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항해 (1)
환각일 수 없었다. 아니, 해화의 얼굴은 애초부터 보지 못했으니 환청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걸까. 겁에 질린 얼굴로 해화의 얼굴만 가만히 바라보던 낙조는 곧 무흠의 손에 이끌려 다시 앞을 보게 됐다. 무흠은 아무 말 없이 낙조의 몸만 돌려 놓고 다시 앞을 향해 걸었다.
“약속한 시간까지 먼저 가 있어야 합니다. 서두릅시다.”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아직 동이 틀 생각도 하지 않는 걸 보니 깊은 새벽인 것 같았다. 낙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묵묵히 무흠의 뒤를 쫓는 것뿐이었다. 사실 차에서 내린 후 그리 오래 걷지도 않았건만, 낙조에겐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누군가가 붙잡는 것처럼 그 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무흠이 멈춘 곳은 안개가 더욱 짙게 낀 곳이었다. 자칫 걸음을 놓쳤다간 코앞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었다. 바짝 긴장한 채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을 잘게 움직였다. 바다 냄새가 저 깊은 바닥부터 끌려 올라오는 냄새가 들릴 즈음, 무흠이 제자리에 서서 손전등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신호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안개의 틈에서 미미한 빛이 무흠의 앞에 쏟아졌다. 마치 등대의 불처럼, 그것은 길을 터 주는 것처럼 가만히 자신의 있는 곳까지의 길을 밝혀 주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안갯속에 서 있던 이는 비가 오지 않음에도 우의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걸음이 주춤거릴 때, 무흠은 먼저 앞으로 다가가 그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우의 모자를 살짝 들춘 그가 빛을 따라 무흠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배에 오르세요. 세성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성님이 직접 오셨단 말입니까?”
“……가장 먼저 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는 무흠과 알 수 없는 대화를 짧게 나누더니, 배와 연결된 계단을 곧 간단히 내렸다. 무흠은 낙조와 해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먼저 배에 올랐다. 무흠을 따라 갑판에 오를 때, 낙조는 우의를 쓴 이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착각이겠지.’
낙조는 애써 무시하며 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배는 딱 관광용 유람선 정도의 크기였다. 내부는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다. 무흠은 모두가 들어오는 걸 서서 지켜본 후 맨 앞자리에 앉았다. 곧 우의를 쓴 이가 계단을 거두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래층엔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어지럽다면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말했다.
“세성님은 어디 계십니까.”
“직접 부르실 테니 기다리십시오, 장승.”
“고낙조를 직접 보시겠다고 굳이―”
“―이제 함부로 이름을 올려선 안 됩니다. 세성님은 그런 것에 예민하신 걸 알지 않습니까.”
우의를 쓴 남자와 무흠은 분명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낙조가 앉은 자리에선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보고 있어도 들릴 수 없는 거리였다. 들리면 안 되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낙조의 귀엔 그들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다. 낙조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서 그들이 있는 쪽을 응시했다. 내부가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으나 우의를 쓴 이가 무흠에게 한숨을 내뱉는 것까지, 낙조에겐 그들을 꿰뚫는 듯 모든 게 보이고 들렸다.
“가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봐 그런 겁니다. 고낙……, 저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이 거의 탈진 상태입니다. 열 시간이 넘는 동안 조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장승은 누굴 걱정하는 겁니까? 세성님을 욕보이는 말을 그만하십시오.”
“당연히 세성님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 아닙니까. 저들은 서천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도 되지 않은 이들입니다. 가면서 설명을 해 주는 것도 일인데, 세성님께 직접 보이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장승은 세성님을 의심하는 것이군요. 세성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오신 건지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우의를 쓴 이는 강압적으로 무흠을 몰아붙였다. 결국 입을 먼저 닫게 된 건 무흠이었다. 서천의 장승이라고 하여 그래도 그만큼의 대우를 받을 줄 알았던 낙조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세성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엄청 높은 사람인가.’
낙조가 유추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뿐이었다. 서천의 조직 단위가 어떻게 쪼개어져 있는지도 모르니 아무리 장승이라 해도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쯤 걸쳐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낙조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우의를 쓴 이가 자신이 앉은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걸 보고 몸을 창가 쪽으로 숙였다.
“그나저나 심방의 능력을 스스로 깨우쳤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상보다 빨리 흘러가는군요.”
“스스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하니 굳이 묻진 마십시오.”
“……장승,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배를 곧 띄워야 하니.”
그들을 보고 있지 않음에도 대화는 생생하게 들려왔다. 낙조는 손잡이를 꽉 쥔 채 바닥만 응시했다. 곧 무흠이 앞자리에 앉는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웅-
뱃고동 소리가 새벽의 문을 여는 것처럼 힘차게 울렸다. 바닷물은커녕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 물안개 때문에 땅과 물조차 구분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배를 움직이는 이는 따로 있는지, 우의를 쓴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돌려 낙조를 지나친 후 아래로 내려갔다.
‘세성이란 자는 아래에 있다.’
낙조는 그의 동선을 확인하고서 생각했다. 무흠의 입에서조차 듣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진 힘은 서천에서도 막강한지, 무흠이 나선다고 그를 막을 수는 없는 일처럼 보였다. 서천을 지키는 장승보다 위에 있는 사람. 무흠이 종종 얘기했던 삼승이라는 자 보다는 아래에 있겠지. 낙조는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이니 눈만 감아도 잠이 몰려올 거라고 생각했다.
‘피곤해서, 피곤해서 이러는 거야. 아무도 못 들은 것 같은데, 괜히 입 한 번 잘못 열었다가 미친놈 취급 당할 게 빤하다.’
낙조는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내쉬는 것을 반복했다. 모두 피곤할 텐데도 선뜻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걸 보면 신경 쓰이는 건 같은 마음인 듯했다.
배가 천천히 출발하면서, 낙조는 백색소음처럼 귓가를 울리는 진동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앉아서 잠들기엔 조금 불편한 의자였으나 몰려오는 피곤함을 떨칠 기력이 없었다. 아무리 이틀 동안 잠들어 있었다고 해도 여전히 몸에 찝찝한 껍질 같은 것이 몸을 움직이는 것에 방해를 하는 느낌이었다. 촘촘한 그물망에 몸이 걸린 듯 축 늘어진 낙조는 곧 깊은 잠도, 선잠도 아닌 영역에 빠져들었다.
*
“…성……, 께서……, 부……니다.”
‘무거워…….’
누군가 낙조의 귓가에 대고 소리를 모두 죽인 채 속삭였다. 잠을 자는 내내 파도에 부딪치는 배의 움직임을 느꼈던 터라 의식은 금방 돌아왔다. 낙조는 잠들기 전보다 훨씬 무거워진 몸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세성님께서 부르십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뚜렷해졌을 때 낙조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우의를 쓴 남자였다. 그는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는 낙조가 자리에서 일어난 걸 보고서 먼저 움직였다. 동이 이제 막 트고 있는 건지, 감파른 바다 위가 점점 빛나고 있었다. 다른 의자에 띄엄띄엄 앉은 이들 모두 잠들어 있었다. 무흠은 맨 앞에 앉아 자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낙조는 우의 남자를 따라 조금 낡아 보이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남자가 말한 대로 아래층엔 정돈된 이불과 베개, 그리고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남자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기다랗고 좁은 복도를 길고 걸어 끄트머리에 있는 문까지 걸어갔다. 낙조는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뻐근했던 몸이 조금씩 풀리는 걸 느꼈다. 남자는 노크 세 번을 한 후 문을 조용히 열었다. 그리곤 낙조보고 혼자 들어가라는 듯 반대쪽 손으로 안을 가리켰다. 여전히 남자의 얼굴은 하관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르고 얇은 입술. 낙조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모습은 그것뿐이었다.
방안으로 들어선 낙조는 가장 먼저 몸을 파고드는 텁텁한 공기에 잔기침을 터뜨렸다. 환풍기가 잘 돌아가기는 하는 건지, 왠지 방안을 가득 채운 후덥지근한 온도가 불쾌감부터 온몸을 감쌌다. 낙조는 입구에서 잠시 주춤거리다가 방안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서 가만히 서 있었다.
‘뭐라고 불러야 해? 모르니까 그냥 안녕하세요? 대충 들어보니까 엄청 높은 사람이던데, 지팡이 같은 걸로 머리 치지는 않겠지.’
이런저런 생각이 조금 깊어질 때쯤, 낙조를 등진 채 앉은 이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낙조는 인사를 하는 것도 까먹고서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애……, 애인가? 아니면 갓 스물?’
마찬가지로 낙조를 바라보고 있는 이의 얼굴은 상상하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하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외형은 남자였으나 얼굴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중성적인 면도 보이는 편이었다. 게다가 눈으로 보이는 얼굴은 너무나도 어렸다. 사회가 어린 시절 가려 둔 커튼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것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 같기도 했다. 그는 낙조와 눈이 마주치자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한 분 오셨네!”
그는 자리에서 팔짝 뛰듯 일어나 낙조를 향해 다가왔다. 키는 낙조보다 조금 작은 정도. 마른 몸 위로는 두꺼운 파스텔 톤의 하늘색 니트와 통이 조금 넓은 검은색 면바지가 덮여 있었다.
“장승이 내 얘기는 하디? 세성, 나는 세성이다.”
어린 얼굴과 맞지 않게 말투는 굉장히 노쇠하게 느껴졌다. 그는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낙조의 주변을 관찰하듯 빙글빙글 돌았다. 어쩐지 한 걸음씩 뗄 때마다 포물선을 그리는 것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춤을 추는 것 마냥 몸이 들썩이는 게 보였다.
‘나도 반말할까…….’
낙조는 자신을 대놓고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바라보는 세성의 시선에 아무것도 없는 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눈빛을 보고 알았다. 지금까지 겪은 웬만한 미친 녀석들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상한 놈이라는 걸. 미약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보고 반짝인 눈은 분명 광기와 비슷했다.
“너 심방의 능력을 썼다며? 삼승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무것도 안 알려 줬는데 어떻게 했어? 맞다, 너 그 왼쪽 손인가, 오른쪽 손인가. 거기서 식물이 자랐다며. 지금 보여 줄 수 있어? 나 진짜 너무 궁금했는데 지금까지 많이 참았거든.”
‘보통 또라이가 아니다.’
낙조는 덥석 자신의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멋대로 쥐었다가 놓았다를 반복하는 세성을 응시하면서 생각했다. 잘못 건드렸다간 위에서 자고 있는 이들을 모두 깨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낙조는 보란 듯 오른손을 세성에게 내민 채 입을 열었다.
“이쪽 손입니다.”
“당장 보여 주는 거야? 그럼 그때처럼 할 수 있어? 아, 변종이 없어서 안 되려나. 어쩌지, 삼승님이 절대로 너 건드리지 말라고 해서 변종을 태울 순 없었거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서천 근처엔 변종이 없어. 항구에 배 대고 기다리던 도중에 하나 잡을까 싶었지만 통영에도 없더라? 아무리 겨울이라고 해도 그렇지, 변종이란 놈들이 고작 추위에 도망을 가? 가을까지는 있었다면서. 그때 일교차는 어떻게 감당하고 지낸 건지 모르겠네. 웬만한 바람이랑 비도 좋아한다며? 그렇게 보면 변종인데, 또 겨울에 기어들어 간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세성은 중간중간 숨을 잠깐씩 쉬어 가면서 자신의 말을 쏟아 냈다. 목소리가 그리 작은 편도 아니었기에 그가 하는 말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밖에서 문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를 우의 입은 남자가 신경 쓰일 정도였다.
‘아니, 삼승이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면서 오자마자 부르는 건 뭔데.’
괜히 눈 돌아간 놈을 건드려 봤자 좋을 건 없다는 생각에 잠자코 있었더니 세성은 낙조에게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는 것처럼 더욱 짜증이 치미는 말을 퍼부었다. 욕은 섞여 있지 않았으나 저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는 낙조를 자극하고, 미묘하게 바뀌어 가는 낙조의 표정을 보며 즐거워했다.
“세성님이 하시는 일은 뭡니까?”
낙조는 대화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온통 자신에게 집중된 세성의 눈빛과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자신이 처음부터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세성이 자신에게 쏟는 관심의 정도로 보자니 조금의 무례를 범해도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힐 것 같지도 않았다.
“나? 아, 장승이 얘기 안 해 줬구나. 나는 삼승 바로 밑에 있어. 삼승이 서천의 대장이라면, 나는……, 흠……, 서천이 살릴 사람을 결정해. 치료해 줄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또 그가 평소엔 어떤 행동을 보이고 다녔는지 확인하지. 그리고 살아 마땅할 사람이라면 내가 마지막으로 동의를 하는 거야. 그럼 환자를 서천에 불러서 치료를 해 주는 거지. 어때,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쯤은 알겠지?”
세성의 말을 조합해 보자면 결국 누구를 살리느냐에 달린 결정권을 가진 자라는 말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차별 없이 살리는 줄 알았던 낙조는 가만히 그 말을 곱씹다가 입을 열었다.
“환자의 평소 행실을 본다는 게……, 살려도 되는지, 죽어도 괜찮은지, 그런 것의 기준을 정할 때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장승이 어떻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천은 자원봉사자들이 꾸민 곳이 아니야. 판단을 잘해야 하지. 이 환자가 다시 바깥에 나가서 서천에 대해 떠벌릴지도 모를 일이고, 건강해진 몸으로 악한 짓을 저지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못하게 사전에 방지를 하는 거야.”
세성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낙조에게 아주 자세히 자신의 일과 그 이유를 설명했다. 꼭 눈높이 교육을 하는 것처럼 쉽게 풀이해서 설명하는 태도가 어쩐지 거슬렸다. 자신이 아무리 서천에 대해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불쾌한 느낌이 들 정도로 대우를 받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란 걸 어떻게 글로만 보고 압니까.”
“에이, 내가 뭐 앉아서 사람들이 보고한 것만 보고 결정하는 줄 알아? 내가 직접 환자한테 가지. 아무 연고도 없는 척 접근하는 거야. 대화 몇 번만 해 봐도 알 수 있어. 서천의 약초를 쓸 만큼 기대를 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상대로 도박하신 거네요.”
“어머, 들었던 것보다 꽤 말을 가려서 하지 못하는 성격이구나. 아니면 서천꽃밭을 아주 우습게 봤다거나.”
세성은 지금까지 보여 준 미소를 거두고서 낙조의 오른팔을 단단히 쥐었다. 그리 센 힘은 아니었으나 악력으로 잡아 비트는 탓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세성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목소리를 잔뜩 죽인 채 속삭였다.
“내가 온 이유도 비슷해. 네가 서천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판단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