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133화 (133/202)

133화. 대화

“왜 이렇게 안 오지?”

“…….”

“뭔 일 난 거 아니야?”

한참 기다리고 있던 지운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해화에게 말했다. 해화는 조용히 턱을 괸 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녀는 지운의 말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수호는 남매의 눈치를 보면서 방문만 힐끔거렸다. 무슨 말을 꺼내도 분위기를 바꾸는 건 힘들어 보였다. 보는 눈이 있으니 함부로 자리를 뜰 수조차 없다. 이곳의 지리도 알지 못하는 이유도 있고. 수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렸다.

“누나.”

“…….”

“홍해화!”

“어.”

“걍 나가 보면 안 돼?”

“……홍지운.”

“왜.”

“백무흠이 말한 그대로라면, 여기가 식물 천지라는 건데. 너무 조용해.”

해화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에 꽂혀 있었다. 지운은 해화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서 머리를 털었다. 해화의 말엔 앞뒤가 없었다. 전후설명 없이 다짜고짜 정적을 지적하는 해화의 말은 속만 거북하게 만들 뿐이었다.

“밖은 겨울이니까, 거의 잠들어서 그랬다고 쳐. 배 탔을 땐……, 잘 안 들렸어. 바람이 너무 거세기도 했고.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쟤들이 속삭이는 소리라도 나야 하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단 말이야. 정말 여기에 뭐가 있긴 한 거야? 여기도 똑같이 나랑 고낙조 같은 애들 데려다가 실험하려는 게 아니고?”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아무리 못 미더워도, 그러니까…….”

해화가 던진 의문에 떳떳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힘이 있는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 주지 않으면 자신은 해화를 비롯한 일행을 오롯이 홀로 지켜 낼 수 없다. 이미 산불 사건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해화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알면서도 쉽사리 자신을 믿으라 말할 수 없는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배신을 당하고, 가는 곳마다 자신들에게 살의를 보였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조각났다. 그럼에도 사람은 참 간사해서, 죽는 것보다 사람을 믿는 걸 택했다. 실수와도 같은 선택이 반복되었고 결과는 같았다. 낙조는 정말 무사할까. 밤이는 아직도 밖에 있을까. 오로지 해화와 자신 둘만 남았다는 생각에 지운은 입을 열지 못했다. 침묵이 계속되자 해화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미안해. 내가 또 이상한 소리만 했지.”

“아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어. 내가 감염된 식물의 말만 들을 수 있는 거라면, 여기는 정말 안전한 거니까.”

“…….”

“아, 어렵다. 너무 어렵다……. 그럼 고낙조 몸 안에 있는 건 뭐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해화의 목소리는 텅 빈 것처럼 공허하게 느껴졌다. 지운에게 말을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축 늘어진 팔다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운이 흘러가는 시간에 차츰차츰 짓눌려 갈 때쯤이었다.

철컥,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방문이 열렸다. 해화는 그 소리에도 미동이 없었고 지운과 수호만 고개를 돌렸다. 항상 그렇긴 했으나 평소보다 조금 더 굳어진 표정을 지닌 무흠이 서 있었다.

“홍해화 씨.”

“…….”

“잠깐 사이에 귀신이라도 봤습니까? 왜 그렇게 얼이 빠졌습니까.”

“너무 조용하니까요.”

해화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무흠이 그제야 지운과 수호를 차례로 바라보았으나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수호는 입술만 움직여 소리 없이 ‘현타 온 것 같음’이라고 중얼거렸다. 자리를 비운 동안 그다지 큰일이 있던 것 같지는 않았다.

‘일들이 좀 몰아치긴 했지.’

들은 얘기로만 순서로 정리해 봐도 해화가 겪은 일들은 순탄치 않았다. 산불과 오랜 잠, 난항. 땅과 바다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 눈앞을 휩쓸고 갔으니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요함이 오히려 정신을 흔들어 놓았을 수도 있었다. 무흠은 짧게 날숨을 내뱉었다. 딱한 사정이긴 했으나 상황을 일일이 챙겨 줄 여유는 없었다. 무흠은 문고리를 잡은 채 입을 열었다.

“일어나십시오. 고낙조가 찾습니다.”

해화의 시선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무흠은 복도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다시 말했다.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시간이―”

“―시간이 촉박해요? 왜요?”

고개를 쏜살같이 돌린 해화가 따지듯 물었다. 지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해화의 어깨를 붙잡았다. 목소리가 조금 커지긴 했으나 조용했던 공간 안에선 꽤 심하게 울렸다. 무흠은 살짝 미간을 구기고서 문을 살짝 닫았다. 혹시라도 목소리가 새어나갈지 몰랐다.

“마음의 준비라도 하라고 말하는 거예요?”

“누나, 갑자기 왜 그래 진짜.”

지운이 허겁지겁 해화를 말렸다. 안 그래도 기운이 없는 몸은 힘없이 지운의 손에 떠밀렸다. 와중에 무흠을 노려보는 눈빛만큼은 흉흉했다. 뼈와 독기만 남은 것 같은 시선이었으나 무흠은 감흥 없이 그 시선을 받아 냈다.

해화가 풍기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비틀렸다는 건 눈치챘다. 산불에 휘감긴 시간 동안 해화의 몸에도 변화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몸 안에서 변이가 시작되어 해화에게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대화를 몇 번 나누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온도가 어떤지는 파악하기 쉽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모든 사람의 눈을 속일 순 없다. 특히 신뢰가 두텁지 않은 사이에선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고낙조 아주 멀쩡히 살아 있고, 지금 홍해화 씨 찾으니까 빨리 갑시다.”

“…….”

“왜요. 죽은 줄 알았습니까.”

끈질기게 이어지는 침묵에 무흠이 목소리를 한층 낮춰 물었다. 해화는 가만히 지운에게 가로막힌 채 무흠을 응시하다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지운의 팔을 내렸다.

“아니요. ……너무 긴장했나 봐요.”

해화가 던진 말은 그녀의 말투라고 하기엔 조금 낯선 면이 있었다. 무흠은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닫은 문을 다시 열었다. 먼저 나가라고 고개를 젖히자 해화가 천천히 걸음을 떼어 냈다. 지운은 그런 해화의 뒤에 달라붙은 채 무흠을 힐끔거리면서 방을 나갔다. 수호만이 방에 남았을 때, 무흠은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해. 안 나오고.”

“저도 가요?”

“이 대화 패턴도 지겹다. 진짜 컴퓨터도 못했으면 죽기 딱 좋았겠다.”

“사람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아저씨도 여기 빽 없었으면 나보다 빨리 죽었을걸? 아니다, 청주에서 탈출하려다 붙잡혀서…….”

2절, 3절까지 내뱉고 나서야 수호는 무흠의 표정을 확인했다. 큼, 큼. 목을 가다듬고 조용히 지운의 뒤를 쫓자 무흠이 등 뒤로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

서천에 들어온 이후 낯선 얼굴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터라 너무나도 평온한 분위기가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졌다. 해화는 무흠이 알려 주는 대로 길을 걷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리는 고통에 찬 신음에 고개를 들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맞지만 종종 들리는 울음소리는 어른보다 아이가 내는 소리에 가까웠다. 훌쩍이고 떼를 쓰듯이 울음기에 섞여 뭉개지는 발음. 해화는 함께 걷고 있는 지운과 수호를 돌아보았으나 그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여기에……, 어린 애도 있어요?”

가까워지는 울음소리에 해화가 참지 못하고 무흠에게 물었다. 무흠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해화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봅니까.”

“……애 우는 소리가 들려서요.”

해화는 들리는 그대로 대답했다. 무흠은 물끄러미 해화를 응시하다가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지운과 수호가 조용히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끝날지 모를 흰 복도를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많은 문을 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무흠이 걸음을 멈춘 곳은 길이 막힌 곳이었다. 무흠은 문을 열기 전 해화의 표정을 잠깐 살폈다. 해화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조금 떨고 있었다.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 있던 시선이 한 번에 쏠렸다.

“아저씨!”

지운이 낙조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두 팔은 떨어진 적이 없었다는 듯 온전히 돋아 있었다. 낙조는 지운을 바라보며 살짝 손을 들었다. 흉터가 가득했던 손은 말끔했다.

“이제 다 모였나?”

세성이 가벼운 목소리로 상황을 이끌었다. 해화는 낙조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양쪽 귀를 막았다.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온몸을 파고드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견딜 수 없었다.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자신이 듣는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돌이표였다.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소리. 이 방엔 식물도, 아이도 없었다. 감염된 사람도 없다.

“홍해화.”

“…….”

“너 지금 뭐 들리지?”

귀를 막고 달달 떨고 있던 해화에게 낙조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묻는 말에 해화가 겨우 고개를 들어 낙조를 다시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해화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거의 곁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커졌다. 낙조의 시선은 자신을 꿰뚫어 보듯 날카롭고 깊었다.

“이리 와서 들어줘.”

낙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걸 보여 주었다. 낙조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잘린 두 팔이 온전히 드러났다. 해화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서 몸에 잔뜩 힘을 주었다.

“야, 홍해화, 왜 그래. 뭔 소리가 들리는데 이렇게 떨어.”

처음 해화가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낀 밤이가 해화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해화는 몸에 밤이의 손이 닿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지운이 다시 해화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해화는 벌레라도 붙은 것 마냥 온몸을 털어 댔다.

“손, 손대지, 마, 악! 아악!”

“홍해화! 야! 정신 차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밤이가 해화의 두 손목을 붙잡고 소리쳤지만 해화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다. 거의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발악하는 해화를 지켜보던 세성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넓은 소매를 걷더니 하얗고 긴 손으로 해화의 이마를 짚었다. 항상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던 세성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해화를 살피는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들리는 대로 말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눈물에 젖은 해화의 눈이 세성을 응시했다. 여전히 두려운 기색이 역력한 해화는 숨을 헐떡였다. 진정하지 못하고 해화가 계속 몸을 떨자, 세성이 조금 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말해야 해. 너에게 얘기하는 게 아니니 안심해. 고낙조한테 뭐라고 하는지 들어봐.”

세성의 말에 해화가 훌쩍이면서 낙조를 돌아보았다. 차분히 가라앉은 시선과 무거운 침묵. 낙조의 팔이었던 것이 움찔거릴 때마다 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해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던 눈물이 몇 방울 떨어지는 걸 느낀 후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더, 더 죽여야 한단 말이야. 흐윽, 으으, 으아아……

“…….”

-아아아악! 아직 못 죽였는데, 죽여 버려야 하는데!

해화는 이명처럼 떠돌다가 다시 뼛속까지 파고드는 날카로운 아이의 비명을 들으며 낙조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세성의 말대로 이 말이 낙조를 향한 것이라면, 누구를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낙조를 이용해서 누구를 죽이려고 했단 말인가? 해화는 찢어질 듯한 아이의 비명이 들릴 때마다 몸을 떨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아직……, 못 죽였대요. 더 죽였어야 했는데.”

-더러워! 다 죽여 버릴 거야. 흐흑, 너무 아파……, 아파, 아프니까 그만해.

“아프대요. 그만하래요.”

-너무 추워. 아파. ……헌……, 싫어. 손대지 마. 아아아악!

“계속……, 아프다고…….”

고통에 가득 찬 아이의 신음 속엔 듣기 거북할 정도의 말들이 섞여 있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말이 아니라고 했지만 듣는 것조차 힘겨웠다. 해화는 다시 눈을 꼭 감았다가 세성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그만 듣고 싶어요. 애기가 너무 아파해요. 그만하라잖아요.”

“그게 다야?”

세성이 해화의 이마에서 손을 떼어 내며 물었다. 해화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는 죽지 않는댔어. 너무 아파, 네피, 네피 어디 있어……. 나 아파, 사람들이 오지 못하게, 해 줘.

세성이 허리를 펴면서 등을 돌릴 때였다. 어느 때보다 선명해진 아이의 목소리가 누군가를 부르며 웅얼거렸다. 여전히 울음에 범벅이 된 말이었지만 누구를 부르는지는 알 수 있었다.

“네피라는 사람을 찾아요. 자기는 죽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막아 달래요.”

해화가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죽지 않는다, 라는 문장을 내뱉을 때 해화는 낙조와 눈이 마주쳤다. 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사람……. 아주 잠깐이었으나 낙조의 눈동자 안에서 거센 파도에 휩쓸려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형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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