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환생 (1)
부모님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죽음의 전시 현장이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는 말로는 ‘어린 애가 혼자서’였지만, 낙조의 귀에 가장 안일하게 들린 말은 ‘맘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였다.
그 어떤 것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보리가 곁에 있을 땐 외로움이 조금 덜했으나 그마저도 끊긴 후엔 시도 때도 없이, 습관적으로, 몸에 상처를 냈다. 흉터가 남지 않을 정도로 살을 긁는 건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다. 딱지가 져 떨어질 때가 되면 억지로 딱지를 떼어 냈다. 덜 여문 살이 빨갛게 올라온 걸 보면서, 얼얼함이 몸에 퍼지는 게 느껴지면 꽉 막힌 속을 조금이라도 풀어낼 수 있었다.
애써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을 자신에게 주는 건 낙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변사체로 발견되어 동네의 흉흉한 소문으로도 떠돌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낙조를 꾸역꾸역 살게 했다. 자신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알아 약속한 것처럼 모여드는 길고양이 가족을 보는 게 낙조의 유일한 낙이었다. 집에 들이진 못했다. 아이들의 평생을 지켜 줄 순 없을 것 같았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죽는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 죽인다고 복수가 끝나는 게 아니다. 남겨지는 생명이 분명히 존재하게 되고 나의 죽음을 관람하는 관객은 소문으로도 꾸준히 늘 것이다.
수호가 무흠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도 지운은 꾸준히 호흡하고 있었다. 많은 피를 쏟은 건 아니었으나 낙조의 손바닥은 검붉은 피에 가득 물들었다. 무흠이 지운을 안고서 급히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어떤 정신으로 무흠을 쫓아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지운이 안정제를 맞고 깊게 잠든 후였다. 여전히 겁에 질린 수호에게도 소량의 진정제를 놓아 준 서천 사람은 무흠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서 옆방의 문을 열고 나갔다.
“작은 흉터 하나 생길 정도란다.”
무흠이 낙조의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낙조는 붕대가 감긴 지운의 손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편의점에서 잡히는 대로 사와 어설프게 붙였던 데일밴드가 기억났다. 쓰레기통에 처박는 수 개의 데일밴드 뭉치에선 지독한 냄새가 났다. 피 냄새를 맡으면 다시 기분이 최악으로 떨어졌다.
지운의 피 냄새도 그랬었나. 낙조는 손바닥 위에 그대로 굳은 핏자국을 보고 코끝에 가져다 댔다.
“손 좀 닦아, 그리고.”
무흠이 곧장 낙조를 타박했다. 낙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굳은 피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방안을 가득 채운 이름 모를 풀 향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보다 못한 무흠이 낙조의 팔을 잡아끌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쏴아. 세면대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피가 고인 낙조의 손을 세면대 안으로 집어넣자, 낙조의 고개가 무흠에게로 돌아왔다.
“흉터가 생기면 잊지를 못해요.”
“뭐?”
“흉터가 아무리 작아도, 볼 때마다 기억난다고요. 그럼 도돌이표예요.”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데.”
“…….”
“다른 사람한테서 네 과거 끄집어내는 버릇 좀 고쳐. 아무리 불쌍해도 남이라는 걸 생각하라고.”
“그럼 죽게 놔둬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니가 할 수 없는 일을 못 했다고……, 하, 자책하는 짓 좀 그만둬. 질리지도 않냐.”
무흠은 버럭 성을 냈다가 한숨을 쉬며 고쳐 말했다. 낙조는 몇 번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서 굳은 지운의 피를 씻겨내기 시작했다. 손톱으로 핏자국을 긁고 그 덩어리들이 천천히 물줄기에 휩싸여 내려가는 것을 지켜봤다. 무흠은 가만히 낙조를 지켜보다 방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쩐지 무흠에게선 혼만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그리 궁금해하지 않았다. 굳이 낙조도 그에게 지난 삶이 어땠는지 얘기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낀 적이 없었다. 사실 무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낙조에게 몇 번이고 말했다. 고통을 함부로 견디려고 하지 마라, 죽음을 우습게 여기지 마라, 자책하지 마라……. 언젠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에게서 들었던 말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무흠이 한 말은 오랫동안 낙조의 곁에 남아 있었다.
손을 거의 씻어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무흠은 지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운을 사이에 두고 낙조는 무흠의 반대편에 섰다. 아무 말 없던 무흠이 입을 떼어 냈다.
“방에 가서 자.”
“…….”
“오늘은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가서 자라고.”
“장승님이 왜요.”
“싸운 정이라도 들었나 보지. 빨리 가.”
툭툭 내뱉는 말이 전처럼 밉지 않았다. 여전히 낙조가 아닌 지운을 내려다보면서, 무흠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낙조는 ‘아니에요’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뱉으려다 꾹 참았다. 지운의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무흠 같은 단단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지운이 온몸을 던지듯 매달려도 함께 무너지지 않는다. 엉망진창으로 조합된 자신 같은 사람이 아니라…….
“감사합니다.”
“…….”
한 번이라도 무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낙조는 허리를 가볍게 숙여 인사하며 생각했다. 순수한 마음에서 흘러나온 생각이었다. 곧장 방으로 돌아가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눈을 감으니 시간이 참 느리게 흘렀다.
캄캄한 어둠을 다시 마주하고서야 그 사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
“청주와 나눈 연락은 어떻게 됐니. 생각보다 조용한 것 같던데.”
말끔해진 손으로 삼승이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자리에 앉았다. 세성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 채 입을 열었다.
“기유현이란 자가 서연우와 접촉했다는 건 알고 계셨죠.”
“그건 들었지.”
“오늘 서연우와 함께 장승이 청주에서 탈출했던 날……, 쓰러진 채 발견된 여자를 찾아갔다네요.”
“쓰러진 여자?”
“네. 정보실에서 발견됐던 여자고, 머리를 다쳤다고 보고서에 쓰여 있었습니다. 이름은 성라미……, 신원은 다 가짜예요. 악어와 새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조금 뒤쪽, 장승이 탈출한 다음 날에 온 거예요.”
세성이 옆자리에 놓아두었던 파일을 삼승에게 건넸다. 종이로 출력해 모아 둔 청주 질병관리청 보고서였다. 삼승은 ‘악어와 새’라는 단어에 살짝 표정을 찡그렸다가 세성이 말한 날짜를 찾아 종이를 넘겼다.
삭.
찰나의 순간에 종이가 삼승의 깨끗했던 검지의 마디를 스치고 지나갔다. 소리는 내지 않았으나 살갗을 베는 고통에 삼승이 멈칫거렸다. 세성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삼승의 피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스치듯 삼승과 시선이 마주치는 듯했다. 삼승이 자켓 안쪽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에 둘렀다. 꽤 깊게 베였는지 남색 손수건이 점점 탁하게 물들어 갔다. 삼승은 살피고 있던 페이지에 피가 조금 떨어진 것을 보고서 손수건 끝자락으로 찍어 닦았다.
“기유현이 녹음 파일을 하나 보냈습니다, 삼승님. 성라미라는 여자와 대화한 내용인데……, 이 부분은 직접 들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세성은 끝까지 삼승의 피를 보지 못한 척하며 정중하게 휴대폰 크기의 기계를 하나 꺼냈다. 출시된 지 거의 20년 정도는 되어 보이는 MP3였다. 전원을 켜고 숫자로만 표기된 파일 목록에서 가장 마지막 녹음 파일을 선택하자, 곧 작은 녹색 액정이 재생 화면으로 바뀌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죽어요?」
「네? 뭐라고요, 성라미 씨?」
「그 사람은 죽을 수가 없는데…….」
꾹. 세성이 가운데 버튼을 눌렀다. 녹음 파일이 잠시 멈췄다. 세성은 그제야 삼승을 바라보았다. 삼승 또한 세성의 시선을 편히 받아들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화를 시작했다.
“청주에선 귀도가 켈리를 죽인 후 시체를 갖고 달아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CCTV 안에 찍힌 켈리의 모습은 시체와 다름없었다고요.”
“……시체처럼 보였던 거지, 확인된 바는 없는 거고.”
“네.”
“이번엔 끝까지 듣지.”
세성은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다시 버튼을 눌렀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여자의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삼승은 액정에 두고 있던 시선을 자신이 쥐고 있는 보고서로 옮겼다. ―전화기로 머리를 공격당한 흔적이 현장에서 발견됐습니다.― 삼승의 시야에 그 문장이 잡혔다.
「죽을 수가 없다뇨?」
「…….」
「성라미 씨, 대답을 해 주세요.」
「죽지 않는다구요, 웬만해선. 원래도 그렇지만 켈리, 그분은……, 이미 많은 곳에 자신의 몸을 퍼뜨려 놨어요. 그 모든 게 한 번에 죽지 않는 이상 죽지 않아요. 땅 전체와 그 생명들이 그분과 연결돼 있으니까.」
삼승의 시선이 점점 굳어졌다. 항상 모든 것을 부드럽게 바라보던 눈동자 또한 차갑게 식었다. 삼승은 손수건으로 감은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다음 문장을 읽었다. ―꽤 많은 양의 피를 흘렸으나 수혈 없이 스스로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수혈. 삼승이 멀리하기엔 어려운 단어였다.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삼승의 입이 승리의 미소를 그으며 살짝 올라갔다.
“세성, 잠깐.”
딸깍. 삼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성이 버튼을 눌렀다. 삼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보고서를 천천히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보고서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지?”
“지류 보고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하늘마루에서 직접 관리하는 보고서는……, 삼승님과 저를 제외하면 두 명밖에 없죠? 아시지 않습니까. 꽃감관과 꽃성인이요.”
“그럼 둘 중 하나구나.”
“……보고서가 바뀌었군요.”
가만히 삼승의 눈빛을 지켜보고 있던 세성이 묵직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삼승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세성은 물끄러미 일시정지된 액정을 내려다보다가 MP3를 챙겼다. 한 번도 종이로 출력한 보고서를 빼놓지 않고 읽은 삼승이다. 게다가 지금까진 낙조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삼승이 지류 보고서는 매번 읽지 않아도 된다 했으니 자신이 놓친 부분이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무흠이 탈출한 날은 서천꽃밫에게도 꽤 중요한 날이었던지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세성은 삼승이 보고 있던 페이지를 들어 확인했다. 오늘 보고서를 들고 삼승의 방에 오기까지 한 번도 펼친 적이 없었기에 처음 본 문장이 고스란히 보였다.
“……바뀌었다는 말로는 둘 중 한 명이 애초에 정보를 다르게 써서 보냈다는 거고, 다른 하나가 이후에 알아채서 다시 옳게 바꿨다고 볼 수 있지만……. 허, 삼승님, 지금까지 알리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두 명 모두 서천을 이미 등졌던 모양이에요. 맞네요. 후에 바꾼 이는 정말 켈리가 청주에서 죽은 것을 확신하고서 급히 마음을 돌린 것뿐이에요. 하하, 요놈 봐라? 머리를 쓰다가 말았네.”
세성이 천천히 말을 잇다가 헛웃음을 쳤다. 그 웃음마저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세성은 무언가를 보는 듯 유심히 허공을 응시했다. 삼승이 곁에서 묵묵하게 세성의 눈동자 속 초점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세성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보고서를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릴 뿐이었다. 삼승은 세성을 몇 번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결국 손을 뻗어 세성의 팔을 쥐자마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감히 내 눈을 속여!”
삼승의 방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그녀 앞에서 한 번도 목청을 높인 적 없었던 세성이었기에 삼승도 놀라 손을 거두었다. 잠시 눈동자가 뒤로 넘어가 흰 자만 보인 세성이 곧 고개를 까딱거렸다. 잠에서 깨어나듯 헉,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도 내뱉었다.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한 세성을 삼승이 서둘러 다시 붙잡았다. 그제야 제 눈으로 돌아온 세성이 삼승을 응시했다.
“삼승님……, 제가 속았어요.”
“세성, 이제라도 알았으니 괜찮다. 괜찮아.”
점차 울먹거리며 몸을 떠는 세성을, 삼승이 부드럽게 안아주며 토닥였다. 그러나 삼승의 시선도 조금씩 묽어지기 시작했다. 세성의 눈을 속일 만큼 강한 힘을 지닌 자가 있었던가. 진실과 거짓마저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정말 인간이 가진 순수한 힘이란 말인가. 그런 악한 감정이 켈리에게만 주어진 걸까.
똑똑, 쾅, 쾅! 쾅!
무너지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였다. 삼승의 방을 둘러싼 복도 끝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가 삼승의 방까지 흘러 들어왔다.
“삼승님, 삼승님! 귀도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