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7화]버■ 리포트 ■지■ 최종의 최■.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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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스피드는 인정할 만하다! 내 템포보다 빠르게 전멸하다니! 낄낄낄!"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미닉 경은 이곳에서만 다섯 번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개념이 매우 희박한 가차랜드였지만, 기분 나쁜 것은 기분 나쁜 것이었다.
"그 뭐냐, 그거 아세요? 고블린 콩가의 성우가 2시즌 레이드 보스였던 신실한 레이널드 경과 같은 성우라는 거?"
"닥쳐. 때리고 싶으니까."
경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코더는 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나름 회심의 말을 건넸으나 이미 다섯 번의 실패를 경험한 도미닉 경과 경비는 신경이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도대체 왜 보스 방에 입장해야 복구가 되는 건데? 뭐 그거 있잖아. 너희가 자랑하는 원격 지원인가 뭔가 하는 거."
푹푹 땅이 꺼질 만큼 한숨을 내쉬던 경비가 급발진했다.
코더는 움찔하고 목을 거북이처럼 당겼다.
"그, 그야 보스 방을 구분하는 결계가 상하니까요. 이거 꽤 비싼 장비라 어쩔 수 없다구요."
"버그가 튀어 나가는 것보다 비싸게 먹힌다고?"
"네. 대략 두 자리 정도 차이가 나요."
"외부 인원 조달은?"
"여긴 밀림이에요. 통신이 원활하지 못한 곳이라구요."
경비는 답답함에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이건 또 무슨 개연성이란 말인가.
"일단 기믹 전부 말해."
"어... 프로젝트 내용은 기밀이라."
"긴급 상황에선 우선권이 우리에게 있어. 일단 깨야 뭘 하든 하지. 후배! 너도 뭐라고 좀 해 봐!"
경비는 사람과 대화다운 대화를 이어가지 못 하는 이 답답한 코더를 압박하고자 도미닉 경을 불렀다.
흠칫. 하고 경비는 놀랐다.
"흐."
고개를 숙인 도미닉 경은 어딘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
도미닉 경의 눈은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방패를 몸 가까이 끌어당기고 검으로 탕탕 쳐 내는 그 리듬은 조금 전 보스의 리듬과 흡사했다.
"이런 전투는 처음이네요. 항상 빠르거나, 오래 걸리거나, 기분 나쁜 전투만 있는 줄 알았는데."
도미닉 경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도미닉 경은 아주 행복했다.
그의 컨셉과 같은 하오체도 포기한 채, 농노 시절의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는 그의 컨셉도 잊을 만큼 흥미롭고 행복한 것을 찾았다는 뜻이리라.
"어... 당장 기믹에 대해서 설명해도 될까요?"
코더는 그 순수하고 행복한 광기에 압도 되어 현실을 도피하려는 듯 말했다.
"일단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말이에요."
경비는 말이 없었고, 도미닉 경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행복하게.
잠깐의 기믹 설명이 끝나고, 다시 보스전이 시작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도전권이 있어야 했지만, 아직 개발 단계였기에 도전권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 왕의 등장을 축하하러 온 사절인가?"
컷씬이 이어졌다.
고블린은 의기양양하게 젬베를 매단 티라노사우르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밀림의 왕이 된 고블린이라는 컨셉.
공기를 찢을 듯한 티라노사우르스의 포효와 함께, 고블린의 왕은 등장 대사를 외쳤다.
"지금부터 이 밀림의 템포는 내가 지배한다!"
그리고 컷씬이 끝나자마자 도미닉 경은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흐. 아무리 생각해도 기묘한 감각이란 말이지."
도미닉 경이 작게 중얼거렸다.
왕과 그의 애완동물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고블린 왕은 손 모양이 달린 커다란 북채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 젬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출정! 출정의 북소리다!"
그러자 사방에서 고블린과 랩터들이 나타났다.
첫 패턴은 고정적으로 잡몹을 소환하는 것이다.
'일단 첫 고정 패턴을 파훼하는 건 간단해요. 히든 기믹이 있거든요.'
도미닉 경은 방패를 비스듬히 들었다.
고블린들은 독침을 쏠 준비하고 있었는데, 바닥에 붉은빛으로 그 궤적이 나타나고 있었다.
랩터들은 포효를 한 이후 오와 열을 맞춰 달려들기 시작했는데, 뒤로 갈수록 속도가 빨라 마치 물결처럼 앞에 있는 랩터들을 치며 달리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엄청난 수의 잡몹을 바라보며 웃었다.
처음엔 고작 5마리씩 있던 잡몹들이었으나, 좀비 코드에 감염된 잡몹들이 실패할 때마다 남아 지금의 수에 이르렀다.
여섯 번째 시도이니, 각각 서른 마리의 고블린과 랩터들.
그러나 히든 기믹을 안 이상, 이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블린과 랩터는 일단 협력 관계지만, 종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공격할 수 있어요. 그럼 적대적 관계로 돌변하죠.'
달려오던 랩터 하나가 방패에 부딪혔다.
그러나 비스듬히 세운 방패 덕분에 랩터는 순식간에 방패의 면을 타고 흘러 옆으로 지나가 버렸다.
다시 돌아오려던 랩터는 방패에 빗겨나간 다른 랩터를 맞고 휩쓸려 갔다.
데굴데굴 구르던 랩터는 연쇄작용이 일어나 고블린이 있는 자리까지 날아갔는데, 하필이면 가장 앞에 있던 고블린의 팔뚝을 물고 말았다.
"악! 이건 아프다!"
고블린의 비명 소리.
독침을 쏘던 고블린 중 가장 큰 고블린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가 독침 고블린들의 분대장이었던지 다른 고블린들이 당황하며 아무렇게나 독침을 쏘아 댔다.
그리고 그 독침은 고스란히 랩터들에게 박힌 건 덤이었다.
랩터들의 우두머리는 갑작스러운 고블린의 공격에 화가 나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고블린들도 랩터들의 공격에 반격을 나섰다.
이 상황을 막을 것은 고블린 왕 콩가밖에 없었으나, 왕은 이미 리듬에 심취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이 혼란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행복하다.
이 혼란스러운 싸움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고블린들과 랩터들의 싸움은 영원할 것 같았다.
두 세력 모두 좀비 코드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 어그로가 다시 설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으하! 역시 출정의 리듬은 웅장하다니까! 이 기쁜 마음을 소리로 표현하겠다!"
어디선가 귀를 찢는 듯한 전자음이 들렸다.
"템포와 볼륨을 올려라!"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두 번째 페이즈가 시작되었다.
도미닉 경이 보스전을 치르는 동안, 코더와 경비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봐! 멀었어?"
"기다려 봐요! 보스 방의 내용은 출시되기 전까지 기밀이라 항상 다른 곳에 콘솔이 생성된다구요!"
밀림의 가장자리.
정확하게는 보스전의 외곽, 배경에서 등장한 둘은 길을 헤매고 있었다.
보스전에 심어진 버그를 고치려면 보스 방의 콘솔에 접속해야 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이번까지 여섯 번째 시도에서 콘솔에 접촉한 것은 두 번뿐이었다.
이번이 한계일 수도 있겠다. 경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가되지 않은 루트로 침입한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해 방어기제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밀림이라서 그런지 벌레가 너무 많아!"
"네! 버그가 많죠! 코더의 숙명이에요!"
둘은 말이 헛돌고 있었지만 착실하게 길을 찾고는 있었다.
다시 도미닉 경으로 돌아와보자.
'2페이즈는 보통 둘로 나뉘어요. 1페이즈의 강화판, 혹은 새로운 적을 소환하는 기믹. 아마 1페이즈에서 작전이 성공하면 쉽게 깨질 거예요.'
"코더의 말이 사실이었네."
도미닉 경은 더욱 환한 미소를 띠었다.
더욱 빠르게 공격하는 고블린들의 독침은 위협적이었고 랩터들의 발톱과 이빨은 더욱 빠르게 살과 뼈를 찢었다.
아주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행복했다.
정작 도미닉 경에게 오는 잡몹이 없었으니까.
"이제 3페이즈를 준비 해야겠군."
'2페이즈가 끝나면 3페이즈로 들어갈 거예요. 이때부터 기믹이 좀 달라져요. 흥미로운 기믹이죠.'
"그만! 그만! 이제 충분하다! 노래가 엉망이 되잖아! 다 꺼져!"
고블린 왕 콩가는 화를 냈다. 3페이즈 시작 신호였다.
'아마 좀 처음 보는 기믹일지도 몰라요. 진짜 실험적인 기믹이죠.'
"이 밀림은 왕의 것이다! 시간도! 템포도!"
고블린 왕은 양손에 든 북채들을 높이 들었다.
번쩍! 하고 번개가 내려치더니 북채가 지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일렉트로닉!"
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북채가 젬베를 두드렸다.
그 영향인지, 고블린 왕의 목소리도 오토튠을 낀 듯 변조되었다.
"흐. 이런 거라고?"
도미닉 경은 마침내 코더가 말한 기믹을 이해했다.
'리듬 게임이거든요.'
고블린 왕이 젬베를 격렬하게 치기 시작하면서, 티라노사우르스 주변으로 전기로 된 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리듬에 맞춰서.
"그래서 언제 찾는데!"
경비는 이제 한계였다.
보안을 위한 방어기제는 더더욱 거세게 경비를 몰아붙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마지막 구역입니다!"
코더는 마지막 구역을 살폈다.
하필이면 눈에 잘 띄는 곳에 콘솔이 있었다.
왜 난 운이 없을까? 라고 자조하던 코더는 바로 콘솔 앞에 서서 마우스를 연결하고 흔들었다.
절전상태로 화면보호기가 켜져 있던 콘솔창이 다시 활성화되었다.
"30분! 30분만 버텨요!"
"그 전에 이 방어기제 좀 꺼!"
"그럼 40분!"
경비는 욕이 튀어나오려다 참았다.
욕을 할 체력을 방어기제를 상대하는 데 써야 했으니까.
"8번 때리기!"
8비트. 이걸 이렇게 말장난하는군.
도미닉 경은 리듬에 맞춰 전진하거나 후진하는 원형의 전기를 점프하며 피했다.
그사이 변박이 들어와 한 번 맞기는 했지만 새로운 기믹답게 피해는 없었다.
대신 머리 위에 떠오른 도트형의 하트 하나가 깨졌을 뿐이다.
"7박! 포르티시모! 아니, 포르티시모 너 말고!"
전기의 리듬이 달라졌다. 그러나 고블린 아래 있던 티라노사우르스가 포효를 내지르자 잠깐 원형의 전기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저 공룡의 이름이 포르티시모인 모양이군.
도미닉 경은 본능적으로 이 타이밍이 공격을 시도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끙. 그래. 널 부를 때는 포르티시모 템포스트라고 말하"
"크왕!"
"그래. 그렇게."
고블린 왕은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공룡을 달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거칠게 다가가 무릎을 꿇은 티라노사우르스의 꼬리를 타고 올라갔다.
"으익? 억! 당장 여기서 꺼져라!"
고블린 왕 콩가는 도미닉 경의 돌진에 기겁해 북채를 휘둘렀다.
도미닉 경은 방패로 그 북채를 막아 냈으나, 아직 전기가 흐르고 있었기에 짜릿한 감각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도미닉 경은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 검을 내질렀다.
"악! 이건 뼛속까지 아프다!"
고블린은 고작 옆구리를 스쳤을 뿐이었으나 엄살을 부렸다.
그리고 티라노사우르스를 움직여 도미닉 경을 땅에 떨어뜨렸다.
경직 상태였던 도미닉 경은 그대로 땅에 처박혔으나 밀림의 나무들이 만든 푹신한 부엽토가 충격을 완화시켰다.
"으아! 템포를 더 올린다! 분노라면 이거다!"
'리듬 게임 기믹은 하나가 아니예요. 명색이 레이드 보스인데 좀 다양한 패턴이 있어야지.'
북채에 불이 붙었다.
고블린 왕 콩가는 현란하게 북채를 휘두르며 묘기를 부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세상이 암전되더니 오직 북채의 불길만 보였다.
"이게 바로 너의 죽음을 가져다줄 금속이다!"
불길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림자가 드리운 콩가의 얼굴에 금속으로 된 가면이 쓰여졌다.
혀를 내밀고 이마에 DEATH라고 적은 가면을.
도미닉 경은 행복했다.
이렇게나 흥미로운 싸움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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