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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170화 (170/202)

170화. 복귀 (3)

“이것도 가져가야 할까요?”

“……냄새는 역겹긴 하지만, 세성님껜 필요할 수도 있겠지.”

낙조는 오른손에 쥔 뿌리를 보이며 무흠에게 말했다. 무흠도 썩 내키지는 않는지 인상을 구겼다. 바닥에 고인 껍질과 자신이 부순 나무 조각을 내려다보면서, 그들이 무사히 잘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서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넋을 기리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그들의 마지막 길에 어떤 말이 가장 위로가 되는지 알지 못해 마음이 쓰였다.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차에 올랐다. 뿌리는 트렁크에 넣었다.

“아, 너한테서도 냄새 난다.”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창문 밖으로 손 빼고 있어라.”

“진짜 너무하신다. 저 아니었으면 중사님 죽었을 수도 있거든요?”

“너도 나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제압할 수 없었을걸.”

무흠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결국 창문을 열고 팔을 밖으로 뺀 낙조는 작게 툴툴거리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제주라고 해서 겨울이 덜 따뜻한 건 아니었다. 손끝이 살짝씩 아려오는 느낌에 낙조는 힐끗 무흠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정도면 됐죠.”

“니가 판단해. 참을 만한 냄새가 아니니까.”

“중사님 비위가 많이 약해지셨네.”

“남 탓 하지도 말고.”

“…….”

무흠은 대답하지 못할 말만 콕콕 골라서 낙조를 꼬집었다. 낙조는 결국 십 분 정도를 더 밖에 팔을 빼고 있다가 창문을 닫아야 했다.

“동상 걸리는 거 아니에요?”

“걸렸으면 아무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었겠지.”

“중사님 제가 봐드리는 거예요. 우셨던 거 밤이 누나한테 이를 수도 있어요.”

“말해라. 하나도 안 무서운데.”

“아오 짜증나.”

느긋하게 운전하는 무흠은 정말로 신이라도 났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무리 도발해봤자 팔자가 안 좋은 건 낙조 쪽이었다. 낙조는 묵묵히 앞을 바라보고 있다가 지도를 펼쳤다. 불을 켜도 차 안은 어두웠다. 손전등으로 대충 확인해 보니 두 번째 목적지를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별로 좋은 기억이 남은 곳은 아니기에 얼른 지나치고 싶었다.

밤은 훨씬 깊어지고 조용했다. 자정을 넘기진 않았으나 아무 일 없이 서천에 도착한다 해도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밤이에게 부탁을 해놓긴 했지만 거의 하루 동안 자리를 비운 탓에 그럴싸한 변명을 만들어야 했다.

“돌아가면, 뭐라고 하죠?”

“……뭐, 삼승님 귀에만 안 들어갔다면 다행이지.”

“당연히 들어갔을 것 같은데요.”

“솔직하게 얘기해야지. 네 계획을 조금 빨리 시작하게 됐다고.”

“삼승님이 그걸 그랬구나, 하면서 넘어갈 리가 없잖아요.”

“나보고 어쩌란 거야 지금. 시비를 걸고 싶은 거냐?”

“중사님 보는데 계획이 하나도 없어 보이니까요!”

끼익.

무흠이 브레이크를 세게 밟으며 차를 멈춰 세웠다. 낙조는 핸들을 꽉 쥔 채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는 무흠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럼 뭐……, 장대한 계획이 있어야 해?”

“중사님이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삼승님이랑 내기를 한 상태고.”

“그렇다고 너를 무조건 살려둘 사람은 아니다. 서천엔 사람의 쓰임새가 분명히 드러나야 해. 그걸 잃는 순간 추방당하지. 나를 지금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니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생각 많이 하고 있으니까 좀 닥치고 가자.”

“……네.”

다시 차가 출발했다. 어쩐지 어색해진 분위기 때문에 가벼운 말 한 마디를 건넬 수 없었다. 이제 두 번째 목적지를 거의 벗어나기 직전이었다. 낙조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백미러를 유심히 바라보았으나 비춰지는 건 없었다.

“…….”

왜 최악을 상상하면 현실이 되고, 희망을 품으면 좌절하고, 기대하지 않으면 만족하게 될까. 사람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건 누군가 개입했기 때문일까, 이미 정해진 운명이기 때문일까.

땅을 울리는 미미한 진동을 느낀 건 낙조였다. 그는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무흠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방금, 들으셨어요?”

“뭘.”

“…….”

쿵.

귀찮다는 내색을 비추던 무흠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잊을 수 없는 소리였다. 익숙해지기 싫은 느낌이기도 했다. 낙조는 상향등이 비추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두 번째 목적지까지 아무 일 없었는데…….’

분명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어야 했다. 낙조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무흠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중사님, 우리, 그……, 사거리. 사거리 건넜나요?”

“……어.”

“……밟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낙조는 공허한 목소리로 무흠에게 물었다. 사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하긴 했으나 무흠이 괜한 희망을 줄 사람은 아니었기에 낙조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떠들썩하게 사거리를 정리했던 오전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분명 변종의 사체는 거리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어야 했다.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으스러진 뼈와 살덩이가 바퀴에 걸리기도 하고, 속도를 좀처럼 내지 못하며 차가 들썩였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목적지를 빠져나오기 직전까지……, 바퀴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도. 되새기지 못했다면 그대로 지나쳤을 만큼 평온했다.

설마, 했던 의심은 얼마 가지 않아 풀렸다. 상향등의 빛 끄트머리에 잡힌 건 끈적한 진액 덩어리였다. 덩어리는 질질 끌려가듯 짙은 흔적을 남겼다. 무흠과 낙조는 숨을 죽였다. 차의 속도를 줄이고 덩어리의 뒤를 따라가던 무흠은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처리하고 가야겠다.”

“아니요.”

“뭐?”

“서천까지 데리고 가요.”

“……아까까지만 해도 삼승님, 삼승님 하면서 무서워하던 애가. 뭐라고?”

“삼승님께 직접 보여줘요. 켈리라는 사람이 살아 있던 모든 걸 얼마나 끔찍하게 만들어놨는지.”

낙조는 단호하게 말했다. 두 눈은 결의에 차 있었다. 말을 보탠다고 해서 그의 의지가 바뀌지는 않을 듯했다. 무흠은 기어를 쥔 채 가만히 끌려가는 덩어리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건 낙조의 계획이다. 자신이 그 계획에 보탬이 된다면, 그가 이끄는 대로 노를 저어줘야 하는 게 맞았다. 배의 방향이 정말 틀어지지 않을 때까진 그의 계획을 믿어야 했다.

곧 무흠이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며 악셀을 밟았다.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며, 낙조가 창문을 내리고 손전등을 밖으로 비췄다.

“……맞네요.”

처음 만났던 발광 구체보다 조금 더 큰 녀석이었다. 놈의 눈은 가로로 길고 세로가 짧았는데, 눈을 깜박일 때마다 구체가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바닥을 쿵 찧었다. 구체에게 가까워진 만큼 차도 많이 흔들렸다. 낙조는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녀석의 표면도 마찬가지로 거의 다 부스러지기 직전인 나무껍질과 뿌리로 점칠돼 있었다. 부수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낙조가 품은 의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왜 여기로 갈까요?”

낙조는 작은 목소리로 무흠에게 물었다. 무흠은 낙조 쪽에 달린 백미러를 힐끗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살려고 하는 거겠지. 죽기 싫어서.”

“그럼 저기 안에 있는 모든 혼들은 죽은 걸 못 받아들인다는 거죠?”

“서천 안에서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다.”

“그걸 풀어주는 게 홍해화고……, 길을 안내하는 건 저고.”

백지 상태였던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바로 옆에 따라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만 있었다. 영양분을 찾는 거라면 바로 자신 쪽으로 달려들었을 텐데. 유일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으며 낙조는 손전등을 단단히 쥐었다.

*

“아직도 안 왔어?”

“네.”

“와 미치겠네. 이 새끼들 그냥 튄 거 아니야?”

밤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내질렀다. 몇 시간만 지난다면 하루를 꽉 채운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 채 빈자리를 채우려니 거짓말을 시도 때도 없이 만들어야 했다. 세성이 해화의 회복실로 찾아왔을 때도 둘러대느라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오면 진짜 죽을 줄 알아, 고낙조.’

밤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했다. 마음처럼 한다면 무흠도 두들겨 패고 싶었으나 위태로운 사이를 더 헤집어서 좋을 건 없었다. 해화는 갈수록 초조해하는 밤이를 우두커니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언니.”

“왜?”

“첫 번째 계획이……, 그거라고 했죠. 제주를 안전지대로 만드는 거.”

“……응. 왜?”

“그 첫 번째 계획, 마무리 짓고 오는 건 아닐까요.”

“뭐? 단 둘이서? 미쳤다고 그러겠어?”

“고낙조라면……, 그럴 수 있어요. 가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곤 하니까.”

해화는 비쩍 마른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밤이는 해화의 말에 이마를 짚었다. 해화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가 죽기 직전의 몸으로 돌아온 게 몇 번이던가. 그만큼 끈질긴 인간인 건 맞았지만 자신에게 어떠한 동의도 없이 사라졌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저 사소하게 섭섭한 마음이었다. 생각해보면 해화와 지운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기에 자신에겐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왜 하필 자신이었을지. 서천을 더 잘 아는 무흠이 아니라, 해화와 지운과 별 다를 바 없는 자신이었는지. 그 점이 섭섭했다. 밤이는 헛웃음을 터뜨리고서 고개를 들었다.

“그래, 그래 놓고 실패 한 번을 안 했어, 걔는.”

“…….”

“죽기살기로 덤벼들어서 그러나? 안 죽을 거라는 생각하고 달려들어서?”

“미련해서 그런 걸지도요.”

“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좀 이상하네.”

“미련할 만큼 착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자신이 다 해결하려고 들고.”

해화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꿈에 갇혔다가 깨어난 이후로 해화는 주변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라거나, 대화할 때 어떤 말투를 쓰는지,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등등……. 눈과 귀가 맑게 트인 기분이었다. 마음은 더없이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 어떤 불순한 찌꺼기도 묻지 않을 만큼 깨끗한 느낌이었다.

그 상태로 보고 느끼는 낙조는 미련했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었고 그래서 희생하는 걸 꺼려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희생하는 것에 대해서 책임감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한 번은 묻고 싶었다. 어떤 걸 꿈꾸기에 네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어졌냐고.

“…….”

한동안 침묵이 계속됐다. 해화는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있는 밤이를 응시하다가 문득 들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낯빛의 세성이 곧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해화에게 물었다.

“장승은 아직도 만나지 못했어?”

“네.”

“어딜 간 건지…….”

“……세성님.”

“왜, 숨기는 게 있냐?”

“아뇨, 방금……. 못 들으셨어요?”

몸을 돌려 세성이 다시 복도로 나가려고 하는 걸 해화가 막았다. 해화의 말에 세성은 미간을 좁히고 문고리를 잡은 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세성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항상 고요한 하늘마루의 복도와 다름없었다. 세성은 해화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세성의 반응을 본 해화는 가만히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박차고 나왔다.

“야, 홍해화!”

이곳의 지리를 잘 몰랐음에도 해화는 미로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지 않고 문지기 앞까지 한 번에 도달했다. 헉헉거리며 뛰어온 해화를 보고 문지기가 문앞을 가로막았다. 해화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이 시간에는 출입이 금지돼 있습니다.”

“열어주게.”

문지기의 말에 세성이 뒤에서 말했다. 문지기는 쉽게 반박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다가 결국 문을 열어주었다. 해화는 문이 열리자마자 위로 뛰어 올라갔다. 세성과 밤이가 그 뒤를 따랐다. 아무리 해화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수풀 밖으로 나가 산 아래로 내려갔을 때, 해화는 걸음을 멈추었다. 겨우 해화를 따라잡은 세성과 밤이가 숨을 거세게 내쉬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 보았다. 번쩍거리며 굴러오는 큰 발광 구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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