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머리를 짓밟고 심장을 깨물어라 (5)
“쳐다보면 안 돼!”
세성이 낙조를 향해 목을 쥐어짜 소리쳤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낙조는 손에 쥔 작은 병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서 싸워본 적이 있었나. 오감 중 하나를 버려야만 하는데, 하필 그것이 시각이라는 사실에 온몸이 떨렸다. 켈리와는 다를 만큼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이 엄청났다. 삼승이 자신을 어떤 세상으로 데려갈지 걱정부터 앞섰다. 켈리는 피가 뒤덮인 붉은 공간에 자신을 가두었다. 그렇다면 삼승은……, 삼승은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켈리처럼 자신 앞에서 의뭉스러운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고 결국 자신과 세성 모두 그녀에게 속은 것과 마찬가지가 됐으니. 그녀가 만든 지옥은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숨이 가빠졌다.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낙조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침내 삼승의 발끝이 시야에 들어왔다. 낙조는 눈을 질끈 감고서 몸을 뒤로 물러 세웠다.
“고낙조.”
“…….”
“무서우냐.”
“…….”
“내가 널 가여워해야 할까.”
삼승의 눈을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귓속을 깊게 찔러댔다. 오감을 모두 닫지 않으면 이대로 그녀의 환각에 넘어갈 것만 같았다. 세성에게 부탁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낙조는 몸을 압박해오는 느낌을 애써 버텨내고 있었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흡.”
“나는 켈리와 달라. 네게 겁을 주지 않을 거야.”
“…….”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여줄 것이다. 네가 그곳에서 선택해라.”
삼승은 퍽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병을 쥔 손을 등 뒤에 숨긴 채 가까스로 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거친 손아귀가 낙조의 턱을 움키더니 좌우로 빠르게 흔들었다. 격한 움직임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뜬 낙조는 삼승의 뒤집힌 흰 자와 눈을 마주했다. 온몸이 순간 차갑고 어두운 곳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어떤 반항도 할 수 없었다. 그 흰 자는 낙조의 눈동자를 고립시킨 채 어디도 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고 있었다.
풍덩.
물소리가 났다. 빠르게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에 허우적댔지만 다시 위로 떠오르진 않았다. 여전히 삼승의 흰 자는 위쪽에서 낙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점점 흰 자와의 거리가 멀어졌다. 깊은 바다에 잠기는 것처럼 온몸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숨은 막히지 않았다. 흰 자가 바다를 투영하는 빛처럼 느껴졌을 때, 등이 바닥에 닿았다.
삼승의 흰 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가 돼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낙조는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켈리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피로 덮인 세상은 아니었다. 바닥에 아는 얼굴들이 쓰러져 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포근한 향이 몸속을 가득 채우는 느낌에 안심했다.
느리게 발걸음을 뗐다. 낙조는 평범한 길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날이 일어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각자 전화를 하거나 일행과 떠들며 거리를 지나다녔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카페 간판도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직장인들의 짧은 담소. 해외 관광객의 들뜬 미소. 그 모든 것들이 낙조를 스쳐 지나가며 각자의 향기를 남겼다. 눈으로 보이진 않았으나 숨을 들이켤 때마다 그 향이 느껴졌다. 가랑비에 젖어 은은하게 풍기는 풀 향기와 비슷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향을 모두 짊어지고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몸을 짓누르던 힘은 사라지고 없었다. 자유롭게 길을 걸으며 낙조는 계속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목소리, 하품 소리, 짜증 섞인 말투……. 모든 게 너무나 생생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인적이 드문 길거리에 접어들었다. 낙조는 왠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에 좁은 골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끝도 없이 펼쳐진 골목의 끝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문이 하나 있었다. 낙조는 아무 의심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잘 찾아왔구나.”
안에서 차를 따르고 있던 삼승이 낙조를 힐끗 바라보고서 말했다. 어쩐지 그녀에게선 조금의 위협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낙조는 그녀의 정체를 알기 전처럼 “예.”하고 대답한 후 안으로 완전히 몸을 들였다. 삼승은 조용히 낙조의 찻잔에도 차를 따르고서 낙조에게 차를 권했다. 차에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낙조는 뜨거운 찻잔을 두 손으로 잘 받친 다음 삼승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는 차를 조용히 마시면서 뒤를 돌았다. 뒤쪽엔 자그마한 창문 하나가 나 있었다. 삼승이 창문을 왼쪽으로 밀자, 바깥 풍경이 햇빛과 함께 안으로 쏟아졌다.
“그동안 서천꽃밭에서 새 생명을 얻고 간 사람들이다.”
삼승의 말에 낙조는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안온해 보였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사람들의 얼굴 위론 걱정 같은 건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다. 낙조는 찻잔을 든 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우리는 헛된 일을 한 적 없다.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었을 뿐이야.”
“…….”
“그리고 그 시간을 멋대로 빼앗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싶을 뿐이다.”
“그럼 그 사람들에게만 벌을 주면 되잖아요. 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까지…….”
“고낙조. 생각을 해보렴. 그렇게 일부를 제거하면, 그 일부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른 이들이 권력을 남용한다. 악이 악을 낳는 거지. 그저 반복할 뿐이야.”
“그래서 그 자리에 당신이 올라가겠다고요.”
“내 피를 뽑아 만드는 시간이다. 그 고통을 네가 책임져주진 못하지 않니.”
그녀는 찻잔을 비우고서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끄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낙조는 다시 창밖 너머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에 날 부른 이유가 뭐예요?”
“네가 살리고 싶다는 사람들, 네 뜻대로 살릴 수 있다.”
“…….”
“하지만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을 살리려면, 내 피로는 부족해.”
삼승은 찻잔을 테이블 위에 두고 낙조를 향해 몸을 돌려세웠다. 그녀는 측은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잠시 뜸을 들였다.
“네 피가 필요해. 켈리가 만든 백신보다 더 안전하게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거야.”
낙조는 어느새 조금 식은 차를 내려다보았다. 엷은 노란색이었던 차가 점차 중앙에서부터 붉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창밖은 너무나 평화로웠기에 오히려 이질감이 들었다. 낙조는 말없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변종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평온했던 거리는 다시 변종들에게 붙잡혀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끓는 비명에 삼승이 다급히 창문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창문을 닫고서 낙조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만든 환각을 낙조가 직접 조종했으니까.
낙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대신 한 입도 대지 않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찻잔엔 피 냄새를 풍기는 붉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낙조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찻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쨍그랑, 여러 조각으로 나뉘며 찻잔은 완전히 깨졌다. 삼승의 얼굴 위론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대부분 분노에 가까운 것이었다.
“애 구슬리듯이 하면, 제가 당신 말을 들을 것 같았어요?”
“일부러 비뚤게 보려고 하지 말아라. 나는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거야.”
“정말 도움이 필요했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겠죠.”
“나한텐 너만 필요했으니까. 네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 다수를 구하고 싶다면! 내 말을 따르는 게 맞아.”
둘 사이에 맺힌 긴장이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낙조는 여전히 창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과 변종들의 포효를 들으며 숨을 삼켰다.
“켈리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뭐?”
“힘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켈리가 입이 닳도록 한 말이었어요.”
“…….”
“삼승님이 켈리에게 가르쳐준 거였네요.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방법, 그리고 그 힘을 어디에 써야 그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권력을 누릴 수 있는지까지.”
낙조는 말 한마디에 힘을 주며 마음에 맺힌 것을 모두 토해냈다. 낙조의 말에 삼승이 입술을 깨물고 몸을 떨기 시작했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삼승의 의도는 더 이상 낙조에게 환각으로 혼동을 줄 수 없었다. 낙조는 일부러 삼승의 환각에서 깨어나려 어떤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단둘이 갇힌 곳에서, 그녀가 얼마나 잘못된 마음으로 스스로를 동정하고, 그 동정으로 사람을 살린 보상을 원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럼 당신도 당신이 말한, 시간을 빼앗는 자들과 다를 게 없어져요. 하나도 다른 게 없죠. 당신은 시간을 빼앗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동정을 사는 거니까.”
“고낙조…….”
금방이라도 낙조에게 달려들 듯, 삼승의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낙조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서 삼승을 바라본 채, 창문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포자가 얼굴에 잔뜩 낀 변종이 창살을 비집고 들어오려 애를 썼다. 까아악……. 귀를 찢는 듯한 소음에 삼승은 다시 창문을 닫으려 했지만, 낙조가 삼승의 팔을 붙잡았다. 포자 변종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포자가 넘실거리며 둘 주위를 맴돌았다.
“모르셨나 봐요. 저는 영웅 같은 것에 관심 없어요.”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한 목소리로 낙조가 중얼거렸다. 그는 삼승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팔을 단단히 쥐고서 말을 덧붙였다.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고요. 그냥 알아서 죽기까지 기다리고만 있었지.”
“……이익, 놔!”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게 지키며 살았어요.”
조금의 자비도 없는 낙조의 시선이 삼승에게로 떨어졌다.
“동정으로 무언가를 쉽게 얻으려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잘한다……. 동정을 사기 위해 없던 것도 생겨나게 만드니까.”
“난 거짓말한 적 없어. 지금까지 한 번도 서천의 규칙도 어기지 않았고, 누구에게 흠잡을 곳도 없이 살았다. 고낙조 네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지. 뭐라고 했니,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아? 영웅은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야. 만들어진다고 했다. 네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을 구하면 너는 영웅이 돼 있겠지. 그 다음은 어떡할 테냐. 나를 죽여서, 그 어떤 약초도 얻지 못하게 되면……, 결국 너는 매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변종과 싸워야겠지. 진화를 방해하는 너와 맞서기 위해 점점 변하기 시작하는 변종들을 언제까지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직 정말 어리구나. 지금의 감정에 휩쓸려 네 손으로 직접 만든 지옥에 시달려 살겠다는 말을 하다니.”
삼승은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길게 말을 하는 도중에도 그녀는 평소에 보이던 품위를 내려놓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몸 깊숙하게 박힌 습관이었다. 낙조는 팔을 뿌리치려 하는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채 말했다.
“죽이지 않아요.”
“……뭐?”
“당신은 살아 있어야 해.”
낙조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삼승의 목을 잡아 허공으로 띄웠다가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쾅! 순식간에 둘을 감싸고 있던 모든 풍경이 여러 갈래로 찢겨 사라졌다. 다시 물이 고인 바닥과, 흰 벽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삼승은 낙조의 손에 목이 졸린 채 물에 적셔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뒤집히며 흰 자를 보이려는 순간이었다.
세성이 낙조의 등 뒤로 떨어져 있던 병을 주워 뚜껑을 열었다. 그리곤 자신의 도포 자락으로 낙조의 시야를 가리며 삼승의 눈 위로 독약을 뿌렸다. 액체는 삼승의 눈알에 닿자마자 지글지글 끓으며 연기를 피워냈다. 곧 코로 맡기 힘든 썩은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삼승이 낙조에게 붙들린 채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세성은 낙조의 눈앞에서 옷자락을 거두었다. 낙조는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헐떡거리는 삼승의 모습을 보며 이를 단단히 갈았다.
“홍해화.”
“……응.”
“릴리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본데. 네가 좀 들어줘라.”
낙조의 팔뚝을 긁으며 비명을 지르는 삼승을 붙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화는 정신을 붙잡고서 낙조의 곁으로 와 눈을 꼭 감았다. 간절한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가까운 곳에서 릴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릴리는 낙조의 곁에 서서 이제 흐느끼기 시작하는 삼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눈, 다시 살아. 안 돼.」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릴리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해화의 시야에서 가라졌다. 해화는 눈을 번쩍 뜨고서 낙조에게 외쳤다.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에 모든 힘을 줘. 릴리가 끝내겠대.”
갈수록 버겁게 몸부림치는 삼승을 붙잡고 있던 낙조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서 손을 바꿔 왼손으로 삼승의 목을 짓눌렀다. 그리곤 저릿저릿한 오른손을 삼승의 얼굴 가까이 갖다 대고 온 감각을 손끝으로 밀어 보냈다.
투둑, 투두둑…….
낙조의 손끝에서 그 어느 때보다 두꺼운 나뭇가지가 모습을 드러내며 돋아났다.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낙조는 무언가를 잘 파낼 수 있도록 날카로운 끝이 둥그렇게 말려 있는 것을 보고서 아주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독약의 고통으로 눈알이 타들어 갈 때, 완전히 그것을 파내버리자. 그 어떤 풀로도 새로 돋게 하지 못하는 눈을, 영영 거두어버리자.
낙조는 갈고리처럼 오므라든 손끝을 망설임 없이 삼승의 두 눈을 향해 꽂았다. 삼승의 비명이 귀를 찌를 듯 강하게 요동쳤다. 뜨겁고 물컹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고통스럽진 않았다. 손끝은 저절로 움직여 삼승의 눈동자를 샅샅이 긁어냈다. 독약에 어느 정도 묽어진 눈동자가 살점처럼 한두 조각씩 떨어져 나왔다. 모든 신경을 잘라내듯 빈 구멍을 긁어내던 오른손은 마지막으로 빈 눈에서 피어나려고 하는 풀의 뿌리를 뽑았다. 다시 되돌릴 수도 없도록.
바닥에 고인 물에 삼승의 피와 눈알 조각이 넘실거리며 흘렀다. 텅 빈 두 눈에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세성은 품에서 부드러운 천을 꺼내 조심스럽게 삼승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의 푹 꺼진 눈가를 천으로 덮어 묶었다. 천 위로도 피가 빠르게 젖어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절한 듯, 삼승의 몸에선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갔어.”
“어?”
그제야 낙조가 벽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정확하지 않은 말에 해화가 되묻자, 낙조는 원래대로 돌아온 오른손을 허공에 보이며 대답했다.
“릴리, 돌아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