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목숨앗이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풍경은 가관이었다. 서천의 병사들 중 몇몇은 이미 변종에게 당해 몸이 너덜거렸다. 변종은 쓰러진 이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변이를 시키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서천의 입구에 조금씩 다가오며 경계심을 더욱 높일 뿐이었다. 무흠 또한 권총을 장전하며 호흡을 골랐다.
“왜 나한텐 총 안 줘요?!”
“넌 여기 가만히 서서 변종 행동 패턴 파악하라고 부른 거야. 괜히 나서서 다치지 말고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에엑?!”
“싫으면 나뭇가지라도 주워서 싸우든가.”
“…….”
수호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무흠의 뒤통수를 다섯 대는 때릴까 생각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봐준다, 라면서 스스로를 진정시킨 후 수호는 한 걸음 물러났다. 수풀 속에 숨어 있는 터라 밖에선 이곳이 보이지 않을 게 당연했다. 무흠과 밤이가 먼저 수풀 밖으로 나가고, 마지막으로 낙조가 나섰다. 수호는 수풀에 몸을 숨긴 채 낙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왠지 한기가 스쳐 지나가는 기분에 그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가시?”
낙조의 오른손 손가락은 나뭇가지처럼 바싹 말라 있었고, 색은 녹색이었다. 손톱이 있어야 할 곳은 끄트머리가 아주 뾰족한 가시가 군데군데 돋아 있었다. 낙조와 관련된 보고서나 배 위에서 낙조가 변했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수호는 유심히 낙조를 지켜보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아, 금수호 씨.”
“네, 네?”
“계획 있는 거 맞죠?”
“무슨…….”
“변종을 속여서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계획. 생각해 놔요. 나도 궁금하니까.”
낙조가 마지막으로 발을 수풀에서 빼내기 전 수호에게 말했다. 수호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낙조는 설핏 웃고서 완전히 수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미 코앞까지 온 변종들은 진액이나 포자를 질질 흘리면서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오려는 놈들부터 잡아!”
“당연한 말을 존나 거창하게 하네!”
무흠의 지시에 밤이가 먼저 한 놈을 날리면서 외쳤다. 무흠이 밤이를 살짝 노려보긴 했으나 말다툼으로 시간을 벌 상황이 아니었다. 치명상보단 완벽한 한 방을 노려야 했다. 조준점을 무조건 머리에 두면서, 밤이는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뛰어들 법한 녀석들을 발로 걷어차거나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찍어 내렸다. 오랜만에 하는 전투는 생각보다 개판이었다. 그저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수풀 속으로 들어가려는 놈들을 먼저 찾아내려니 눈이 바빴다. 아무리 가까운 녀석들부터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이 거슬렸다.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밤이와 무흠,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서천의 병사들이 변종과 겨루고 있을 때, 낙조 혼자 수풀 앞에 서서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풀까지는 오지 못했으나 한 명이라도 쓰러진다면 곧장 수비선이 무너질 게 빤했다.
팔이 자라난 후 눈을 떴을 땐 달라진 게 크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손이 신기했고, 주변 사람들의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구별하게 된 것만이 다였다. 그마저도 사람의 거짓말을 판별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머리로 추측하는 것뿐이라 백 퍼센트 확신할 순 없었다.
밖에 나오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오른팔이 어떤 식으로 달라졌는지 느껴졌다. 이전까지 오른팔은 낙조의 거칠고 험한 감정을 바탕으로 움직였다. 대부분의 상황은 분노에서 표출됐다. 그러나 새로 난 오른팔은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이었고 침착한 감정을 유지하면서 변화하고 있었다.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잔잔한 바다처럼, 파도마저 얼릴 것 같은 차가운 공기가 오른손을 배회했다.
낙조는 굳이 오른팔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묵묵히 소매를 걷고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힘겹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밤이와 무흠 사이를 지나며 손을 들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한 녀석이 아래턱을 딱딱 씹으면서 괴성을 질러 댔다.
“고낙조!”
낙조를 부르는 밤이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낙조의 손끝이 가볍게 변종의 턱부터 정수리까지 위쪽으로 베어 냈다. 목에서부터 반으로 갈라진 변종의 머리가 양쪽으로 헐겁게 뜯어졌다. 낙조는 그제야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은 아주 첨예한 가시가 돋쳐 있었고, 그 끝엔 변종의 살가죽으로 보이는 것이 진액과 함께 덜렁거리며 달려 있었다.
“……너 뭐한 거야!”
탕! 바로 곁에서 달려드는 변종을 총으로 날린 밤이가 외쳤다. 웬만한 총소리와 맞먹을 정도로 큰 그녀의 목소리에 낙조가 잠깐 뒤를 돌았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은 무흠도 마찬가지였다. 낙조는 오른손을 쫙 펴 그들에게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여 준 후 말했다.
“이게 새로운 방법인가 봐요.”
그들의 반응을 즐길 시간은 딱히 없었기에 곧장 고개를 바로 돌렸다. 낙조가 중요 인물이란 걸 인식했는지, 주변에 있던 변종들의 시선이 모두 낙조에게로 쏠려 있었다. 코끝으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모두 사체에서 피어나는 악취와 비슷했다.
‘이것들이 다 땅속에 있다가 나온 건가…….’
아무리 서천이라고 한들 땅속에 묻혀 있던 것까지 다 들춰보진 못했을 테다. 변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 까닭. 변종을 겨울눈처럼 덮고 있는 땅, 즉 껍데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낙조는 딱딱한 흙을 신발 밑창으로 한 번 긁어 보았다가 다시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몸에 잔뜩 긴장을 세우니 가장 심한 악취가 어디서부터 흘러들어오는지 느껴졌다.
북서쪽과 동남쪽. 몸을 오른쪽으로 조금만 틀어 양팔을 펼친다면 곧장 두 마리를 날릴 수 있는 구도가 된다. 다만 왼팔이 어느 정도로 힘을 되찾았는지는 모르는 상태. 낙조는 당장 떠오르는 방법을 제치고 빠른 속도를 선택하기로 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녀석은 포자로 뒤덮인 놈이었다. 잇몸까지 노란 포자가 자글자글하게 끼어서, 조금이라도 스쳐 지나가면 모두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윗니와 아랫니 또한 잇몸에 박리가 되어 피부와 마찬가지로 과각화가 일어나 여러 갈래로 벗겨지고 갈라진 채 변색 된 게 보였다.
최대한 접촉을 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몸이 완전히 회복됐다고 하기엔 시간이 너무 일렀다. 회복력이 완전히 돌아왔다고 해도 전처럼 용을 써 가면서 몸을 다치게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우습게도 머리가 차갑게 식자, 그런 생각들이 당연하다는 듯 떠올랐다. 조금 전 칼로 잘라 낸 것처럼 변종의 머리를 썰었음에도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다. 낙조는 코앞까지 달려든 녀석의 입질을 뒤로 살짝 물러나 피하고서 녀석의 목울대부터 심장이 있는 곳까지 오른손 가시로 그대로 그어 내렸다.
퍼버버법, 퍼억, 푹-
몸의 뼈 사이사이에 맺혀 있던 포자가 사방으로 튀며 가루를 날렸다. 낙조는 황급히 왼쪽 소매로 코끝을 막고서 몸을 피했다. 가스가 터지듯 뿌옇게 시야를 뒤덮는 가루에 뒤를 황급히 돌아보니 무흠과 밤이, 병사 몇 명도 낙조를 따라 코를 막고 있었다.
‘포자 안에 들어 있던 게……, 전염을 일으키는 가루 같은 건가.’
가루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낙조는 곧장 가루가 흩날리는 범위에서 벗어나 때를 놓치지 않고 일행들에게 달려드는 무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은 다섯 개, 손가락에 달린 가시는 하나당 네다섯 개는 족히 된다. 손가락 하나로도 깔끔하게 써는 것이 가능하다면 다섯 이상도 거뜬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치명상을 입히는 게 관건이었다.
뒷목을 일자로 완벽하게 긋고, 뒤를 보이는 녀석의 왼쪽 가슴을 등부터 뚫고, 동공이 뒤집힌 채 달리는 놈의 옆구리를 시작으로 곁에 있던 놈의 어깨까지 대각선으로 그어 올린다. 단숨에 변종 네 마리가 날아갔다.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녀석은 다리를 휘둘러 머리를 맞췄다. 속절없이 쓰러진 녀석의 뒤통수를 몇 번 발로 으깨니, 뼈까지 부스러지면서 뇌수처럼 가득 차 있던 진액이 흘러나왔다.
소리도 없이 낙조가 밟는 자리마다 변종이 갈라지고 쓰러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분해된 것도 있었다. 낙조는 그제야 조금 차오르는 숨을 다스리면서 다시 뒤를 돌았다. 눈에 띄게 줄어든 녀석들을 보면서도 느껴지는 건 악취뿐이었다. 그저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담배 연기가 계속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 낙조는 다시 손끝을 세우고 돌진했다.
가시는 아무리 긋고 베어도 닳지 않았다. 단단한 뿔이라도 되는 건지 무작정 들이박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변종의 무른 살가죽이 가시에 찬찬히 쌓이기 시작했고 손을 떨어뜨릴 때마다 가시에 달린 진액과 포자 가루도 흩날렸다. 시간이 조금 지남에도 진액과 포자 가루 같은 것으로 낙조의 몸에 변화가 찾아오진 않았다. 마치 낙조의 몸속과 연결된 게 아닌 것처럼.
“얼마 안 남았어! 다들 집중해!”
무흠의 외침이 어딘가에서 울렸다. 이상하게도 일행의 목소리는 방향을 찾기 힘들었다. 변종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만이 낙조에게 방향을 알려 주었다. 센서라도 달린 듯 낙조는 냄새가 가까워지는 만큼 긴장을 곧추세웠다. 그리고 그 촉은 정확히 맞았다. 냄새가 강하게 나는 곳으로 손을 치켜들 때마다 변종은 입도 벌리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졌다.
악취가 조금씩 멎기 시작하고, 마침내 한 놈만이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낙조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곤 왼손을 들어 일행에게 보였다.
“총 쏘지 마요.”
낙조의 간결한 말에 밤이와 무흠이 총구를 겨눈 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낙조는 아무 표정 없이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뿌리 뽑아야 돼요.”
그리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남은 녀석의 배를 꿰뚫었다.
“까아아아악……!”
“……썩은 내…….”
“꺼어억, 꺼허어억, 끼아악…….”
잔뜩 꼬인 내장을 손가락으로 파헤칠 때마다 약한 내장은 가시의 힘에 못 이겨 하나씩 끊기거나 터졌다. 손가락 사이로 진액과 젤리 같은 핏덩어리가 가득 차올랐다. 낙조는 변종을 힘으로 밀어 나무 기둥에 밀쳐 내고선 더욱 세게 뱃속을 쥐어짰다. 숨이 넘어갈 듯 말 듯 가쁜 비명을 내지르던 변종은 이내 낙조가 무언가를 움켜쥐자 마지막 발악처럼 온몸을 뒤틀었다.
‘찾았다.’
낙조의 손바닥에 잡힌 것은 가느다랗고 아주 촘촘하게 얽힌 뿌리였다. 마치 하나의 내장처럼,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덩어리는 구체의 모형으로 서로를 둘러싸고 있었다. 낙조는 그것과 연결된 선들을 모두 뽑아낼 기세로 오른손을 자신의 몸쪽으로 힘껏 당겼다.
우두둑, 투두두둑-
연결돼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미 뒤집힌 변종의 두 눈에선 탄 내가 나는 듯한 진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낙조는 팔꿈치까지 들어가 있던 자신의 오른손이 완전히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진한 한숨을 내뱉었다.
“……욱, 웩.”
꺼낸 뿌리에선 좀처럼 맡기 힘든 썩은 냄새가 풍겼다. 낙조는 나무 옆으로 쓰러진 변종과 함께 뒤로 넘어지면서 헛구역질을 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뿌리를 바닥에 놓쳤다. 몸이 몇 번이고 들썩였는지 알 수 없었다.
“고낙조!”
“아, 씨, 이 개 같은 냄새 뭐야!”
무흠과 밤이가 낙조에게로 달려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밤이는 진액으로 둘러싸인 공 모양의 뿌리를 보고서 코를 꽉 막았다. 비위도 좋은 건지 무흠은 아무렇지 않게 뿌리를 확인하고서 병사들을 불렀다. 병사들 또한 뿌리 쪽으로 오며 헛구역질을 하거나 완전히 속을 게워 냈다.
“욱, 우욱, 콜록, 콜록! 허윽.”
“뭐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람의 검심처럼 혼자 잘도 날아다니더니, 이제 정신이 좀 돌아와?”
“누나, 저거 냄새, 우엑.”
“미친 새끼가, 잘못 들으면 나한테서 나는 냄새처럼 말하네.”
밤이는 질색을 하면서도 낙조의 등을 팡팡 두드려 주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내뱉을 게 없어 쓰디쓴 위액만이 줄줄 흘렀다. 낙조는 이후에도 몇 번이나 몸을 힘겹게 들썩인 후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눈물까지 나 시야가 흐렸다. 습관적으로 얼굴을 닦으려 하다가 오른손이 잔뜩 진액과 포자로 더럽혀진 걸 보고서 조용히 손을 내렸다.
“닦아.”
병사들이 까만 주머니에 뿌리를 겨우 담은 후에야 냄새가 조금 멎었다. 딸꾹질을 하는 것처럼 입을 다문 채 몸을 들썩이던 낙조를 바라본 무흠이 품에서 손수건 하나를 건넸다. 낙조는 무흠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조용히 그나마 깨끗한 왼손으로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오래 쓴 것인지 손수건은 꽤 낡아 보였다. 낙조는 조용히 무흠의 눈치를 보면서 오른손을 닦아 냈다. 손수건도 금세 진액과 포자로 범벅이 되었다. 낙조는 물끄러미 손수건을 바라보다가 무흠에게 말했다.
“제가 갖고 있다가 빨아서 드릴게요. 중사님 몸에 닿으면 좀 그러니까…….”
“몸속에만 안 들어가면 상관없어. 내놔.”
“좀 그런데요. 너무 더러워서.”
“아까랑은 다르게 평소랑 똑같은 말투군. 영웅 놀이는 다 끝났나?”
“무슨 소리예요.”
“그리고 앞으론 중사라고 부르지 말고 장승이라고 불러.”
“장승님?”
“그래, 그렇게.”
“죽은 사람 부르는 것 같잖아요.”
“…….”
말없이 무흠이 손수건을 빼앗아 가며 낙조를 째려보았다. 낙조는 가시도 사라지고, 멀끔해진 오른손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밤이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변종은 이렇게 놔둬도 돼요?”
“조금 이따가 다시 나와서 치울 거다. 길을 확보해야 하니까.”
무흠은 먼저 병사들과 수풀로 들어가며 말했다. 이윽고 밤이와 함께 낙조가 수풀 안으로 들어가니, 무흠의 말대로 꼿꼿하게 서 있던 수호가 보였다. 그는 낙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을 벙긋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대략 그의 표정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낙조는 힘없이 수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스쳐 지나가며 속삭였다.
“나중에 얘기해요. 다 얘기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