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폭격 (2)
산 밑으로 내려온 이후, 셋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그마한 건물 뒤에 숨었다. 가쁜 숨소리만 오가는 가운데 수호가 총을 만지작거리며 겨우 용기를 내어 말했다.
“우리가 구할 수 있을까요?”
“해야지.”
밤이는 건물의 그림자를 응시하면서 중얼거렸다. 넋이 나간 듯 멍해 보이는 얼굴에선 생기를 찾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지운도 숨만 헉헉거리고 있었다. 수호는 지고 있는 노을을 잠깐 쳐다봤다가 힘을 실어 말했다.
“우리를 잡으러 올 것 같진 않아요.”
“내 생각에도 그래. 잡으려고 했으면 진작 잡았지.”
“……다시 들어가는 방법밖엔 없을까요?”
“입구와 출구가 같아서……, 방법이 당장 생각나지는 않네.”
오히려 말을 섞을수록 암담해지는 기분이었다. 수호는 총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안에만 있어서 몰랐던 건지, 겨울 추위가 유독 시리게 다가왔다. 추위에 조금씩 몸이 떨려갔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입김이 여러 번 흩어져 나왔다.
“일단 몸 좀 숨기자.”
밤이가 먼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녀는 총을 두 자루 메고서 앞서 걸었다. 몸을 술길 만한 곳은 몇 개 없었다. 웬만한 건물의 창문은 깨져 있었기에 조금 더 걸어야 했다. 살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에 숨을 참았다가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수호는 추위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밤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구나.’
밤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확고해지는 생각이었다. 합류한 후 침착한 모습보다 화내는 모습을 더 많이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충동적으로 위험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언제든 낙조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모습만 봐도 그랬다. 낙조와 밤이, 그리고 홍 씨 남매는 서로를 의심하지도 않았고 저버리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음을 수호는 안다. 그렇기에 이 네 명이 얼마나 큰 마음으로 뭉쳐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기가 좋겠다.”
밤이가 선택한 곳은 낡은 컨테이너였다. 공용주차장 관리자의 휴게실로 쓰인 듯, 내부엔 믹스 커피와 과자 같은 것들이 즐비했다. 내부까지 변종이 들이닥친 건 아닌지 핏자국이라거나 식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지운이 문을 닫자 바람 소리가 줄어들었다. 멈춘 환풍기를 올려다보던 밤이는 조금 큼지막한 장을 열었다. 겨울용 외투로 보이는 관리복이 두 벌 걸려있었다. 그녀는 두 개를 수호와 지운에게 나누어주었다. 수호가 말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대답 없이 손만 휘저을 뿐이었다.
“생각을 해봤는데.”
“어.”
“우리가 들어가는 것보다, 쟤들이 나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가만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지운이 중얼거렸다. 텅 빈 정수기 물통을 이유 없이 매만지는 손이 멈췄다. 밤이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말이 없다가 고개를 돌렸다.
“말벌……, 말벌집을 없앨 때 어떻게 하는지 알아?”
“태우지 않아? ……근데 거기에 불을 지르려면 들어가야 하잖아.”
“집을 먼저 건드려서 경비병이 밖으로 나오게끔 하는 거지. 그리고 걔들을 처리한 후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누나랑 아저씨, 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무작정 불붙일 수는 없잖아.”
“불은 그때 붙이는 게 아니야.”
“그럼?”
밤이의 애매모호한 말에 지운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밤이는 다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를 냈다.
“한 명은 이곳에서 바깥 상황을 보고하고, 둘은 안으로 들어가. 경비병을 처리한 후에.”
“보고? 보고를 어떻게 해.”
지운의 말에 밤이가 가방을 뒤지더니 무전기 하나를 수호에게 건넸다. 수호는 얼떨결에 무전기를 받아들고서 멍하니 밤이를 바라보았다.
“백무흠 방에서 가져왔어. 하나는 홍지운 니가 들고 다녀. 금수호 씨가 여기서 상황 체크하고.”
“……들어가서 어떻게 하시게요.”
“고낙조랑 홍해화 있는 곳을 찾아야지.”
“둘이서요?”
“셋이라고 다를 거 있나. 변종이라도 유인하면 쉬울 텐데 고낙조가 다 쓸어 버렸으니……. 어쩌겠어.”
“너무 위험해요. 아무래도 이 계획은―”
“―다 죽는 것보다 나아.”
“저 혼자만 살아남는 게 최선인 거예요?”
“…….”
“결국 혼자잖아요, 그러면.”
수호는 울컥한 목소리로 밤이의 말을 받아쳤다. 밤이는 무뚝뚝한 얼굴로 총을 장전할 뿐이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벽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수호는 무전기를 들고서 밤이에게 다가가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그 귀하디 귀하다는 풀들……. 숨살이풀, 살살이풀, 피살이풀.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불을 지르려면 거기에 질러야죠.”
수호의 말에 밤이가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흙먼지가 묻은 얼굴을 닦아낸 밤이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무전기를 받아들었다. 수호는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총을 챙겼다. 그리곤 유툥기한도 확인하지 않고 커피 과자를 나누어 먹었다. 대화는 없었다.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만이 컨테이너 안을 울렸다. 퍽퍽한 과자 때문에 목이 조금 막혔지만 투정 부리는 사람도 없었다.
해가 완전히 진 후, 셋은 문을 잠그고서 바닥에 누웠다. 반 정도 사용한 두루마리 휴지를 베개처럼 받쳐 누운 지운이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창고까지 얼마나 걸려요.”
“들어가기만 한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어요. 지름길이 있거든요.”
“지름길이요?”
“지름길이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복도 두 개를 건너뛰는 길이 하나 있어요. 흰 벽에 다 똑같은 문이니 몰랐을 거예요. 좁아도 거기만 통과하면 돼요.”
“창고를 맘대로 열 수 있어요?”
“들어가면서 누구 하나라도 마주치겠죠. 그 신분증을 사용하면 돼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어요?”
“누가 쥐구멍이라도 찾아 놓으라고 했었거든요.”
수호는 지운의 말에 대답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막상 누우니 온몸의 피곤함에 짓눌려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발끝과 손끝은 얼어붙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수호는 몸을 안쪽으로 웅크리면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
시계도, 창문도 없는 공간에 틀어박힌 채 막연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지쳤다. 해화는 바닥에 옆으로 누워 잠들지 않고 종종 낙조에게 말을 걸었다. 낙조 또한 뜬 눈으로 시간을 세고 있었다. 24분……. 켈리가 나간 후부터 센 시간은 삼십 분도 되지 않았다.
“지키는 간부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해화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텅 빈 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조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대화 정도는 해줬겠다.”
“솔직히 우리한테 관심 많을 거 아냐, 다들.”
“완전 인기스타지. 홍해화 너는 신비주의야 아예.”
“살면서 이렇게 집착 당할 줄은 몰랐네.”
서로에게 던지는 말은 가벼웠다. 돌아오는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해화는 거의 모든 것을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지운의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은 당연히 볼 수 없었다. 복도에서 쓰러진 이후 눈을 떠 보니 이곳이었다. 생각보다 정신이 말짱해 이상할 정도였다. 같이 따라오던 무흠은 없었다. 갇힌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나니 시야가 넓게 트였다. 그도 갇혔겠구나.
이런 곳에 가두어서 뭘 하려는 건지, 삼승은 소식조차 없었다. 그나마 켈리는 얼굴이라도 비췄지. 낙조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설핏 웃었다. 해화는 낙조의 웃음소리에 따라 작게 키득거렸다. 각자 아무 이유 없이 웃음을 실실 내뱉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누군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어두운 방 안으로 복도의 강한 불빛이 쏟아졌다.
작은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무언가를 품에 꼭 껴안은 세성이었다. 그는 문을 닫고서 아무 말 없이 낙조와 해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세성을 보자마자 둘은 웃음을 멈추었다. 일부러 건드리고 있지 않았던 마음의 어딘가를 세성이 쿡 찌른 것 같았다.
세성은 말없이 다가와 낙조의 앞에 앉았다. 그리곤 품에 안은 것을 들춰 보여주었다. 피로 물든 천에 감싸져 있는 건 낡은 오른팔이었다. 그것은 세성의 피를 머금고 조금씩 움찔거리고 있었다. 낙조가 세성을 다시 바라보니, 그가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입을 열었다.
“아이한테 못 할 짓이라는 거 안다. 하지만 살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세성님 마음대로 될까요?”
“내 피를 거부하지 않는 모습으로 봐선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
착잡했다. 마구잡이로 잘려나간 마음이 퍼즐 조각처럼 넓게 펼쳐져 어디서부터 붙여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신소미, 네가 말해줘야 해.”
“…….”
세성을 보고 몸을 일으킨 해화가 물끄러미 천에 싸인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뜯긴 부분은 살가죽이 서로 엉겨 붙어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손끝이 조금씩 까닥이는 걸 보면서, 해화는 어설프게 웃으며 세성에게 물었다.
“뭐라고……, 말해요?”
“너를 아프게 한 사람을 찾았다고.”
“…….”
“네가 기억하는 사람이 맞다면, 죽여도 된다고. 그래도 되니까. 죽여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세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화와 세성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해화는 조심스럽게 유리벽 가까이 다가가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세성도 해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갓난아기를 안은 것처럼 세성의 움직임은 차분했다. 혈색을 잃고 보라색으로 변한 오른팔은 해화를 알아보기라도 하는 듯 손등을 뒤집었다.
해화는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문 채 눈을 꽉 감았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울렸다. 해화는 서천의 내부처럼 새하얀 복도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의 혼과 무사히 맞닿은 모양이었다. 이만큼 혼과 가까워진 건 몸을 지배당한 이후 처음이라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해화는 조금씩 아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보글보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어느 방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해화의 눈높이에 맞게 자그마한 창이 하나 나 있었다. 해화는 먼저 그곳에 눈을 두고 안을 바라보았다. 방의 크기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가장 먼저 시야를 뒤덮은 건 새빨간 유리관이었다.
‘저게 뭐지?’
문에 난 작은 창으로는 다 보이지 않았다. 해화는 주저하다가 문고리를 돌렸다. 가볍게 문고리가 돌아가고, 문이 슬그머니 열렸다. 아이는 해화에게 등을 보인 채 빨간 유리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
방에 완전히 두 발을 딛고 섰을 때, 해화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졌다. 유리관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수족관처럼, 유리는 문이 달린 벽을 제외한 삼면을 모두 감싸고 있었다. 그 안을 가득 채운 건 피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새빨간 액체가 담겨 있었고, 밑에서부터 거품이 올라와 벽을 타고 올라갔다. 아이는 그 거품을 보면서 계속 보글보글, 이라고 중얼거렸다.
“……릴리.”
해화가 조심스럽게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릴리는 중얼거리던 걸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새하얗고,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작은 여자아이가 해화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동그란 눈이 무구하게 깜박였다. 입술 아래로 유치가 귀엽게 자라나 있었다. 해화는 릴리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며 물었다.
“이걸 나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야?”
“내 피.”
“응?”
“내 피.”
릴리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피로 가득 찬 유리를 가리켰다. 해화는 고개를 돌려 다시 방을 가득 채운 피를 응시했다. 피라고는 생각했으나 이렇게 많은 양은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올 수 없는 피였다. 해화가 쉽게 말을 잇지 못하자, 릴리는 해화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자신을 보라는 듯이.
“내 피. 엄청. 엄청, 많아.”
“……정말 다 릴리 거야?”
“응.”
“어떻게 알았어, 릴리는?”
“봤어.”
“……언제?”
“나 죽였잖아, 계속 봤어.”
“죽은 뒤로도 보였어?”
“응. 여기로 쩜프! 했다가, 저기로 또 쩜프!”
릴리는 작은 두 손가락으로 인형 놀이를 하듯 바닥 위를 움직였다. 릴리의 말에 턱하니 말문이 막혔다. 릴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릴리의 혼은 자신의 피에 깃들어 낙조에게 오기까지 모든 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동안 릴리의 눈앞에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은 얼마나 가식적이고, 릴리에겐 모욕적이었을까. 해화는 몸이 떨리는 걸 느끼면서도 릴리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물었다.
“릴리 피가, 왜 이렇게 많아?”
“이렇게, 이렇게.”
해화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릴리가 두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곤 오른손으로 왼손 손바닥을 꾹 누르더니, 이내 두 손바닥을 모두 해화에게 내밀었다.
“계속 만들었어? 릴리 피를?”
“응.”
“…….”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것이 토할 것처럼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서, 해화는 릴리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아이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해화를 바라보며 얌전히 해화의 품에 안겼다. 그리곤 해화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도와줘.”
“……어떻게 도와줄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돼?”
해화가 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릴리는 해화의 가슴에 기댄 채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낙조, 다시 낙조한테 갈래.”
“…….”
“안 돼?”
“아니, 아니야…….”
해화는 황급히 릴리의 머리를 껴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해화는 시뻘건 피를 자신의 눈에 직접 담았다. 왼쪽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뜨겁게 녹아내리듯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