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동료 (2)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눈앞의 풍경을 의심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다.
깊게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깊은 잠에서 일어났을 땐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아 몽롱하다. 눈을 다시 감는다면 또 깊게 잠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다시 이만큼 푹 잠들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눈을 뜨게 된다.
특히 잠들기 전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면 눈 감기 전의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진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서부터 생각한다. 그게 정말 현실이었나? 진짜 일어났던 일이었나.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접한 버릇이다. 부모님의 장례식이 끝난 후 아무도 없는 집 맨바닥에서 일어났을 때 느꼈던 정적과 비슷한 온도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해가 떴는지 졌는지조차 알 수 없고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 안개에 온몸이 걸쳐진 듯 숨을 쉴 때마다 울렁이는 시야가 괴롭다.
“하…….”
숨을 틔우자 고개를 돌릴 힘이 생겼다. 베개 옆엔 안경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무심코 안경 쪽으로 팔을 뻗었다. 몇 번 눈을 깜박이고, 손가락에 안경이 감기는 순간 사고가 멈췄다.
‘손이……?’
다시 한번 힘을 주어 안경을 쥐었다. 손끝과 마디에 감기는 안경테의 감촉이 생생했다. 낙조는 안경을 쥐고 있는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렸을 적 뜨거운 물에 닿아 생긴 흉터가 있어야 할 자리는 깨끗했다. 그 어떤 상처도 없었다. 손을 천천히 허공에 들어 올렸다. 고작 하루라고 할 수 있겠지만 눈을 뜨고 있던 시간은 무척 길었다. 낙조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자연스럽게 매트리스를 누르고 몸의 중심을 잡는 반대쪽 손도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이 몇 시지.’
눈을 감기 전 세성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성은 잘려나간 팔을 보고서도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듯 말했다. 지하에 있는 방이라 햇빛은 기대할 수 없었다. 시계는 한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일까, 낮일까. 여전히 방 밖은 조용했다. 이불을 꽉 쥐니 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에 감겼다. 낙조는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두 팔이 돌아왔다. 얼마나 잠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확신할 수 있는 건 자신의 감각뿐이다. 덜컥 혼자 남겨진 기분에 낙조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떨리는 손으로 더듬더듬 안경을 찾아 쓰고서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낙조는 침대에서 내려와 어깨부터 손까지 더듬더듬 매만져 보았다. 만지는 감촉과 닿는 감촉 모두 생생했다. 살갗을 덮고 있는 얇은 옷의 무게까지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가도 되나.’
시선이 조용히 닫힌 방문으로 옮겨 갔다. 여전히 인기척 하나 없는 복도. 한 걸음을 떼어 냈다. 정신이 반 이상은 나가 있는 상태에서 들어온 곳이라 어떻게 이 방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모든 상황이 끝난 거라면 어떨까. 모두가 무사히 살아 있고, 나는 잠들어 있었던 것뿐이면 어떨까. 낙조는 가장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바라면서 문고리를 잡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거야.”
바깥의 인기척은 낙조가 문 앞에 설 때까지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손잡이를 돌리기 위해 손을 드는 순간, 익숙한 세성의 목소리가 곧장 귓속을 파고들었다. 낙조는 한 걸음 물러난 채 가만히 고개를 들고 문이 열리는 걸 지켜보았다.
“……내 말이 맞지? 멀쩡하잖아.”
조용히 문을 연 세성이 낙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뒤로는 무흠과 밤이가 서 있었다. 낙조의 시선에 그들이 휘말리고, 눈이 몇 번 깜박이기도 전이었다. 무흠의 뒤에 서 있던 밤이가 안으로 뛰어들며 낙조의 손을 붙잡았다.
“너, 너, 진짜 괜찮아?”
밤이의 손길이 느껴졌다. 낙조는 가만히 밤이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누나. 누나 언제……, 들어왔어요?”
“야! 니 보려고 왔지! 팔, 이거, 가짜 아니지? 어?”
“저도, 지금 막 일어나서…….”
밤이에게 손을 붙잡힌 채 입을 겨우 떼어 냈다. 정신은 또렷했으나 잠들기 전 남은 기억이 뒤죽박죽 엉킨 상태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직 밤이에게 남은 감정 또한 완전히 맑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골라야 하는지도 몰라 낙조는 곤란해졌다. 슬쩍 잡힌 손을 빼내니 밤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
묘한 정적이 흘렀다. 낙조는 밤이가 자신에게 한 말을 되짚어 보았다. 깨어난 이후 잡음처럼 계속 꼬이던 환청은 들리지 않았으나, 밤이가 말을 건넸을 때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가려냈다.
‘진짜로 걱정했나 보네.’
무심결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증 없는 확신이었으나 그 판단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전처럼 말 한 마디를 붙잡고 늘어져 생각이 지나치게 늘어난다거나 의심이 들지도 않았다. 상대는 그저 말만 했을 뿐인데, 말의 모양새가 형상처럼 보여 꼭 색깔을 지닌 듯 그것이 깨끗한지 탁한지 알 수 있었다.
“몸 상태는 좋아 보이네. 기운도 넘쳐?”
그때 세성이 대화를 비집고 들어왔다. 대답을 찾지 못해 침묵하던 낙조가 고개를 돌렸다. 밤이는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간 낙조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팔의 힘은 여전하냐 물어본 거야.”
“아직 확인 안 해봤습니다.”
“해 봐.”
세성의 말은 밤이의 말보다 더욱 또렷했지만 그 속까지 파헤치긴 힘들었다. 거짓이 아님은 분명했다. 다만 일이 일어났을 때와 깨어난 후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 오히려 의심이 싹트는 인물이었다. 낙조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세성이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머리 굴리지 말고.”
세성은 가볍게 낙조의 속을 꿰뚫어 보았다. 여전히 세성의 속은 보이지 않았다. 세성을 한정하여 마음이 가려서 보이는 건가. 낙조는 조용히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아직 몸에 깃든 감정이 그리 불같지는 않았기에 다짜고짜 힘이 불거지진 않았다. 천천히 옮는 것처럼 툭, 툭, 핏줄이 얇은 피부 위로 돋아나고 있었다. 낙조는 보란 듯 세성에게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세성은 붉으락푸르락 거세게 요동치는 혈관의 움직임을 가만히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복 속도는 나쁘지 않네.”
“새 팔에도 남아 있습니까?”
“식물 말하는 거면, 맞지. 팔에만 붙은 게 아니니까.”
“신체기관마다 각기 다른 게 붙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팔은 왜 똑같아요?”
“팔이……,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했잖아. 단순하게 생각해. 팔 때문에 너도 이리저리 끌려다닌 거 맞지? 그렇게 끈질기게 붙어 있던 게 팔 떨어졌다고 같이 나가떨어졌을 것 같아? 아득바득 어깨에 뭐라도 남겨 놨겠지.”
세성의 말에 낙조는 손을 들어 어깻죽지를 매만졌다. 아직 발아는 하지 않았으나 분명 이 안에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낙조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뽑아낼 수도 있어요?”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돼.”
“죽는 거 되게 어려운 것처럼 말했으면서…….”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거야, 앞으로가. 전처럼 그 팔한테 네 몸 주도권이 넘어가면 안 된다고. 다 자라나기 전에 네가 압박할 줄 알아야 해.”
“…….”
자라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알고 그동안 통제하는 법을 익힐까. 낙조는 눈을 뜨자마자 주어진 책임감에 잠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에 붙은 팔의 능력도 몇 달에 걸쳐 가며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거의 실패에 가까웠지만.
“제 팔 여기에 가져왔죠.”
갈라진 목소리로 낙조가 세성에게 물었다. 말이 또렷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낙조는 세성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한 번 볼게요.”
“시간이 꽤 지나서……, 다 시들었을 텐데.”
“이유가 있어서 가져온 거 아니에요? 무엇보다 여기 사람들이 더 잘 알 거 아니에요. 약초든 뭐든 식물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나를 데려온 것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 데려온 거겠죠.”
“흠…….”
벌컥 화를 낼 법도 했지만 낙조는 천천히 한 마디씩 읊어 주었다. 이렇게 큰 규모의 단체가 지금까지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낙조의 의심에 힘을 실었다. 세성만 보더라도 자신보다 훨씬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저런 사람이 한둘이 아닌 곳에서 굳이 스스로 힘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게 의문스러웠다. 이들이 자신 때문에 움직인 것도 정치적인 이유임이 분명했다.
세성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네 거였는데 안 보여 줄 것도 없지.”
“그리고 사실대로 얘기해요. 내가 어떤 식으로 힘을 써야 하는지.”
“…….”
“땅굴이나 파서 변종 일일이 처리하라고 부른 건 아니잖아요.”
“아니지. 그런데 네가 이 얘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네.”
“뭐가요.”
“그건 가서 얘기하지. 떨어진 팔은 내 방에 있으니 거기로 다시 가자고.”
세성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웃음을 짓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그의 말은 또렷하기 그지없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은 들어도, 세성이 그것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다는 게 느껴졌다. 소리의 형상이 보이고, 촉각으로 느껴진다. 낙조는 손을 꽉 쥐었다가 밤이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대로 세성을 따라 나갔다. 사방이 하얀 복도를 걷고 걸으니, 눈앞이 빛으로 가득 차 따가울 지경이었다.
*
“어라, 안 죽었네.”
세성이 자신의 방문을 열자마자 놀랐다는 듯 내뱉었다. 그러나 그가 이 사실을 예상하고 있으면서 일부러 내뱉은 말임을 낙조만이 알았다. 낙조는 피고름으로 범벅이 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자신의 두 팔을 내려다보았다. 한쪽 팔은 움직임이 없었으나 오른팔은 아직 손가락을 까닥이며 숨을 쉬는 것처럼 움직였다.
“…….”
잘려나간 신체 부위를 보는 기분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누군가가 만들어 낸 분장 소품처럼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온갖 흉터로 가득 찬 두 팔에선 여러 부상의 흔적이 보였다. 낙조는 손톱으로 바닥을 찍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오른팔을 응시했다.
“오래 못 갈 것 같았는데, 그래도 주인 왔다고 인사하려나.”
세성이 장난스럽게 중얼거렸으나 낙조는 맞받아치지 않았다.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서서 오른팔을 마주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은 뼈마디가 툭툭 불거져 살가죽을 걸친 것처럼 징그럽게 이어져 있었다. 꼭 자신을 응시하는 듯 가만히 손가락만 세운 오른팔로, 낙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야 고낙조 뭐 해!”
밤이가 거친 목소리로 낙조를 불렀다. 이 말도 진심이다. 화가 났다기보단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 낙조는 허공에 올린 손을 잠시 주춤거렸다가 입을 열었다.
“실험이요.”
새로 자라난 팔에도 같은 식물이 자라나고 있다면, 떨어진 팔처럼 지능을 갖고 있다면……, 갈라졌던 서로를 못 알아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새로 난 팔에선 온전하게 다 자라지 않아 어떻게 해서든 살려고 하는 저놈이 달려들 수도 있었다. 이것 외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은 다양했다. 그러나 낙조가 확인해야만 하는 건 자신이 떨어진 팔을 쥐어야만 알 수 있었다.
‘동질감을 느끼느냐, 빼앗겼다는 분노를 느끼느냐…….’
확실히 새로 난 팔에선 아직 온전히 자리를 찾지 못했는지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별 반응이 없었다. 반면에 손톱을 세우고 바들바들 떨고 있던 떨어진 오른팔은 낙조의 새 손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핏줄을 크게 부풀렸다. 가시를 바짝 세우는 모양새와 비슷했다. 세성은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며 눈을 크게 뜨고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덥석.
“윽.”
낙조의 손끝이 시퍼런 살가죽에 닿기 직전이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태로워 보였던 낡은 오른손이 낙조의 손목을 겁 없이 잡아챘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은 장난이라는 듯 억세게 옭아매는 힘에 신음이 절로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뒤에서 무흠과 밤이가 함께 놀라는 소리가 들렸으나 낙조는 왼손으로 그들이 오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뼈마디가 온전히 느껴질 정도로 손목을 조이는 힘은 대단했다. 자신의 몸 없이도 이런 힘을 낼 수 있는 기생체였나. 낙조는 설핏 웃음이 새려는 걸 참고서 중심을 잃지 않도록 몸에 잔뜩 힘을 주었다. 낡은 손은 처음엔 낙조의 손목을 터뜨리려는 것처럼 온갖 힘을 짜내더니, 뜻대로 되지 않자 손톱을 세워 낙조의 새 피부를 꼬집듯 누르기 시작했다.
새 손을 얻자마자 또 흉터를 지게 생겼다. 낙조는 미간을 좁히고서 왼손으로 자신에게 매달린 낡은 팔뚝을 거세게 잡아 뜯었다. 낡은 손은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몸을 거의 회복한 낙조의 힘에 빗댈 순 없었다. 점차 낙조의 새 피부가 갈리면서 손톱이 뜯겨나가는 대로 기다랗고 얇은 상처가 새겨졌다. 핏방울이 스멀스멀 거품처럼 올라왔고, 기울어진 팔의 각도대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낙조의 피 한 방울이 낡은 손에 닿자마자 손은 생명수라도 들이킨 것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거의 다 떼어 냈다고 생각했을 무렵, 거세지는 반항에 낙조는 다시금 숨을 들이마시고서 있는 힘껏 낡은 손을 낚아챘다.
후두두둑, 투둑.
완벽히 떨어져 나간 낡은 손은 갈증에 허덕이는 듯 낙조의 왼손에 붙잡힌 채 발버둥을 쳤다. 떨어지기 직전까지 낙조의 피부를 파고들었던 손의 흔적대로 피가 줄줄이 떨어졌다. 새하얀 바닥 위로 검붉은 피가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다.
“……나가기 전에 청소하고 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세성이 낙조에게 말했다. 저 말도 진심이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진심. 낙조는 대답 대신 한숨을 푹 내쉬고서 왼손에 들린 낡은 팔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제 붙잡을 것도 없는 상태였다. 낡은 손은 허공에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가 이내 축 쳐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낙조는 굳이 힘을 주어 낡은 손에 압박을 가하진 않았다.
낡은 손이 자신에게 달라붙었을 때 곧장 느낄 수 있었던 건 동질감도, 연민도 아니었다. 구석에 몰린 인간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서든 살려고 하는 발악과도 같았다. 다시 자신의 팔을 빼앗기 위해서, 원래 제 것이었던 것 마냥 구는 태도는 꼭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가질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니 물고 늘어지는 방법밖에 없는 거다.
자신의 몸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입이 달려 있지 않기에 대화는커녕 의사소통 자체를 할 수 없었다. 낙조는 테이블 위에 다시 낡은 손을 내려놓고서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홍해화.”
“뭐?”
무흠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해화의 이름에 즉각 반응했다. 낙조는 몸을 반쯤 돌려 무흠을 응시한 채 다시 한번 말했다.
“홍해화가 필요해요.”
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 유일하게 식물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말을 하는 사람. 낙조의 머릿속엔 해화의 이름만이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