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몰락 (2)
“젠장!”
유현이 욕을 짓씹으며 호흡을 골랐다. 방금 들은 안내방송이 서연우가 한 게 맞다면, 방금 건넌 복도 뒤편에서 변종들이 쏟아져 나올 터였다. 이곳까지 쉬지 않고 달리느라 숨이 벅찼기 때문에 조금 숨을 달랠 참이었다. 북문을 코앞에 두고서 생각지도 못한 변수와 마주하게 됐다. 이곳으로 구조대가 올 확률에 기댈 순 없었다. 모두가 격리구역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말없이 덜덜 떨며 유현만 바라보고 있었다.
“셋 세고, 뛰는 겁니다.”
유현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두가 두 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무기 비슷한 것을 쥐고 있다고 해도 떼로 달려드는 변종을 완전히 막아낼 방법은 없었다. 유현은 작은 목소리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쾅, 꽝!
“뛰어요!”
“아악!”
“으아아!”
셋이 끝나기도 전에 닫힌 문에 무언가가 막무가내로 몸을 던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은 사람들과 뒤섞여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밀면 열리는 문이었기에 뒤를 돌아볼 새도 없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변종의 괴랄한 비명이 온몸을 섬찟하게 만들었다.
“엄마, 아악!”
유현의 뒤에서 달리던 여자가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유현은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 주춤거렸다간 함께 저승도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수도 있었다. 여자는 일행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곧 변종과 닿았는지 허공을 찢는 비명이 귓가에 닿았다.
“저기, 저기 있어요!”
앞서 달리던 일행 중 하나가 일렬로 세워져 있는 차들을 보며 소리쳤다. 마지막 문만 밀치고 나가면 된다. 그런 생각에 순간 마음을 가볍게 먹은 건지도 모른다. 한숨을 돌릴 찰나였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유현의 어깨를 잡아챘다.
“……허억.”
깜짝 놀라 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마구 뒤쪽으로 헤집었다. 무언가 물컹한 것에 걸린 도끼날은 다시 뽑으려 했지만 쉽게 빠지지 않았다. 유현의 어깨를 쥔 것은 포자 변종이었다. 얼굴에 핀 포자가 크게 부풀어 올라 몇 겹이고 쌓여 마치 하나의 벌통을 상상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변종의 옆구리에 깊게 박힌 도끼날은 좀처럼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현은 자신의 어깨를 쥐고 있는 변종의 손목을 잡아채 꺾으며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
“막아! 잠그라고!”
“……씨발, 문 열어!”
마지막 문까지 몇 걸음 남지 않았을 땐, 유현을 제외한 모두가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들은 문을 온몸으로 막으며 잠금장치를 매만지고 있었다. 유현이 문에 달려들어 거세게 두드렸지만, 이미 정신이 나간 이들은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열라고! 문 열어!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개중엔 유현의 말에 동조하여 일행을 말리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의 힘을 잡아채진 못했다.
철컥.
이중으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유현은 멍한 눈으로 자신에게서 뒤로 물러서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을 내가 왜 믿었지? 실소가 터져 나올 무렵 다시 어깨가 붙잡혔다. 유현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끼 손잡이를 다시 쥐었다. 넘어진 여자를 해치운 남은 무리가 달려들고 있었다. 온갖 힘을 주어 변종을 벽으로 밀치고 도끼를 다시 겨우 빼낸 유현은 그대로 변종의 머리를 반으로 갈랐다. 무딘 날이었지만 충분했다.
“씨발, 씨발, 씨발…….”
유현은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변종 떼를 보면서 작게 욕을 읊었다. 이미 희망이 빠져나간 눈동자에선 힘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유현은 다시 도끼를 쳐들며 비명을 내질렀다.
죽음을 코앞에 두면 무엇이 지나간다고들 하던데. 그런 것 따윈 없었다. 가장 사랑하는 것이 눈앞에 보인다고도 들었다. 그것도 유현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딱히 무언가를 사랑하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왜 저들은 나를 버렸을까,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더 벌기 위함이었을까, 그게 왜 하필 나였을까. 변종이 몸을 물어뜯기 전엔 그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캬아아아악!”
꾸덕한 진액을 질질 흘리며 다가오던 변종이 유현의 팔을 물었다. 유현은 쥐고 있던 도끼를 떨어뜨렸다. 밀어붙이는 힘에 그대로 잠긴 문에 등이 닿았다.
시야가 어두워질 정도로 개떼처럼 변종이 달려들었을 때, 유현은 눈을 감았다. 고통이라곤 몸이 뜯기는 게 전부였다. 이제 내 몸에 갇혀서 어디도 가지 못하겠구나. 사람들을 원망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
“저기.”
앞서 나아가던 귀도가 낙조를 부르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낙조 또한 변종의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여기서 흩어지지. 장승이 나와 함께 백신을 찾으러 가고, 고낙조는 변종을 찾아 막아.”
“그렇게 하죠.”
빠른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낙조는 귀도의 의견에 동의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때까지도 낙조에게 아무 말도 걸지 못하고 있던 해화와 지운이 낙조의 뒤로 따라붙었다. 함께 움직이려는 수호의 뒷덜미를 잡아챈 무흠이 그를 끌고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언제부터 이랬어?”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걷던 해화가 조심스럽게 낙조에게 물었다. 불필요한 얘기가 오갈 것 같아 낙조는 침묵하기로 했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오히려 두려워진 해화는 울퉁불퉁하게 자란 나무껍질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제야 낙조가 걸음을 멈춰 세웠다.
“말 좀 해 봐.”
“시간 없어. 나중에 해.”
낙조는 해화의 시선을 어렵사리 떼어 냈다. 변종의 소리는 한곳에서 집중적으로 퍼지고 있었다. 해화와 지운 모두 총을 들긴 했으나 들리는 대로 수를 센다면 자신이 한 번에 막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부서진 문을 보면서 걷던 낙조와 일행은 이내 복도 끝에 몰려 있는 변종들의 뒷모습과 마주쳤다.
“여기서 대기해.”
“또 너 혼자…….”
“아니, 실험 좀 해보려고.”
낙조의 말에 해화와 미간을 찌푸렸다.
“계획 좀 공유해. 우린 그럼 뒤에서 뭐 하고 있으라고.”
“구경해.”
“야!”
“덕분에 시선 몰렸네. 고맙다.”
해화가 소리치자마자 문에 매달려 있던 변종들의 시선이 낙조에게로 쏠렸다. 해화는 급히 사격자세를 취했지만 낙조가 손을 내저었다.
“방해하지 말고.”
얼굴까지 나무껍질로 뒤덮여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해화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총구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한 번 와 봐.”
낙조는 부러 나무껍질 하나를 억지로 뜯어내며 중얼거렸다. 살가죽과 함께 뜯어진 것을 바닥에 내던지니 곧 피가 치솟았다. 피는 나무껍질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흘러내렸다. 금세 냄새를 맡은 녀석들이 슬금슬금 낙조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운은 바짝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카아아악!”
이내 가장 큰 덩치를 가진 놈이 낙조에게로 달려왔다. 녀석의 입안에선 진액이 들끓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듯 녹색으로 변한 진액에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시취와 비슷한 냄새가 일었다. 낙조는 아무 감흥 없이 자신의 몸으로 뛰어든 녀석을 가만히 놔두었다. 놈은 낙조의 상체에 매달려 손과 이빨로 껍질을 까득까득 씹어댔다. 해화는 황급히 지운을 데리고 문 뒤로 몸을 숨겼다. 눈이 마주치기 직전이었다.
‘왜 아무 반응도 안 하지?’
해화는 몸을 바닥에 딱 붙이고서 눈만 밖으로 빼냈다. 낙조는 여전히 우두커니 서서 껍질을 뜯으려는 놈을 가만히 놔두고 있을 뿐이었다. 놈에 이어서 낙조의 피 냄새를 맡은 녀석들이 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낙조는 꿈쩍도 안 하고 자신의 몸에 달라붙는 놈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녀석들이 아무리 씹고 뜯어도 껍질은 벗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꺼운 껍질에 긁혀 변종들의 묽은 살덩이가 갈려 나갔다. 이리저리 진액과 포자가 튀었다. 낙조는 한 놈도 빠지지 않고 자신의 몸에 붙었을 때, 피가 흐르는 곳으로 힘을 내보냈다.
향을 내뿜는 것. 사람이 느낄 수 있을 만큼 강한 향은 멀리 있는 변종도 이끌 수 있었다. 서천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향을 내뿜는 일은 그런 데에 쓰였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변화한 이 상태에선 변종들과 어쩌면,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피가 고이던 곳에서 역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해화와 지운은 코를 막고 숨을 참았다. 오히려 역한 냄새에 반응하는 건 변종들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낙조를 씹지 못해 안달이던 변종들은 다 내려앉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한 마리씩 낙조의 몸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향에 취한 상태로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낙조를 빤히 바라보았다. 겉모습만 아니라면 보통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변종들의 상태는 차분해졌다. 낙조는 다시 상처 위로 자라나기 시작하는 나무껍질을 보다가 자신의 앞에 모인 변종들을 슥 둘러보았다. 그리곤 그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아, 아. 들립니까? 백신 확보했습니다.
“허읍.”
지운이 갖고 있던 무전기에서 수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분했던 변종들이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한곳으로 돌렸다. 그러나 낙조가 왼손 손가락을 튕기자, 다시 고개를 순순히 돌려 낙조를 응시했다.
“저 사람들은 안 돼.”
낙조는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변종들은 제자리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해화는 멍하니 낙조를 따르는 변종들을 보면서 숨을 터뜨렸다. 역한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 들었지만 그것 따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서연우 정보실에 있을 겁니다.
“…….”
서연우란 이름에 낙조가 서늘한 시선을 띄고서 고개를 돌렸다. 지운은 쥐고 있던 무전기를 낙조에게 슬쩍 건넸다. 지운의 모습을 보고도 변종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몇 차례 탈피한 것처럼 더욱 괴이한 모습으로 나타난 변종은 아무리 보아도 적응되지 않을 것 같았다.
“변종 제압했습니다. 정보실 위치 어딥니까.”
낙조가 무전기를 쥔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해화와 지운 모두 알아챘다. 작정했구나. 드디어.
수호가 무전기 건너편에서 정보실의 위치를 알렸다. 낙조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알겠다고 대답한 후 말을 덧붙였다.
“변종이 흩어졌거나 남은 병력이 있을 수도 있으니 끝까지 조심하십시오.”
-네, 고낙조 씨 쪽도요.
무전을 끊고서, 낙조는 해화와 지운에게 옆에 오라는 듯 손짓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운은 쭈뼛거리며 해화의 뒤에 달라붙어 문밖으로 나갔다. 오히려 해화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얼굴로 낙조의 곁에 섰다.
“……저기, 끝에 저 사람 보여?”
“흰 가운?”
“어.”
“……여기 사람이었나 보네.”
낙조가 변종 무리에 끼어 있는 놈 하나를 가리키며 해화에게 말을 건넸다. 해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기유현…….”
낙조는 가운에 쓰인 이름을 보고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포자와 진액에 뒤덮인 변종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여기저기를 물어 뜯겨 피에 젖은 가운이 유독 눈에 걸렸다.
수호가 알려준 위치대로 걸음을 옮겨 계단을 밟았다. 사람들은 마치 사라진 것처럼 눈에도 띄지 않았다.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복도를 한 번씩 돌아보면서, 낙조는 변종들을 이끌고 마지막 계단을 밟아 올랐다.
정보실은 복도 맨 끝에 놓여 있었다. 저 문 너머에. 드디어. 그 사람이.
낙조의 눈동자가 순간 섬뜩하게 빛났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서 해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배 타기 전에 부탁한 거.”
“……이러려고 준비해달라고 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없어도 괜찮았을 텐데.”
“아냐. 확실하게 해야지. 가서 죽여버리자.”
해화는 붉어진 눈가를 훔치곤 품에서 자그마한 독초를 꺼냈다. 뿌리째 뽑아온 독초는 작고 동그란 이파리를 내보이고 있었다. 낙조는 해화의 손에서 독초를 건네받곤 천천히 걸음을 떼어 냈다. 해화는 변종이 모두 낙조를 따라 이동한 후, 지운과 함께 그 뒤를 따랐다.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