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밤눈꽃 (1)
영원할 줄 알았던 것은 언젠가 신뢰를 꺾고 무너진다. 삶의 전부를 바쳤다고 해도 시간과 함께 무너진 것은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해주지 않는다. 어딘가는 부족했겠지만, 온 맘 다해 섬겼던 이가 하루아침에 폭삭 주저앉은 걸 본 마음도 마찬가지다. 가식적인 위로는 필요 없다. 결국 자신의 마음은 가짜에 속았다는 사실을 뒤바꿀 수 없다.
삼승의 숨소리는 매우 얕았다. 세성은 그녀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맥을 짚었다. 세성의 표정을 감히 읽을 수 없어 눈을 돌렸다. 바닥에 고인 물 때문에 젖은 소매를 걷으며, 세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찝찝하겠지만 좀 들 수 있겠어?”
낙조는 세성의 말에 잠시 눈을 깜박거리고 있다가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어. 고낙조 네 계획대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선 삼승의 피가 무조건 필요해.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풀을 키워야 하고.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앞을 못 보니 삼승은 이제 아무것도 못 해.”
삼승의 상태를 설명하는 세성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굳이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진 않았다. 낙조는 삼승의 목 뒤와 다리 안쪽을 안아 들어 올렸다. 축 늘어진 그녀에게선 조금의 반응도 찾을 수 없었다.
세성이 먼저 문을 열고 방에서 나갔다. 낙조와 해화는 그 뒤를 따르며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이곳에 오기까지와는 다르게 밖은 조용했다. 폭풍이 쓸고 간 것처럼 바닥엔 온갖 무기와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그들을 피해 가며 도착한 곳은 조금 전과 비슷한 모양의 방이었다. 다만 사방이 유리가 아니라 풀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 달랐다.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천에서만 자란다는 그 풀이겠구나.
세성의 지시대로 낙조는 삼승을 길 테이블 위에 눕혔다. 세성은 묵묵히, 또 자연스럽게 삼승의 몸을 묶기 시작했다. 끊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히 매듭을 지은 후, 그는 손을 털며 지금까지 참았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이곳을 지키고 있으마. 너희는 올라가서 바깥 상황을 알아봐.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 정리됐을 테니.”
“그 다음엔, 그럼…….”
“네 계획대로 해야지.”
“삼승은 그럼 누가 지킵니까.”
“내가.”
“세성님.”
“내가 해야 한다. 귀도는 너희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이니, 나도 명이 다할 때까진 너희를 도와야지.”
세성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반박하지 못하게 낙조의 입을 막았다. 해화는 가만히 낙조의 곁에 서 있다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걱정 마라. 서천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이들도 함께 있을 테니까.”
“…….”
“너무 늦게만 오지 말고.”
그에게 더 무어라 말을 하는 것이 실례처럼 느껴졌다. 낙조는 해화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방을 빠져나왔다. 미로처럼 얽힌 길이긴 했으나, 사람의 흔적이 남은 곳을 따라가다 보면 길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세성은 둘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삼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밖으로 축 늘어진 삼승의 손을 다시 붙잡아 그녀의 배 위로 올려놓았다. 식지 않은 손이 금방이라도 자신의 손목을 붙잡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건들면 아래로 툭, 떨어질 정도로 가벼운 손이었지만.
몇 시간이 지나면 정신을 차릴 테다. 그녀는 두 눈을 ‘완전히’ 잃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동안 몸 곳곳에 심어둔 살살이풀마저 뽑혔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연극이 마무리되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막이 시작되고, 어두워지는 조명 아래, 삼승의 잔잔한 맥박 소리만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보지 못하기에 그녀의 무대를 채운 소품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망망대해에 버려진 것처럼 공허한 공간에 누운 그녀의 시간은 무참하게 흘러간다. 붙잡히지도 않고, 붙잡으려고 할 수도 없는 시간이 모두 지나면 조명마저 꺼지겠지. 그녀를 비추던 마지막 빛 한 줄기마저 그녀를 등지고 사라지겠지.
사람이 추락하는 걸 보는 건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때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의지를 다졌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무슨 마음이 생겨 추악한 켈리의 손을 잡게 되었는지, 세성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눈을 잃게 만드는 건 세성의 계획이었다. 멋대로 삼승의 능력을 빼앗아놓고 그런 것까지 듣고자 원한다면 욕심일까. 세성은 텅 빈 눈으로 피로 젖은 삼승의 천을 내려다보았다.
아니지. 욕심일 수가 없다. 그럴 리 없다. 자신의 능력을 야금야금 빼앗아 먹은 것도 삼승이었던 걸 아직 잊지 못한 것도 아니고. 그녀의 품에 아이처럼 안겨 엉엉 울던 모습도 잊지 못했는데. 삼승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구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녀가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은 건 사실이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내 목소리가 들리기는 할까. 세성은 죽은 것처럼 가만히 누워있는 삼승을 내려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떤 게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대답은 당연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성은 발밑에서부터 꾸역꾸역 올라오는 설움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빨갛게 젖은 천을 걷어내 당장이라도 자신을 보라고 외치고 싶었다. 가장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세성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다.
“나한테 꼭 그래야만 했어요? 이럴 거면 그냥 꽃나무가 베일 때까지 놔두지. 그냥 내가 시멘트에 덮이게 놔두지 그랬어요.”
아무리 한탄한다고 한들 세성의 말은 그 누구도 듣지 못하는 말이 된다. 이 말이 혹여 잠든 삼승의 귀로 들어갈까 싶어 몇 번을 중얼거리던 세성은 결국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낙조에게 삼승을 지킨다고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 했다.
삼승이 어떤 말을 하든, 자신에게 견딜 수 없는 유혹적인 말로 부활을 꾄다고 해도. 세성은 벌써부터 다가오는 두려움과 압박감에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낙조가 돌아오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
“진짜 릴리 갔어?”
“아마?”
“왜 갑자기 아마래 또.”
“느낌이란 게 있잖아.”
복도를 빠르게 걸으며 대답했다. 낙조는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다시 그때의 느낌이 돌아오나 싶었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삼승의 눈 밑에 파묻혀 있던 풀을 뽑아낸 후, 묵직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기분은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릴리라는 것도 사실은 자신의 생각이긴 했다.
“릴리는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사람에게 한이 맺힌 거 아니었어?”
해화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물론 릴리의 사연은 안타깝다 못해 대신 아이의 한을 풀어줄 준비까지 갖췄을 테다. 죽기 직전 낙조의 오른팔을 보면서 벌벌 떨던 해화는 두려움이나 공포보다 분노에 휩싸여 있었으니까.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릴리를 다시 거두어달라고 했는지, 낙조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어. 근데…….”
“근데?”
“릴리랑 함께 쓰던 힘 같은 건 남아 있는 것 같아.”
코너를 꺾으며 낙조가 말했다. 릴리가 오른팔로 다시 돌아오면서, 낙조는 해화가 보았던 이미지를 퍼즐 조각처럼 흡수했다. 켈리를 향한 릴리의 마음이 어떤지, 어떤 생각인지, 또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 감정들을 오롯이 혼자 느꼈다. 켈리를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공격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릴리의 감정이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덮은 것으로 모자라 온몸을 점령했다. 이전과는 달리, 낙조는 아이의 분노를 자신의 몸으로 허락했다. 오른팔이 멋대로 튀어 나가려고 할 때마다 참았던 예전과는 달랐다. 모든 것을 허락하니, 릴리는 더없이 엄청난 힘으로 켈리의 온몸에 구멍을 냈다. 그곳에서 낙조는 몸을 잠시 빌려준 방관자일 뿐이었다.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본 릴리의 힘은 감히 자신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했고, 동시에 서글펐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홀로 무슨 마음으로 지냈는지, 낙조는 삼승과 만날 때까지도 릴리에게 묻지 못했다.
삼승이 만들어낸 환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도 릴리 덕분이었다. 어느 순간 오른손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저릿한 느낌을 주었고, 낙조는 멍한 상태에서 초점을 되찾았다. 루시드 드림을 꾸는 것처럼 삼승의 힘을 이기고 그녀의 환각에서 힘을 자유자재로 부린 것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을 일이었다. 그러나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릴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몸을 떠났다.
“아마 지긋지긋하지 않았을까?”
“뭐가?”
“그냥, 지금 이 상황 돌아가는 꼴이.”
낙조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해화는 가만히 낙조의 말을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
“나라도 그럴 것 같아.”
해화가 정면을 주시한 채 대답했다. 직접 두 눈으로, 온 맘으로 릴리를 보고 느낀 사람으로서 낙조의 말이 가장 그럴 법했다. 자신에게 보여준 그 공간에서, 릴리는 몇 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을까. 자신과 같은 사람이 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런 세세한 걸 생각하면 얌전하던 마음이 덩달아 아려왔다. 자신의 품을 가득 채우지도 못할 만큼 작은 아이였다. 그렇게 작은 몸에 꽂혔을 무수한 주삿바늘, 온갖 약, 그리고 저주와 같았을 박사들의 인사. 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했지만 릴리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도 통각이라는 게 있으니까.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조금만 함께 있다 보면 알 수 있다. 켈리와 같은 박사들은 릴리를 실험체로만 생각했으니 몰랐겠지만.
문에 거의 도달할 때쯤이었다. 낙조는 뒤쪽과는 달리 난장판이 된 바닥을 보면서 걸음을 천천히 멈춰 세웠다. 해화 또한 부산스러운 인기척과 비명을 듣고 낙조의 뒤에 멈춰 섰다.
“죽고 싶지 않으면 도망쳐! 도망치라고!”
“귀도가, 귀도님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윗분들 거의 당하셨어요. 삼승님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합니다!”
소란스럽다. 이미 삼승의 피를 덮어쓴 낙조에겐 웃음조차 나지 않는 말들이었다. 낙조는 그대로 복도를 걸어 나갔다. 문 앞에 몰려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단번에 쏠렸다. 그들은 일순간 말을 멈추더니, 서서히 눈을 크게 떴다.
“고낙조다!”
“잡, 잡았, 다시 잡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무전 받은 적 없잖아!”
자신들끼리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는 모습은 오합지졸과 다름없었다. 허름한 옷과 낡은 총. 낙조는 가만히 서서 병사들이 든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괜한 소란 일으키고 싶지 않으면 여기 가만히 있어.”
“…….”
겨우 살아남은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그중 낙조의 말에 반발하려 드는 이가 있긴 있었으나 곁에 있던 병사가 그를 말리며 사방은 조용해졌다. 낙조가 열린 문을 통해 위로 올라가려는 순간, 뒤에 모여 있던 병사들 중 하나가 낙조에게 물었다.
“삼승님……, 삼승님이 보내주시는 거냐?”
“허락 같은 걸 받았을 리 없지.”
“그럼―”
“―내가 피를 뒤집어쓰고도 차분하게 말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봐.”
낙조는 뒤돌아 그 말을 남기고서 계단 위로 올라섰다. 뒤따라 해화가 병사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낙조를 따랐다.
매캐한 공기가 주변을 에워쌌다. 불에 둘러싸여 질식한 시신들이 몇몇 보였다. 불길은 거의 완전히 사그라져 있었다. 타닥, 타닥……. 뼈밖에 남지 않은 광활한 땅을 메우는 불씨 소리를 들으며 수풀을 헤치고 나갔다. 수풀도 거의 타버려 서천의 문은 더 이상 가리지도 못할 정도가 됐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시신이 있었다. 가끔 앓는 소리를 내며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숨만 헐떡이는 이들도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숨은 멎을 테다. 해화는 그들에게 조그마한 애도를 보내면서 움직였다.
이미 숨을 거둔 시신들에게선 단 한 발을 맞고서 죽은 흔적이 보였다. 총알은 아주 깔끔하게 급소를 뚫고 지나가거나 살에 파묻힌 상태였다. 낙조는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가 이렇게까지 사격 실력이 좋았었나. 총은 어디에서 났기에…….
탕!
낙조의 발 옆으로 총알 하나가 빗겨 나갔다. 해화가 뒤에서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들어 총알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올렸다.
“…….”
“…….”
시선이 한곳에 겹치는 순간, 낙조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흰 입김이 부스스 새어 나왔다.
“세성은?”
돌무더기 위에 걸터앉은 귀도가 한쪽 무릎에 턱을 괸 채 낙조에게 물었다. 낙조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삼승을 지키고 있겠다고 하셨어.”
“그 양반은 저승 가서도 칼 맞겠네.”
“…….”
귀도는 아래로 내린 다리를 앞뒤로 휘적거리다가 입술을 안으로 말아물었다.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얼굴이었다. 타이밍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 게다가 보는 눈도 있으니 귀도에겐 최악의 순간일 테다. 낙조는 굳이 그녀를 독촉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차갑게 언 낙엽을 부수고 있으려니, 돌무더기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빼꼼, 하고 튀어나왔다.
“아저씨!”
왜 우리는 생사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이렇게 하릴없이 이름도 모르는 신에게 감사해야 하는 걸까. 낙조는 자신의 품으로 뛰어드는 지운을 겨우 받쳐 안고서 힘없이 웃었다. 뒤따라 밤이가 총 두 개를 쥔 채 바위틈에서 나왔다. 해화는 밤이에게로 뛰어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으나, 밤이는 겨우 미소 지으며 해화의 거칠어진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언뜻 살갗에 차가운 것이 닿아 고개를 올려보았다. 손톱만 한 크기의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제주에도 눈이 와?”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놀란 지운의 혼잣말에 낙조가 태평하게 대답했다. 귀도의 어깨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기 시작했다. 시신들 위로, 거의 죽어가는 불꽃 위로……, 하얗기만 한 결정들이 땅을 안을 것처럼 포근히 시야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