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193화 (193/202)

193화. 꽃나무

하루가 지나고 눈이 그칠 때쯤이었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던 삼승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역시나 삼승의 곁에 붙어 있던 세성은 곧장 움직임을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엔 손가락만 덜덜 떨리던 것이, 발이 움직이다가 이내 숨을 크게 토해냈다. 삼승은 거친 기침을 여러 번 내뱉더니 가쁘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묶인 팔다리를 느꼈는지 큰 몸부림 없이 온몸에서 힘을 풀었다.

“곁에 세성 있니.”

“예.”

그녀를 저버렸다고 해도 둘 사이엔 떼어놓을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 세성은 예의를 차려 대답하고서 삼승의 곁으로 다가가 섰다. 푹 파인 눈 위로 덮인 천엔 이제 피가 묻어나오지 않았다.

“독이 든 꽃을 썼더구나.”

삼승은 세성이 만든 독약에 대해 바로 알아차렸다.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세성은 굳이 긍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실실 새는 듯한 웃음을 짓다가 입을 다물었다. 방을 감싸고 도는 기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새벽녘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깨어난 삼승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빛줄기라도 찾는 것인지 그 움직임은 체념에 가까웠다.

“그 꽃은 어디서 찾았니.”

“…….”

그녀의 덧붙여진 질문에 세성은 잠시 고민했다. 무방비 상태이니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해도 되는 걸까. 아직 밖엔 완벽하게 내리누르지 못한 삼성의 무리가 있다. 귀도와 낙조가 있었기에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삼승이 깨어났다는 사실이 밖에 알려지면 뜻하지 않게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기억 안 나세요?”

세성은 의자를 끌고 삼승의 곁에 앉았다. 삼승의 색색이는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전해져 왔다. 삼승은 입을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가지런히 놓인 그녀의 두 손을 바라보다가 세성은 실웃음을 퍼뜨렸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모든 게 정말 잘 들리는구나.”

“…….”

“평소에 듣지 못했던 소리도 너무나 크게 들려.”

“…….”

“이런 걸 알려주고 싶었니.”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세성의 행동을 원망이라도 한다는 듯이.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는 말을 몇 번이고 돌려 내뱉었다. 말끝이 점점 분노의 무게에 짓눌려 무거워지는 걸 느낀 세성은 웃음을 거두었다.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순 없겠구나. 완전히 내가 아는 사람은 없어졌구나. 세성은 그리 생각하면서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이전에 제게 직접 주신 꽃입니다.”

“…….”

“잊으셨나요.”

삼승이 자신을 무덤에서 꺼내 살린 후, 마치 부활을 축하하기라도 하듯 내민 꽃이었다. 바구니 가득 담긴 꽃은 처음 맡아 보는 매력적인 향과 색을 내뿜고 있었다. 삼승에게 꽃의 이름을 물었으나, 그저 걷다가 예뻐서 가져온 것이라 그녀는 자세히 모르겠다고 답했다. 세성은 최대한 꽃이 시들지 않도록 서천에서 가장 귀한 물을 써 송이마다 수명을 늘렸다. 그래봤자 꺾인 꽃은 금세 잎을 여물고 안쪽으로 말라붙었다. 세성의 곁에 마지막까지 있어 준 꽃은 결국 삼승을 막는 데에 사용했다. 삼승의 선물을 이런 식으로 돌려줄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세성은 잠시 입을 뗐다 오므렸다를 반복하다가 말했다.

“그때 제게 하신 말씀도 있었잖아요.”

“……내가 무슨 말을 하며 주었니.”

“정말 기억 안 나세요?”

“그러니 네게 물어보는 거지.”

“이 말을 어째서 제가 말하도록 시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땐 너에게 많이 다정했으니까.”

“…….”

삼승의 마지막 말에 세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지 않으면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물컹거리는 것을 모두 토해낼 것만 같았다. 삼승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하고 안락했다. 그건 그녀가 완벽히 체념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도 옛날을 생각하는 듯, 일자로 닫혀 있던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그녀의 미소에 세성은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물을 엎지르는 마음으로 소리쳤다.

“삼승님을 지켜야 할 때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

“당신을 어떻게든 지켜야 할 때, 그런 순간이 오게 되면 분명 쓸 일이 있을 거라고…….”

“……그래. 이제 기억난다.”

“그때도 이렇게 되리란 걸 알고 주신 거예요?”

“글쎄.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잘 모르겠구나.”

“모든 걸 기억하시는 분이 왜 저와의 일은 다 모르는 척하십니까.”

“세성.”

“…….”

“내가 눈이 완전히 뽑히지 않았다면, 너는 내 손에 직접 죽었을 거야. 그래도 내 변명 같은 게 듣고 싶니. 네 상상 이상으로 나는 엄청난 짓들을 했어. 부정하지 않으마. 하지만 후회 또한 하지 않는다. 어쨌든 내 일상은 이제 끝났으니까.”

자신을 죽일 수 있었다는 말에도 세성은 물러나지 않았다. 눈에 잔뜩 고인 눈물 때문에 눈앞이 뜨겁게 익는 듯했다. 세성은 고개를 위로 올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물이 옆으로 하염없이 떨어졌다.

그녀가 깨어나면, 그동안 묻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묻고 싶었다. 친절하거나 상냥하진 않더라도 어렴풋이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더 이상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자신에게 벌이라도 주듯이 모든 예상은 빗나갔다. 삼승의 말 한마디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정말 완전히, 몸 안에 깃든 능력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새어나간 듯했다.

“세성, 나는 틀리지 않았다.”

삼승은 시신처럼 몸을 굳힌 채 말했다. 그녀의 손이 차갑지 않을 걸 알면서도, 세성은 쉽게 그녀의 손을 쥘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살갗이 닿았다간, 저 짧은 손톱에 온몸이 긁힐 것만 같았다. 삼승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을 덧붙였다.

“나를 한 번이라도 불쌍히 여긴 적이 있지 않니.”

“…….”

“마음 고운 네가 그런 생각을 안 했을 리 없다.”

“삼승님.”

“그럼 날 조금이라도 이해해줄 수 있지 않니?”

“…….”

“조금씩 늙어가는 날 보면서, 너조차 내 삶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을 리 없지 않니.”

“삼승님, 그만 하세요.”

세성은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겨우 호흡을 갖춘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볼 수 없었으나, 꼭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기분에 속이 점점 타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세성은 답답한 가슴을 세게 내려치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이지 않으니 두려우신가 봅니다.”

“너도 알지 않으냐. 네가 능력을 잃었을 때, 내 품에 안겨서 얼마나 울었는지.”

“……하지만 저를 그렇게 만든 건 삼승님이지 않으셨습니까.”

“계속 그때처럼 울기만 하는 아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삼승님!”

“어째서 내가 아니니, 세성. 어째서?”

삼승은 헛웃음을 터뜨려가면서 중얼거렸다. 결국 밑바닥까지 파낸 가슴 속이 드러난 모양이었다. 속이 다 보일 정도로 앙상한 뼈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삼승의 마음은 더없이 보잘것없었다. 삼승과 함께하며 처음으로 조금도 꾸미지 않은 속내를 듣는 순간이었다. 세성은 아랫입술을 덜덜 떨며 좀처럼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삼승을 응시하면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한때 모든 마음을 바쳐 극진히 동경했던 이의 몰락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은 끔찍하리만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삼승이라고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항상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테고, 그런 말을 몇 번이나 삼키며 살아왔는지 세성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행동이 옳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삼승은 세성에게 동정을 구걸하게 되었지만, 세성은 이미 삼승을 가엾게 여기고 있었기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세성은 삼승이 가여운 사람이었으나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베풀 만큼 간악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버렸다. 그걸 깨닫게 놓아둔 삼승은 정작 그것도 깨닫지 못하고 세성에게 애걸하고 있는 것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두렵진 않아.”

“…….”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 네게 그 꽃을 준 걸 잊고 있어서 일어난 일일 뿐이야.”

그녀는 삼승이 계속 침묵하자 조금 진정하는 듯 보였다.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에 세성은 침묵하며 눈가를 닦아냈다. 삼승은 지금 어디를 보고 있을까. 어떤 것을 상상하고, 생각하고 있을까. 세성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앉아 가지런히 누운 삼승의 모습을 응시했다.

“그때 네가 나에게 꽃의 이름을 물어봤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을 거야. 우습지 않니. 꽃밭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이름을 모른다는 게. 그런데도 너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꽃을 잘 키웠지.”

“…….”

“그 꽃은 이제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해. 네 무덤 위에 핀 꽃나무에서 꺾은 거니까.”

세성은 웃으며 탄식했다. 그래서……, 처음 보는 빛깔과 향기가 났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자르지 않고 놓아두었구나. 그래서, 삼승이 발견하고 나를 살렸구나.

“네가 다시 죽지 않는 한 다시는 피지 않겠지.”

“…….”

“결국 내 손으로 날 죽이는 셈이 됐구나.”

아지랑이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꽃잎. 어디에라도 몸을 던지고 싶었던 향. 세성은 아직도 그 꽃의 향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한 송이에게선 더 이상 향기는 나지 않았으나, 기억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찢고 짜서 약을 만들었다.

삼승은 결국 자신이 땅에 놓아둔 한恨을 먹고 죽어가는 것이다. 꽃나무를 꺾지 않고, 세성의 한을 자신의 몸에 뿌리째 심고도 몰랐다. 그게 점점 자라나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걸.

“편히는 못 가실 겁니다.”

세성은 다 젖은 얼굴로 겨우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남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선 삼승님이 필요하니까요.”

“……끝까지 나는, 피만 내어주다가 가는구나.”

통탄스럽지도 않은지, 그녀는 먹먹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그대로 입을 닫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입을 떼지 않았다. 세성은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다가 그대로 방에서 나왔다. 문을 닫은 채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감쌌다. 아직도 손끝에서 삼승의 피 냄새가 아른거리는 듯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면서, 뱃속이 뒤틀리고 피가 역류하는 느낌에 도저히 삼승과 더 있을 수 없었다. 만약 삼승에게 눈이 있었다면, 죽어가는 그녀의 눈은 어땠을까. 옅어지는 맥박만큼, 모든 빛을 흡수하던 하나의 구멍이 천천히 닫히는 걸 볼 수 있었을까. 세성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이 멎을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

거세게 흩날리던 눈발이 녹으며 비가 되었다. 새벽녘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듯 툭, 툭, 무겁게 땅을 적시는 눈비는 소복이 쌓여 있던 눈을 점차 녹이기 시작했다. 답답함에 못 이겨 지정된 시간마다 바깥 공기를 마시고 오는 지운이 날씨 소식을 알렸다. 무흠은 자신을 따르는, 얼마 안 되는 병사들을 지휘하기로 했다. 밖에 널린 시신을 모아 한곳에 태우기로. 가만히 듣고 있던 낙조와 일행도 돕겠다고 자처했다.

춥지 않게 옷을 겹겹이 입고서 혹시 몰라 균이 들어가지 않을 장갑과 장화도 챙겼다. 몸이 조금 무겁긴 했으나 힘을 쓰는 데엔 지장이 없을 듯했다. 차례로 위로 올라가면서, 낙조는 코끝을 스치고 들어오는 겨울바람 냄새와, 사이마다 쌓인 시체 냄새를 한꺼번에 맡았다. 마른침을 삼키는데도 목이 아팠다. 완전히 위로 올라왔을 땐, 모두가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기만 했다.

시선을 둘 곳이 마땅히 없을 정도로 시신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당시 이들과 싸웠던 밤이와 지운은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막상 죽음을 넘어선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맘이 편하지 않았다.

이미 며칠을 방치한 상태였으나 날이 추웠던 탓인지 시신은 생각보다 많이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 모두가 무흠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맨 앞에 서서 주위를 묵묵히 둘러보다가 뒤돌아 해화를 불렀다. 해화는 놀란 기색 없이 앞으로 나아가 무흠의 곁에 섰다.

“들리냐.”

“아니요. 조용해요.”

“하나도 없어?”

“네. 이미 다 떠난 것 같아요.”

“…….”

적막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풍경을 돌아보며 해화가 대답했다. 무흠은 입을 다물곤 병사들을 지휘했다. 양쪽으로 갈라져 시신을 가운데로 모으는 작업부터 시작됐다. 해화는 병사들이 끌거나 들고 오는 시신들을 한 구씩 바라보았다. 낙조는 병사와 함께 한 구를 옮기고서 손을 털고 해화에게 다가갔다.

“목소리가 안 들린다는 게…….”

“이미 저승으로 갔다는 거지.”

“한이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생각만 그랬나 봐.”

해화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끊이지 않는 눈비에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바람에 흩날려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도 해화는 떼어 내지 않고 조용히 속삭였다.

“서천 사람들은 저승 가는 길을 다 알고 있는 걸까?”

“모두는 아니지 않을까.”

“아니면……, 이미 체념했다거나.”

“삶을?”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한 명도 안 빠지고 과연 그랬을까.”

“아니면……, 어떤 혼이 모두를 데려갔을 수도 있겠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러나 해화는 설명을 딱히 덧붙이지 않았다. 그녀는 일손을 도와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낙조는 멀어져가는 해화의 뒷모습을 보다가 병사들에게로 돌아갔다.

시신을 거의 모았을 때, 무흠이 가방에서 큰 주머니 한 개를 꺼냈다. 그리곤 병사들과 낙조 일행에게 작은 묘목을 나눠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신이 있던 곳에 심어라.”

말하지 않아도 서천의 규칙 중 하나란 건 알 수 있었다. 서천을 저버리기로 한 이후였으나 무흠이 그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이유 또한 알 것 같았다. 그 누구도 울지 않았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곳곳에 묘목을 심었다. 땅이 평평하게 다져지도록 흙을 모았다. 긴 날숨을 따라 입김이 주변에 피어났다.

눈비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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