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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165화 (165/202)

165화. 피리 부는 사나이

두 번째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산 하나 오르내렸다고 피곤이 몰려왔다. 낙조가 창문에 머리를 기대자, 무흠이 곧장 입을 열었다.

“다음엔 니가 운전해.”

“진짜 쪼잔하게 계속 이럴 거예요?”

“당연하다는 듯이 나한테 운전 맡기는 너 자신이나 돌아봤으면 좋겠다.”

무흠은 지도를 힐끔힐끔 들여다보며 차를 천천히 끌었다. 낙조는 작은 차 내부에서 기지개를 겨우 하고서 하품을 내질렀다.

필멸수는 생각보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효과가 빠르게 보일지도 몰랐고. 필멸수가 뒤덮은 땅은 당분간 폐허와 다름없을 것이다. 어느 판타지 영화에 나왔던 장면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장면이었다. 미지의 존재는 블랙홀 같은 입으로 단숨에 영혼을 빨아먹었다. 뿌리가 말라 죽은 과정은 마치 그것과 비슷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일었다.

“어.”

잠에서 깨기 위해 창문을 조금 내린 낙조가 밖에서 쏟아지는 바람을 맞다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장승님.”

“왜 또.”

“냄새나요.”

“아까 묻은 진액 안 닦았냐.”

“아니 그거 말고요. 변종 냄새.”

진지하게 표정을 굳히고 대답하자, 무흠이 고개를 돌려 낙조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차 속력을 서서히 줄이며 물었다.

“가까워?”

“아뇨. 조금 더 가야 할 것 같아요.”

“오케이.”

다시 악셀을 밟기 시작한 무흠은 한 손으론 핸들을 쥐고, 다른 손으로 뒷좌석을 뒤적거렸다. 가방에 넣어 둔 권총을 꺼낸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낙조는 자신의 맨손을 매만지며 냄새가 어디서부터 흘러들어오는 건지 알기 위해 창문을 조금 더 내렸다.

“이쯤부턴 변종이 있다는 거지.”

“서천 근처엔 계속 없던 거 보니까, 딱히 단체로 이동한 것 같진 않네요.”

“겨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냐 넌?”

“갑자기 웬 질문.”

“물어보잖아.”

“저 좀 귀찮게 하지 마세요.”

“이 새끼가.”

무흠이 총을 든 손을 들어 개머리판으로 낙조의 머리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아. 진짜. 나이 많으면 다예요?”

“철이나 들고 말해라.”

“사실 장승님 진짜 유치한 거 알죠. 쪼잔하고 쩨쩨하고 유치하기까지 해.”

다시 무흠이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낙조는 몸을 흠칫거리며 창문에 달라붙은 채 무흠을 노려보았다. 여전히 무표정으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그의 옆모습이 너무나 얄미웠다.

“조잘조잘 그만 떠들고 다시 냄새 맡아 봐.”

“…….”

“사춘기가 이제 왔냐?”

“알았다고요.”

열 살 넘게 차이가 나는 나이가 아닌데도 이런 무흠의 모습 앞에선 꼭 주눅이 들었다. 낙조는 창문을 괜히 쾅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서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코끝으로 전해져 오는 냄새는 확실히 한층 진해져 있었다. 얼추 방향을 알아야 했다. 도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낙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범한 시내 거리였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얼어붙은 거리는 황량했다. 딱히 시야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건물 안에 있나?’

문득 스치는 생각에 낙조가 고개를 빼고서 무흠에게 말했다.

“악취 진짜 심한데 안 보여요. 어디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진액 냄새야?”

“음, 네. 그냥 변종한테서 나는 냄새예요. 기분 나쁠 정도로 썩은 냄새.”

무흠은 길가에 천천히 차를 멈춰 세웠다. 혹시 몰라 짐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서천에서 만든 수면침을 장전한 무흠도 거리를 둘러보았다. 낙조는 텅 빈 건물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뭔가 생각난 얼굴로 무흠에게 돌아왔다.

“조금 위험한 방법이긴 한데 생각나는 게 있어요.”

“니가 언제 한 번 안전한 짓을 한 적이 있었냐.”

“장승님 오늘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

“너 하는 말에 다 시비 걸고 싶으니까.”

“……진짜 그러다 지옥 가요.”

“가지 뭐.”

‘알고 보니 스파이 아니야?’

합리적인 의심이 대화 끝에 머물렀다. 낙조는 잠시 침묵하다가 목소리를 잔뜩 죽이고서 말을 이었다.

“저번에 삼승님 앞에서 했던 짓 있잖아요.”

“…….”

“얼마나 많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게 제일 빨라요.”

미미하게 무흠의 표정이 구겨지는 걸 보면서도 낙조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차를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차에 탄 상태로 내가 냄새를 뿌리는 거예요. 그럼 조금씩 몰려들겠죠. 물론 차를 천천히 끌어야 해요 처음엔. 어느 정도 상대할 만큼 몰렸다 싶었을 때 제가 처리하는 거고.”

“그러니까……, 운전이나 열심히 하라는 말이네 나는.”

“네.”

“하……, 너 따까리 필요해서 나 찾은 거지.”

“네……니오.”

낙조는 아무렇지 않은 척 볼을 긁으며 쓴소리를 듣기 전 먼저 차에 올랐다. 백미러로 차에 기대어 있는 무흠이 보였다. 그는 머리카락을 대충 털더니 금세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낙조는 창문을 완전히 열고서 오른팔을 밖으로 뻗었다. 무흠은 시동을 걸고서 자신의 창문도 내렸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악셀을 지그시 밟았다. 차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꽉 쥐고 있던 오른손에서 서서히 힘을 풀어냈다.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것을 어쩔 수 없이 보내 준다는 기분으로,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향을 손끝으로 날려 보낸다. 시간이 지나면서 향은 더욱 짙어지는 건지, 이전에 맡았을 때보다 더 달큰한 향이 몸에서 피어올랐다. 냄새가 눈으로 보인다면 이 냄새는 무슨 색일까. 어쩐지 눈에 보이지 않는 가루를 뿌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이 짙어진 만큼 돌아오는 반응 속도도 빨랐다. 두 블록을 건너기도 전에 차를 주차했던 건물에서 변종 몇 마리가 기어 나왔다. 백미러로 움직임을 확인한 낙조는 오히려 느긋하게 팔에 머리를 기댔다. 백미러를 주시한 채 가만히 있었다. 향을 따라 진액을 질질 흘리며 다가오는 변종의 모습을 보아도 이제 두렵지 않았다.

「In the middle of the night……I go walking in my sleep……」

난데없이 흥겨운 박자와 함께 익숙한 멜로디가 차에서 흘러나왔다. 낙조가 고개를 돌리자, 무흠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핸들을 쥔 채 고개만 까딱이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계속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시선을 견디다 못한 무흠이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봐. 운전하는 사람 맘 아닌가?”

“지금 드라이브하는 거예요?”

“운전만 잘하라며. 난 운전할 때 노래가 필요해.”

‘존나 내로남불…….’

「And even though I know the river is wide

I walk down every evening

and I stand on the shore……」

매혹적인 후렴구에 들어왔다. 낙조는 백미러로 눈을 다시 돌렸다. 차를 향해 달려오는 변종의 수는 그새 꽤 늘어 있었다.

“속도 좀 올려도 되겠어요.”

무흠은 말없이 악셀을 밟아 눌렀다. 차가 빨리 앞으로 나아가면서, 앞서 퍼진 향에 깨어난 변종들이 길가로 나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흠은 노래에 취해 고개를 까딱이고만 있었다. 낙조는 들으라는 듯 크게 한숨을 쉬고서 조금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사거리예요?”

“아마.”

“저기서 세워 주세요.”

“콜비 만오천 원.”

“에이, 퉤.”

“퉤?”

“스톱, 스톱!”

침을 뱉는 듯한 소리를 내니 곧장 반응이 돌아왔다. 낙조는 그가 눈을 부라리기 전에 적당한 곳에서 소리쳤다. 무흠은 일부러 브레이크를 세게 밟고서 총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장승님 꼭 지옥 가세요.”

“고맙다.”

정다운 대화를 나누며 낙조는 본네트를 밟고 위로 뛰어 올라갔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변종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대부분이 진액으로 가득 차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모습이었으나 몇몇은 과각화된 피부에 잘 걷지도 못했다. 포자를 흩날리며 기어 오는 녀석도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가오는 속도가 굉장히 느려졌다는 점이었다. 겨울의 정점을 맞아 봄을 기다려야 하는 녀석들은 힘을 쓰기보다 봄까지 버틸 수 있는 영양분을 원할 게 빤했다. 낙조가 흘리는 향에 거부하지 못하고 끌려오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어기적거리며 다가오는 놈들을 보면서, 낙조는 천천히 양손을 허공에 떠올렸다. 손끝에서 스멀스멀 뻗어 나오는 나뭇가지와 가시가 한층 더 두꺼워진 모습으로 거미의 다리처럼 낙조의 주위를 둘러쌌다.

“저기 옥상에 있을 테니까 쫄지 말고.”

“노래 끝나기 전까지 오세요.”

무흠은 손을 휘적거리며 맞은편 3층 건물로 들어갔다. 곧이어 총소리가 연달아 들리는 걸 보니, 내려오는 녀석들과 마주친 모양이었다. 낙조는 시선을 떼고 힘을 천천히 모으기 시작했다. 잠깐 훑기만 해도 삼승의 앞에서 모았던 수보다 배는 많았다. 짙어진 향이 어디까지 퍼진 건지, 변종을 긁어모은 듯 다가오는 까만 머리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한 번에 끝낸다고 생각해.’

낙조는 스스로에게 지시하듯 생각하면서 천천히 손을 오므렸다. 가시 돋친 나뭇가지가 함께 공을 굴리듯 안쪽으로 말렸다. 왼손은 쥐는 것마다 굳어 버리게 할 수 있고, 오른손은 독이 발린 가시로 한 번에 다수를 공격하는 데에 유리하다.

‘이 자리를 유지해야 해.’

변종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를 고수해야 했다. 낙조는 조금씩 밀려오는 긴장을 모르는 척 뒤에 두고서 천천히 어깨를 폈다.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차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더욱 경쾌해질수록 낙조의 머릿속도 빠르게 흘러갔다. 이윽고 중반 부분의 간주가 끝나자마자 낙조는 왼손을 활짝 펴고서 가장 가까이 다가온 녀석들을 손바닥에 쓸어 담듯이 움켰다. 두꺼워진 나뭇가지 마디마디에 걸린 놈들은 갈퀴에 얽히자마자 꼼짝도 못하고 돌처럼 굳었다. 마치 깨지지 않는 돌덩이를 쥔 것처럼 왼손이 묵직해졌다. 낙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대로 왼손을 안으로 말아 쥐었다. 빈틈없이 손바닥 안을 가득 채운 변종의 마릿수는 못 해도 서른 마리는 돼 보였다. 서른 마리의 무게는……, 한 마리의 무게를 평균적으로 70kg로 계산한다면, 2톤을 넘었다.

“장승님!”

“…….”

“건물 약간 흠집 내도 괜찮죠?!”

옥상에서 저격수처럼 고개만 내밀고 있는 무흠에게 외쳐 물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잘 보이진 않아도 그가 있는 힘껏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낙조는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변종들을 짊어진 왼손 주먹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낙조의 향기에 몰려드는 놈들을 향해 내리쳤다.

쾅!

자동차가 살짝 들썩일 정도로 큰 진동이 퍼졌다.

‘힘 조절 실패다.’

낙조는 대기권을 뚫고 떨어지는 낙석과도 같은 힘에 짓눌러 터진 변종의 흔적을 보면서 생각했다. 굳이 오른손은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싶었다.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 금이 간 아스팔트 사이로, 뭉개진 변종의 진액이 질질 흘러 들어갔다. 낙조는 볼링 볼을 굴리듯 가볍게 왼손을 긁어 올렸다. 까가가각- 살짝 도로에 긁히긴 했으나 단숨에 몇십이 깔리고 뭉개지거나 주먹에 맞고 날아갔다. 낙조는 오른손에서 힘을 빼 원래의 형태로 돌린 뒤 차에서 뛰어 내렸다. 진액과 포자로 뒤덮인 거리를 걸어오는 마지막 무리가 시야에 잡혔다.

낙조는 막연히 생각했다. 아마, 이번엔 확실히 스트라이크를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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