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126화 (126/202)

126화. 뼈와 살

세성은 가장 늦게 나타났다. 각자의 옷과 챙겨온 수건으로 지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잘려 나간 두 팔은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우의를 쓴 남자가 낙조의 팔에 감긴 해초를 떼어 냈다. 낙조는 벽에 기대 호흡을 가쁘게 내쉬었다. 밤이와 지운이 각자 한쪽 팔을 맡았다.

“안 아파?”

“피가 너무 많이 나오는데…….”

밤이가 낙조에게 물었다. 낙조는 눈동자만 굴려 밤이를 응시했다. 다급한 손.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떨림. 걱정. 불안. 우려. 밤이의 얼굴과 떠는 몸짓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그런 것들이었다. 어깻죽지를 누르는 압력 말고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아직도 팔이 붙어 있는 것 같은데, 힘을 주면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정작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뿐이었다.

무흠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세성과 함께 얼굴을 드러냈다. 말할 수 없는  불만이 가득 쌓인 표정이었다. 세성은 낙조의 상태를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어쩐지 그의 반응이 낙조에겐 가장 편안하게 느껴졌다. 요란법석 떨지 않는 것.

세성은 낙조를 지나쳐 우의 쓴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낙조의 팔에 감겨 있었던 해초를 확인했다.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 싶더니, 세성은 이내 낙조의 두 팔을 들고 돌아왔다. 해초가 공격한 흔적이 그대로 남은 살갗은 얼룩덜룩했다. 축 늘어진 열 손가락을 보아도 팔 두 쪽을 몽땅 잃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세성이 들고 있는 건 마네킹의 팔처럼 딱딱해 보였다.

“그리 걱정 말아. 배가 도착할 때까지만 참으면 돼.”

가벼운 목소리로 세성이 말했다. 밤이가 이미 피로 축축하게 젖은 옷을 쥔 채 소리쳤다.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어요! 지금 정신 차리고 있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요!”

“오히려 잘 된 일이야. 애쓰지 않고 악한 걸 떼어 냈으니.”

세성의 대답은 이해할 수 없는 것뿐이었다. 입을 움직일 힘이 나지 않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밤이는 인상을 쓰고서 곧장 세성의 대답을 맞받아쳤다.

“뼈가 부러졌어! 빠진 것도 아니고 잘렸다고! 뭐가 그렇게 태연해? 사람 목숨 귀하게 여긴다는 말이 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는 뜻이었어?”

“너는 더 조용히 하지 않으면 서천에 들어갈 수 없겠다. 입이 가벼운 자는 서천에 들어갈 수 없어.”

“미친 새끼야! 죽으면 끝이야. 죽으면 끝이라고……. 뭐가 그렇게 뻔뻔해, 이렇게 될 때까지 얼굴 한 번 안 내비쳤으면서!”

“죽지 않아. 서천까지 무사히 당도한다면 뼈와 살은 다시 살려낼 수 있어. 삼승님도 환인에게 살살이 풀을 쓰는 것 정도는 이해하실 테니.”

세성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밤이는 알 수 없는 세성의 말에 욕지거리를 쉼 없이 내뱉었으나 세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우의 쓴 남자에게 낙조의 팔을 잘 보관하라 이를 뿐이었다. 남자는 두 손으로 낙조의 팔을 받아 들고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말을 하지 않는 자는 무흠뿐이었다. 그는 여러 생각이 꼬인 얼굴로 말없이 낙조의 잘린 어깨를 내려다 봤다. 어쩌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는지는 모르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무흠의 시선 안은 폭풍이 들이닥친 것처럼 사나웠다. 여전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아무리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도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그 사람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방심하는 순간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

“살살이 풀은 뼈나 살을 새로 돋게 하는 약초다. 설화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 물론 이걸 밖에 알려선 안 돼.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려서 다행이다만. 서천의 약초에 대해 발설하는 자는 장승이 직접 처리할 거야. 입으로라도 약초를 훔쳐선 아니 된다는 말이니 주의해. 특히 너.”

세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낙조와 처음 대면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는 나이에 맞지 않는 말투를 사용했다. 말과 육체가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세성은 밤이를 지목한 후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는 주의를 내렸다. 곧이곧대로 듣고 있을 밤이가 아니었기에 곧장 밤이가 소리를 쳤으나 그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윽고 세성은 무흠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정신을 잃으면 안 되니 창고에 넣어 두어야겠다. 장승, 부탁해.”

“……앞으로 몇 시간이나 남았습니까.”

“아는 걸 모르는 척하지 마. 지금부턴 물도, 먹을 것도 주지 마. 기가 약해진 틈에 다른 것이 달라붙을 수 있어.”

“심방의 능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아니지. 팔에만 붙어 있던 게 아니니까. 장승은 아는 걸 왜 자꾸 물어봐? 정보를 흘리고 싶은 거야?”

세성이 불쾌한 듯 무흠을 노려보았다. 무흠은 아니라고 대답한 후 밤이와 지운을 낙조에게서 떼어 냈다. 밤이와 지운이 무흠에게 뭘 하는 거냐고 다급하게 붙잡았지만 무흠은 완강했다. 그는 낙조를 들쳐 업고서 세성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세성의 방 반대편에 있는 창고. 창고라고 불렀으나 아무것도 없는 방 가운데에 낙조를 내려놓았다. 낙조는 총기 없는 눈으로 세성을 끔벅끔벅 응시했다.

신체가 잘려나간 적은 처음이다. 그럼에도 의식이 이렇게나 또렷할 수가 없었다. 세성이 내뱉은 말을 조합해 보자면, 오른팔이 잘려나간 게 오히려 잘 됐다는 뜻인데……. 사지가 멀쩡한 채 서천에 들어갔다면 오른팔을 일부러 자르려 했을까? 오른팔이 잘려나간 후에도 그 망할 저승사자 같은 건 몸에 남아 있다는 뜻인가. 물어볼 것이 너무나도 많았는데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몸 안에 갇힌 것처럼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세성은 무흠과 남자를 물린 후 낙조의 주위에 무언가를 뿌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타다 만 이파리였다. 불에 그을렸던 흔적이 분명히 남은 이파리들. 세성은 뚫린 곳이 없게 촘촘히 원을 그려 이파리 재를 뿌렸다. 그리곤 허리를 펴고서 여유롭게 하품을 내뱉었다.

“제주에 도착할 때까진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거야. 아까도 말했듯이 서천에만 잘 간다면 팔도 다시 얻을 수 있어. 그동안 좀 쉬도록 해.”

꼭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처럼 세성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허리를 퉁퉁 두드리더니 이내 창고에서 나갔다. 불도 없이, 사방이 막힌 곳에서 몇 시간을 혼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버려질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되었다. 고통이 돌긴 했으나 왠지 모르게 그 통각은 심하지 않았다. 팔이 잘려나갔는데, 정신은 또렷했다. 낙조는 세성이 뿌린 그을린 이파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천이란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저런 자가 있을까. 자신 또한 일반적인 사회의 외곽에서 서성거리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런 공간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허구와 상상을 지나친 망상에 불과했으니까. 이미 잘려나간 것을 약초로 돋게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죽은 이까지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달라. 그런 약초나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왜 밖에 알리지 않을까? 수많은 생명을 살려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걸려서?

자비로운 선택은 평등하지 않다. 자비를 베풀기 이전엔 용서가 있어야 하고, 용서가 있으려면 죄가 존재해야 한다. 선택을 내리는 자에게 죄를 지었는가. 내가 누구에게 죄를 지었나. 누가 나를 용서하고 피와 살을 다시 주는가. 내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갔는데 다시 내 것이 주어진다고? 재료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죽은 것을 어떻게 붙이느냐 말이다.

낙조는 마른침만 삼키면서 생각했다. 문 앞은 우의 쓴 남자가 지키는지 가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해화와 지운의 목소리도 종종 들렸다. 저렇게 사람을 둘 수는 없는 일이라며, 무흠에게 따지는 듯한 소음도 들려왔다.

‘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껍데기에 갇힌 것과 다름없다. 보고 듣는 것만이 가능했다. 발언의 기회가 없다. 생각하는 것만 가능하다. 이게 무슨 뜻일까. 쉴 새 없이 생각해 봐도 잘려 나간 두 팔이 스스로 자라나는 것은 아닌데.

서천은 어째서 자신들을 숨긴 채 사람들을 도우려 했을까. 죄를 짓지 않을 것 같은 자를 선별한다는 건 어떤 기준에 있어서 선하고 악한가. 세성이 보는 눈은 우리가 알고 있는 눈과 같은 것일까. 세성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르면서, 낙조는 가끔씩 자신이 제어할 수 없었던 힘을 뿜어낸 오른팔을 생각했다.

‘오른팔이 악한 게 맞았다면, 나는 악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야.’

일반적인 자신의 마음으로는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재앙이 터진 후 낙조의 감정은 말과 표정으로 분출되기보다 오른손이 대체했다. 가장 먼저 자신을 지키기 위한 힘을 쓸 때, 분노가 차오를 때, 슬플 때 모두, 오른손은 낙조가 직접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반응했다. 처음엔 그것이 자신의 신경과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어쨌든 자신의 몸이었으니까. 오른팔도 자신의 신체 일부분이니까.

반대가 맞았다. 자신은 오른팔의 일부였다. 오른팔이 주체였고 자신은 주로 쓰이는 재료였다. 오른팔이 더욱 자라날 수 있도록 공간과 영양을 제공했다. 오른팔이 내뿜는 힘에 도취하여 누군가를 살린다는 행동에 의미를 두었다.

‘오로지 내가 한 게 아니라고는 생각했어.’

‘악한 마음을 갖고도 사람을 살렸다는 건 사실이야.’

‘팔이 다시 자라나면……, 더 이상 그런 힘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 건가.’

세상을 죽이겠다는 다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간 건지도 모른다. 낙조는 속으로 비웃음을 쳤다. 자신의 몸에 자신은 알지 못하는 눈과 입과 귀가 달려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세성은 완전히 끌어 올린 해초를 보고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뿌리는 몸집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다. 애초에 해초와 뿌리의 크기가 비례했다면 변종의 힘을 가졌다 해도 두 손으로 끌어 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바닷물에 절어져 있긴 했으나 해초 줄기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세성은 줄기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려 보다가 자리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깊게 관찰했다.

모양새는 일반 해초와 다를 게 없다. 잎이 곡선으로 돼 있는 것이 아닌 게 다를 뿐이다. 가시를 세운 것처럼 뾰족한 잎이 낙조의 피부를 뚫으려 했던 모양이었다. 거기에 상대적으로 작은 뿌리. 낙조에게 이것의 뿌리가 어디에 박혀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을 상태이니 물어보나 마나였다.

“장승, 칼 있어?”

“……예.”

“좀 줘 봐.”

세성의 뒤에 서 있던 무흠이 단도를 세성에게 내밀었다. 세성은 보지도 않고서 단도를 낚아챈 후 해초의 뿌리를 잘라 내기 시작했다. 해초를 뽑아낸 이후 강했던 바람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세성은 무흠을 시켜 아무도 갑판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낙조가 있는 방은 남자가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서걱, 서걱, 해초의 뿌리가 조금씩 잘려 나갔다. 그리 단단하진 않았다. 어딘가 부패 된 것처럼 뿌리를 자를수록 역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흠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으나 세성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익숙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해초 두 개의 뿌리를 모두 잘라 낸 세성은 뿌리만 쥐고서 일어났다.

“장승, 줄기는 바다에 버려.”

“뿌리만 있으면 되는 겁니까.”

“아까부터 아는 걸 계속 물어보네. 혹시 그 몇 년 새 다 까먹은 거야?”

“아닙니다.”

“…….”

무흠은 대답을 마치고 해초의 줄기를 들어 올렸다. 길이가 꽤 길었기에 한 번에 안을 순 없었다. 뿌리가 잘려 나간 부분부터 난간 밖으로 던지는 무흠을, 세성은 가만히 서서 크고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적의가 담긴 시선은 아니었다. 무흠은 일부러 세성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뭔가에 꿰뚫리는 그 기분을 더 느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무흠이 두 개의 해초를 모두 버리고 나서야 세성은 입을 열었다.

“수고했어, 장승.”

“아닙니다.”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은데 여기서 얘기나 할까?”

세성은 무흠조차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처음 봤을 땐 막연하게 어린애라고만 생각했다.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 모두 제멋대로였고 진심으로 웃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서천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왜 삼승이 세성을 서천에 데려왔을까, 한때는 그 고민에 사로잡혔던 적도 있다.

들쑥날쑥한 기분을 맞춰 주는 것도 힘들었다. 상전을 모시는 것 마냥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도. 그렇다고 세성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 적은 없었다. 그가 내린 결정은 항상 옳았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건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삼승 바로 아래의 권력까지 쥐게 됐다.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 그러면서도 가끔 세성은 규칙을 넘을 듯 말 듯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간장을 태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저렇게 행동하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같은 인간도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이였지만, 그는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면 언제나 선의 편에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장승의 질문이 더 많을 것 같은데? 누가 먼저 할까?”

세성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흠은 공손한 자세로 입을 꾹 다물었다.

“장승. 장승이 마지막으로 서천꽃밭에 간 게 언제지?”

“5년 전입니다.”

“그때와 비슷할 것 같아?”

“조금은……, 변했을 것 같습니다.”

“많이 변했지. 삼승님도 변하셨으니까.”

“예?”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보여. 삼승님이 뭔가를 숨기고 계셔.”

세성의 눈이 정말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흠은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에게 삼승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지도.

“세성님.”

“드디어 물어보는 거야?”

“고낙조가 정말 환인입니까.”

“…….”

세성에겐 예민한 질문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뱉었다. 세성은 가만히 양쪽 손에 해초 뿌리를 하나씩 든 채 대답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자신을 보고 있는 세성의 시선을 오래 견딜 수 없었다. 무흠이 말을 돌리려 입을 떼기 직전, 세성이 무흠의 말을 가로챘다.

“환인은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한 말임을 알면서도 묻네. 왜 계속 아는 걸 물어보는 거야?”

“굳이 환인이란 지칭을 쓰면서까지 고낙조가 필요한지……, 의문이 듭니다. 지금까지 본 것으론 그저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생각을 잘 하지 않아 우유부단한 면도 있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희생을 자처하긴 하지만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속이 풀리는 인간입니다. 고작 심방의 힘이 발현됐다고 해서 서천까지 들이는 것은―”

“―그래. 심방의 힘을 지닌 자는 많다. 그런데 왜 삼승님은 굳이 저자를 환인이라 칭하면서 필요로 하는지 궁금하지?”

“…….”

“서천에 가면 알게 될 거야. 나 또한 입을 잘못 놀리면 위험해. 그러니 장승, 때를 기다려라. 궁금해도 묻지 말고, 눈치채도 티를 내지 마.”

무흠의 입이 절로 다물렸다. 세성은 눈을 접으며 웃으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걱정 마. 고낙조는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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