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201화 (완결) (201/202)

201화. 세계수

완전히 숨이 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해화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과의 연이 완전히 끊겼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낙조가 그녀를 살짝 끌어당겼으나 해화는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천천히 낙조의 손을 놓았다.

연우의 시신은 정말 불에 탄 것처럼 그을려 있었다. 살가죽은 몇 겹의 껍질처럼 벗겨져 잿더미가 되었고 온전한 뼈도 찾기 힘들었다. 간신히 붙잡힌 뼈는 머리였는데, 비명을 질렀던 순간에 숨이 멎은 듯 하관이 심각하게 열려 있었다. 시취보다는 탄내가 더욱 진동을 하는 곳에서, 해화는 연우와 함께 타들어간 풀의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지독하네…….”

“무슨 뜻이야.”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거지.”

나지막한 목소리가 고요한 방안을 울렸다. 낙조는 해화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우고서 지운을 돌아보았다. 아직 낙조의 변한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지운은 잠깐 놀랐다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무전 좀 쳐줘.”

“응.”

한곳에 똘똘 뭉쳐 그르렁거리고 있는 변종 떼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언제라도 자신을 향해 뛰어들 것만 같은 긴장감 속에서, 지운은 무전기를 꺼내 입김을 불었다.

“정보실 통제, 정보실 통제했습니다.”

아무래도 불안한 듯 변종 떼를 흘낏거리며 말하는 태도가 눈에 선연히 들어왔다. 낙조는 해화에게 부드럽게 속삭였다.

“이제 저들도 보내줘야지.”

“수가 너무 많은데……, 일일이 하기에는.”

“한 번에 하면 되지.”

낙조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변종 떼를 향해 뒤돌았다. 그리곤 가까이 다가가며 왼쪽 손등에 난 껍질을 또 억지로 뜯어냈다. 피가 송골송골 맺히고, 피 냄새를 맡은 변종들이 낙조에게로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변종들에게 둘러싸인 낙조는 가만히 자신만 지켜보고 있는 변종들을 바라보다가 왼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일고 난 후, 변종들은 낙조를 따라 왼손을 따라 올렸다. 낙조가 다시 천천히 손을 내려 배 위로 가져다 대자 그들도 낙조와 똑같이 행동했다. 해화는 낙조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깨닫고서 그의 곁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지운이 그녀를 붙잡았지만 해화는 괜찮다고 속삭일 뿐이었다.

낙조는 배 위에서 무언가를 쥐어 잡는 시늉을 해 보였다. 뱃속을 긁어, 깊이 박힌 것을 찾아 헤매는 손짓까지 완벽했다. 변종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배를 찢어 이리저리 손을 휘젓다가 각자 몸에 박힌 뿌리를 배 밖으로 꺼냈다. 진액이 순식간에 바닥을 적셨다. 지운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모서리에 몸을 꼭 붙이고 있을 때였다. 해화가 조용히 낙조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이곳에서 서연우에게 당했던 모진 실험과 그 반복으로 인해 넝마가 되어버린 영혼들은 제대로 된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신음하거나 짧게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해화가 그들을 위해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가장 편하게 저승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왔으리란 것만 알 수 있었다.

*

무흠이 낙조를 부른 곳은 지하 벙커였다. 서천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듯한 벙커엔 수많은 방이 들어차 있었다. 낙조가 벙커 안으로 몸을 디뎠을 때, 본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기겁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아직 돌아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자신도 시간을 모르니 저런 반응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도 귀찮았다.

낙조는 무흠이 끌고 온 소장과 마주했다. 그는 벌벌 떨고 있으면서도 눈은 끝까지 피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뗀 건 낙조였다. 그는 연우가 만든 백신은 일회용일 뿐이며, 서천에서 가져온 풀이 지금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자신의 껍질을 뜯어 직접 보여주었다. 곧장 피를 덮고 올라오는 새살을 보고서 소장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가장 군사력이 강한 곳이 어디인지, 통솔력은 누가 쥐고 있는지 등등……, 낙조는 그에게 재앙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물었다. 소장은 자포자기한 것처럼 모두 대답했다. 김포 공항은 겨울이 오기 직전 함락당했지만, 인천 공항은 아직 잘 지키고 있다고. 비행장에 모인 변종들과 비행기에 달라붙은 변이 식물만 아니라면 비행도 가능하다는 말이 나왔다. 낙조는 가만히 그를 응시하다가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가리켰다. 낙조의 손가락에 놓인 곳은 청주였다. 바로 본부.

“그럼 일이 조금 더 수월해지겠어요.”

“…….”

“제가 비행장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럼 사람들을 태워 제주로 보낼 수 있겠죠. 그리고 이곳은 경유지로 사용하게 하는 겁니다. 이제 곧 봄이 옵니다. 날이 풀리면서 변종들이 기승을 부리겠죠. 그 모든 길을 뚫고 단번에 인천까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될 겁니다. 여기서부터 지원 병력을 보내 이곳에 잠깐 머무르게 했다가, 일정 인원이 되면 함께 인천으로 출발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돌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당신 말대로 하지.”

소장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대답했다.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 그는 지상으로 올라가 인천공항 대피소 쪽과 바로 연락을 시도했다. 완벽한 백신 확보와 변종이 없는 곳으로의 여정. 꿀을 발라 놓은 듯 달콤한 말들은 곧 소나기처럼 쏟아질 역병에 두려워하던 사람들에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각자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됐을 때, 밤이는 자원하여 서천에서 가져온 약초로 서연우가 만들어놓은 샘플 제작법을 뒤집어 변이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세포를 만들어내는 데에 연구를 시작했다. 이미 기초로 해둔 작업이 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했다.

낙조의 모습은 새벽녘이 되었을 때쯤 돌아왔다. 왜 지금일까, 생각을 하기도 전에 무흠이 낙조가 쉬고 있던 방으로 찾아왔다. 세성이 왔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직접 이곳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기에 낙조는 반가운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무흠의 말대로 세성은 테이블 앞에 앉아 가만히 낙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모습만 봐도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으나, 그가 살아서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낙조는 먼저 안도했다.

“세성님.”

“왔구나.”

“어떻게 오셨어요.”

“배 타고 왔지.”

“아니……, 오는 길에 아무 일도 없으셨어요?”

“없었으니까 이렇게 보는 거 아니냐.”

“좀 다정하게 얘기 좀 해주시면 안 돼요?”

“내가 왜.”

“…….”

낯빛이 좋아 보이진 않아도 사람 속을 긁어놓는 듯한 어투는 바뀌지 않았다. 낙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고서 세성의 맞은편에 앉았다. 세성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물 한 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낙조야.”

“……간지럽게 이름을 왜 그렇게 부르세요.”

“세상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못하게끔 사람을 구석으로 몰 때가 있다.”

“…….”

“그곳에서 스스로 빛을 향해 나온 사람은 아주 드물지. 정말 죽어버릴 수도 있고, 아예 포기한 채 스스로 몸을 묶을 때도 있으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세성은 컵을 들고서 얕게 찰랑거리는 물결을 내려다보다가 덧붙였다.

“그런데 거기서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강한 사람은 아니야.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지.”

“…….”

“너는 네가 어떻게 그늘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질문이 날아와 낙조의 중앙을 꿰었다. 그늘, 이란 단어에 낙조의 숨이 잠깐 멈추었다. 세성은 물을 마시지도 않고 컵을 내려놓았다. 낙조의 대답을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다는 듯 묵직한 침묵이 이어졌다. 낙조는 세성의 시선을 피한 채 가만히 생각했다.

자신이 그늘에 있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려준 건 처음이었다. 모두가 연민, 동정, 아니면 시기와 질투로 가득찬 시선으로 어린 자신을 보았고 보살피려는 손길로 매번 배반했으니까. 그런 시간이 그늘이었나. 나는 그럼 지금까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늘 안에서, 누구의 손길도 닿지 못하는 그런 그늘에서……, 지냈던 걸까. 평범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던 나날들이 순식간에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낙조는 주먹을 쥔 채 대답했다.

“저는 저대로 잘 살았습니다. 딱히 슬퍼하거나 누구를 원망하면서 산 적 없어요.”

“내가 말하는 그늘은 죽음이다.”

“…….”

“어떻게 죽었는데도 살았냐고 묻는 거야.”

“그건……, 세성님이 더 잘 아시지 않아요?”

“네가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분노였냐?”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하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처하는 상황이 바뀔 때마다 낙조는 몇 번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던져 그들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혼자라면 하지 못했을 짓들을 가장 많이 시도한 것도 있었다.

결국 낙조의 머릿속에 유유자적하게 떠다니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거제도에서 이를 갈며 다짐했던 생각. ‘하필’ 나에게 떨어진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심어두었던 생각이 낙조의 입을 트이게 만들었다.

“세상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모조리 죽여서……, 그 누구도 결핍 없는 땅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

“삼승과 말은 비슷하지만 이루려는 뜻은 다릅니다.”

“안다.”

급하게 낙조가 설명을 덧붙이려 하자, 세성이 말을 막아섰다. 그는 그제야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며 웃었다.

“근데 몸이 바뀔 거라고는 왜 미리 말씀 안 해주셨어요.”

“네가 겁부터 먹을 줄 알고. 그건 내가 괜한 걱정을 했어.”

“……그래도 중사님이 알고 계셔서 다행이었죠 뭐.”

“낙조야, 내가 죽으면 무덤 옆에 넌출월귤을 심어주련. 잘 보살펴 주지 않아도 된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주 보러 오지 않아도 돼. 죽은 것, 뭐가 볼 게 있다고 찾아오니.”

“정말……, 정말 죽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난 망자의 강만 건너면 된다. 이미 죽은 몸이었고. 삼승이 일시적으로 살린 것뿐, 결국 능력도 소진했으니 돌아가게 돼 있어.”

색이 거의 빠진 세성의 입술은 물을 머금고도 촉촉해지지 않았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낙조의 대답을 짓눌렀다. 조금의 반발도 하지 못하도록 대화의 간격을 점차 조이는 힘이 엄청났다. 스스로 죽음을 암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받아들이라는 세성의 태도가 너무나 미웠다. 남겨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울지 알면서 그런 소리를 어떻게 저렇게 쉽게 할까.

“그리고 낙조야.”

“…….”

“세상을 죽일 수 있는 힘은 모든 걸 되살릴 수 있는 힘과 같다.”

그 어떤 대답도 하기 싫어 입을 억세게 다물고 있는 동안, 세성은 자신의 할 말을 꿋꿋하게 이어갔다.

“세계수는 희생하지 않아.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오면 너도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균형을 갖춘 자연이 스스로 할 줄 알게 되면, 너도 돌아가는 거지.”

그게 희생이 아니면 뭐랍니까. 낙조는 실소가 터질 뻔한 것을 참고서 눈물 고인 눈으로 세성을 바라보았다. 그가 미우면서도 이 대화가 마지막일 것 같은 느낌에 쉽사리 입을 뗄 수 없었다. 세성은 낙조의 눈을 보고서 한참 말을 않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작고 흰 손이 낙조의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내가 도울 테니 걱정은 마라.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낙조의 손등을 토닥이며, 세성이 그를 잠재우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낙조는 천천히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

“켈리가 만든 환각에서 난 살육하는 나무였어.”

인천으로 떠나는 마지막 차들을 바라보며 낙조가 중얼거렸다. 각 임시 대피소에 백신에 대한 이야기와 상황을 알렸고 병력을 지원하여 낙조와 함께 안전한 길을 만들었다. 낙조는 하루도 빠짐없이 구조를 도왔고 마침내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제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해화는 낙조의 곁에 가만히 서서 그의 말을 들었다. 찬바람보다 상냥함이 더 묻어나는 바람이 코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건 환각이니까. 근데 하나는 변하지 않는 거더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어. 홍해화 너도 같이 느꼈잖아.”

“……정말 남을 거야?”

“세성님이 도와주신대. 얼마 안 걸릴 거야.”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지 낙조가 무슨 생각을 거쳤을지, 해화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 없었다. 그럴 용기도 나지 않았고. 겨우 에둘러 말하고 있었지만 결국 낙조는 일행과 제주로 가지 않는 것을 택했다. 그 선택은 해화만 알고 있었다. 이렇게 넓은 곳에서 뭘 혼자 어떻게 하겠다고. 해화는 속상함과 걱정이 뒤섞인 마음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숨이 눈물에 젖은 것을 빤히 알면서도 낙조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난……, 난 혼자 못 해.”

“해화야.”

“너가 필요해. 나 혼자서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해?”

“말했잖아.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고, 돌아오지 않을 것도 아니야.”

“네가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게…….”

결국 터진 눈물에 해화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렸다. 소리를 죽인다 해도 우는 소리를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 낙조는 가만히 우는 해화를 바라보다가 품으로 끌어안아 토닥였다.

“그럼, 흑, 어디로 가는지만, 윽, 흐윽, 알려줘.”

“안 돼.”

“왜?”

“세성님을 지켜야지.”

“흑, 흐윽, 으흐윽…….”

세성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은 이틀 전에 도착했다. 모두가 침묵했다. 각자 다른 시간을 보내며 애도했고 낙조는 그때까지도 결정하지 못한 마음을 정리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마음을 다잡게 될 수도 있구나. 정말 모든 일이 순환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세성님이 넌출월귤을 심어 달래.”

“흐어엉, 흡, 어엉…….”

그걸 지키고 있어줘. 그럼 금방 갈 거야. 낙조는 해화의 귓가에 속삭이고서 꽉 끌어안은 후 그녀를 놓아주었다. 때마침 옥상 계단을 밀치듯 열며 지운이 소리쳤다. “빨리 와!” 해화는 그를 등지고 있었기에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낙조는 해화의 어깨를 토닥였다.

옥상 난간에 앉아 천천히 문밖으로 나가는 차들을 지켜보았다. 시원섭섭했다. 이제는 그 어떤 생명도 남지 않은 곳에 혼자 있으려니, 조금은 심심할 것 같기도 했다. 낙조는 차가 점이 되어 아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난간에서 내려왔다. 그리곤 아주 느린 걸음으로 본부 건물 내부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지내기 좋게 바뀐 내부 여기저기서 인기척이 묻어 나왔다. 척박하기 그지없던 곳이 사람의 온기에 가득 잠긴 모습으로 바뀌었다. 낙조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네모난 가방에 넣은 것은 물통뿐이었다. 비밀번호도 설정하지 않고서 가방 문을 닫았다. 낙조는 천천히 밖으로 나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건물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느낌에 손을 한 번 흔들어 주었다.

어디선가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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