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동료 (1)
잡음 하나 없이 고요한 방안에서, 세성은 물끄러미 흰 테이블 위에 놓인 낙조의 두 팔을 내려다보았다. 꽤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음에도 손등을 건드리면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뜯겨나간 부분은 어떻게든 출혈을 막기 위해 남은 살점끼리 엉겨 붙어 있었다. 숙주 없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홀로 영양분을 만들어 낼 수 없으니 조금만 더 지켜본다면 완전히 숨이 끊길 건 분명했다.
왼쪽 팔은 이제 건드려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오른팔이었다. 재갈을 문 성난 짐승처럼 계속 펄떡거리는 것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듯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손바닥이 스스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진 못했다. 테이블 위는 피고름 범벅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역한 냄새도 심해졌다. 낙조의 피에서 풍기던 달콤한 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세성은 소매로 코 밑을 막고서 얇은 막대기로 다시 오른팔을 한번 쿡 찔러 보았다. 움찔, 움찔. 험악하게 돋은 핏줄이 약이 오른 것처럼 움직였다.
‘장승이 그리 멍청한 사람은 아니니 곧 오겠지.’
잘린 오른팔은 세성이 아무리 찔러 봐도 움직일 뿐 공격하진 못했다. 낙조의 몸에 붙었을 때와는 달랐다. 숙주의 힘을 잃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지물과 같았다. 한순간에 이렇게까지 나약해질 수 있나. 낙조의 몸에 빌붙어 멋대로 힘을 부렸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똑똑.
떨어져 나간 팔이 도망이라도 갈까 눈으로 붙잡고 있던 세성의 뒤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세성은 아무 표정 없던 얼굴 위로 웃음을 지었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는군.’
세성은 노크 소리를 따라하듯 테이블 위를 똑똑 두드리고선 뒤돌았다.
“들어와, 장승.”
말이 끝나자 문이 살그머니 열렸다. 무흠이 긴장한 얼굴로 먼저 들어섰다. 세성은 뒷짐을 진 채 가만히 무흠을 응시했다. 무흠은 문을 닫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누군가를 돌아보듯 고개를 돌렸다.
“……세성님, 일단 설명―”
“―역시 장승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게 맞았잖아?”
“예?”
“삼승님의 눈에 안 띄게 잘 데려온 거겠지? 일부러 오늘 문지기도 조금 맹한 아이로 세워 뒀단 말이다.”
“……일부러 처음부터 안 데리고 오신 겁니까?”
“저 여자 성질이라면 서천에 들어오자마자 삼승님의 머리채부터 잡았을지도 모르니까.”
세성은 무흠의 뒤에서 빼꼼 얼굴을 내민 밤이를 응시하며 말했다. 무흠의 당황스러운 시선에도 세성의 눈길은 밤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밤이 또한 예상하지 못한 대화에 적잖이 놀란 듯 입을 열지 못했다.
“세성님은 삼승님께서 정말……, 서천과 맞지 않는 뜻을 품고 있다고 보십니까?”
“음……, 내가 그분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그래도 삼승님의 목에 칼을 들이밀진 않아. 삼승님의 진짜 뜻이 보이면 이 힘을 보탤 테니까.”
“상황에 따라 입장을 번복한다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삼승님이 그런 차이도 알아차리지 못하시려고요.”
“아무도 모르지. 삼승님이 일부러 보이지 않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 않나.”
“…….”
서천의 우두머리인 삼승이라 해도 멋대로 권력을 부릴 순 없었다. 서천에선 치유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힘을 사용하는 건 용납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팀이라고 해도 동시에 그 눈들이 삼승을 비롯한 서로를 감시하는 눈이었다. 삼승의 발자국 하나조차 어디에 찍혔는지 서천의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서천 사람들 중 누구보다 무거운 자리에 앉아 있으나 그만큼 투명하게 자신을 보일 수밖에 없는 자. 서천이 허락하지 않는 힘을 모아야 한다면 삼승이 직접 움직일 순 없었다.
“그 말에 진심을 거실 수 있습니까.”
무흠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밤이는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방문을 닫았다. 세성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밤이와 무흠을 번갈아보다가 입을 뒤늦게 뗐다.
“아무렴. 내 진심만 걸었을까, 고낙조의 목숨도 걸렸는데.”
순간 밤이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무흠이 팔로 그녀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세성의 멱살을 쥐어틀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슨 말이야.”
“삼승님이 만들려는 힘의 중심에 고낙조가 있다는 말이지.”
“……도대체 니들은 고낙조 없이 아무것도 못 해? 도대체 고낙조, 고낙조, 걔가 뭘 잘못해서 죽는 것까지 너네한테 허락받아 가면서 이 개고생을 해야 해!?”
“우리가 고낙조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니잖아? 그리고 고낙조를 영웅처럼 떠받들 생각도 없어. 세상을 뒤바꿀 만큼 힘이 엄청난 애는 아니거든. 그런데 세상이라는 건, 어떤 존재가 이미 모든 걸 계획하고 만들어 낸 곳이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세상을 통과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세상을 바꾸었나? 짧은 시간에 빗대어 보자면 바꿨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세상의 시초부터 보자면 그저 종교의 창시자였을 뿐이다. 사람들이 세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람이었던 거지. 나는 고낙조도 비슷한 맥락으로 봐.”
“…….”
“겉으로 보기엔 그저 모든 생명을 말려 죽이려는 재앙 같은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끔 설계된 사람이 고낙조다. 고낙조를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이해해야 해.”
세성은 천천히 웃음을 거두면서 말을 늘어놓았다. 창백할 정도로 흰 그의 얼굴에서 빛이 떠나고 어둠이 짙어질수록 목소리도 점차 무거워졌다. 마침내 낙조가 필요한 이유까지 정확하게 내뱉은 세성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밤이는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걸 고낙조도 알아?”
잠시 고요했던 세성의 방에 밤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세성은 거두었던 시선을 다시 밤이에게 올려놓았다.
“고낙조도 자신이 그런 사람인 걸 아냐고.”
“뭐……, 대충은 아는 것 같던데.”
세성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미덥잖게 대답했다. 밤이가 왈칵 소리를 내지르려는 찰나, 무흠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자세하게까지 알고 있단 말입니까?”
“적어도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진 않다는 말이지.”
세성의 대답은 항상 간결하여 시원한 듯하면서도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무흠은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라는 걸 알면서도 찝찝한 기분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 씹 진짜!”
“조용히.”
“……일단 알았으니까 고낙조 좀 보게 해 줘.”
답답한 상황을 웬만하면 견디지 못하는 밤이를 겨우 말린 무흠이 세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 또한 밤이의 의견에 동의했다. 세성의 의견이 어떻든 낙조의 상태를 먼저 확인하는 게 옳았다.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 사건의 중심에 놓인 당사자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
“어디 보자, 지금쯤이면……, 일어났겠네. 대신 너, 조용히 따라와야 한다. 네 출입은 내 힘으로 허락된 거니까.”
세성은 이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준 세성이 곧 방문을 열었다. 밤이가 먼저 발을 떼려는 걸 무흠이 막고서, 자신의 등 뒤에 밤이를 숨겼다. 곧 적막한 복도에 셋의 그림자가 옅게 들었다.
*
켈리의 실험실은 분주했다. 백신 제조에 투입된 연구원들은 모두 다른 부서에서도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샘플의 구조를 설명해 주진 않았다. 켈리의 명령이었다. 켈리가 만들어 낸 백신 제조법은 오로지 연우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어떤 조합으로, 어느 정도의 양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는 연우만이 알았다.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맡았지만 백신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을 대량으로 만드는 건 연우의 몫이었다.
‘분명 백신 말고 다른 약도 만들었던 거야.’
그런 연우의 머릿속엔 온통 켈리의 방 근처에서 봤던 남자 생각뿐이었다. 그는 켈리와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켈리의 곁을 지키는 이들이 본부 사람들이 아닌 것은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악어와 새에서부터 함께 해온 것 같은 이들은 켈리의 명대로 본부 보안팀 대신 켈리를 지켰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필요할 때 즉각 나타났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 눈치였다. 분명 믿을 수 없는 시선을 다 비켜 세우고 그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대화를 하는 게 분명했다.
‘남자 반응은 뭔가에 중독된 것 같았고, 금단 현상에서 자주 보이는 말투랑 분노가……, 있었지.’
연우는 메스실린더를 쥔 채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엿들은 대화 내용은 짧았으나 남들 눈에는 떳떳하게 보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을 중독 상태에 빠지게 하는……, 마약류 같은 거.’
그나마 요 며칠 사이 가장 잠잠했던 생각의 웅덩이에 큰 돌 하나가 던져졌다. ‘마약’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연우는 메스실린더를 떨어뜨릴 뻔했다. 경직돼 있던 입가가 파르르 떨리며 미소를 지었다.
‘불법 마약 거래로 현장에서 잡힌 적도 있다고 했었지, 켈리 화이트가.’
처음 켈리의 이름에 대해 들은 날이 떠올랐다. 정보실을 찾아가 수호에게 켈리의 정보를 닥치는 대로 알아내라고 했던 날, 그녀가 체포됐다는 기사엔 분명 ‘마약 거래’라는 죄목이 쓰여 있었다.
서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그녀가 서천에서만 길들이는 약초로 백신이 아닌 마약류의 약을 제조하고 있다면……. 연우는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쥐고 있던 메스실린더를 제자리에 두었다. 오전에 이미 남은 연구원들이 처리할 양의 샘플은 만들어 두었으니 아무도 보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켈리에게서 받은 파일은 다시 모두 반납했지만, 그녀가 갖고 있던 서천의 약초에 대해선 빠짐없이 자신의 컴퓨터에 기록해 두었다. 연우는 조심스럽게 컴퓨터 앞으로 의자를 움직이곤 꽁꽁 숨겨 둔 파일을 열었다. 낯선 이름의 약초들이 가득한 파일 안을 훑던 연우는 유독 제조법이 길게 쓰인 약초를 하나 찾아냈다.
[천사의 나팔꽃 주위를 찾다 보면 악마의 나팔꽃을 찾을 수 있다.]
긴 제조법이 얽힌 약초의 이름은 없었다. 천사의 나팔꽃은 땅을 향해 피는 나팔 형태의 꽃으로, 원래는 하늘을 향해 피는 흰 꽃인 ‘악마의 나팔꽃’을 개량해서 만든 원예용 꽃이다. 연우는 첫 문장을 읽고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악마의 나팔꽃은 밤에 내뿜는 향이 유혹적이지만 독성을 갖고 있어 독말풀이라고도 불린다. 꽃가루 알러지를 유발하고, 손으로만 만진다 해도 독을 전염시키기 때문에 반려 식물로는 적당하지 않다. 특히 잎사귀와 종자에 맹독이 있어 쉽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씨앗은 사람의 뇌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씨방이 무르익어 터지면서 씨앗을 터뜨린다. 맹독을 가진 꽃이지만, 생각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기도 하다.
‘사람들 눈이나 손에 쉽게 닿는 곳에 있는 걸 귀하게 키우진 않았을 거 아냐.’
분명히 감춰진 내막이 있을 것이다. 연우는 턱을 괸 채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파일을 재빨리 껐다. 텅 빈 바탕화면을 응시하고 있자,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연우 팀장님.”
“아, 기유현 씨.”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 인상이 깊었던 남자였다. 유현은 마스크를 살짝 벗으면서 연우에게 인사했다.
“점심 안 드세요?”
“아, 시간이…….”
“아침도 안 드셨잖아요. 점심은 드셔야죠.”
유현의 두 볼엔 보조개가 가볍게 파여 있었다. 연우는 코끝을 긁적거리다가 잠시 대답을 늦췄다. 머릿속엔 온통 아직 미처 읽지 못한 ‘악마의 나팔꽃’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사람의 손에 쉽게 닿는 곳에 있다고 한다면 국내에서 재배하는 것조차 불법인 양귀비, 마리화나 등의 마악류 식물에 포함돼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수사망을 벗어난 식물로 사람을 중독시켜 금단 현상까지 일어나게 할 수 있는 식물을……, 개종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천사의 나팔꽃은 악마의 나팔꽃에서 개종된 꽃이다. 독말풀이라고 불릴 정도로 맹독이 있는 꽃에서 반려 식물로 키울 수 있을 정도까지 개발한 것이다.
“유현 씨. 원래 있던 것을 많이 만드는 거랑, 있던 걸 없애는 것 중에서, 뭐가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네?”
유현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심 하나 없이 묻어 나오는 맑은 표정. 청주에 오고 난 이후로는 쉽게 볼 수 없는 인상이었다. 연우는 목소리를 낮춘 채 손짓으로 문을 닫으라 속삭였다. 유현이 뒤를 한 번 돌아본 후 연우의 방문을 닫았다. 완전히 바깥의 소음이 멎자, 연우는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다시 유현에게 물었다.
“부풀리는 게 더 쉽겠죠?”
“그렇죠. 지금 백신 제조도 그런 방식이니까요.”
“…….”
“팀장님께서 먼저 조합을 하신 후, 저희는 팀장님께서 주신 걸 복제하는 일을 하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일은 어때요? 보람차요?”
“그럼요. 드디어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연우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유현도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연우는 테이블 위를 조금 정리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가죠. 저 기다리신 거 아니에요?”
“아, 네. 가시죠 팀장님.”
유현과 함께 나란히 연구실을 나왔다. 파도란 여자가 근처에서 서성일 수도 있겠지만, 곁에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쉽게 자신에게 접근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를 지키는 사람이 켈리 말고도 있어야 해.’
연우는 유현과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을 감시하고 있더라도 목격자가 있는 이상 자신을 해칠 순 없을 것이다. 목격자 하나를 처치하면, 다른 목격자가 생겨날 가능성은 반드시 생긴다. 연우가 본부 안에서 올라온 위치만큼 그녀가 사라지는 순간 비어 버린 흔적은 본부 내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곁에 둘 사람이……, 나를 믿는 사람을 만들어야 해.’
유현은 내내 웃으면서 연우에게 점심 메뉴에 대해 얘기했다. 연우는 그의 말에 입으로만 웃으면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