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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6화 (6/528)

〈 6화 〉 [5화]버그 리포트 1지역

* * *

도미닉 경은 지금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다만 경비의 뒤를 따라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만큼 시스템 인더스트리 내부의 길은 복잡했고,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가는 겁니까?"

"거의 다 왔어. 일단 집중해. 그리고 휩쓸리지 않게 조심하고."

경비는 복잡한 표정으로 빠른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도미닉 경은 더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집중하는 경비의 단호한 얼굴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골목을 대략 40번 정도 꺾은 뒤일까? 마침내 경비는 걸음을 멈추었다.

걸음을 멈춘 곳은 수많은 문이 있는 장소였는데, 각각 개발팀, 유지보수팀, 패치팀, 보안팀 등의 이름 뒤에 1, 2, 3과 같은 숫자가 가득 쓰여져 있었다.

경비는 그중 개발팀 15922라고 적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죽으로 된 작은 가방에서 진압봉을 꺼내 들었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검과 방패를 들고 긴장한 상태로 문을 바라보았다.

"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당장 나와줄 수 있을까? 경비팀이야."

노크하고도 한참 동안 문이 열리지 않자 경비는 문 너머에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곤 도미닉 경에게 고개를 돌려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선 노크하고 나서 말을 걸지 마. 그놈들이 자극 받을 수도 있거든."

도미닉 경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 문 너머에는 위험한 놈들이 있는 모양이다.

"...들어 오세요. 지금 안에선 열지 못하거든요."

문 안쪽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렸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보안절차대로라면 위험한 상황에선 안에서 자체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다행스럽게도 보안장치 특성상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상관없어.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최신 기술이자 과학의 정수지."

경비는 어떻게든 도미닉 경에게 설명을 하려고 애를 썼다.

오랜만에 들어온 후배였기에 생각날 때마다 챙겨 주려는 노력이었다.

시골 중의 시골인 페럴란트 출신이었으며 언제나 물자와 인권이 부족한 전장에서 살아온 도미닉 경은 이런 호의가 다소 낯설었으나 여전히 몸은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일급 보안인데­"

조심스럽게 운을 뗀 경비는 문 옆에 놓인 화분을 들춰 그 아래 숨겨둔 예비용 열쇠를 꺼냈다.

"예비용 열쇠는 항상 화분 아래. 거기 없으면 카페트 구석을 들춰 보면 나오니까 기억해 둬."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 튀어나왔다.

도미닉 경이 멍해진 동안 경비는 예비 열쇠로 문을 열었다.

안은 두려울 정도로 어두웠으나 무언가 꿈틀대며 움직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정도였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특징 중 하나지."

경비는 말을 이어가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워낙 회사 규모가 큰데, 땅값은 비싸니까 최대한 싼 땅에 사무실을 짓고 포탈로 연결하는 거야."

"포탈...말이오?"

"그래. 포탈. 들어가면 로딩이 조금 걸리니까 답답해도 잠시만 참아."

포탈이라. 페럴란트는 마법이 그렇게 발달하지는 않았으나 학문으로서 마법이 연구되고 있기는 했다.

대체적으로 유명했던 마법 중 텔레포트나 워프가 비슷한 종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입장할 땐 점프하는 거 잊지 말고."

경비는 그렇게 말한 뒤 폴짝 뛰어 문을 향해 움직였다.

뿅.

분명히 눈앞에 있던 경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문 안에는 여전히 검게 흐르는 무언가만 보일 뿐이었다.

"일단 겪어보긴 해야겠지."

도미닉 경은 검게 흐르는 공간을 향해 움직였다.

물론, 점프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눈앞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검은색이 번져나가며 문장과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LOADING...]

[TIP : 그거 아시나요? 시스템 인더스트리를 최초로 설립한 사람은 먼 미래의 인물로, 아직 태어나지 않았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문구.

하지만 도미닉 경은 그 문구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하얀 공간에서 어지러움을 덜 느끼려면 그 문장을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TIP : 시스템 인더스트리는 아무리 안 팔리는 물건이라도 정가로 구매하고 정가로 판매합니다. 물론, 평판의 영향은 받습니다.]

[TIP : 최초로 로딩하실 경우 포탈 구동에 필요한 연계 데이터 다운로드에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와이파이로 받는 것을 추천드려요!]

[TIP : 아, 퇴근하고 싶다. 아. 아니에요, 실장님! 혼자 퇴근하려는 발칙한 생각 따위는­]

[TIP : 로딩 화면에 적힌 팁에 이상한 문구가 가끔 숨어 있답니다. 이스터 에그라고나 할까요!]

"...언제 끝나는 거지?"

도미닉 경은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음악이나 그림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니, 무언가 시간을 때울 만한 다른 사소한 것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방향 감각을 알 수 없는 하얀 공간은 시간 감각 역시 혼란스럽게 했다.

도미닉 경은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투덜거리고 말았다.

[TIP : 그러네요. 박 대리, 들었지? 다음 패치까지 로딩 화면에 뭔가 사소한 거라도 넣어.]

[TIP : 와! 들었지, 한스 사원? 이야~ 야근이다!]

...점점 로딩 화면이 회사 단체 메신저처럼 쓰여지고 있다는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마침내 로딩 화면에 있던 길쭉한 막대기가 모두 채워지자 애초에 눈부시던 장소가 더욱 눈부시게 빛나더니 그나마 존재하던 문장과 문양이 사라졌다.

아니,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눈이 하나밖에 없었기에 적응이 다소 빨랐다.

실제로 외눈이 적응이 빠른지는 모르겠으나,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포탈은 처음이었나? 시간이 좀 걸렸네. 하긴. 시스템 인더스트리 포탈의 용량이 오죽 커야지."

시야가 회복되자마자 경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비는 진압봉을 든 채 바위 뒤에 기대어 반대편을 기웃거리며 확인하고 있었다.

"도대체 여긴 뭡니까?"

온전히 시야가 돌아온 도미닉 경은 주변을 확인하고 순수한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아무리 봐도 사무실로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도미닉 경은 바위 너머에 있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반쪽짜리 시야였음에도 여기가 조금 전과 같은 건물 내부가 아니라 외부, 그것도 오지, 밀림, 늪과 같아 보였다.

"원시 밀림이야."

경비가 말했다.

"오는 동안 맵 설명과 초기 설정을 읽어뒀지. 아무래도 다음 회차 레이드 때 쓰려고 개발하던 모양인데."

도미닉 경은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그 의문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대신 그는 칼을 휘둘러 날아오는 무언가를 쳐 냈다.

"이건...뼈?"

방패로 막기 어렵게 오른쪽에서 약간 뒤로 날아온 투사체는 날카롭게 갈린 뼛조각이었다.

누렇게 변한 뼈에는 보라색의 불길한 액체가 발려 있었는데, 막지 않고 맞았더라면 순식간에 위험해질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말했잖아. 원시 밀림이라고."

경비는 바위 뒤에 바짝 붙어 날아오는 투사체가 잠잠해질 때마다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독침을 든 원시 고블린과 원시 동물들, 그리고 공룡이 나오는 스테이지지. 젠장. 나 딜러라서 이런 스테이지는 싫은데."

경비는 투덜거렸으나 긴장하거나 절망한 기색은 없었다.

그저 귀찮을 뿐이라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파악하는데 열심히었다.

"아, 그리고 일단 그 자리에서 비켜 주는 게 어때? 아래 사람이 숨을 못 쉬고 있잖아."

도미닉 경은 경비의 말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이고, 이제야 알아차리셨군요!"

도미닉 경은 화들짝 놀라 옆으로 두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밟힌 채 엎드려 있던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검은색과 갈색의 체크무늬 셔츠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고쳐 썼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요. 코더의 체력은 에너지 드링크로 채울 수 있지만, 근력은 상상 이상으로 약하니 부디 햄스터나 뱁새 다루듯 해주시길 부탁할게요. 원하신다면 저에 대한 매뉴얼을 드릴 수도 있... 아. 1927페이지 짜리 개정판은 지금 없는데, 혹시 122페이지 짜리 요약본이라도 드릴까요?"

자신을 코더라고 부른 여성은 나른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일단 상황부터. 우리라고 모든 것을 대비하고 오는 것은 아니잖아."

"아 맞다."

생각의 흐름대로 말하던 여성이 자신이 초등학생 당시 견학한 안티 바이러스 연구소에 대한 주가의 변동과 중세 시대의 소설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하려던 찰나 경비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도미닉 경은 차라리 싸웠으면 싸웠지, 도저히 그녀의 수다를 견딜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일단 여기는 레이드 용이구요, 인스턴트 레이드로 기획되어 있어서 최대 4인 파티로 구성할 수 있는 곳이에요. 보상 테이블은 아직 연결되지 않았구요­"

"요점만. 어떤 적인지, 그리고 약점은 무엇인지."

코더라고 불린 여성은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빠르게 공략할수록 자신도 살아날 확률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내 용건만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보스는 공룡을 탄 고블린이구요, 방어 타입 [대형 중장갑]에 공격 타입 [단일 충격형]이예요. 잡몹으로는 오크를 탄 랩터들이, 중간 보스로는 쌍두 프테라노돈이 나와요. 일단 보스를 제외하곤 [중형 경장갑]에 [단일 충격형]."

"잠깐, 중간에 이상한 말이 들렸는데. 오크를 탄 랩터? 랩터를 탄 오크가 아니라?"

경비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코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코더는 당당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네. 오크를 탄 랩터들. 랩터의 강력한 턱과 오크의 강인한 하체가 만난 역작..."

"그건 넘어가고. 그나저나 어디서 잘못된 거야? 긴급 호출까지 할 정도라면 문제가 생겼을 것 아냐."

"아. 그건 말이죠."

코더가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갑자기 코더의 등 뒤에서 오크를 탄 랩터가 뛰쳐나왔다. 랩터는 짧은 앞다리로 오크의 머리채를 잡고 조이스틱을 움직이듯 조종했는데, 오크는 그 명령대로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었다.

본능대로라면 가장 약한 코더에게 달려드는 것이 맞지만, 오크의 명예로운 전투를 숭상하는 본능이 외관상 가장 강해 보이는 도미닉 경을 향해 움직인 것이다.

"약점은 랩터의 뒷다리예요! 5배 취급! 꼬리나 콧구멍은 2배!"

코더가 급하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앞세워 충돌에 대비했다.

그러나 오크를 탄 랩터는 방패를 타고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싶더니 무게 중심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거꾸로 처박혀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와! 탱커였네요! 탱커는 기본적으로 잡몹에게 피해량 3배 취급이에요."

코더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경비는 이상할 정도로 해맑은 코더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어디에 오류가 난 거야?"

"아. 그게 말이죠."

경비가 코더에게 문제점을 묻는 그 순간.

"신기하게 생긴 녀석이로군."

도미닉 경은 칼 끝으로 랩터를 여기저기 찔러보고 있었다.

그가 살던 페럴란트에서도 이상한 동물이 많았지만, 공룡과 비슷한 것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풍문으로 들은 바로는 드래곤이 가장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정작 드래곤은 중요한 인물들에게나 모습을 드러냈기에 일개 기사에 불과한 도미닉 경은 드래곤도 본 적이 없었다.

불타는 거인, 얼어붙은 거인, 드워프, 투명한 큰바위 얼굴 같은 것은 질리도록 봤지만.

도미닉 경이 이 신기하게 생긴 동물을 쿡쿡 찌르자, 아직 신경이 살아 있는지 랩터라고 불린 동물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이 죽은 랩터를 관찰하는 사이에, 코더가 마침내 문제점을 말했다.

"좀비 코드가 생겨서요. 잡몹이 무한하게 살아나는 버그가 걸렸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죽은 랩터가 폭발했다.

그리고 주변 풍경을 오염시키는 보라색과 주황색과 민트색이 섞인 모자이크가 생기더니 오크를 탄 오크를 탄 랩터랩터가 생겼다.

"그것도 제멋대로 변종이 일어나는."

도미닉 경은 눈앞에 되살아난 이 괴이한 생명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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