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물 밑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꿈을 꿨는지 꾸지 않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기 전보다 속이 안 좋아진 기분에 입을 막고 있다가 상체를 겨우 일으켜 세웠다. 얇은 담요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잠에서 깨어나니 사람들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정확히 어떤 것에 대해 얘기하는지 알 수 없어 소리가 가까워지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세성이 있던 방문을 닫혀 있었다. 신발을 신고 계단을 타 위로 올라갔다.
속닥이는 목소리들이 자신이 아는 이들의 목소리인지 구분할 만큼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수군거리는 소리가 잠을 방해했기에 밖에 무슨 일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와중에도 잠이 몰려와 눈을 비벼 가면서 안경을 쓴 낙조는 갑판 밖으로 나오자마자 들이닥치는 거센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뭐야.’
분명히 술렁거리는 소리는 바깥에서 들렸다. 모두가 갑판에 모여 떠드는 것 같았는데. 갑판에 선 이는 자신뿐이었다. 몸을 일으킬 때만 해도 아래층엔 자신밖에 없었으니 밖에 없다면 안에 모두가 모여 있는 게 맞았다. 낙조는 갑판 난간을 붙잡고 간신히 걸음을 떼어 냈다. 날씨가 갑작스럽게 좋아지지 않았는지 파도가 한 번 일렁일 때마다 배가 크게 흔들렸다. 갑판까지 쳐들어온 바닷물이 옷자락을 적셨다. 낙조는 고개를 돌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바라보았다.
“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
“세세세세세세세세세세”
“사가사가사가사가사가”
문을 향해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귀 바로 옆에서 여러 개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낙조는 난간을 쥔 손에 힘을 잔뜩 준 채 눈을 감았다.
‘씨발 또…….’
꿈인지 환청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차라리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다면 현실에선 자신은 아직 아래층에서 잠들어 있는 것이니. 배 안에 잠든 일행들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기라도 해 주길, 낙조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몸에 대고 그렇게 빌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바람은 여러 곳에서 불어왔다. 배는 거세게 요동치고 중심도 겨우 잡고 있는 상태였다. 어쩐지 눈을 뜨면 눈앞에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여전히 눈은 감고 있었다.
‘오른손이……, 나 몰래 뭘 하려는 거야.’
내릴 수 있는 판단은 그것뿐이었다. 발광 구체를 만난 이후로 환청과 악몽은 계속됐다. 무엇이 현실이고 꿈인지 구분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마다 느끼는 기분은 구체를 어루만질 때와 비슷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님에도 분명하고 촉각은 온전히 자신의 것임을 느낄 때. 그 자체로 모순덩어리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른손이 변하고 있다면, 자신과 이어진 신경을 통제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면……, 어떤 형태를 갖추는지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눈을 떠야 했다. 낙조는 날숨을 세 번에 나뉘어 내쉰 후 살며시 눈을 떠올렸다.
“…….”
여전히 파도 부딪치는 소리와 거센 바람 소리밖에 없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낙조는 다음으로 천천히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왼손으로 갑판을 쥐고 있었기에 오른손은 튀어 오른 바닷물에 조금 젖었을 뿐, 얌전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낙조의 바람대로 되는 건 몇 개 없었다. 산불이 난 이후부턴 스스로의 몸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까지 다다랐다. 예상을 항상 빗나가는 바람에 이제는 눈앞에 놓인 광경도 금세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오른손은 아주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힘을 주고 있지 않음에도 혈관이 툭, 툭, 피부 위로 불거져 나와 있었고, 손끝엔 피가 몰려 저릿저릿할 지경이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자신의 몸을 야금야금 점령하려 드니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힘들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한 번은 하게 해 준다. 어떻게 속이려 드는 건지만 알아내면, 다음이란 건 없어.’
난간을 쥐고 있던 왼손을 떼고서 오른손 소매를 차츰차츰 걷었다. 이미 사납게 튀어나온 혈관은 전보다 더욱 초록빛으로 변해 있었다. 손바닥에 구멍이 났다거나 열감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외관으로 봤을 땐 별다른 게 없었다. 낙조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서 숨을 정돈했다. 오른손에 남은 힘을 빼고서, 이것이 어디를 향하는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누군가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오른손을 제어하려고 주었던 힘을 빼자, 검지부터 시작해 손가락이 하나둘씩 튕겨 올라왔다. 그것은 곧 난간을 향해 뻗어졌고, 난간을 쥐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난간 밖으로 뻗어 나갔다. 중심을 제대로 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미끄러져 바다에 빠졌을 게 분명했다. 낙조는 간신히 붙잡은 난간에 매달렸다. 안경알에 자꾸 물이 튀어 앞이 보이나마나였다. 낙조는 안경을 벗고서 다시 한번 바닷속으로 침투하려는 오른손에 잠시 생각했다.
‘들어간다고 숨이 막혀 죽지는 않아. 체온이 떨어지는 게 문제지. 뭐 때문에 들어가려고 하는지도 모르는데……, 또 영혼 구제 같은 거면 그 좆같은 느낌을 또 받아야 하잖아.’
그러나 오른팔은 생각할 시간 따위 주지 않았다. 낙조가 머뭇거리는 사이, 몸에 힘이 살짝 빠지는 순간을 노린 손이 곧장 힘을 실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미 거센 파도에 젖어 있던 난간은 아무리 쥐고 있다고 해도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상체가 쏜살같이 아래로 쏟아지고, 낙조의 몸은 그대로 바다에 잠겼다.
바람이 유난히도 거셌다. 어디서 몰려오는지 모를 파도는 일행이 탄 배를 밀어내려는 듯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움직였다.
*
“……?”
갑판으로 나가는 문이 덜컹, 덜컹, 흔들리는 소리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해가 뜬다 싶더니 바람이 거세지면서 문을 단단히 잠가 놓은 걸 봤었는데. 꽤 무거운 문은 바람에 하염없이 덜컥거렸다. 해화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미뤄 둔 잠을 자기라도 하는 건지 태풍처럼 몰아치는 바람 소리에도 누구 하나 깨지 않았다. 해화의 자리는 맨 뒤였다. 심하게 울렁거리는 배 때문에 걸음을 떼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조금 오래된 배 같기는 했지만, 잠금쇠가 풀릴 정도인 것 같진 않았다. 어떤 미친 사람이 이 바람에 바다를 보겠다고 갑판에 나갈 것 같지도 않았다. 좋게 생각하려 해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일단 문을 먼저 닫자는 생각에 해화는 의자를 짚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갑판은 이미 물바다였다. 파도가 어찌나 크게 몰아쳤는지 안쪽까지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비바람도 아니고, 태풍이 몰아칠 계절도 아니었다. 그저 날씨가 좋지 않다고 보기엔 무언가 이상했다. 해화는 문고리를 붙잡고 간신히 서 있다가 문을 힘껏 끌어당겼다. 비에 흠뻑 젖은 문이 닫히면서 바람에 밀려 쾅, 하고 큰소리를 냈다.
“……누나?”
안쪽을 가득 메울 정도로 큰 소리였기에 한 명은 깨겠다, 라는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지운이 해화를 불렀다. 그는 졸음에 푹 잠긴 두 눈을 겨우 뜨고서 해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 번 배가 크게 꿀렁이자, 무얼 딱히 붙잡지 않고 있던 지운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야, 홍지운!”
“아아, 존나 아퍼…….”
그리 크게 부딪치진 않았는지, 지운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 소리에 남은 이들도 하나둘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깨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로,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부스스 일어나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눈을 돌렸다.
“바람이……, 엄청 불어요. 파도도 세고.”
해화는 자신과 지운에게로 쏠린 시선들을 보고 입을 열었다. 가장 앞에 앉아 있던 무흠이 해화의 대답에 일어나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고낙조 어디 갔어.”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수호가 낙조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잠들기 전까진 바닥에 놓여 있었던 담요와 자그마한 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수호는 멍하니 낙조의 빈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무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소리가 멎은 것처럼 정적이 돌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무흠은 흔들거리는 배의 방해에도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우의를 쓴 남자가 세성의 방에서 나오며 무흠과 마주쳤다.
“소란 일으키지―”
“―고낙조 봤습니까?”
“이제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봤냐고!”
무흠의 외침에 잠시 말이 없던 남자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서 무흠의 등을 토닥였다. 그는 세성의 방문을 조용히 닫은 후 속삭였다.
“세성님 기분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이에요.”
“고낙조……, 하……, 환인 어디에 있습니까.”
“아까 여기서 자고 있었…….”
남자는 낙조가 자고 있던 곳을 향해 돌아보다가 말을 멈추었다. 남은 건 구겨진 담요 한 장과 자그마한 짐밖에 없었다. 벗어 둔 낙조의 신발도 사라졌다. 남자는 잠시 세성의 방문을 응시하다가 무흠을 이끌고 위로 올라갔다.
“설마 탈출……, 하려고 한 건 아니겠죠.”
우의를 쓴 남자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무흠은 그를 어깨로 밀치고 나서서 문을 열었다. 갑판 위엔 당연하다는 듯 아무도 없었다. 무흠은 낙조의 이름을 바다 아래로 외쳤다. 물 바깥의 소리가 물속에서는 얼마나 작아지는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아예 사라지는 걸 알면서도.
*
수중 호흡에 익숙해지자마자 오른손이 저릿했다. 한겨울에 바닷물이라니. 온몸이 따끔거릴 정도로 차디찬 물의 온도에 몸이 뻣뻣해진 것도 잠시뿐이었다. 낙조는 고개를 들어 배의 위치를 확인한 후 손이 이끄는 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물속도 마찬가지였다. 물고기 같은 동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빈 바닷물을 보고 있자니 꼭 거대한 수조에 들어온 것처럼 조금만 나아가면 벽에 부딪칠 것만 같았다.
수압에 조금씩 몸이 힘겨워질 때쯤, 낙조는 새카맣게 물든 바닥을 보고서 잠시 내려가는 걸 멈췄다. 오른손이 가고 싶어 하는 방향은 맞았으나, 다른 곳과는 달리 구멍이 파인 것처럼 그 속을 알 수 없는 바닥이 어쩐지 으스스했다. 갑자기 빨려가는 건 아니겠지. 낙조는 적절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찬찬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저 새카만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건 가까이 갈수록 그 정체를 또렷하게 드러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멀리서 보았을 때 새카맣다고만 인식한 것뿐이었다. 낙조는 물결에 은은하게 흔들리는 그것을 보고서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
‘씨발, 저거……, 해초 아냐?’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 늘어져 있던 해초들이 꾸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라는 걸 안 낙조가 뒤늦게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이미 수면 근처까지 몸을 세운 해초는 거센 물결에 맞추어 사납게 휘청거렸다.
못해도 오 미터는 돼 보였다. 물속에서는 손으로 변종을 처리해 본 적이 없기에 어떤 방식으로 저것을 잠깐이라도 기절시켜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 오자고 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나 죽으면 지도 죽는데 죽으러 왔겠어?’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해 보려 해도 신의 한 수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낙조는 배의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거세게 움직이는 해초에게 둘러싸인 채 오른손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막상 해초에 가까워지자 오른손은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꿈쩍도 않고 있었다. 이렇게 있다가 해초에게 붙잡혀 저체온증으로 죽느냐, 위까지 어떻게든 올라가 배에 올라가냐. 두 가지 선택이 눈앞을 오갔다.
‘발광 구체……, 뿌리……, 뿌리를 뽑았어. 뿌리를 뽑으니까 한꺼번에 죽었잖아.’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미미하던 본능 같은 게 뇌에 자극을 주기라도 하는 건지, 해초들이 울렁이며 코앞까지 왔을 때 낙조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처음으로 오른손이 제멋대로 움직였을 때. 구체를 어루만지는 건 그저 기생 식물에게 붙잡힌 여러 인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들을 지옥이든 알 수 없는 곳에 보내게 된 방법은 구체 깊은 곳에 박힌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었다.
‘몸이 버틸 수 있을까?’
해초의 뿌리가 어디까지 내려가 있을 줄 알고. 무턱대고 덤비는 건 이제 온몸이 스스로 제어되지 않는 이상 자제해야 했다. 그러나 애초에 원인 제공을 하는 것들을 없앤다면 그나마 남은 길은 평탄할 수도 있었다. 낙조는 천천히 자신을 거미줄로 감기려는 모양새를 취하는 해초의 틈을 파고들어 밑으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부력에도 억지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마침내 해초가 하나로 뭉친 뿌리를 발견한 낙조는 잠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해초는 평범한 흙이 아닌, 이미 물에 부어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팅팅 부은 사람의 배. 해초는 분명히 사람의 배를 가르고 나와 몸 안에 뿌리를 내린 채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피는 모두 빨아 먹었는지, 몸 안은 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온전한 것이라곤 그저 뼈밖에 없었다. 나란히 마주 보고 누운 남녀의 몸을 하나씩 차지한 해초는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씨발 죽었다고 해도…….’
게다가 상대는 둘이다. 하나를 잡고 있을 때 뒤에서 다른 하나가 공격해 온다면 속절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 한꺼번에 뽑아낼 생각을 해야 했다. 물에 오래 있으니 익숙해지긴 했으나 이 이상으로 오래 있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도, 점차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싫어도 떠오르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낙조는 다시 자신을 묶기 위해 다가오는 해초를 바라보면서 오른손을 쫙 폈다. 하나의 줄기만 하더라도 꽤 두꺼워 보였다. 이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해초 중 줄기 하나를 쥔 낙조가 잡자마자 서둘러 반대편을 향해 헤엄쳤다.
하나씩이라도 좋으니 이 자리를 빙글빙글 도며 두 개를 하나로 묶어 버리는 것. 낙조가 하려는 짓은 그랬다. 과연 이번엔 계획대로 따라 줄지, 아니면 또 생각하지 못한 수에 의해 탈출만을 목표로 목숨을 건 탈출이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손에 쥔 이상 어떻게든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힘차게 다가오는 반대쪽 줄기와 낙조가 눈이 마주치듯 맞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