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171화 (171/202)

171화. 접촉 (1)

회복실에 있을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확신이 서지 않아 밤이에게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다. 아직 자신의 몸에 그것이 남아 있다고 생각할까 봐 굳이 입을 열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해화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틀고 앉은 발광 구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 낙조와 무흠이 탄 차가 해화 앞에 멈춰 섰다. 바퀴 사이에서 먼지가 먹구름처럼 피어났다. 둘은 짐을 챙긴 후 차에서 내리다가 해화를 발견하고서 주춤거렸다.

“왜 나와 있어?”

먼저 해화에게 말을 건 이는 낙조였다. 해화는 시선을 천천히 낙조에게로 돌렸다. 대답 없이 그녀는 다시 발광 구체를 응시한 채 눈을 깜박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했어?”

“뭐?”

해화는 뜬금없는 말을 늘어놓고선 낙조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정확히는 발광 구체에게로. 낙조가 급히 막았으나 해화는 맑은 눈동자로 낙조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악의라곤 전혀 묻지 않은 시선이었다. 변종에게 빙의됐을 때와는 달랐다.

‘의심하지 말자.’

낙조는 해화의 앞을 가로막은 채 옅은 한숨만 푹푹 쉬어댔다. 어떻게 자신이 오는 타이밍에 맞추어 나왔는지, 왜 구체를 보고서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가려고 하는 건지 하나하나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해화에게선 대답을 얻을 수 없다고.

“계속 뭐라고 말하고 있어. 근데 잘 안 들리니까 그래.”

“저거 변종이야. 공격할 수도 있다고.”

“알아. 근데 공격할 ‘수도’ 있는 거지, 무조건은 아니잖아.”

“정신 차려. 홍해화. 야.”

“너는 안 들려?”

해화를 계속해서 막아서자 그녀는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낙조에게 물었다. 뭐가 들리냐니. 낙조는 해화의 물음에 혹여 자신이 듣지 못한 변종의 소리가 있나 싶어 귀를 기울였지만 사방은 조용했다. 빠르게 깜박이는 구체의 빛 때문에 해화의 얼굴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걸 반복했다.

“들린다는 게…….”

“저 변종한테서 들려. 사람의 말이.”

“…….”

순간 머리 뒤쪽이 서늘해졌다. 처음 만났던 구체의 뿌리를 뽑아낼 때, 자신에게 파도처럼 쏟아지던 속삭임들이 떠올랐다.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몰랐으나 사람의 목소리라는 건 자각할 수 있었다. 낙조는 말문이 막힌 채 서 있다가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해화와 눈을 마주했다.

“얼마나 선명하게 들리는데?”

“너랑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들려. 근데 멀고……, 목소리가 너무 많아.”

아무리 막으려 해봤자 시간만 버리는 짓이었다. 곁에서 짐을 챙기고 기다리던 무흠이 가만히 듣다가 이을 열었다.

“보내줘.”

“…….”

“세성님이 말씀하신 일을 하려나 보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도 따라가서 첫 임무 잘 해보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무흠은 말했다. 해화는 무흠의 말을 듣고서 ‘괜찮지?’라는 표정으로 낙조를 지나쳐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낙조는 한숨을 내쉬면서 무흠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

“그거요. 독초…….”

“없어도 될 것 같은데. 가방만 줘.”

오히려 무흠은 낙조의 어깨에 달린 가방을 빼앗아가며 손을 휘저었다. 실랑이를 했다간 해화를 아예 놓칠 것 같아 낙조는 무흠을 잠시 노려본 후 해화에게로 달려갔다. 거센 물살이 휘몰아치는 곳에 홀로 해화를 보내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잠깐 사이 빠른 걸음으로 구체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낙조는 해화의 팔을 살짝 붙잡고서 걸음을 멈춰 세웠다.

“잠깐, 잠깐.”

“또 뭐가 문제야.”

“가까이 다가가서 듣는다고 치자. 들은 다음, 다음엔 뭐 하려고.”

“진정시켜야지.”

“진정?”

“소리 지르고 있거든. 안 들리는 것 같긴 하지만.”

해화는 잡힌 팔을 빼내곤 구체를 가리켰다. 구체는 아까보단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있어?’

아마 자신과의 거리가 가깝지 않기에, 혹은 아직 속을 보지 못했기에 듣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꺼림칙했으나 해화의 의견을 무시할 순 없었다. 열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해화는 낙조를 돌아보았다.

“너는 거기 있어.”

“왜.”

“너 무섭대.”

해화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말하곤 다시 구체에게로 다가갔다. 낙조는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걸음을 멈췄다. 당장은 해화가 원하는 대로 놓아두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만큼 가까이 붙었음에도 자신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뿌리를 쥐기 전까지는 소리가 닿지 않을 게 분명했다.

시야 가득 구체의 모습이 찰 정도로 가까이 구체에게 다가선 해화는 가장 먼저 손을 들어 거친 표면을 쓰다듬었다. 자신이 부러뜨리고자 한다면 곧장 망가질 만큼 연약한 뿌리와 껍질들이었다. 해화는 눈이 빛을 깜박일 때마다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

―…무도……난…무서……

여러 명의 목소리가 얇은 줄 하나에 꿰여 줄줄이 쏟아지는 듯했다. 해화는 연약한 표면을 어루만지면서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분명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리저리 튀어나온 인간의 사지처럼, 목소리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로와 뒤엉킨 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 명의 목소리에 집중하기보단 이 목소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단어가 있는지 집중해야 했다. 해화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손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구체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조용히 얘기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들을 수 있어요.”

특정을 지어 말을 건 것은 아니었으나, 모두가 들은 듯 일순간 구체가 꿀렁거리더니 소음이 잦아들었다. 각자 눈치를 보는 듯 주저하며 신음을 흘리자 해화는 나무 껍질을 쓰다듬으면서 다시 말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어째서 여기에 왔는지. 이런 것만 말씀해 주시면 돼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했다. 스스로의 모습에 놀랄 만큼. 지독한 것을 몸에서 빼낸 이후 항상 불안에 감겨 살았던 며칠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눈을 떠도, 감아도, 항상 자신의 얼굴을 한 그것이 어딘가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환각이 분명했으나 잠깐 몸을 빼앗겼던 순간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누구에게 말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누구에게 말해야만 풀릴 것 같았던 감정은 결국 혼자만 아는 시간이 돼버렸다. 이후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겠지. 해화는 오히려 구체와 대화 비슷한 것을 하며 갑갑했던 속이 점차 풀리는 걸 느꼈다. 한곳에 뒤엉켜 잘 들리지 않았던 발음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네, 네. ……아아.”

어린아이와 노인,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여러 목소리가 줄을 이어 해화에게 말했다. 자신이나 낙조를 향한 공격성을 보이진 않았다. 해화는 조곤조곤 대답하며 그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뒤에서 못 미더운 눈치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낙조의 모습을 힐끔거리고 조금 웃기도 했다.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이랑 대화하는 것 같네.’

해화는 짧은 감상을 마치고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이제 길 안 잃고 가실 수 있을 거예요. 안녕히 가세요.”

어딘가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해화는 표면을 쓰다듬다가 얼굴을 떼어 냈다. 이윽고 낙조에게 이리 오라며 손짓하자, 기다렸다는 듯 뛰어오는 모습에 웃음이 한 번 더 피었다.

“얘기할 게 그렇게 많아?”

“사람이 많으니까?”

“누구는 너 깔릴까 봐 마음 졸이면서 언제 튀어나가지 생각하고 있는데?”

“됐고, 가까이 와 봐.”

해화는 낙조의 팔을 잡고 이끌어 구체의 눈 앞으로 데리고 갔다. 번쩍거릴 때마다 눈이 부셨으나 해화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오히려 평온한 얼굴로 눈을 지켜보았다.

“들리는 거 없어? 여기 와서도?”

“난……, 뿌리를 잡았을 때 들려. 항상 그런 것 같아.”

“하긴. 너한텐 방법이 없었겠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 제발 설명 좀 해줄래?”

“변종이 되기 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그리고 모두 기억해. 변종이 되었을 때, 되고 난 이후까지. 나랑 비슷해. 나는 깨어 있고 분명히 잠들 수가 없는데 누군가가 내 몸을 멋대로 조종하는 거지. 내 의지도 아니고 원하는 것도 아닌데 내 얼굴을 한 무언가가 내 몸으로 그렇게 하고 있어. 나는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고. 그게 똑같아.”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해화는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낙조는 그녀가 평온한 눈길로 구체를 바라보는 것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왜 이렇게 모였냐면……, 고낙조 네가 그렇게 만들었는데도 세상을 떠날 수가 없더래. 그냥 이 세상에 갇힌 거지. 지옥이든 천국이든 갈 길도 모르고, 저승에 먼저 가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거야.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건 자기들끼리 뭉쳐서 어떻게든 자신들을 완전히 파괴하거나 길을 알려주는 사람을 찾아야만 했대.”

세성이 낙조에게 일러준 이야기의 맥락과 비슷한 말이었다. 낙조는 얌전히 웅크리고 있는 구체를 올려다보면서, 삼킬수록 쓴맛이 느껴지는 침을 억지로 또 삼켜냈다.

거제에서 처음 발광 구체를 만났을 때 자신이 추측한 것이 맞았다. 사람의 의식을 갖고, 자신의 몸에 갇혀서, 변종이 자신을 조종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고 기억하는 것. 결국 혼이 되었는데도 떠나지 못하고 갈 길 잃은 미아가 되어 완전히 소멸되기까지를 기다리는 것. 그게 인간 형태 변종의 넋이었다.

직접 두 손으로 꿰고 뚫었던 모든 변종들에게서 오는 죄책감은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괴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가야 할 곳을 알려주고, 더 이상 자신의 몸에 갇혀 영영 죽지도 못하는 상태를 해방해주게 되었으니까. 해화가 눈을 뜸으로써 그것이 완전히 가능해졌으니. 두려워할 건 없었다. 무서워할 것도 없었다.

“이제 보내드릴게요.”

해화가 구체의 눈을 향해 말했다. 눈은 대답하듯 미약한 빛을 내보였다. 해화가 낙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자신의 차례가 온 것 같았다. 그러나 얌전한 방법을 모르는 터라 쉽게 손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낙조의 모습을 빤히 보던 구체에서 타다닥, 하는 불씨 튀는 소리가 나더니 형태를 갖추고 있던 껍질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기 시작했다.

“…….”

스스로 탈피하는 모습에 낙조는 일부러 손을 올리지 않았다. 맨 위의 껍데기가 벗겨지고, 그 아래에 깔려 있던 것이 잇따라 떨어졌다. 잘린 손발이라거나 얼굴을 보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으나 낙조는 움직이지 않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여러 갈래로 벗겨진 구체는 아주 작은 씨앗의 형태를 하고서 뿌리를 스스로 내보였다. 낙조는 소매를 걷고 천천히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불씨가 튀는 소리를 내면서 손끝에서부터 나뭇가지가 길게 돋아났다. 항상 피어나는 가시는 없었다. 마른 나뭇가지가 완전히 자리를 잡자, 낙조는 뿌리의 밑부분을 살짝 말아 쥐었다. 그제야 꽉 막혀 있던 귓속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엄마랑 같이 가자.

젊은 여자의 쉰 목소리가 가장 먼저 귓속을 울렸다. 낙조는 숨을 가다듬고서 천천히 뿌리를 위쪽으로 들어 올렸다.

―엄마 손 잡자, 꽉 잡아야지. 그렇지. 그래야 엄마 다시 안 잃어버리지…….

왜 그녀의 목소리만 그렇게 또렷하게 들렸는지. 이유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매몰차게 벤 변종들 중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변종이 있었나, 생각하던 도중 뒤에서 해화가 낙조를 불렀다.

“고낙조.”

“어? 어.”

“딴생각하면 안 돼.”

“어…….”

얼버무리듯 대답하고서 낙조는 힘을 주어 뿌리를 완전히 뽑아냈다. 당연히 썩은 냄새가 풍길 거라고 생각했던 낙조는 그 어떤 냄새도 풍기지 않는 걸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손에 잡힌 건 그저 흙과 살, 진액이 잔뜩 들러붙은 큰 뿌리였다. 썩은 냄새는 그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었다.

“홍해화.”

“잘 가셨나 보네.”

“내가 실수한 게 있는 것 같은데.”

이곳에 오기 전 마주쳤던 첫 번째 구체를 떠올리며 낙조가 중얼거렸다. 해화의 얼굴 위로 형용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낙조는 뿌리를 쥔 손을 아래로 내리면서 말했다.

“네가 봐줘야 할 게 있어. 이게 맞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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