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4화]가차랜드 0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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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인더스트리.
끝에서 처음까지!
도미닉 경이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입구에서 처음으로 본 문구였다.
"보통은 처음부터 끝까지가 아닌가?"
시스템 인더스트리는 가차랜드의 핵심이었으나, 뜻밖에 그 건물은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가차랜드가 아무리 제멋대로인 곳이라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
회사의 발언으로는 자신들이 주인공이 아니기에 한 발짝 물러서서 관조한다고 했으나, 사실은 땅값이 너무 비싼 데다가 세금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이었다.
이는 여기까지 오는 도중 주입된 지식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나 이 건물이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도미닉 경은 그 무시무시할 정도로 기묘한 건물에 넋을 잃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가능한 것인가?"
시스템의 건물은 모든 면이 유리였으나, 순간적으로 금속이기도 했고, 석재와 목재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반은 유리로,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높이 솟은 건물에는 승강기가 보였는데, 승강기는 가만히 있는 채로 건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땅에 멀쩡히 서 있는 채로.
말로 이 기괴한 광경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도미닉 경이 본 그대로를 말하고 있음에도 도미닉 경 스스로 믿지 못할 정도이니, 보지 못한 이들은 이 말을 듣고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찬란히 솟은 건물은, 그만큼이나 기괴한 것이었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저희 건물에 볼일이라도?"
도미닉 경은 누군가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아무리 자신이 넋을 놓고 있었다고 해도, 그는 평생 전장에서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감각을 뚫고 다가오다니.
예사롭지가 않다.
푸른색 작업복에 푸른 모자를 쓴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그의 모자엔 경비라고 적혀 있었는데, 시스템 인더스트리에 출입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꽤 건장하고 튼실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 혹시 이번에 면접보러 오신 분인가?"
경비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
도미닉 경은 놀란 상태였기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요즘 사람들 이렇게 성실하게 일찍 오는 사람이 드문데 말이지. 사람이 되었네. 사람이."
경비는 껄껄 웃으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어디 지원이요? 코더? 사무직? 아니면 내 후배신가?"
도미닉 경은 경비가 말하는 말을 듣고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였다. 도미닉 경은 솔직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은, 그저 직업을 얻으려고 무작정 찾아온 거요."
"아하."
경비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변함없이 밝았고, 오히려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규정대로라면 면접을 보지도 못하겠지만아무래도 늘 인원 미달이라서 말이지. 아마 바로 볼 수 있을 걸세."
경비는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자네가 원하는 부서가 있을 것 아닌가? 경비? 아무래도 경비겠지? 검을 쓰는 것을 보니 딱 봐도 경비겠구만."
도미닉 경은 곰곰이 생각해봤으나, 아무래도 평생 머리보단 몸을 썼으니 가능성이 있는 쪽은 몸을 쓰는 쪽일 것 같았다.
"경비 면접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
"합격."
"네?"
"합격이라고."
경비는 멍하게 서 있는 도미닉 경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경비 면접은 회사 면접과 달리 따로 보거든. 그리고 내가 경비 부서의 유일한 면접관이고."
경비. 아니, 경비 면접관은 환하게 웃으며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계약서라고 적힌 종이를.
"자네는 잘 생각한 거야. 저기 전문직이나 사무직에 비해서 몸 쓰는 일이 잦고 돈도 좀 덜 벌지만, 그래도 정확한 시간에 퇴근하고 4대 보험도 가입되거든. 무엇보다 시작부터 정직원이야."
도미닉 경은 4대 보험이 뭔지, 그리고 정직원이 뭔지는 몰랐으나 면접관의 말에 그저 좋은 것이라고 알아들었다.
그가 있던 곳에선 보험도, 정직원이란 개념도 없었으니까.
"우리가 월급을 같은 날 받거든. 앞으로 3일 뒤야. 그래서 말인데, 혹시 3일 일찍 일하고 3일치 더 받을 텐가? 아니면 3일 쉬고 출근해도 좋고."
경비는 자기 후배가 들어온다는 사실이 퍽 기쁜지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도미닉 경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말이다.
도미닉 경은 다시금 고민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도미닉 경은 지금 시간을 때울 만한 일을 원했고, 3일 후에 나올 바에는 그냥 3일을 기다렸다가 24를 깨고 서클에 가입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여겼다.
"당장 시작하죠. 뭘 하면 됩니까?"
그 말에 경비는 다시금 사람 좋은 미소를 띠었다.
잠시 후.
"3가지만 기억해. 하나. 주간 경비. 이건 쉬워. 회사 입구에 서서 출입하는 인원 확인하고, 가끔 수상한 인물 잡아내고."
수상한 인물이라. 도미닉 경은 쉽게 감이 잡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았는지, 경비는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 처음 봐도 수상해 보인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 마침 저기 있네. 운이 좋군."
경비는 어디서 꺼낸지 모를 텀블러에 담긴 검은 물을 마시며 슬쩍 어딘가를 가리켰다.
도미닉 경이 그 손의 궤적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정말 누가 봐도 수상한 인물이 있었다.
깡 마른 체구에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펑퍼짐한 옷. 옷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저 천을 둘둘 감은 듯 보이는 의상.
잔뜩 위축되어 굽혀진 허리와 자꾸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두서없이 움직이는 시선.
옷의 아래에는 화승줄이 슬쩍 튀어나와 질질 끌리고 있었고, 걸을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또 왔네. 자네도 알아 둬. 우리끼리는 폭탄마라고 부르는 놈인데, 한 달마다 사제 폭탄을 몸에 두르고 나타나는 녀석이야."
그리 말하며 경비는 그 수상한 폭탄마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실례합니다만, 허가되지 않은 폭발물은 반입이 불가능이라고 했잖아."
폭탄마는 깜짝 놀랐다. 그러곤 떨리는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니, 도검이나 총기류는 되면서, 왜, 왜 폭약은 안 된답니까?"
의외의 반응이었다.
폭탄마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경비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 경비와 폭탄마는 도저히 사무적인 관계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야, 청소하기 귀찮으니까 그렇지. 저번에 청소부 아주머니들 파업한 이후로 규정이 그렇다고 벌써 몇 번을 말해?"
폭탄이 위험하다느니, 혹은 회사에 대한 테러 행위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일상적이면서 황당한 이유였다.
"끙. 그래서 폭발해도 잔류물이 없는 방식을 쓰겠다고 했잖습니까. 저 퀘스트 깨려고 지금 2년째입니다. 2년."
"아니, 자네 딱한 건 알아. 근데 왜 폭탄마 특성을 얻어서 고생이야? 게다가 내가 그 퀘스트 모르는 줄 알아? 하필 왜 우리 회사냐고."
"그야, 법적으로 고소당하지 않는 회사가 여기밖에 더 있습니까."
둘의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하게 변했다.
도미닉 경은 중간중간 나오는 몇몇 문장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황이 재밌어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튼, 오늘은 그냥 가. 후배 들어온 날이라 기분이 좋으니까, 서로 좋게 좋게 가자고. 알겠지?"
"끙. 어쩔 수 없네요. 대신 다음 주에 좀 눈 감아 주시는 겁니다?"
"아, 좀. 그러지 말자."
어느새 합의된 것인지 수상한 폭탄마는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갔다.
경비는 진이 빠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휴. 말이 통하는 건 좋은데, 제일 힘이 빠진다니까. 이봐 후배,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 두 번째."
경비는 자문자답으로 말을 이어갔다.
도미닉 경이 무언가 말할 틈도 없었으나, 다음 말이 궁금했던지라 입을 다물었다.
"둘. 야간 경비. 이것도 쉬워. 다만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내부가 좀 복잡해서 처음엔 지도를 들고 다녀야 할 거야. 회사.exe 파일에 패치를 덕지덕지 발라서 원년 직원들도 길을 잃곤 하거든."
경비는 도미닉 경에게 지도를 주었다. 손수건 만한 작은 크기였으나, 펼치고 펼치다 보니 몸보다 더 큰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더 펼칠 부분이 남아 있었다.
"다 외우는 사람은 없는 데다가 자체적인 경비 시스템이 따로 있으니까, 야간 경비에서 볼 곳은 입구 주변 정도라고 생각해. 아. 그리고 잃어버리면 큰일 난다?"
그는 잔뜩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비매품이라 안내 데스크에서 다시 받아야 하거든. 데스크 직원들이 귀찮다고 싫어해."
뜻밖에 기밀이라거나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은 지도를 조심스럽게 접어 품에 넣었다.
경비는 작게 '하는 일도 없으면서 깐깐하기는 더럽게 깐깐하단 말이지.'라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무튼 마지막 업무는 비상 근무. 코더나 프로그래머들이 싼 똥을 치우는 일이지. 그 외에 알아야 할 것으론 따로 점심 시간이나 저녁 시간은 없으니까 도시락을 싸야 한다거나, 화장실 위치라거나"
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윗층에서 흔들림이 전해져 왔다.
도미닉 경은 순간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위기 상황에서 그의 반사신경이 움직였다.
잔뜩 긴장한 도미닉 경과는 다르게, 경비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이를 악문 채 작게 투덜거렸다.
"아, 또 왜 무슨 일이야.. 진짜."
"도대체 이 흔들림은 무엇이오?"
"비상 근무. 끙. 마침 잘됐네. 비상 근무 수당 따로 챙길 수 있겠어."
경비는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텀블러에 남은 물을 단숨에 마셔버리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아니, 나서려다가 잠시 멈춰 서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너도 참 기구하다. 어떻게 첫날부터 이러냐. 일단 따라 와."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도미닉 경도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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