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146화 (146/202)

146화. 젖은 불씨

연우는 조금 긴장한 기색을 하고서 문 앞에 섰다. 곧 함께 온 유현이 대신 문을 노크한 후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자 문을 열었다. 안엔 텅 빈 눈을 한 라미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

연우와 눈이 마주친 라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연우는 라미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서야 그녀가 기억났다. 백무흠의 첫 번째 공개 훈련이 실패로 돌아가고, 소장에게 불려갔을 때 자신을 부축해 주었던 비서. 그 얼굴이 당신이었구나. 연우는 잠시 복도와 방 사이에 서서 라미와 시선을 주고받다가 천천히 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미리 준비해 둔 의자에 앉자, 유현이 녹음기를 켜고서 연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성라미 씨, 일단 만난다고 해 줘서 고마워요.”

연우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라미의 겉모습은 거의 오랫동안 방치된 사람 같았다. 씻겨 주려는 사람에게도 불같이 화를 내며 공격하는 탓에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지낸다고는 들었으나 눈으로 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자해라도 한 건지 손목과 손등에 손톱자국이 가득했다. 여전히 머리엔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 그것도 손대지 못하게 했는지 많이 더러워져 있었다.

“그래도 좀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힘을 내야죠.”

연우가 유현의 무릎을 두 번 두드렸다.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준비해 두었던 간단한 식사를 들고 다시 들어왔다. 라미는 유현의 움직임에는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오직 연우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멍하니 눈만 깜박일 뿐이었다.

“물이라도 마실까요?”

“…….”

“이러다가 쓰러져요. 안 그래도 많이 먹어야 하는데.”

“그 여자……, 어떻게 됐어요?”

라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리저리 갈라지고 찢어진 목소리였다. 너무 메말라서 물 한 방울도 스며들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연우는 손에 힘을 빼고서 입을 다물었다. 분명히 켈리에 대해 묻는 것이다. 무흠이 탈출했던 날, 라미는 정보실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엔 이미 출혈이 꽤 진행된 상태라 그녀가 살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라미의 몸에선 피가 빠르게 재생산됐고, 수혈하지 않았음에도 곧 피가 멎어 살 수 있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의료진들이 라미의 피를 몇 번이고 검사해봤으나 그 어떤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의식을 차린 후에도 채혈해 보려 했지만 라미의 거센 반항으로 손조차 대지 못했다고 했다.

연우는 짧은 새 지나갔던 켈리와의 대화를 줄줄이 떠올렸다. 정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라미에게 물었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그녀가 왜 그곳에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연우가 라미를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수호가 남긴 정보실에서 발견된 여자의 신원은 조작된 정보였음이 추후에 밝혀졌으나 켈리 밑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게 함께 알려져 쉽게 내쫓진 못했다.

피가 빠르게 재생산되었다……. 연우는 그 기록을 기억해냈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변화였다. 낙조의 프로필을 자세히 들여다본 자라면 눈치챘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자가면역. 라미의 피 검사 결과로만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추측도 섞여 있었다. 정보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전화기. 음푹 파인 옆머리. 발견 당시 바닥에 묻은 핏자국은 말라 있었다고 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과다출혈로 죽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낙조와 비슷할 정도로 회복 능력이 좋아야 가능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켈리가 남긴 백신 제조법과 샘플에서 발견된 세포의 패턴은 라미의 적혈구의 움직임과 비슷했다.

연우는 고개를 살짝 비틀어 라미를 응시했다.

“켈리와 같이 있을 때, 주사 같은 걸 맞은 적 있죠?”

“…….”

“그리고 당신이 가장 먼저 성공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곳에 그녀가 당신을 보낸 거죠.”

“…….”

“우리가 지금 그 약을 만들고 있어요. 켈리가 제게 권한을 넘겼죠. 켈리는……, 아마, 죽은 걸로 보여요. 현장이 워낙 처참했어서 말씀은 드리지 않겠지만……, CCTV로 확인했을 때 켈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그 사람이 어떻게 죽어요?”

“네? 뭐라고요, 성라미 씨?”

“그 사람은 죽을 수가 없는데…….”

라미가 헛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연우는 눈을 갸름하게 뜨며 라미를 유심히 웅시했다. 라미는 연우에게서 서서히 시선을 떼고서 허공을 바라보며 다시 웃었다.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는 곁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유현의 몸에도 소름이 바짝 돋게 만들었다.

“죽을 수가 없다뇨?”

“…….”

“성라미 씨, 대답을 해 주세요.”

“죽지 않는다구요, 웬만해선. 원래도 그렇지만 켈리, 그분은……, 이미 많은 곳에 자신의 몸을 퍼뜨려 놨어요. 그 모든 게 한 번에 죽지 않는 이상 죽지 않아요. 땅 전체와 그 생명들이 그분과 연결돼 있으니까.”

라미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천천히, 그리고 아주 또박또박 대답했다. 듣기만 했을 땐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유현에겐 사형선고와 같았다. 몸이 곧장 라미에게로 튀어나갈 뻔한 것을 겨우 참은 유현은 주먹을 꽉 쥔 채 조용히 이를 갈았다. 연우는 녹음기가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손을 뻗어 라미의 깡마른 손등을 덮었다.

“성라미 씨, 제가 켈리에게서 전해 받은 일이 있어요. 아마 성라미 씨도 그 일 때문에 이곳에 오신 것 같은데……, 성라미 씨 말대로 켈리가 살아 있다면 이대로 건강을 망쳐선 안 되죠. 끝까지 해봐야 해요. 그러면 성라미 씨가 원하던 결과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켈리는 당연히 당신에게 고마워하겠죠.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사실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거겠지.’

연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라미의 손을 꽉 쥐었다. 라미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곤 살포시 웃으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분이 저를 도와주신 걸 아직도 잊지 못해요. 감기약 하나를 못 사서 죽어가던 저를 살려 주신 분이에요. 이곳엔 제 편이 아예 없는 줄 알았어요…….”

“이해해요. 기다리고 있었죠?”

“그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렇게 당하고만 계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을 분명히 나한테 보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미는 처음으로 눈을 반짝이면서 연우의 손을 붙잡았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사람의 힘치곤 악력이 상당했다. 연우는 저절로 표정이 찌푸려질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 냈다. 반대쪽 손으로 라미의 손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밀어내면서 연우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가 바로 달려온 거예요. 더 기다리시게 할 수 없어서.”

사람의 간사함은 욕망의 크기와 비례한다. 연우에겐 특히나 몇 배로 작용했다. 연우는 라미를 실컷 비웃어 주고 싶은 걸 계속해서 참아 내야 했다. 켈리를 정말 신과 비슷한 존재로 여기고 받아들이며 떠받드는 모습이 우스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허술하게 당한 사람에게 정말로 계획이 있었을까. 연우는 라미가 중얼거린 말을 곱씹으면서 라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땅에 뿌려져 있다는 켈리의 몸이 무슨 상황인지부터 알아내야겠네.’

‘그럼 생각보다 일이 커지고……, 빌려야 할 손도 많아지는데.’

연우의 시선이 조용히 움직였다. 곁에 있던 유현에게로. 연우의 시선을 느낀 유현이 눈동자만 굴려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는 미소를 조금 더 크게 보이며 소리 없이 유현에게 뻐끔댔다.

“앞으로 바빠지겠어요.”

유현은 웃지 못하고 고개를 어설프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꼬치에 꿰인 형편없는 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자, 성라미 씨. 그럼 식사할까요? 제가 다 드실 때까지 옆에 있을게요.”

연우는 옆에 놓아둔 식판을 침대 위로 올리며 라미에게 말했다. 라미는 작게 흐느끼면서 식판을 받아들었다. 곧 유현이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노을이 아름답게 녹아가고 있었다.

*

모두 수고했다며, 아침까지 푹 쉬라는 세성의 말을 듣고 방으로 돌아온 지 한 시간째. 거의 하루를 자지 못해 피곤할 법도 한데 잠은 오지 않았다. 산 밑에서 들었던 세성의 말이 스스로 반복되어 머릿속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았다. 낙조는 침대에서 몸을 몇 번이고 뒤척이다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하…….”

세성의 말을 근거로 한다면, 해화와 자신은 그럼 애초부터 서천 안에서의 역할을 할 사람들로 지정돼 있었던 걸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자신을 어떻게 알고서? 아니, 그럼 애당초 이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지만 그동안 보였던 세성과 무흠의 말, 태도로 보아선 전혀 알지 못했던 걸로 보였다. 켈리의 도주는 알아챘으나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금기시하는 외부 발설이 켈리에 의해 완전히 드러났는데도 실험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때까지 왜 그녀를 가만히 놓아두었는가.

‘아, 이 질문…….’

낙조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문득 겹치는 데자뷰에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거제도에서 수호와 대화를 나눌 때, 그가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이었다. 왜 서연우를 진작 죽이지 않았느냐. 자신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땐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같았고, 힘이 있다고 해서 바로 죽일 만큼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삼승이란 자도 비슷한 생각이었나? 아냐, 삼승은 서천을 이끄는 사람이잖아.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면 안 되는 위치 아닌가.’

혼자 아무리 생각해 봤자 답은 스스로 굴러떨어지지 않았다. 기억하기론 삼승의 방은 세성 정도의 윗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워낙 복도와 문이 똑같이 생겼고 구조도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길을 외우는 게 쉽지 않았다. 맘먹고 찾아간다고 해도 길을 잃은 채 헤매다가 무흠에게 걸려 신나게 말로 얻어맞을 게 빤했다.

답을 찾으려면 순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당장 알아내야만 하는 건 세성이 말한 신소미라는 역할이 정말로 해화의 능력으로 가능한가, 라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해화가 완전히 몸이 빼앗기기 전까지 그녀를 찾아야 했다. 해화의 몸을 덮은 놈이 애초에 해화의 능력을 알아채고서 자신이 독점하려고 했다면 더 큰 일이 일어날 게 빤했다.

‘그때 잠들지 않았던 놈인가. 홍해화를 낚아채 간…….’

해화가 붙잡혔던 날을 떠올리며 낙조는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쇠 맛이 강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산에 있는 변이 식물들을 다 잠들게 만든 해화의 능력을 알아채고, 거기에 잠들지 않을 만큼 강한 녀석이 해화를 낚아챘을 확률이 높다. 대화할 수 있다는 힘을 이용해 잠들었던 변종들을 깨워 이곳으로 보낸 거라면.

‘왜 새벽에 내 이름을 물어봤지.’

만약 새벽에 자신을 깨워 난동을 부렸던 그때, 해화의 의식이 잠들어 있지 않았다면 그녀가 이성을 찾은 후 당시의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이 오른팔과 일종의 감정과 의지를 공유했던 것처럼, 지금 해화의 몸을 덮은 녀석과도 해화가 어느 정도 이어져 있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휘몰아쳤다.

‘뿌리를 움직일 만큼 힘을 썼고, 홍해화 자체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거였으니 아마 하루 정도는 잠잠하겠지. 그럼 내일까진 잡아야 해.’

낙조는 생각을 마무리 짓고서 문득 떠오르는 지운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한 번쯤은 무흠이 수호의 방에 들러 지운을 살피고 자신에게 물어보진 않을까 했는데 너무나도 고요했다.

살다 보면 한 번쯤 겪는 순간이 있다. 목 뒤가 서늘해지며 모든 생각이 갑작스럽게 멈추는 순간이.

“…….”

짧은 시간 동안 낙조 자신에겐 너무나 많은 일이 지나갔다. 하루를 온전히 써도 다 담지 못할 정도로 방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갇혀 부유하고 있었다.

지운에게도, 그만큼 하루가 짧았을까. 낙조는 사람이 홀로 남겨졌을 때, 자신이 온전히 혼자라는 것을 직시했을 때 몰려드는, 질 나쁜 감정들에 대해서 잘 알았다. 고장 난 테이프처럼 시간이 마구잡이로 엉키기도 하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누군가 억지로 보게 하는 듯 반복해서 죄책감 가득한 과거를 곱씹게 된다. 요 며칠 사이 지운이 내뱉은 말을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은 건 자신이었다. 그런 지운의 곁에 누구라도 두면 좋겠다 싶어 수호에게 떠맡긴 행동이, 낙조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싶었으나 더 주저할 수 없었다. 낙조는 침대 헤드를 짚고 일어나 방을 박차고 나갔다. 지운의 방은 당연하다는 듯 텅 비어 있었다. 입안이 바싹 말라 갔다. 몇 번이고 발이 엉켜 몸이 무너지려는 걸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렇게나 외워지지 않던 내부 길이 이상하리만치 잘 보였다. 한 번도 막히지 않고, 마지막 복도의 코너를 도는 순간 무언가 반대편에서 달려오다 낙조의 몸에 부딪혔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수호였다. 낙조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수호를 급히 붙잡았다.

“무슨 일이에요.”

“……고낙조 씨.”

“지운이……, 홍지운……, 홍지운은요.”

“고, 낙조, 씨. 제가, 잠깐, 잠깐 잠들었는데.”

수호는 스스로 몸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 손바닥 안에서 선연히 느껴지는 그 떨림에 낙조의 속이 단번에 부서져 내렸다.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헛구역이 치밀 정도로 호흡이 곤란해졌다. 낙조는 멍하니 수호의 겁에 질린 얼굴을 응시하다가 다시 수호의 방을 향해 뛰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안은 어두웠다. 반쯤 열린 문을 활짝 열었다. 복도를 밝히고 있는 불이 깜깜한 방을 조금이나마 비추었다.

“…….”

곧 수호가 낙조를 쫓아 돌아왔다. 그리곤 낙조의 팔을 붙잡고 숨을 허겁지겁 삼켰다가, 생각나는 대로 말을 쏟기 시작했다.

“침대, 침대 프레임에 튀어나온 부분, 에, 아마…….”

낙조는 의자 다리 사이로 보이는 지운의 두 발을 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둠에 뛰어들어 지운의 몸을 붙잡고 품에 안았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복도의 불빛이 지운의 얼굴 위로 간신히 들어섰다. 지운은 조용히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두 개의 눈동자가 천천히 굴러 낙조에게로 와 꽂혔다. 낙조는 축 늘어진 지운의 손목을 꽉 쥐고서 수호에게 외쳤다.

“백무흠, 백무흠 불러요. 아니 세성님, 다, 다 불러요. 누구든 불러요.”

그러나 자꾸만 힘이 빠져나가 한 마디를 하는 것도 벅찼다. 겨우 낙조의 말을 알아들은 수호가 고개를 끄덕이곤 사라졌다. 낙조는 시야가 뿌옇게 물드는 걸 느끼고 안경을 벗어 던졌다. 낙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지운이 작게 웃었다. 낙조의 손에 잡힌 지운의 손목은 따뜻했다.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는 걸, 낙조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사방에서 조여와 견딜 수 없었다. 낙조는 지운을 꽉 끌어안으며 그의 어깨에 눈가를 비볐다. 지운의 일정한 숨소리가 이명처럼 따갑게 낙조의 온몸을 쑤셔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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