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166화 (166/202)

166화. 그들의 뒷면 (1)

건물 외벽 덕지덕지 진액이 흩뿌려져 흘러내렸다. 끈적거리는 것이 줄지어 아래로 흘러내린 것은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다. 갈라진 바닥 사이사이엔 포자와 진액이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포자 가루가 휩싸여 뒤쪽으로 날아갔다.

낙조는 가만히 사거리의 가운데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까만 점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제외하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가까이 있던 건물 몇 개는 창문이 깨지거나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낙조의 주위를 가득 메운 것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변종의 사체뿐이었다. 낙조는 원래대로 돌아온 두 손을 탈탈 털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떠 있던 햇빛은 구름에 가려졌는지 하늘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니면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거나.

모든 것이 죽은 자리에 가만히 혼자 서 있으려니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수없이 몰아쳤다. 켈리가 걸었던 환각 속에서 본 장면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아는 얼굴들은 아니지만, 이들 또한 각자의 삶이 있던 게 당연하니까.

처음 제주를 안전지대로 만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땅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변종을 가두거나 없애야만 했다. 가두는 것은 한시적이기에 없애는 것이 위험해도 속 편한 일이었다. 자신의 힘도 그렇게 쓰이는 게 맞는 것이리라 믿었다.

막상 스스로 폐허를 만들고 그것과 마주하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세성이 말했던 자신의 역할은 길 잃은 이들을 모두 저승으로 보내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해화가 곁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일일이 뿌리를 뽑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니까. 낙조는 손끝에서 진액이 길게 늘어지는 것을 느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더 이상 썩은 냄새는 풍기지 않았다. 조금 텁텁한 느낌이 가슴을 메우는 게 느껴졌다. 들이마신 숨을 다시 천천히 내쉬고 있자니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노래 끝났다.”

여전히 무심한 말투였다. 무흠은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낙조에게 건네주곤 운전석에 올랐다. 차창을 뒤덮은 진액은 다른 수건으로 닦아 냈다. 낙조는 말없이 무흠이 건네준 수건으로 양손을 느리게 닦고서 차로 돌아왔다. 걸을 때마다 발에 치이는 변종의 잘려나간 사지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럴 수밖에 없었냐고.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었어요.’

낙조는 닿지 않을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조수석에 올랐다. 저녁이 되기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나 허기보단 피곤함이 몰려왔다. 모든 걸 등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무흠은 시동을 걸고서 아무 말도 없이 핸들만 쥐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낙조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으로 왜 출발하지 않냐고 묻는 것이었다. 무흠은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있다가 손을 들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끝까지 재생돼 멈췄던 플레이리스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

And just likte the guy……」

익숙한 멜로디였다. 단순한 이유는 아니었다. 평택 대피소에서 옥정호로 가는 길이었을 거다. 처음 만난 모두가 살아 있었을 때. 세상이 꺼진 와중에도 소소하게 웃고 시답잖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왜 하필 이 노래래요.”

낙조가 물기 머금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흠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기어를 잡고 악셀을 밟을 뿐이었다. 변종의 사체들이 덕지덕지 몰려 있는 터라 자동차는 쉽사리 속도를 내지 못했다. 가끔 바퀴에 살덩어리가 걸려 덜컹거릴 때면 낙조는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참 이상하지? 서천이란 곳을 알고 나니 죽인다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지면서 동시에 괴로울 거다.”

“…….”

“부딪칠 땐 잘 모른다. 그저 문제를 해결하거나 상황을 파헤치는 것에 집중하지. 중요한 건 그 이후다. 막상 이겨 내고 나니 이기기 위해 했던 행동이 과연 옳은 일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

“잘못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얼굴 펴라. 환인의 능력이든 저승사자든 뭐든……, 네가 세운 계획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도 최선의 행동일 수 있는 거지.”

“…….”

“넌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한 거다. 그렇게 생각해라.”

무흠의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낙조는 멍하니 앞을 바라본 채 그저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전에도 이런 얘기 한 적 있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잔소리를 끊을 수 없게 만든다, 넌.”

“……제 탓이에요?”

“한 번 말하면 알아먹어야지 언제까지 내가 다 알려 줘야 해?”

무흠의 목소리가 조금 가벼워졌다. 낙조는 깨물고 있던 손톱을 놓고서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었다. 차는 완전히 변종의 무덤에서 벗어나 평평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장승님.”

“왜.”

“저한테 해 준 말들, 장승님한텐 누가 해 준 거예요?”

“…….”

예기치 않았던 침묵이 돌았다. 그를 놀릴 의도는 전혀 없었다. 일순간 감도는 적막함에 낙조가 고개를 돌렸다. 무흠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고 있었다.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낙조는 굳이 그를 독촉하지 않기로 했다. 낙조마저 말을 거두자, 차 안은 더없이 조용해졌다.

궁금하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무흠은 어렸을 적부터 지금과 같은 성격으로 컸는지, 성장 중에 어떤 어른이 곁에 있었는지……. 무흠이 자신에게 해 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핏 생각하던 것들이었다. 지금의 무흠을 만든 시간은 어땠을까. 낙조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무흠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 좋은 어른.

진짜 어른은 만나기 쉽지 않다. 사람이 각각 지닌 결함은 서로의 눈이나 귀를 거칠 때 걸러지지 않고 찌꺼기처럼 남는다. 그 찌꺼기는 타인이 자신을 인식하는 부분 중 하나가 된다. 평균이란 값을 만드는 게 어려운 ‘성인’의 기준은 훨씬 더 복잡하다.

낙조가 생각하기에 ‘진짜 어른’은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밤이와 무흠 둘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 먼저 길을 밝혀주기도 했다. 자신은 그저 뒤따라가면 되는 날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끌고 와 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은 잊지 않고 있다. 세상이 자신을 미친 듯이 깎더라도 도망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때 묻지 않은 호의는 몇 번의 손을 거쳐도 더러워지지 않는다.

“장승님 혼자 깨달은 거예요?”

한참 달리기만 하다가 낙조가 입을 열었다. 무흠은 차창을 살짝 내리고서 바람을 들이켰다. 낙조가 갑작스러운 질문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항상 낙조의 앞에서 조언 같은 충고를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가 듣기엔 거북할 수도 있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에 짓눌리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차려 쉽게 이겨 내길 바랐다.

“아예 혼자였다면 아무 생각도 안 했을 거다.”

갓길에 차를 멈춰 세우며 무흠이 말했다. 홀로 많이 생각했는지 내뱉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깊었다. 낙조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그가 말을 잇길 기다렸다.

시야를 가득 메운 거리는 쓸쓸해 보였다. 하필 왜 이런 곳에 차를 세웠는지, 낙조는 뜯긴 엄지손톱을 매만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

정신이 맑아지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딜 간다고 했지?’

이제는 익숙한 방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분명 몇 시간 전에 자신을 깨워 무어라 말을 하던 낙조의 얼굴도 흐릿했다. 밤이는 상체를 일으키며 기운 없는 하품을 내질렀다. 잠에서 덜 깨어나 멍한 상태가 계속됐다. 머릿속은 여전히 잘 떠오르지 않는 낙조의 부탁이었다.

‘뭘 해 달라고 했는데…….’

침대 아래로 두 다리를 내리고서 신발을 신고 방을 나갔다. 일단 해화를 살필 생각이었다. 지운은 아직 잠들어 있는지 방문이 닫혀 있었다. 느린 걸음으로 복도를 돌아 해화가 있는 회복실로 들어간 밤이는 이미 깨어 있는 해화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일찍 일어났네.”

“조금만 자고 일어나도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져요.”

“고낙조의 그 회복력……, 그게 너한테도 있는 거 아냐?”

밤이가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아 물었다. 해화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은 채 손을 매만졌다.

“여기서 주는 약이 잘 드는 걸 수도 있구요.”

“그지……, 거의 죽은 것도 살려 내는 곳인데 뭘 못하겠니.”

“…….”

“아, 나 커피 좀 타올게. 너 밥이랑 같이 가져와야겠다.”

밤이는 기지개를 켜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화는 그녀를 딱히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새벽 여섯 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를 들은 지 조금 되었으니 일곱 시쯤 되었을 테다. 식사는 간단했지만 부족하지 않았다. 배부르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양으로 나오는 식사엔 처음 먹어 보는 맛의 나물이 많았다. 간이 세지 않으면서 독특한 향이 올라오는 것들이 많았는데, 향을 조금만 참으면 금세 달달한 맛이 혀 위를 타고 들어왔다.

‘이제 방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은데.’

해화는 창문 하나 나 있지 않은 벽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인기척도 없는 복도와 적막한 방 안은 정말 인형의 집 같았다. 알지 못하는 이가 열고 닫으며 정해진 시간에만 움직일 수 있는 인형이 된 느낌이었다. 가만히 벽을 응시하던 해화는 고개를 돌려 손톱 옆에 거스러미를 바라보았다. 뜯으면 피가 날 걸 알면서도 손이 멋대로 나갔다. 통증은 잠깐뿐이다. 곧 새빨간 피가 피어 올라왔다.

자신의 피에선 그 어떤 향도 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지독한 쇠 냄새.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그 찝찝함이 가득 담긴 냄새. 자신의 피는 그랬다.

‘고낙조는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 거지?’

큰일을 한 번 치르고 나니 드는 의문이 있었다. 거제도에서 보았던 낙조의 모습은 조금씩 몸을 빼앗기던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낙조는 끝끝내 그의 몸을 지켰고,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완전히 속박될 뻔했던 자신을 찾아내고 구한 것도 낙조였다. 해화는 피가 나는 손가락을 들어 입안에 넣었다. 처음엔 아무 맛도 나지 않다가, 점점 끝 맛이 비릿해졌다.

낙조가 자신을 찾아오면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 팔을 떼어 낼 생각으로 갑판 위에서 그 일을 벌인 건지, 아니면 해초의 뿌리를 뽑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몸을 던진 건지. 어느 쪽에 더 가까운 마음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낙조는 참 괴상한 사람이었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예상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저질렀다. 그것을 또 이해하려 하면 다시 이전에 알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앞서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해화는 그게 낙조가 가진 패턴이라는 걸 알아챘다. 극한 두려움에서 일어나는 자기방어다.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음은 강하지만 희생하는 이유를 정확히 찾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누군가의 죽음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게 낙조였다.

‘고낙조는 적어도……, ’척‘은 안 해.’

해화는 더 이상 피가 나지 않는 손가락을 입에서 빼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려고 하지 않지. 사람들이 오해해도 신경 쓰지 않아.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막상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땐 항상 솔직하면서.’

멍한 시선이 발끝을 덮고 있는 이불로 향했다.

‘정말 바보 같아.’

해화의 감상은 언제나 같았다. 곧 밤이가 복도를 걷는 소리가 들렸다. 해화는 휴지로 손가락을 대충 닦고서 열린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밤이가 한 손엔 커피를, 한 손엔 자신의 식판을 들고 나타났다. 잠결은 좀 가셨는지 시선이 아까보다 선명해져 있었다.

“오늘은 국이 나왔어.”

밤이가 커피를 테이블 위에 두고서 식판을 놓을 책상을 꺼냈다. 그녀의 말대로 식판엔 자그마한 국그릇이 놓여 있었다. 균일한 크기로 썰린 무가 동동 떠 있었다. 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해화는 숟가락을 들고 국을 한 모금 떠먹었다. 따뜻하고 밍밍했다. 간이 전혀 된 것 같지 않았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라 내색하지 않고서 식사를 시작했다. 밤이는 곁에 앉아 커피를 조금씩 마셨다. 나물 향과 커피 냄새가 섞여 방을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 듯했다.

“홍지운은 오늘 늦잠인가 보네.”

“그러게요.”

“아. 새벽에 고낙조가 찾아왔는데.”

“……?”

“어딜 간다면서……, 나한테 뭘 부탁했거든? 근데 그게 기억이 안 나.”

“어딜 가요?”

“몰라. 완전 새벽에 사람 깨워서 엄청 빨리 말했거든. 근데 상황이랑 문맥을 살펴보면, 모두가 잠든 새벽에 나간다는 거는 몰래 나갔다는 거고, 여기에 남은 사람인 나한테 부탁을 했다면……, 자기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 얘기하라는 거 아냐? 비슷한 맥락으로 대충 둘러대라는 말이겠지.”

“…….”

낙조는 항상 바빴다. 가만히 지켜보면 혼자서도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경직된 사람처럼 보였으나 작은 것이라도 찾아내 갖고 돌아왔다.

“근데, 계속 생각해 보니까 혼자 간 게 아니야.”

“…….”

“그 군인이랑 같이 간 것 같아.”

“중사님이요?”

“엉.”

“언니, 뭐……, 짚이는 거 없어요?”

“음……, 있긴 한데, 너 왜 그렇게 애틋한 눈으로 날 봐? 징그럽다. 밥이나 먹어.”

“언니.”

“다 먹고 얘기하자. 홍지운도 안 일어났잖아.”

밤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방을 한 바퀴 돌았다. 커피를 조금씩 마시면서, 그녀는 해화에게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자신이 몸을 빼앗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해화는 조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이불을 꽉 쥐었다. 식욕은 가신 지 오래였다. 그저 지운이 빨리 자신을 찾아 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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