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복귀 (1)
남은 두 곳을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서 했던 일들을 각자 역할에 맡게 나누어 정리했고, 실수나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일에 관한 대화만 나눈 것 말고는 아무런 말이 오가지 않았다는 것만 뺀다면 완벽했다.
자신이 먼저 입을 열지 않으면 불편한 기류가 계속 흐를 것만 같았다. 최종 목적지였던 산 아래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무흠이 차를 주차하는 사이, 낙조는 무흠에게 건넬 말을 생각했다.
무흠은 대단한 죄를 지은 것처럼 내내 말이 없었다. 속죄라느니……, 지금까지 자신에게 보여준 모든 모습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 상황을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장난스럽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지도 않게 분위기를 풀 방법이 없을까. 낙조는 멍하니 서서 생각하다가 무흠이 자신을 부르는 것도 몇 번 놓치고 말았다.
“고낙조.”
“아, 어, 네.”
“처음 갔던 산에서 좀 찌그러졌네. 괜찮겠어?”
맨 밑에 있던 도시락이 반쯤 눌려 있었다.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낙조는 괜찮다며 냉큼 자신의 몫을 받아들었다. 무흠의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가만히 무흠의 빈손을 바라보니, 그는 식욕이 없다며 물통을 흔들어댔다.
도시락 안엔 식은 밥과 서천에서 자주 먹던 나물이 들어 있었다. 도시락이 휘면서 같이 휜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먹으면서, 낙조는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 해를 바라보았다.
“장승님.”
“…….”
“그럼 이렇게 계속 아무 말도 안 하고 갈 거예요?”
“…….”
“서천까지 한 시간 반은 걸린다면서요.”
“그래. 생각보다 조금 늦었지. 들어갈 때 무슨 변명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중이다.”
“장승님이 저한테 직접 했던 말 까먹으신 것 같은데.”
“뭘.”
“세성님처럼 보고 들을 수 있다고요, 저.”
낙조의 말에 앞만 바라보고 있던 무흠의 시선이 그제야 돌아왔다. 낙조는 숟가락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말을 내뱉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고……, 장승님이 거짓말하는지 아닌지 다 아니까, 그냥 아무 말이라도 하세요.”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서천에 들어갈 때 할 변명 생각 중이라는 거 거짓말이라는데요.”
“누가.”
“제가 느끼기엔 그렇다고요.”
“능력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약간 실수가 있나 보다.”
무흠은 생각보다 뻔뻔하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그를 달랠까 생각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낙조는 말없이 숟가락만 꽉 쥐고 있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고낙조.”
“예에.”
“……서천에 대해 거의 다 알고 나니 어때.”
“별 생각 없는데요.”
곧장 튀어나온 말을 도로 담을 순 없었다. 사실이었기에 무마하지도 않았다. 낙조의 대답에 무흠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괜히 머쓱해져 숟가락으로 식은 밥을 퍼먹었다. 미미한 단맛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밥알을 씹고 있던 낙조에게, 무흠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참 신기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바뀐 게 하나도 없어.”
“뭐가요.”
“고낙조 니 성격.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물론 바뀌었겠지만……, 무덤덤한 태도는 바뀌질 않는다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나. 다 각자 사연이 있는 거고……, 그렇다고 이해한다는 건 아닌 거 아시죠.”
“안다. 어떻게 이해를 하냐. 아무 죄도 없이 좆같은 일을 겪고 있는데.”
“그리고 그냥……, 평소대로 하세요. 저 장승님, 아니……, 중사님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니까요. 저한텐 다 좋은 말이었어요. 힘도 됐고. 그러니까 굳이 스스로에게만 매몰차게 대하지 마세요.”
어쩌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내뱉게 됐다. 낙조는 숟가락을 든 채 무흠을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무흠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가는 걸 보았다. 사람이 어떤 마음일 때 그런 표정을 짓는지, 낙조는 잘 알고 있다. 못 본 척 넘어가는 게 가장 좋은 반응이고.
무흠은 낙조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곁에 앉아 가만히 기다렸다. 아무 말도 않고, 그 어떤 것도 더 낙조에게 묻지 않았다. 낙조는 찌그러진 도시락 통 뚜껑을 덮었다. 조금 겸연쩍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무흠이 두텁고 축축한 한숨을 내뱉는 게 들렸다. 억지로 참다가 결국 터진 소리 같았다. 낙조는 겸연쩍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중사님 좋은 사람이십니다. 그냥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차로 유유히 홀로 돌아갔다. 땅에 앉은 무흠의 뒷모습을 백미러로 보면서, 낙조는 구겨진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었다.
*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늦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렇게까지 늦을 줄은 몰랐다. 운전대를 쥔 무흠은 침묵할 뿐이었다. 도로에 켜진 불빛이 없으니 믿을 게 상향등밖에 없었다. 첫 번째 계획이 모두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이 땅에서 변종과 마주칠 확률은 제로다.
‘정말 다 죽었을까.’
낙조는 심해처럼 캄캄한 차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모습조차 삼켜져 보이지 않는 밖은 고요했다. 차창을 내려봐도 바람만 들이닥칠 뿐, 그 어디에서도 음습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가는 길에 변종이라도 마주칠까 겁나나?”
“확신하세요? 다 죽었다고.”
“네 계획을 네가 안 믿으면 어쩌자는 거냐.”
앞을 가로막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조심해야 했다. 속력을 좀처럼 높이지 못하고 능선처럼 굽이진 도로를 따라 그저 묵묵하게 달릴 뿐이었다. 낙조는 고개를 돌리고서 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끝나서 이상해요.”
“죽을 뻔 했던 건 잊었나?”
“모르겠어요. 왜 계획대로 되니까 이렇게 불안한지.”
“정확히 어떤 게 불안한데.”
“변종이 있는 세상이 익숙해졌나 봐요.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한 것 같아요.”
“나중에 한 번 더 확인하면 되니까…….”
무흠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젖은 흔적이 있어 괜히 신경이 쓰였다. 낙조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멎은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무흠은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무엇을 발견한 것처럼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낙조는 그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상향등이 밝히고 있는 도로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뭐예요? 무섭게.”
“……아무것도 안 들려?”
“네?”
“아무것도 안 들리냐고.”
“무슨 소리예요, 진짜 무섭게 하지 마요.”
“안 들리면 조용히 하고 지도 봐.”
차가 아주 느린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낙조는 덩달아 숨을 죽인 채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냈다. 라이트를 켠 후 입에 물고 지도를 펴니 무흠이 손가락으로 한 군데를 짚었다. 낙조는 손전등을 손으로 다시 쥐고서 마른침을 삼켰다.
“세 번째 갔던 곳이지. 여기.”
“……네.”
“앞에, 보여?”
낙조는 다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상향등의 불빛에 비치는 건 적막한 도로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선의 끝엔, 뼈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마른 팔다리가 비죽 솟아 있었다.
“……보여요.”
낙조가 대답하자 무흠은 차를 완전히 멈춰 세웠다.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서로 숨을 죽인 채 상향등에 비친 그것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저리 엉킨 팔다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무흠은 핸들을 꽉 쥐고서 입을 열었다.
“산 내려올 때, 저런 게 있었나?”
“저거밖에 안 보여서……, 모르겠어요. 가장 문제 없던 곳이었는데.”
“…….”
긴장감이 고조됐다. 무흠은 아무 말 없이 기어를 바꾸더니 앞으로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놀란 낙조가 서둘러 그의 팔을 붙잡았으나, 악셀을 밟고 있는 그의 발까진 어쩌지 못했다.
“씨발, 저거…….”
“…….”
이윽고 상향등에 ‘그것’의 모습이 드러났다. 정확히는 절반 정도. 무흠은 그것을 보자마자 욕을 읊조렸다. 좁은 도로는 물론이고 메마른 산 귀퉁이까지 차지할 정도로 얽히고설킨 것은 변종과 변이 식물이 하나로 합쳐진 구체였다. 낙조가 거제도에서 보았던 발광 구체와 비슷한 형태였다. 그러나 그 구체에게서는 빛이 나지 않았다. 가시처럼 군데군데 인간의 손팔이 뻗쳐 있을 뿐,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중사님.”
“…….”
“저렇게 생긴 거 본 적 있어요.”
“뭐?”
“거제도에서……, 봤어요. 내가, 중사님한테 처음으로 지옥 얘기 꺼냈던 날 전에. 전날 밤에 봤어요.”
낙조는 구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금방이라도 구체가 몸을 튕겨 차 쪽으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구체의 표면은 전체적으로 굵직한 나무뿌리로 뒤덮여 있었다. 군데군데 튀어나온 팔다리는 앙상했다. 영양분이 모두 빨린 듯 보였다. 그나마 구체를 감싸고 있는 뿌리도 바싹 마른 게 보일 정도였다. 굳은 진흙 같기도 했다.
‘눈 같은 게 있었어.’
낙조는 이전에 보았던 발광 변종의 눈을 찾기 위해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구체에게선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불규칙적으로 인간의 사지가 튀어나온 구체일 뿐이었다.
“안 움직일 거예요.”
“그걸 어떻게 장담해.”
“그땐……, 빛을 냈거든요. 반딧불이처럼.”
“…….”
“눈 같은 것도 있었어요. 그게 깜박거릴 때마다 움직였어요.”
떠올리기 싫은 시간이었으나 생각해내야만 했다. 걱정이 되는 것은, 그때 뿌리를 뽑은 오른팔이 지금은 없다는 점이었다. 능력이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해도 저 안에 묶여 있을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낙조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뭐해.”
“……미쳤다는 소리 들으려고 나가는 거 아니에요. 나도 알아요. 위험한 거. 그래도 나는 죽지는 않잖아요. 중사님은 죽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까 내가 혼자 가는 게 맞아요. 중사님이 생각해도 그렇죠?”
“뭘 그렇게 거창하게 말해. 긴장했어?”
“조금?”
“같이 나가. 뒤에서 엄호할 테니까.”
무흠은 남은 탄환의 개수를 확인하곤 먼저 차에서 내렸다. 상향등이 꺼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낙조는 숨을 길게 내쉬고서 무흠을 따라 내렸다. 구체와 차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상향등에 비춰진 모습이 일부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두려움이 더해졌다. 낙조는 무흠을 앞질러 걸었다. 뒤에서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손전등을 위로 올렸다. 상향등이 차마 비추지 못하는 곳을, 자신의 손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사방이 너무나 고요했기에 침을 삼키는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다. 낙조는 무흠을 한 번 돌아보았다가 주먹을 쥐고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뒤쪽이면……, 앞에 눈이 있나?’
만약 생각대로라면 이 거대한 구체를 빙 둘러 앞쪽을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무흠이 직접 엄호한다고 해도 순간 구체가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별 수 없이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변종과 대치해야 했다.
‘생각을 해, 생각해, 고낙조. 이게 애초에 왜 여기에 있겠어.’
스스로에게 속으로 말을 걸며 낙조는 손전등으로 구체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가까이서 보니 겉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뿌리는 더욱 단단해 보였다. 두꺼운 껍질 같기도 했다. 차마 만지지는 못하고, 낙조는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뿌리의 굵기는 다양했다. 튀어나온 인간의 팔다리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 근처에서 모아 처리했던 변종들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걸 보아선……, 그것들이 한 곳으로 모인 게 확실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려. 변종 소리도, 사람 소리도…….’
가장 두려운 사실이었다. 죽었다면 왜 이 형태를 꾸역꾸역 만들었는지, 죽지 않았다면 어째서 소리나 냄새 하나 흘리지 않는지. 주변에 변종이 있으면 항상 냄새를 먼저 맡았던 낙조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으려 해봐도 풀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구체의 크기는 거제도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컸다. 하긴, 이 근방의 변종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불러 모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와 종종 녹은 얼굴이 시야를 거칠게 할퀴고 지나갔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번져 흘러 나왔다.
“…….”
딱 한 걸음. 그 한 걸음을 뗐을 때였다. 낙조의 머리 위쪽에서 우드득, 하며 나무 한 그루 뽑히는 소리가 울렸다. 낙조는 손전등을 위로 비추지 않았다. 시선도 올리지 않았다.
“중사님! 차!”
뒤를 돌아 무흠에게 외치는 순간, 갈라진 구체의 중앙에서 빛이 번개처럼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