었다.
"이거 장난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뉴비 놀리면 쓰나."
"어라? 이상하다. 다른 직원들은 이러면 웃던데."
코더가 무언가를 조작하자 상태창이 사라졌다.
"도대체 이게 다 뭐요?"
도미닉 경은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몰입한 것 같길래 과몰입 방지턱으로 장난을 좀 쳐봤어요."
코더가 배시시 웃었다.
"몰입을 깨기엔 가짜 시스템창만큼 좋은 게 없거든요."
"그건 너희 같은 이과생이나 그렇지."
경비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코더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뉴비 놀린 거다. 후배."
경비는 이 작은 장난에 대한 해명을 10분 동안이나 해야 했지만, 도미닉 경에게 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애초에 여긴 시스템적으로 직업 란이 없으니까. 누가 정해서 평생 하는 것도 아니고."
마무리를 한 경비가 이해했냐는 듯 도미닉 경의 하나밖에 없는 눈을 응시했다.
도미닉 경은 겨우 이 상황을 이해했다.
과몰입 방지턱에 화가 조금 나기는 했으나, 오죽 자기 상태가 이상했으면 저랬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만의 시간에 빠진 도미닉 경을 보던 경비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도미닉 경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자. 생각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지금은 긴급 상황도 지나갔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이봐! 우리 간다!"
"야! 막내야! 이거 드는 거 좀 도와줘라!"
"네! 팀장님! 아!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코더는 팀원들을 돕느라 바쁜지 대충 대답했다.
그래. 이제 돌아가야지.
전장에서 그랬듯이.
도미닉 경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 행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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