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불구덩이 속사정
문 앞은 이미 어지러울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귀도가 막 도착했을 땐 위에서 소리를 지르며 허겁지겁 뛰어 내려오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그들은 귀도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지 바닥을 기면서 불에 지져진 곳을 손으로 감싸며 고통에 시달렸다. 웬만한 간부들도 위에 올라갔을 거라고 생각한 귀도는 바닥에 널브러진 병사들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빈 소화기와 물통이 나뒹구는 와중에 병사들 사이엔 총도 떨어져 있었다.
‘이것밖에 안 되는 놈들로 서천을 지키겠다고 한 것도 멍청해…….’
권총을 두어 개 주운 귀도가 막 허리를 펼 참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쥐고서 냅다 뒤로 돌려세웠다.
“네가, 네가 왜 여기에……!”
“네가? 난 아직 직위를 뺏기지 않았는데.”
“삼승님이 널 버린 건 서천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삼승이 너희를 버렸다는 건 모르는가 봐?”
가끔 중요한 회의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마주했던 간부 중 하나였다. 귀도가 싫어하는 이기도 했고. 그녀는 조목조목 조용하게 말을 받아치며 새빨갛게 달아오른 간부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칼같이 부는 바람에 썰리듯 들리는 귀도의 목소리에 간부가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귀도의 손목을 쥐었던 손도 떨어뜨리고선, 그는 총을 꺼내며 악을 지르기 시작했다.
“삼승님을 보필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참아왔던 걸 모르는 거냐!”
“사실인 걸 어떡하나. 아마 지금쯤이면 숨만 쉬는 시체가 되어 피나 쭉쭉 빨릴 것을.”
“이익, 이 년이……!”
살찐 손가락으로 장전하던 간부의 총은 무언가에 걸려 치크덕, 치크덕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귀도는 그 우스운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상체를 낮추어 순식간에 간부의 행동반경 안으로 들어갔다. 간부의 눈동자가 귀도의 움직임을 따라오기도 전이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권총의 총구가 간부의 턱 밑을 치켜세웠다. 간부가 자신을 겨눈 것이 총이라는 것을 알기도 전에 귀도는 방아쇠를 당겼다.
펑, 하고 간부의 얼굴 아래쪽이 여러 갈래로 터지며 피와 함께 쏟아졌다. 그제야 몸을 웅크리고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귀도에게로 맞춰졌다. 그들은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다가 귀도의 얼굴을 보고 힉, 소리를 내면서 몸을 더욱 움츠렸다. 귀도는 병사들을 훑으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동안 지킨 게 뭔지 이젠 정말 모르겠네.”
귀도의 말뜻을 알 리 없는 병사들은 사색이 된 채 몸을 덜덜 떨 뿐이었다. 귀도는 권총 두 개를 들고서 열려 있는 문을 넘었다. 오래된 계단을 오르며, 그녀는 바깥에서부터 들려오는 비명과 여러 목소리의 외침에 인상을 찌푸렸다.
‘능력도 없는 데다가 시끄러워.’
그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시선으로 흙 위에 발을 디뎠다. 불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였다. 가까이 가지 않았음에도 열기가 피부에 닿은 것처럼 뜨거웠다. 귀도는 문 바로 앞에 서서 멍청하게 물만 뿌리고 있는 병사들과 간부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수풀 밖으로 간신히 나가 누군가에게 총을 쏘고 있는 병사들까지. 귀도의 눈에 보이는 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엉망진창이었다.
남은 탄환의 개수를 셌다. 두 개를 합해 봐야 겨우 50발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귀도의 눈이 재빠르게 제 주위를 감싼 사람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흑색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굴렀다. 계산이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귀도는 망설이지 않고 몸에 불이 붙어 자신 쪽으로 뛰어드는 병사에게로 한 발을 날렸다. 먼저 죽인 간부의 피가 얼굴에 묻어 있었다. 그 위로 병사의 피가 흩뿌려졌다. 귀도는 신경질적인 손길로 얼굴을 대충 닦아냈다.
불길은 나무 기둥까지 옮겨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총성이 여기저기서 난무했기에 귀도가 쏜 총소리는 가볍게 묻혔다. 귀도는 가만히 서서 타고 있는 나무 기둥을 보다가 병사들이 총을 쏘고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길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가끔 그림자 같은 실루엣이 시야를 긁고 지나갔다. 거칠게 다듬어진 연필로 흰 백지를 색칠할 때 드문드문 걸리는 점 같은 것이……, 귀도의 눈을 지나치지 못하고 계속해서 걸려들었다. 저 점을 포박하기 전에 먼저 주위를 조용히 만들어야겠지. 귀도는 무심한 얼굴로 가까이 있는 병사들에게로 총구를 겨눴다. 간부가 아니라면 완전히 죽일 작정은 아니었다. 귀도는 상냥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그녀가 베풀 수 있는 자비 또한 그리 넓지 못했다. 그저 날아가는 총알에 운을 걸 수밖에 없었다.
“악!”
“으아아악!”
“아악!”
귀도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이 터졌다.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는 병사들을 하나씩 쓰러뜨리면서, 귀도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불길은 귀도까지 삼킬 정도로 거세게 일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귀도!”
마음대로 방아쇠를 당기면서 수풀 밖으로 몸을 내밀었을 때, 누군가 귀도를 불렀다. 평소에도 삼승뿐만 아니라 귀도에게 이런저런 뇌물을 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던 간부였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기도 전에, 그는 달음박질로 그녀의 앞에 다가와 귀도에게 매달려 애원했다.
“귀도님, 아니, 파도야, 파도야. 불길이 잡히지 않는다. 서천에서 끌어온 물을 붓는데도 불씨가 죽지 않아. 파도야, 네가 어떻게 좀 해봐. 어? 할 수 있잖아. 너는 할 수 있잖아!”
그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크게 외쳤다. 귀도는 그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곤 곧장 총구를 그의 이마에 갖다 댔다. 항상 아첨하는 자는 눈치도 빠르다. 간부는 두 손을 바짝 머리 위로 들었다.
“아니, 아니, 너보고 해결하라는 말이 아니야. 불길을 잡아야 서천을 공격하는 자들을 잡을 수 있는데, 이상하게 불길이 서천 쪽으로만 번지고 있어. 수풀까지 다 타면 안으로 들어갈 수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고.”
“태워야 할 게 많은가 보지.”
“파도야, 너 얼굴에…….”
귀도의 얼굴 위에 흩뿌려진 피가 이제야 눈에 들어왔는지, 간부는 문득 말을 멈추었다. 귀도의 총구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갇혀 있던 그녀가 어떻게 나왔는지부터 물어야 했다. 간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저었다.
“파도야, 이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삼승님을 저버리는 건―”
“―삼승은 죽었어.”
“뭐?”
“죽었다구. 애통해할 시간까지 줘야 하나?”
세성과 헤어지기 직전 했던 말이 있다.
「난 삼승이 죽었다고 생각할 거야.」
위로 올라오는 계단을 밟으면서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삼승의 눈을 감긴다는 뜻은, 삼승의 능력을 완전히 봉인한다는 것과 같았다. 삼승은 그저 서천의 귀한 풀에게 나누어줄 피를 뽑는 기계 취급을 받을 것이다. 세성의 계획대로 모든 게 진행되고 있다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삼승의 곁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파도치는 소리에 자신에게 손을 내밀던 삼승은 애초에 죽었으니까. 자신에게조차 철저히 숨기고, 또 자신을 속였던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없었다. 자신의 신뢰가 너무나 당연했던 탓일까. 아니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자신은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던 탓일까. 그 어떤 경우라도 자신을 정말 잘 알았다면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텐데. 귀도는 간부의 이마에 총구를 깊게 내리누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귀도님, 귀도님!”
“조용히 해.”
“귀도님,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십시오,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안 믿어.”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꽃감관과 꽃성인도 모두 삼승에게 속은 것뿐입니다. 삼승이 짠 판에 저희들도 함께 놀아난 겁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을까 봐 따랐던 거예요.”
“죽을 때가 됐는데도 거짓말이 막, 술술 나오네? 죽는 게 별로 무섭진 않나 봐.”
“진짭니다, 진짜예요. 귀도님이 켈리를 데리고 오신 후에 저희들을 따로 불렀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꽃감관과 꽃성인은 없었습니다. 청주에서 내려오는 보고를 바로바로 받아 봐야 했으니까요. 그때 삼승이 저희들 앞에서 그랬어요. 늙지 않는 삶을 꿈꾼 적이 있냐고.”
“미안한데, 안 궁금해.”
사실 미안하지도 않아.
말을 단호하게 끊는 귀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간부의 넋은 이미 나가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팔을 떨어뜨리고서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덜덜 떠는 게 총으로 전해져 왔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귀도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총구로 간부의 이마를 툭툭 건들며 물었다.
“그래도 용감하네. 밖까지 나와서 싸워주고. 그 사람이 뭐라고.”
“……귀도님, 제발…….”
간부는 우는 흉태를 내면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시선은 곧장 귀도의 반대쪽 손에 들려 있는 총에게로 향했다. 그는 억지로 울음을 짜내며 흐느꼈다. 귀도는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부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 잠깐의 침묵을 동정이라도 느낀 간부는 이때다 싶어 몸을 던져 귀도의 총을 향해 달려들었다.
탕.
투둑……, 쿵.
귀도는 살짝 옆으로 몸을 비틀며 간부의 목 뒤를 쐈다. 간부는 두 무릎을 꿇더니, 귀도를 향해 고개를 올리려다가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시야가 조금 환해졌다. 여전히 불씨가 이리저리 튀며 사방을 조여왔지만 귀도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병사들이 점점 뒷걸음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병사 하나가 귀도와 몸이 부딪쳤다. 차가운 몸에 화들짝 놀란 병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귀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총구를 돌렸다. 귀도는 자연스럽게 그의 총을 붙잡고 그의 뒤로 몸을 돌려 붙였다. 순식간에 병사의 총구는 그의 동료들을 겨누게 되었다.
“으아아악!”
귀신이라도 본 마냥 괴성을 지르는 병사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투다다다다다.
운이 좋았다. 기관총을 가진 병사였다. 쉴 새 없이 총구에서 빛이 반짝거리며 화약이 날아갔다. 속수무책으로 병사 근처에 있던 이들부터 쓰러지기 시작했다. 개중엔 몸을 급히 엎드려 죽음을 면한 병사들도 있었다. 귀도는 오른손에 쥔 권총으로 기관총을 든 병사의 어깻죽지를 쏜 후, 발로 기관총을 불구덩이 속으로 차버렸다.
구우우웅…….
그때 반쯤 탄 나무 기둥이 기울어졌다. 변이된 나무는 아니었는지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하긴, 서천 근처에 변이된 식물이 있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 왜 이렇게 불이 끓지. 못 잡아먹은 게 있는 것처럼 안달이 나서……. 귀도는 양손에 권총을 든 채 바닥에 납작 엎드린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아.”
귀도가 작게 탄식했다. 기울기 시작한 나무가 귀도의 눈앞으로 떨어졌다. 죽거나 쓰러진 병사들이 나무에 깔려 신음했다. 불은 그들에게로 옮겨붙었다. 얼어붙은 흙이 아닌, 옮겨붙기 적당한 온도를 타고서.
“알아서 죽겠구나…….”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불은 먹을 만큼 태우고 나면 알아서 소멸할 것이다. 서천의 근처를 감싸고 있는 것은 모두 낙엽과 풀이었다. 수풀까지 태운다면 태울 것이 아예 없어진다. 다른 나무에게로 옮겨붙을 정도로 불길이 거센 것도 아니었다. 귀도는 쓰러진 병사들을 지나쳐 불이 닿지 않은 곳으로 넘어갔다. 바스락, 잎사귀 밟는 소리가 울렸다.
“귀도님!”
“…….”
누군가 귀도의 발목을 잡아챘다. 귀도는 정면을 응시한 채 가만히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알지도 못하는 목소리였다. 병사들 중 하나겠지. 그래도 엄청난 용기구나. 바깥까지 기어 나와서 서천을 지키려고 애쓰다니.
“너는……, 저승에 가면 그래도 칭찬부터 받겠구나.”
“예?”
“놔라.”
“귀도님, 앞에 적이 있습니다…….”
“알아.”
“예……?”
“놓으라고 말했다.”
귀도가 총구를 겨누며 시선을 함께 돌렸다. 새카맣게 뒤덮인 흑색 눈동자엔 불씨 하나 튀지 않아 어둡고 차가워 보였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에 눌린 병사가 허겁지겁 손을 떼며 몸을 움츠렸다. 뒤도 돌아보지 못했는지, 그는 동료들 절반 이상을 잃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 돌아갈 곳도 없는 신세가 됐는데. 귀도는 아량을 베푸는 마음으로 병사를 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탕, 탕!
그때 귀도에게로 총성이 꽂혔다. 곧장 몸을 옆으로 살짝 눕혀, 총알은 귀도의 옷깃만 스치고 날아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귀도는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작은 바위가 무성히 쌓인 곳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귀도는 바위와 바위의 틈 사이로 총구를 겨눈 후 망설임 없이 쏘았다.
“으악!”
앳된 비명이 곧장 들려왔다. 귀도는 다시 웃음을 거두고 걸음을 뗐다.
이번엔 오른쪽이었다. 귀도의 긴 머리카락을 헤집고 날아간 총알은 먼 곳에 심어진 나무에 박혔다.
성가시다. 병사들보다 더 성가신 것들을 굳이 살려둬야 하나.
「밖에서 불을 지른 민간인을 찾아. 그리고 그들을 지켜.」
세성이 말한 이들이겠지. 그의 말을 꼭 지킬 필요는 없었다. 스스로 더 이상 서천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귀도에겐 자신을 공격하는 모두가 적이었다. 서천이 전부였던 귀도의 세상은 완전히 추락했다. 세상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니 오히려 더욱 무덤덤해졌다. 살고 죽는 것 전부 우스워졌다. 이제 목숨을 걸어 누군가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쓰디쓴 독을 먹으며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무수하게 많아지며 자유로워졌다. 마치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것들이 이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입맛이 썼다.
“네가 불을 질렀니.”
바위더미 위로 순식간에 뛰어 올라간 귀도가 지운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귀도의 총알에 볼이 살짝 긁힌 지운은 멍하니 귀도를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도는 가볍게 지운의 곁으로 내려왔다. 차가운 공기와 뒤섞인 물 냄새가 지운을 훅 감쌌다.
“내가 지켜주마. 너한테 빚진 게 있어서.”
귀도는 말을 마치고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아주 엷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