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125화 (125/202)

125화. 비상등

“그래서 자료를 못 가져왔다?”

“…….”

“말로 아무리 설명을 잘해 봤자죠. 내가 왜 회의하기 전 시간에 오라고 했겠어요? 서연우 씨가 얼마나 이해했는지 내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모든 것엔 이유가 있는 거예요. 모든 실험에 이용한 샘플들이 어떤 식물인지, 투입량은 어떻고 어떤 방법으로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는지 그걸 일일이 다 얘기할 거예요? 그냥 눈앞에 놓인 걸 읽기만 해도 반나절은 걸리겠어요.”

켈리는 생각보다 더 연우를 몰아붙였다. 연우가 쥐고 있던 게 프린트 한 종이가 아닌, 연우의 개인 외장하드였기 때문에 다시 뽑으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켈리가 보고에 참고하라고 주었던 파일까지 만약 그곳에 담겨 있었다면……,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오금이 저렸다. 연우는 잠자코 앉아 켈리의 짜증을 듣고 있다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번에 저한테 물어보신 적 있잖아요. 이상한 사람 만난 적 있냐고.”

켈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금세 입을 닫은 켈리는 연우의 뒷말을 기다렸다.

“처음엔 그냥 분위기가 쎄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 여자가 있었는데. 오늘 오다가 마주쳤어요. 쫓아온 것 같았어요. 또 난데없이 인사만 하려나 싶어서 바쁘다고 하고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여자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엄청 무섭게 들렸어요. 그리고 사람 목숨을 공공재로―”

“―그 여자가 가져갔다고 말하는 거예요?”

“……순식간이었어요. 움직이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서…….”

쾅!

켈리가 두꺼운 반지 낀 손으로 책상을 크게 내리쳤다. 큰 소리에 몸을 움찔거린 연우는 입술을 깨문 채 가만히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그 여자 이름.”

“네?”

“이름도 모르진 않겠죠?”

“특이했어요. 파……도. 보안팀, 소속이라고 했어요.”

연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켈리의 표정도 시시각각 변했다. 붉으락푸르락 새빨개지는 켈리의 얼굴 위론 잠깐이었지만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연우는 켈리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떠나자마자 죽어가던 표정을 지웠다. 누가 보아도 켈리에게선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연관이 있어.’

아마도 켈리의 천적. 그동안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노력했을 수도 있다. 파도가 내뿜는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한지 연우도 살갗으로 느끼긴 했으나 당장의 감정보다 자신이 가져야 할 왕관의 무게가 궁금한 연우에겐 파도와의 만남이 켈리의 공격에 맞설 수단일 뿐이었다.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답은 할 수 있어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내보낼 거라고 생각했던 켈리는, 몇 초 만에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연우에게 말을 건넸다. 켈리가 질문한 내용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기에 몸을 건들기만 하면 대답할 수 있었다. 연우는 의심쩍은 부분을 일단 생각하지 않으려 접어 둔 채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모든 식물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영양분을 인간의 피로 착각하게끔 만드는 것인데, 그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압축시켜 주는 풀과 피를 섞은 후 목표로 둔 식물의 씨앗을 심습니다. 이후 배양하는 과정은 같고요. 마치 흙 속에 있는 것처럼 항상 피의 온도를 유지―”

“―그 풀 이름이 뭐죠?”

“……피살이풀, 입니다.”

분명히 보고서에 그렇게 작성했고, 모든 공식에 그 풀의 이름이 들어가면서 결과는 완성됐다. 독해하는 것처럼 읽었던 알 수 없는 이름의 파일은 피살이풀에 대해, 가장 맨 마지막 장에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피가 더 이상 돌지 않는 사람에게 먹이면 피가 막힌 곳이 뚫려 피가 빠르게 돈다. 독소에 취한 피를 정화하는 데에 꼭 필요하다. 이것을 달여서 사람의 피와 섞으면, 1급수 물보다 더 깨끗해지고 모든 영양분이 무게에 비례하여 넘칠 만큼 쌓인다. 급히 배양해야 하는 식물에게 하루에 한 모금씩 주면 성장이 빨라진다.

연우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문장은 위와 같았다. 인간에게 쓰면 효과가 빠른 약과 다를 바가 없으나, 이것을 달여 우러난 물에 피를 섞으면 식물의 성장 속도는 물론이고 영양분이 고루 퍼져 식물이 깨끗한 물로 착각하여 빠르게 흡수한다는 말이었다. 직접 자신이 실험한 것은 아니기에 정말 그 풀이 존재하는지는 장담할 수 없었으나 그 풀이 아니라면 켈리의 백신 모델링은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이름을 알았다면, 짚이는 곳도 있겠군요.”

“서천꽃밭 말씀하시는 거죠.”

“그곳이 어떤 곳인지까지는 알 필요 없어요. 그저 서연우 씨에게서 자료를 빼앗아 간 파도란 여자가, 서천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세요.”

“……네?”

관련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나. 관련은 있다고 확신했으나 알면서 방치하는 건 켈리의 평소 성격과 맞지 않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에 연우가 뒤늦게 되묻자, 켈리는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얼굴로 다시 말했다.

“이 이상으로 알려고 하지도 말고, 그 여자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세요. 그 책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우리가 쉽게 볼 곳이 아니에요. 마음만 먹는다면 죽은 것도 살려내죠. 살려낼 수 있으니 죽이는 것 또한 얼마나 쉽겠어요? 그런 곳에서 온 자가 여기에 있다는 건, 특히 서연우 씨에게 집착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제가 조심해서 안 죽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막아 주실 수 없는 일인가요?”

“이후에 있을 회의에 제가 백신 제조법을 공개할 겁니다. 그곳 책임자로 옮겨 줄 테니, 당분간 꼼짝 말고 내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으세요. 적어도 살고 싶다면.”

파도와 켈리, 두 여자 모두 연우에게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각각 제시했다. 효율적으로 따졌을 때 당장 자신에게 와 닿는 말은 켈리의 제안이었다. 파도란 여자는 자신에게 완전히 적대적이며 위험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접근했다는 정황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 봤자 소속을 숨기고 몰래 잠입한 사실은 얼마 가지 않아 들통날 것이다. 켈리가 서천을 쉽게 봐서는 안 된다고 했으나, 연우에겐 당장 이 본부가 가장 큰 세상이었다. 이곳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붙는 것. 어차피 파도란 여자는 자신에게 회유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난 후 당분간 조용히 있는 게 최선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백신을 만드는 건 ‘생명’을 갖고 장난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위한 거니까. 그만큼 번지르르한 이유가 또 있을까. 연우는 켈리의 말에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

“저는 회의실에 먼저 가 있겠습니다.”

“서연우 씨.”

“네.”

“허튼 생각은 하지 마세요. 백신 제조가 시작되기 전, 당신도 그 약을 맞게 되니까.”

켈리는 짐짓 주의하는 어투로 연우에게 말했다. 백신을 먼저 놓아 준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켈리가 함부로 저런 말을 할 리 없다는 걸 안 연우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가 만든 백신에 조금의 흠이라도 있었나? 부작용이야 사람마다 발병할 확률이 있다. 그러나 그 부작용이 사람을 어떤 상태에 놓이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허튼 생각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머리 굴리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처럼. 계산하는 거 다 보여요.”

켈리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연우 또한 표정에서 웃음을 거둔 지 오래였다. 둘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우는 켈리를 빤히 응시하면서,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떠올렸다. 그 생각에 취하기도 전, 연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그렇게 똑똑하지 않은 거 이제 알아요.”

연우의 말에 켈리의 한쪽 눈썹이 일그러졌다. 항상 구석으로 몰면 벌벌 떨기만 하던 연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덤덤하게 그 말을 내뱉고서 조용히 켈리의 방을 나갔다. 곧 직원이 아침 식사를 가져온다. 켈리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난 식은땀을 닦은 후 이를 갈았다.

“감히 거짓말을 해…….”

손수건을 쥔 켈리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곧 켈리의 방문을 직원이 노크했다.

*

퉁.

해초 줄기는 물의 흐름에 따라 온 힘을 다해 낙조를 튕겨 냈다. 물속이라 그리 멀리 날아가지는 않았으나, 낙조는 여전히 하나의 줄기만 쥔 채 해초에게 시간만 벌어준 셈이 되었다.

줄기는 한 손에 다 잡히지 않을 정도로 두꺼웠으니 물속에서 아무리 힘을 가한다 해도 반대편 해초 줄기들을 피해 하나씩 부러뜨리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릴 게 분명했다. 낙조는 다시 해초가 선 방향을 향해 헤엄치면서 온갖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의 숨이 꺼질 것만 같은 순간마다 식물은 스스로 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살렸다. 죽기 직전까지 가더라도 죽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덤비는 게, 무식하더라도 방법이긴 했다.

점차 다시 거리가 좁혀졌다고 느껴졌을 때, 문득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낙조는 해초가 뚫고 나온 시신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기어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눈알까지 파먹혀 뻥 뚫린 눈구멍에서 잔뿌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시체 안에만 뿌리를 내린 게 아니야. 땅 밑으로도 뿌리가 퍼져 있는 거야. 애초에 이만큼 큰 해초 뿌리가 인간 몸 안에 갇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보이지 않는 뿌리가 얼마나 두꺼울지, 또 얼마나 엉켜 있을지는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다. 다만 물속에서는 자신의 힘을 온전히 쓰지 못한다는 리스크가 있었다. 낙조는 고개를 들어 배의 위치를 확인했다. 해초가 물살에 휩쓸려 자신을 붙들지만 않는다면, 위로 충분히 올라갈 수 있었다.

‘가자.’

생각을 마친 후 몸을 움직이는 건 쉬웠다. 낙조는 자신이 움직이는 방향이 달라졌다는 걸 해초가 눈치채기 전에 좌우로 움직이면서 위로 점점 올라갔다. 배의 바닥이 보다 뚜렷하게 보일 때쯤,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해초의 머리가 낙조를 향해 다함께 달려들기 시작했다. 낙조는 최대한 틈이 보이도록 몸을 움직이면서, 반대편 해초의 줄기를 오른손으로 한 번 돌려 쥐었다. 매듭을 묶은 것처럼 손에 단단히 고정된 해초 줄기는 바짝 힘을 주어 낙조의 손을 조였다.

“죽여 주세요, 죽여 주세요…….”

“얼른 위로……, 위로 올라…….”

두 개의 해초 줄기를 하나씩 붙들고 나니 구체를 어루만졌을 때처럼 목소리가 사박사박 귓가를 적셨다. 놀라워할 때도 아니었다. 낙조는 있는 힘을 다해 배 쪽으로 헤엄쳤다. 점차 해초 줄기가 딸려 올라오고, 마침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콜록, 콜록! 허억, 헉, 헉…….”

물에 꽤 오래 있었던 게 문제였는지, 공기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자마자 다시 숨이 막혔다. 낙조는 기침을 뱉어 내면서 고개를 들었다.

“고낙조!”

그제야 갑판 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흠이 낙조를 발견하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구명 튜브를 낙조 쪽으로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을 거리였다. 그러나 튜브를 쥘 손이 없었다. 낙조는 오른손 뼈가 부러질 것만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해초 줄기를 놓지 않았다. 고개를 다시 들어 무흠에게 외쳤다.

“잡을 손이 없어요! 하아, 하……, 팔로 매달릴 테니까, 바로 올려요!”

그의 대답 같은 걸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남은 해초 줄기들이 자신의 발끝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는 걸 느낀 낙조는 튜브까지 헤엄쳐 두 팔로 튜브를 껴안았다. 동시에 물살을 헤집고 몸과 해초 줄기가 배 쪽으로 딸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점점 갑판에 가까워질수록 해초 줄기는 팽팽해졌고, 그만큼 손을 압박하는 힘도 거세졌다. 두꺼운 밧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피가 잘 통하지 않아 자칫했다간 그대로 놓아 버릴 수도 있었다. 낙조는 여전히 귓가를 떠나지 않는 목소리들을 들으면서, 마침내 갑판 위에 생선처럼 내던져졌다. 겨우 그를 끌어 올린 무흠과 일행들은 낙조와 함께 건져진 해초 줄기를 보고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너! 너, 손에 뭐야!”

무흠이 바짝 독이 오른 목소리로 외쳤다. 낙조는 대답할 생각도 않고서 물에 젖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바깥에 나왔으니 뼈가 부러지든 어쩌든 뿌리를 뽑아야 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해초 줄기는 배의 난간에 걸쳐져 직각을 이루고 있었다. 당장 배 아래에서 꾸물거리고 있을 줄기들이 배를 뒤집을 수도 있었다. 낙조는 해초가 걸쳐진 난간 반대쪽으로 몸을 옮긴 후 양쪽 팔에 힘을 가득 주었다. 한 손으로 잡기에도 버거울 정도의 두꺼운 줄기를 계속해서 끌어당기려니, 가뜩이나 미끄러운 갑판 위에서 중심을 잡는 것조차 힘겨웠다.

뽑아야 한다. 뿌리를 뽑아야 죽는다.

낙조의 머릿속엔 그 생각뿐이었다.

낙조는 끌어 올린 만큼 자신의 손, 손목, 팔로 이어지는 부위마다 줄기를 감기 시작했다. 갑판이 미끄러워 몸이 앞으로 쏠리기도 했으나 다시 뒤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줄기를 아득바득 당겼다.

위험을 감지했는지 낙조의 팔에 감긴 해초는 마찬가지로 힘을 주어 낙조의 팔을 압박했다. 뼈가 부러지는 느낌인지, 아니면 뾰족한 것이 살을 찌르고 들어오는 느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온갖 고통이 밖과 안을 오갔다.

뒤늦게 상황을 판단한 무흠이 낙조 쪽으로 달려오려 했으나 낙조는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아무리 무흠 또한 실험을 당한 사람이었다 해도 보통 인간의 힘으론 견딜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괜한 피를 보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낙조는 무흠을 오지 못하게 한 후 줄기를 어깨까지 감았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줄기를 당기면서, 점차 줄기의 끝부분이 멈칫거리며 전보다 수월하게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땅에 박힌 것이 뚫고 나오는 것이다. 낙조는 눈을 부릅뜨고서 입술을 깨물었다. 잇새로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줄기를 당기는 것인지, 아니면 온몸을 점령한 식물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아아악!”

투둑, 투두둑, 투드드득!

쾅, 터덕, 턱. 턱…….

뿌리를 붙들고 있던 땅이 열리면서, 줄기는 속수무책으로 낙조의 힘에 따라 갑판 위로 올라왔다. 마침내 모두 뽑혔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낙조의 상체가 앞으로 무너졌다. 해초 줄기는 힘없이 난간에 걸쳐진 채 물길을 따라 펄럭거렸다. 팔을 옥죄던 줄기의 힘도 뿌리가 뽑힘과 함께 사그라졌다. 그러나 발광 구체의 뿌리를 뽑았을 때와는 달리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른팔뿐만이 아니라, 두 팔 모두. 아무리 힘을 줘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느낌이 없었다.

“고낙조!”

밤이가 비명을 지르듯 낙조의 이름을 외쳤다. 낙조는 그제야 갑판에 버려진 듯한 자신의 두 손을 볼 수 있었다.

두 팔이 완전히 끊겨 있었다. 해초 줄기에 감긴 채, 자신의 익숙한 두 팔은 쓸쓸히 갑판 위를 뒹굴고 있었다. 갑판은 피범벅이었다. 낙조는 아득해지려는 정신 속에서 코끝을 스치는 향에 날숨을 겨우 흘려 냈다.

달콤한 냄새.

자신의 몸에서 솟는 피에선 아주 향긋한 꿀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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