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접촉 (2)
트렁크에 실었던 뿌리를 꺼내자마자 해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썩은 냄새가 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해화는 그보다 다른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듯 보였다. 세성이 둘의 곁으로 다가와 해화에게 물었다.
“이제 잘 들리나 보네.”
“……네. 또렷하게 들려요.”
“아무래도 큰일을 겪었으니까.”
세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는 해화에게 함부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낙조는 마른 얼굴의 세성을 보면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왜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신소미가 뛰쳐나오길래.”
“뛰쳐나와요?”
낙조가 반문하자 세성은 엷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돌려 해화를 바라보니 그녀는 세성의 눈치를 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어느 순간 느껴졌어. 여기로 오고 있다는 게.”
“변종이? 아니면 내가?”
“확실히는 몰라. 변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근데 내 생각엔, 고낙조 너인 것 같아. 변종이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랑은 달랐거든.”
“그게 구분이 돼?”
“변종이 가까이 다가오면 오싹해져. 근데 너는……, 조금 달라. 나도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어. 네가 가까이 있다고.”
해화는 말하면서도 혼란스러운지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뱉는 것을 반복했다. 이런 곳에서 굳이 그녀를 몰아세우고 싶진 않았다. 낙조는 손에 쥔 뿌리를 다시 트렁크에 넣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세성이 차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이제부터 둘이서 함께 움직여야 해. 한쪽이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한쪽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언제까지 이러는데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세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선포했다. 낙조와 해화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자, 그는 몸을 다시 세우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내 말은, 변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 끝날 때를 말하는 거야. 그러니 둘 다 죽기 싫겠다는 얼굴은 좀 거두지 그래.”
“세성님이 먼저 오해하게 만들었잖아요.”
“아무튼 나는 먼저 올라간다. 마저 처리하고 들어와. 냄새가 배었을 테니 변명도 잘 생각해보고.”
손을 휘저으며 세성이 등을 돌렸다. 함께 서천 안으로 들어가 어느 정도 자신들을 감싸줄 거라 생각했던 낙조는 당황하면서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세성은 아픈 몸에 비해 참 잽싸게 산 위로 올라갔다. 세성이 떠나자 그제야 밤이와 무흠이 낙조 곁으로 다가왔다. 밤이는 낙조 몸에서 풍기는 냄새에 코를 막으면서 질색하는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너 무슨……, 무덤이라도 팠어?”
“뿌리에서 나는 냄새예요.”
더 이상 변명하는 것도 일이었다. 낙조는 포기한 듯이 말하곤 트렁크를 열어 뿌리를 보여주었다. 묵묵히 썩은 뿌리를 바라보던 해화는 거리낌 없이 그것의 끄트머리를 매만져보았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모습에 밤이가 소리 없이 기겁하는 얼굴을 보였다. 무흠은 흥미로운 듯 해화를 지켜보았고, 낙조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해화의 시선을 유심히 살폈다. 해화는 허리까지 숙여 뿌리를 자세히 관찰했다. 몇 분 동안 악취를 참아내며 뿌리를 매만지던 해화는 이윽고 허리를 펴면서 낙조를 불렀다.
“야.”
“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뿌리를 엄청 무식하게 뽑았네.”
“……여기 있는 사람들이 고자질하냐? 너한테?”
“고낙조 니 맘은 충분히 알겠는데, 방법이 너무 거칠었어. 남은 사람들이 무섭대서 못 가겠다잖아.”
해화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낙조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곤 무흠을 바라봤다가 목소리를 살짝 높이며 해화에게 말했다.
“야, 중사님이랑 나도 죽을 뻔했어. 나는 너처럼 소통이 안 되는데 그럼 어쩌겠어.”
“됐어. 앞으로만 그러지 마.”
해화는 뿌리를 어루만지며 낙조에게 투박한 말투로 말했다. 괜히 억울해진 상태로 낙조가 무흠에게 들린 자신의 가방을 다시 돌려받았다. 해화가 몇 분 쓰다듬자, 썩은 냄새를 잔뜩 흩날리던 뿌리도 잠잠해졌다. 해화는 직접 두 개의 뿌리를 들고 산을 올랐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 낙조는 해화의 뒷모습에 대고 물었다.
“야, 홍해화.”
대답 없이 해화가 고개를 돌려 낙조를 응시했다. 낙조는 더 묻지 않고 그 시선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더 이상 해화에게선 낯선 그림자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해화를 덮고 있던 오묘한 껍질이 완전히 벗겨진 느낌이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얼굴은 자신이 기억하는 해화의 얼굴과 똑같았다. 무심한 듯한 시선과 다물린 입술, 그 위로 잘 비치지 않는 표정. 확실히 변종에게서 자유로워진 해화는 자신이 알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낙조는 아무 말 없이 해화를 지나쳐 위로 올라갔다.
“야. 불렀으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별거 아냐.”
“뭔데. 내가 아까 뭐라고 해서 삐졌냐?”
“나 그 정도 소인배 아니거든. 그리고 이렇게 말꼬리 물고 늘어지는 거 보니까 확실히 다 낫긴 나았나 보네.”
사실 조금은 걱정했다. 그것의 잔흔이 남아서 해화를 농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 일행에게 보여준 모습도 결국 가짜인 건 아닌지. 변종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서 몇 번이고 고민했다. 그러나 다 부질없던 걱정이라는 걸, 눈을 바로 마주하면서 알게 되었다. 해화의 눈에선 더 이상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다. 거둘 수 없는 그림자 같은 것은 이미 모두 증발한 것처럼, 말끔했다.
*
서천의 문을 열 때까지 수많은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무려 하루 동안 비워둔 자리, 해화가 들고 있는 뿌리까지.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를 시킬 수 있을지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갔다.
“어, 이제 왔어?”
마른침을 꼴딱 삼키고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낙조와 일행을 반겼다. 문 앞에 선 이는 세성이었다. 문지기도 없이, 홀로 문 앞에 선 그는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내가 심부름을 좀 시켰어.”
“문지기한테요?”
“응. 너희한테도 시켰다고 했으니 걱정 마라.”
“……세성님, 저희 어디 다녀온 건진 알고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 시간에 어딜 갔겠어. 뿌리까지 들고 온 걸 보아하니 네가 멋대로 나간 거겠지. 퇴치……, 비슷한 걸 하려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낙조는 얼이 빠진 얼굴로 세성을 바라보았다. 김이 팍 새는 기분이긴 했으나 나쁠 건 없었다. 그새 손바닥에 난 식은땀을 닦으면서, 낙조는 한숨을 내쉬었다.
“뿌리는 나 줘.”
세성이 해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웃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해화는 잠깐 주저하다가 큼지막한 뿌리를 세성에게 넘겼다. 그는 자리를 떠나기 전,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몸을 깨끗하게 씻으라는 말을 남기곤 먼저 자리를 떠났다.
“고낙조.”
“어?”
“씻고 나 좀 봐. 할 얘기 있어.”
세성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해화가 대뜸 낙조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예전 모습처럼 강단 있게 말하고서 먼저 자리를 떴다. 회복실 쪽으로 걸어가는 해화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낙조는 무흠, 밤이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문지기가 오기 전에 자리를 떠야 했기 때문이었다.
“홍해화……,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긴 한데, 뭔가 좀 생소하네.”
“어떤 거요?”
“그냥.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엄청 소심하게 굴었거든. 그러다가 갑자기 뛰쳐나간 거야. 정말로……, 그 능력이란 게 발현된 건가? 홍해화도 그걸 받아들인 거고?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그렇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잖아. 고낙조 너가 가진 힘만 봐도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말도 안 되니까.”
“…….”
큰일을 겪고 난 이후 사람이 얼마나 약해지는지 낙조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눈앞에서 도둑맞았다는 사실은 시간조차 해결해주지 않는 고통이었다. 해화와 자신에게는 발광 구체를 만남으로써 다르게 능력이 발현됐다. 해화는 몸속에 숨겨둔 능력이 비로소 빛을 보았고, 낙조 자신은 오른팔이 일부러 자신에게 감추고 있던 능력을 폭발시켰다.
그렇다고 해화가 긍정적으로 능력이 발현됐다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그녀를 빨아들인 변종은 해화의 몸과 능력으로 일행을 공격하고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걸 해화는 자신의 몸 안에 갇혀 모두 지켜봤을 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보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끝까지 해화의 몸을 물고 늘어지던 것을 내보낸 후, 그녀는 오랜만에 되찾은 평화와 자유가 어색했을 게 분명했다. 기운은커녕 말을 꺼내는 용기조차 쉽게 내지 못했겠지.
낙조는 방으로 들어가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손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니 밤이의 말대로 역겨운 냄새가 치솟아 올라오고 있었다. 옷을 벗어 문에 걸쳐 놓고선 손발이 부르틀 때까지 몸을 닦았다. 수증기가 뿌옇게 욕실 안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낙조는 젖은 머리를 털며 욕실을 나왔다.
‘내가 찾아가야 하나.’
할 얘기가 있다는 해화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낙조가 추측할 수 있는 건 해화가 이곳에 없었을 때 세운 계획이라거나 발광 구체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침대에 앉아 머리를 털던 낙조는 복도를 걷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똑똑.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낙조는 수건을 어깨에 걸친 후 말없이 문을 열었다. 해화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채 나타났다. 그녀는 낙조가 몸을 살짝 비켜주자 그 틈으로 방안에 들어왔다. 작은 의자 하나에 앉아 방을 둘러보던 해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사람들이 많아서 얘기 안 한 게 있어.”
“뭔데?”
“변종들이 사지가 찢긴 후에 한 곳에 몰린 이유. 혼들이 갈 길을 잃어 어떻게든 완전히 죽기 위해 그 형태를 만들었다고 했잖아.”
“어.”
“이유가 하나 더 있었어.”
해화는 말을 내뱉고서 낙조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눈치를 보았다.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말인지, 그녀는 작게 한숨을 토해내다가 낙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고낙조 너한테 붙잡히지 않으려고. 그런 모습으로 있었대.”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변종들이 네 힘을 느낄 수 있다는 거지. 하지만 넌 그들과 대화할 수가 없잖아. 아무리 네 손에서 찢겨 봤자 어디로 갈지 모르니 한곳에 모여 있었다는 말이지.”
“…….”
“쉽게 이해 안 될 거 알아. 그럼 그냥 이 말만 기억해.”
“…….”
“변종은 물론이고 혼이 착각할 만큼, 넌 강하다고. 자신을 구제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강해서, 그저 고통을 주러 온 사냥꾼처럼 느껴진다는 거야. 그들에겐.”
잠시 머리가 울렸다. 낙조는 침대에 앉아 해화의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겨보았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해화는 낙조에게 시간을 주는 듯 더 재촉하지 않았다. 몇 번의 일을 거치면서 자신의 힘이 조금씩 더 커져가는 건 느꼈다. 그러나 자신의 기운을 느끼고, 그 기운에 짓눌려 혼이 착각을 한다면,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해서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왜 아까 얘기 안 했어?”
“당사자가 가장 빨리 아는 게 좋으니까.”
“…….”
“너 생각 정리되면 다른 사람한테 말해도 돼. 세성이란 사람한테도. 아마 삼승―”
“―삼승님한텐 얘기하면 안 돼.”
“……왜?”
해화가 없던 동안 있었던 일을 일일이 나열하자니 시간이 부족했다. 낙조는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수한 의문을 품고서 묻는 해화에게 대답을 안 해줄 수도 없었다. 이걸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낙조는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쌌다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서 말했다.
“삼승님은……, 이제 조심해야 할 사람이야.”
“그러니까 왜.”
“아직 확실한 증거 같은 건 없어. 근데……, 청주에 파견됐던 여기 간부가 켈리를 잡아 왔단 말이야. 근데 손도 대지 않고 있어. 죽이기는커녕 잘 보살피고 있다고.”
“…….”
“아무래도 뭔가 찝찝해.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러니까 웬만하면 그 사람이랑 얽히지 않는 게 좋아.”
낙조는 짧게 말을 마치고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 정도면 해화도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 주의 깊게 낙조의 말을 듣던 해화는 대화가 끝나자 손끝만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일어나 나갈 거라고 생각한 낙조는 젖은 수건을 손에 쥐고 멀뚱하게 해화를 응시했다.
“안 나가?”
“나?”
“어.”
“아, 나 나가?”
“……꼭 안 나가도 되긴 하는데, 우리 얘기할 게 더 있나?”
“……아. 이거. 이제 네가 어딜 가든 가까운 곳에 있으면 난 느낄 수 있다는 거. 잘 기억해둬. 위험한 일이 생겼다거나 우리가 필요할 때 신호를 보내. 어떻게든. 그럼 찾아갈게.”
해화는 또박또박 말을 내뱉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갈게.” 해화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갔다. 떠나고 나니 빈자리에서 해화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낙조는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피곤함이 욱신거릴 정도로 몸을 뒤덮고 있었다. 두 눈이 무겁게도 짓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