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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134화 (134/202)

134화. 싹이 트기 전

세성의 명대로 낙조를 포함한 일행은 빈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해화의 호흡은 여전히 가빴으나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는 듯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지운이 해화의 곁에 서서 계속 그녀를 다독였다. 밤이는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복도를 걷다가 낙조의 곁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피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어?”

“없어요. 몸에 달라붙은 게 꼬맹이인 줄도 몰랐고…….”

“삼승이라는 사람한테 얘기하려나?”

“근데, 나는 저 오른팔이 붙어 있을 땐 변종들 목소리가 들렸거든요. 애기 목소리도 들어봤는데, 정작 저 오른팔에 있던 게 완전 애라고 생각하니까 그게 이상해요.”

“너도 들어본 적 있다고?”

“뿌리를……, 그러니까 변종 몸 안에 박힌 뿌리를 뽑을 때만요.”

세성과 무흠을 제외하곤 처음 말하는 얘기였다.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흠이 남매와 수호를 데리러 갔을 때, 밤이는 서천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는지 얘기했다. 무흠이 자신을 데리러 나왔고, 자신은 이곳에 데리고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고. 세성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상황을 빨리 이해하기 위해선 세성의 속마음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낙조가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목소리와 자신을 붙잡는 손길의 온도에서 느껴지는 추측. 머릿속은 훨씬 맑아졌지만 앞으로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이 더욱 커진 기분이었다.

세성의 뒷모습을 아무리 바라봐도 들리는 건 없었다. 세성은 스스로 자신의 모든 문을 닫은 것처럼 꽉 막혀 있었다. 게다가 그와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그를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역으로 세성이 자신을 꿰뚫는 것처럼 보여 쉽게 입을 떼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

평범한 가구들이 놓인 방에 왔을 때, 해화의 호흡은 다시 침착해져 있었다. 무흠은 곧 물과 음식을 가져다준다고 말한 후 다시 방을 떠났다. 문이 닫힌 후 각자의 공간에 서 있던 이들이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눈치를 보았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사람들처럼, 아예 서로를 잊어버린 것 마냥 구는 행동에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뿌리를 뽑았단 말이 뭐야? 목을 꺾었다거나 가슴에 구멍을 냈다거나, 그런 식으로 변종을 해치운 게 아니란 거 아니야?”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밤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밤이의 말은 낙조를 향해 있었기에 모두의 시선이 낙조에게로 쏠리는 것도 당연했다. 낙조는 소매로 덮은 오른손을 내려다보다가 무거운 마음을 애써 짓누르고 대답했다.

“내 의지로 한 건 아니에요. 얘가 저절로 움직였으니까.”

말하며 오른쪽 손목을 앞뒤로 까딱거리자 해화가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살짝 미간을 좁힌 채 밤이 대신 말을 가로챘다.

“그럼 그 애기 목소리가 정말 고낙조 네 팔에서 나온 거야?”

“…….”

낙조는 말없이 해화와 눈을 마주쳤다. 단순히 호기심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이전에 보인 행동이 있기에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쉽진 않았다. 그저 평소에 해화가 말하는 톤과는 약간 다르게 들린다는 점이 낙조의 대답이 늦어지도록 만들었다. 정말 궁금하여 물어보는 질문이라는 건 알았다. 그러나 그 뒤에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뉘앙스에 낙조는 가만히 자신의 검지의 첫 번째 마디를 아프지 않게 깨물다 뒤늦게 대답했다.

“아이라고는 생각 안 했어. 다들 봤잖아. 내가 쓴 힘이……, 어린 애의 힘이라고 생각이라도 했어?”

“왜 이렇게 적대적이야. 배 타기 전부터, 너…….”

낙조의 대답에 해화가 어설프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해화의 곁에 있던 지운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듯 그녀의 말을 말리지 않고 낙조를 응시했다. 낙조는 씹던 손가락을 떼고서 이마를 짚었다. 분명 해화의 말에는 듣기 거북한 무언가가 있었다. 배에 함께 탈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의심스럽진 않았는데. 자신처럼 그녀를 자극한 사건이 있었나. 대놓고 물어본다 하더라도 해화는 말하지 않을 게 빤했다. 자신이 거제도에 있을 때 발광 구체와의 일을 겪고도 곧장 받아들이지 못했던 상황과 비슷할 테다. 자신에게 무슨 일어나는지 대략 눈치는 챘어도, 그걸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란 말이다.

아직 완전히 믿을 순 없어도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는 세성과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는 무흠이 있다. 그들이 해화에게도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무흠의 말로는 해화 또한 서천에서 필요하기에 데려간다고 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하기 위해 데려온 건지는 낙조조차 알지 못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범위 내에서 섣불리 행동했다가 일행 모두에게 피해가 끼칠 수 있다는 일은 이제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다. 낙조는 시선을 해화에게서 거두었다.

“어……, 고낙조 씨.”

“……예.”

꼭 모두가 자신을 둘러싸고서 그동안 물어보지 못했던 것을 추궁하는 기분이었다. 이번에 입을 연 건 수호였다. 거제도에서 둘이서 나눴던 대화가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하기 힘들 수도 있었지만 모두가 보는 눈앞에서 괜히 티를 내고 싶진 않았다.

“여기에 들어온 이후부턴, 뭐……, 아무것도 안 느껴졌어요?”

원초적인 질문. 단순한 호기심. 수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낙조의 머릿속에선 수호의 목소리를 스캔하듯 빠르게 분석했다. 낙조는 그제야 몸에 깃든 긴장을 조금 풀고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팔이 잘린 이후에 들어왔으니까 아무래도요. 다시 자라난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주변에 변종이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어요.”

“아……. 그럼 고낙조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새로 난 팔엔 잘린 팔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시는지…….”

아마 모두가 궁금해할 질문. 낙조는 안경을 빼 알을 느리게 닦으면서 생각했다. 어쨌든 이곳에 모인 모두를 당장 의심하는 건 아니다. 수호는 지금까지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고. 해화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눈에 띄는 정황은 없다. 모두가 낯선 공간에 들어와서 겁에 움츠리고 있을 때 자신조차 약해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다르죠. 처음 주사를 맞았을 때랑 느낌이 비슷해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저 그럼 마지막으로 궁금한 거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그러세요.”

“다른 실험자들과 같이 주사를 맞았을 때 고낙조 씨만 다르다고 느꼈던 거 있어요? 청주에 있을 때 봤던 보고서에선……, 주사한 후 이틀까지밖에 기록이 안 돼 있었거든요. 근데 다른 사람들은 열도 꽤 오르고 배탈이 나는가 하면, 고낙조 씨한테서만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모든 검사 결과가, 주사를 맞기 전과 똑같았어요.”

“그걸 다 읽으셨구나.”

낙조는 일부러 수호의 말을 놓치는 척 에둘러 말했다. 수호의 말에 모두의 입이 무거워졌다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의 실험 기록을 아는 이는 연우밖에 없었으니, 사건이 일어난 날 밤 이전의 시간을 기억하는 건 낙조뿐이었다.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수호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 건지도 모른다.

낙조가 수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청주에서 근무했다는 것과 머리가 매우 좋다는 것, 그리고 무흠이 직접 데리고 온 사람이라는 것. 자신을 아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가졌다는 점. 쉽게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점들이었다. 반면에 수호는 자신의 세세한 정보까지 모두 청주에서 독파하고 왔다는 것이 달랐다. 임상시험을 했던 곳에서 일어난 일을 굳이 거짓말할 필요는 없었다. 낙조는 안경을 도로 끼고서 입을 조용히 열었다.

“처음 사람들이 이상해졌을 때, 에어컨 밑에 옹기종기 콩나물처럼 붙어 있었던 게 기억나요. 그리고 말 몇 번 섞었던 동생 한 명은 속이 계속 안 좋다고 그랬고. 비상 호출벨을 누르니까 어떤 연구원이 왔는데, 에어컨 밑에 서서 휘청거리던 놈들이 달려들었어요. 물린 연구원은 죽었나 싶었는데 똑같이 다른 변종처럼 금세 변했고. 다음부터 봤던 놈들은 다들 아는 변종들이랑 똑같았어요. 진액이나 포자, 그런 걸로 전염이 됐어요. 왜 에어컨 밑에 붙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방이 그럽게 덥진 않았는데.”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가만히 듣고 있던 수호가 낙조의 의견에 슬쩍 자신의 생각을 기울였다.

“식물이 수정을 하려면 이동 수단이 있어야 하잖아요. 대표적으론 곤충. 근데 실험하는 곳이니 워낙 위생에 철저했을 테니까 곤충이 없을 확률이 높고, 그럼 소나무처럼 바람에 실어 전염시키려고 했을 수도 있죠.”

“……본능적으로?”

“본능적으로요. 그러던 도중 변이시킬 수 있는 생명체, 그러니까 그 연구원이 나타나서 바로 달려든 걸 수도 있어요.”

수호는 미리 모든 말을 생각해 둔 것처럼 조곤조곤 얘기했다. 몇 달도 더 된 시간을 생각해 보려니 조금 머리가 아팠으나 수호의 말대로 정황을 끼워 맞추니 한결 상황을 이해하기가 편해졌다. 낙조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서 입을 열었다.

“그럼 전염시키는 행위 자체가 본능이라면, 변종의 공격 행위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번식이라고 봐야 한다는 거죠?”

“네. 뭐……, 변종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긴 말이긴 한데, 적을 알면 속이기도 쉬우니까요. 무슨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지 알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변종을 유인할 수도 있고, 어쩌면 한 번에 몰살시킬 수도 있겠죠.”

방에 들어왔을 때와는 다른 침묵이 허공을 떠돌았다. 낙조는 수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분명히 자신에게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의 상황을 묻는 것도 스스로 생각한 주장에 충분한 이유를 받치고 싶어서였을 수 있다. 그 누구 하나 수호의 말에 코웃음 치지도 않았다. 일행이 처한 상황을 두고 보자면, 그저 낭떠러지에 몰린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고낙조 씨한테는 그런 본능이 없다는 걸 생각해야 하고, 변종을 상대했던 오른쪽 팔의 힘에 고낙조 씨의 의도만 들어 있던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생각해야 해요. 홍해화 씨 말처럼 어린 애 목소리가 들렸다는 걸 사실로 놓고 가정했을 때, 그 애도 변이됐었을 텐데 어째서 같은 변종을 그렇게 죽이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는지도.”

“그럼 금수호 씨한텐 계획이 있어요?”

“에?”

“내 사정에 대해선 죽지 않는 이상 언젠가 알아낼 수 있겠지만, 당장 우리가 스스로나 이곳을 지켜야 할 방법은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변종이 그저 번식을 위해 살아 있는 것을 목표로 둔다면 그걸 이용해서 그들을 덫에 걸리게 할 방법도 생각해 놓으셨을 것 같아서.”

“아. 아아……. 그거야, 뭐…….”

잘 말하던 수호의 말이 덥석 끊겼다. 그는 낙조의 눈치를 보면서 입가를 가렸다. 분명 계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하기 껄끄러운 게 틀림없었다. 낙조는 나른한 시선으로 수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불편한 침묵이 수호와 낙조 사이에서 맴돌았다.

벌컥.

수호에게 다시 계획을 물어볼 참이었다. 자세를 고쳐 앉으려고 할 때, 노크도 없이 문이 활짝 열렸다. 달려왔는지 조금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무흠이 보였다. 그는 숨을 내뱉으면서 방에 있는 일행을 둘러보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수호가 먼저 그에게 물었다. 무흠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서 있었다. 무흠의 모습에 비해 바깥은 그리 소란스럽지 않았다. 이 방이 얼마나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낙조, 금수호……. 일단 둘만 나와. 아, 송밤이 당신도.”

“엥?”

“홍해화……, 홍해화 씨는, 여기 계십시오.”

“아니 뭔 일인데요?”

“서천 입구에 변종이 몰려들고 있다.”

무흠의 말에 잠시 정적이 짙게 깔렸다. 수호는 온갖 인상을 다 구기면서 팔짝팔짝 뛰었다.

“근데 내가 왜 나가요?!”

“잔말 말고 따라와. 홍지운, 너는 누나 잘 지키고.”

지운 또한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는 터라 험한 꼴을 또 보이게 할 순 없었다. 무흠은 지운이 끄덕이는 걸 보고 난 후 먼저 방에서 나갔다. 수호가 머리를 감싸고 절규의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밤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낙조에게 다가왔다.

“짚이는 거 있어?”

“갑자기 변종이 몰린 이유에 대해서요?”

“어.”

“누나는요?”

“난…….”

밤이는 말하다가 해화를 힐끗 돌아보았다. 그녀는 변종이란 소리에 다시 두 귀를 막은 채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변종의 목소리가 들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낙조는 영 반응하지 않는 오른팔을 내려다보다가 밤이를 따라 일어났다.

수호도 울며 겨자 먹듯이 밤이와 낙조를 따라 방을 나왔다. 무흠이 수호를 부른 이유에 대해선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으리란 생각은 했다. 낙조는 밤이와 나란히 걸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나도 홍해화가 했던 말이 걸리죠?”

“……어. 아직까지 그 정신 나간 오른팔이 살아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럼 그 어린 애가 변종을 불러들였다는 말이네요.”

“말도 안 되기는 하는데, 구조 신호를 퍼뜨렸다고 쳐. 그럼 저 청주 꼬맹이가 말한 ‘번식을 위해’ 움직인 건 아니란 말이야.”

사뭇 진지했던 대화에 수호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청주 꼬맹이요?!”

“……예에. 갑자기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그쪽이 아까 뭐라 그랬죠? 번식을 위해 살아 있는 걸 목표로 잡는 게 본능이라면, 다른 변종을 지키기 위해서 몰려드는 움직임은 뭐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밤이는 뒤로 수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수호가 멈칫거리고 있을 때, 밤이는 잠시 무흠을 흘낏거리곤 조용히 홀로 대답했다.

“아군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는 행동이야 비교할 대상은 많죠. 곤충 중엔 장수말벌도 있고. 근데 얘네는 좀 다르게 생각을 해야 해요. 기생 식물이라는 점. 고낙조가 전의 오른팔을 이용해서 변종의 목소리를 들었고, 홍해화가 말한 대로 오른팔이 무시무시한 살의를 가진 채 살아 있다면 근처에 있던 변종들에게 구조 신호를 쳤을 수도 있다는 거죠.”

“…….”

“처음부터 변종의 대부분은 단체로 활동했어요. 이동할 때나 쉴 때나. 그럼 당연히 그들을 군림하는 애가 하나씩은 있을 거고.”

“……그게 내 오른팔일 수도 있다, 이거죠 누나?”

“……인정하기 싫지만 결론은 그래.”

빠른 발걸음이 서로 겹쳐 복도를 나아갔다. 서천 밖으로 나가는 문은 열려 있었다. 무흠은 앞장서서 계단을 오르며 밤이에게 권총 하나를 건넸다.

“서천 주변에 워낙 덫을 많이 깔아 놔서 몇몇은 잡혔는데, 생각보다 수가 많아. 서천의 병사들 대다수는 청주나 타국으로 파견돼 있어서 우리 쪽은 수가 적고. 어째서 한겨울에 몰려들었는지는 보고 떠들자고.”

무흠이 땅의 문을 열기 직전 숨을 가다듬었다. 이미 문 위로는 변종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아비규환이었다. 낙조는 조금씩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오른팔을 조용히 붙잡고서 이를 갈았다. 병우와 한 방에 갇혔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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