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황혼 (2)
통영항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자신이 운전하는 차에 타라는 무흠의 말을 낙조는 순순히 따랐다. 무흠이 가져온 차는 평범한 승용차였다. 여관에서 짐을 나른 후 두 개의 차에 나눠 탈 인원을 정했다. 길을 아는 무흠의 차가 선두였고, 밤이가 뒤를 맡기로 했다. 당연히 혼자 남을 줄 알았던 수호는 무흠이 밤이에 차에 타라고 지시를 내리면서, 엉겁결에 자리 하나를 가지게 됐다.
‘왜 데려가지?’
수호는 묻고 싶었으나 굳이 대답을 들으려 하진 않았다. 혼자 남는 것이 더욱 무서운 게 당연했다. 아무리 누군가 자신을 지키러 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온전히 믿을 수 있을지는 몰랐으니까.
해화가 처음 눈을 뜬 건 낙조가 깨기 하루 전, 저녁이었다. 어느 때보다 숨소리가 차분해졌던 날이었다. 무흠은 미지근한 물을 곁에 두고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처럼 변종의 뿌리를 빻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한 변종에게서 뜯어낼 뿌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종이컵에 물을 조금 따른 후 잘게 빻은 뿌리를 섞으려고 할 때, 무흠은 해화와 눈이 마주쳤다. 몽롱했던 눈동자가 아닌, 정확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에도 무흠은 놀라지 않았다.
「중사님이 왜 여기 있어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한 달 넘게 잠들었다는 사실을, 해화는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눈을 뜨자마자 아주 푹 잔 느낌이 들긴 했으나, 마지막으로 느꼈던 바람보다 찬 공기에 알아차렸다고 했다.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해 빈혈 증상이 보이긴 했지만 입맛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하루를 더 자고 나니 기력은 금세 돌아왔다. 왜 거제도까지 오게 되었는지, 밤이와 지운은 쉽사리 설명할 수 없었다. 해화는 굳이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무흠이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쓰러지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 좋은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해화는 무흠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게 더욱 복잡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밤이는 낙조와 해화 모두 산불 사건을 기준으로 전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낙조는 벼랑을 등진 채 모두의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고, 해화는 벼랑 밑으로 두 다리를 내리고 앉아 가만히 햇빛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
낙조가 벼랑 끝에 몰려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해화가 왜 여유로워졌는지도, 알 방법이 없다.
같이 눈을 감고 있던 시간에 그들은 각자 무엇을 보았을까. 무슨 말을 들은 걸까.
*
“그래서 제주를 배 타고 간다는 거죠?”
“맞습니다.”
“중사님 왜, 얘……, 한테는 존댓말 써요?”
“고낙조 너 왜 어제부터 나랑 안 친한 것처럼 굴어?”
갑갑하다. 무흠은 조용히 좁은 도로를 굽이굽이 달리면서 생각했다. 가면서 설명해 줄 것들이 많은 둘이라 일부러 같은 차에 태웠는데, 옆과 뒤가 함께 시끄러우니 눈가부터 열이 올라왔다.
“근데 왜 자꾸……,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 같죠?”
해화가 백미러로 무흠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흠은 겹겹이 쌓인 안개를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다리가 놓이지 않은 섬은 지금 어떨 거라고 보십니까.”
“…….”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변을 응시하고 있으려니 제자리를 빙빙 도는 기분이었다. 낙조는 무흠의 대답에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육지. 바이러스는 과연 바다를 건너서까지 전파됐을까? 포자가 바람에 떠밀려 갔다면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쩌면 바다에 뛰어든 변종이 산호초 같은 것을 감염시켰을 수도 있다. 바이러스가 원천봉쇄됐을 수는 없지 않을까……. 낙조와 해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자, 무흠이 천천히 코너를 돌며 얘기했다.
“각 지역에서 변종이 발견되고, 고위직 간부들은 미리 전용기 같은 것으로 이곳을 떴을 수도 있습니다.”
“해외가 아니라 제주로요?”
“해외도 상황이 똑같으니까요.”
“그럼 제주는 다른가요?”
“적어도 이곳보다는 조용할 겁니다.”
‘어떻게 확신해?’
낙조는 입 밖으로 튀어나갈 뻔한 말을 억지로 삼키곤 등받이를 뒤로 조금 밀었다. 무흠은 서천이라는 곳에서 해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에게 설명한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제주에 가는 이유 정도는 설명하겠지. 모든 일엔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낙조는 입을 다문 채 무흠이 해화에게 이 재앙과 서천이 어느 정도 얽혀 있는 이야기를 짧게 얘기해 주는 걸 들었다.
무흠의 이야기는 낙조가 아는 것과 비슷했다. 자신이 장승이라는 것까진 밝히지 않았다. 켈리가 서천에서 개발한 약초들을 훔쳐 달아난 것도, 그 행적을 서천이 얼마나 좇았는지……, 해화는 묵묵하게 무흠의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다녔던 재앙 초기 때도 해화는 무흠을 불신하는 편은 아니었고, 해화를 살려 준 것도 무흠이니 그녀가 진지하게 얘기를 듣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필요한 이유가 정확히 뭐예요?”
낙조의 손끝이 까딱였다. 자신은 지금까지도 믿고 싶지 않은 사건을 겪으며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상황에 쫓겨 해화가 필요한 이유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무흠은 잠시 말이 없다가 목소리를 조금 낮춘 채 대답했다.
“홍해화 씨 다리에서 자라는 식물……, 아직 학계엔 알려지지 않은 종입니다. 거기에 바이러스에 노출된 곳에서 항체를 가진 식물이 난다……, 청주 쪽에서는 항체에 집중하여 홍해화 씨를 잡으려고 했지만 켈리가 청주에 들어선 이상 전처럼 도망 다니는 게 쉽진 않을 겁니다.”
항체를 가진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상할 만큼. 켈리는 이미 완벽한 백신을 가진 상태이기도 했다. 처음엔 재앙을 계획한 이가 켈리라는 것만 추측했다. 그러나 항체를 보유한 인간에 대해 범위를 조금 더 넓혀 보면, 낙조나 해화처럼 몸에서 식물이 발현된 케이스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백신을 개발한 켈리와 그녀의 주변인들조차 그저 항체 보균자였을뿐, 몸에서 식물이 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 서천이란 곳에서 나를 보호해 준다는 명목으로 관찰하겠다는 거네요.”
해화는 빠르게 판단했다. 아직 서천이 어떤 형태로 구성돼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지옥이니 안내자니, 낙조가 겪은 상황을 설명하기엔 낙조 스스로도 그래서 정확히 ‘그분’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함부로 입을 뗄 수 없었다.
“절대 위험하진 않습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하기 전에 항상 그런 말을 하죠. ‘생명엔 지장이 없음.’ 고낙조, 너도 알지?”
해화는 대화의 주도권을 낙조에게 갑작스럽게 넘겼다. 꼭 무엇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어쩐지 무흠을 살살 약 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는 애매하게 논점을 흐리고 있었다. 낙조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배 타기 전에 더 자세히 알려드릴 테니……, 분란은 일으키지 맙시다.”
무흠은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말했다. 해화와 낙조 모두가 알던 그때처럼. 해화에겐 여전히 경어를 썼으나 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쯤은 해화도 알고 있었다.
배를 끌고 온 사람도 서천 사람이겠지. 과연 통영에서 제주까지 가는 중에 아무런 일도 없을까?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짓을 벌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낙조는 자신이 눈 감고 있던 이틀의 시간이 궁금했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어떤 생각으로 제주도로 가는 이 여정을 모두가 동의했을까. 깨어 있었을 때의 자신도 그리 제정신은 아니었으나 해화가 나온 꿈 같지 않은 꿈을 꾼 이후로는 모든 게 낙조의 신경을 돋치게 하고 있었다. 마치 호저처럼 가시가 바짝 세워져 아무렇지 않은 척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는 자신이 다시 한심해졌다.
‘호저가 무슨 죄야.’
낙조는 사이드미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막연하게 생각했다. 가시를 돋치는 설치류……. 가시를 세우는 쥐. 복잡했던 머릿속에 귀여운 쥐의 얼굴이 솟아올랐다.
「도담지가 뭡니까?」
「아저씨 다람쥐야?」
「설치류인 줄 몰랐네.」
문득 평택 대피소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덜컥, 난데없이 불쑥 솟은 안전방지턱에 걸려 몸이 함께 움직였다. 낙조는 별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가시 세우는 쥐 알아요?”
“가시도치.”
“가슴도치 아닙니까?”
“고슴도치겠죠.”
해화와 무흠이 나란히 대답하자마자 낙조가 못 볼 걸 봤다는 듯 무흠의 대답을 튕겨 냈다. 해화의 얼굴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흠은 핸들을 꽉 잡은 채 침묵하다가 항변했다.
“아니, 홍해화 씨가 가시도치라고 해서―”
“―누가 가시에서 가슴을 생각해요?”
“…….”
“흉하다 흉해.”.
해화가 웃음기를 참으면서 중얼거렸다. 무흠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속력을 올렸다.
“아니 안개밖에 안 보이는데 속도를 높이면 어떡해요!”
“…….”
“아아아 스톱스톱스톱!”
낙조가 운전석으로 몸을 반쯤 넘겨서야 차의 속력을 줄어들었다.
어쩐지 갈수록 안개가 더욱 연기처럼 자욱히 끼는 듯했다. 바다에 가까워지면서 물안개도 겹쳐지는 건가. 낙조는 창문을 조금 내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바닷냄새. 저 먼 곳부터 밀려오는 파도에 한 움큼씩 온몸을 가득 채우는 물 냄새가 느껴진다. 파도에 잘게 낀 작은 거품 방울들은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고, 발등과 발목을 간질이는 듯한 물결에 이끌림을 느낀다. 낙조가 생각하는 바다의 이미지는 그랬다. 바다 위로 동이 트는 것도, 지는 것도 보지 못했다. 낙조에게 담긴 바다는 항상 파랬다. 투명한 속과 맑은 소리. 아무리 그 속이 깊다 해도 결국은 투명한 것으로 채워진 곳이라고. 바다만큼 솔직한 자연이 있을까. 한 문장으로도 모순된 의미가 둥둥 떠올랐으나 물을 보기도 전부터 코와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바다는 낙조에게 비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어 주는 곳이었다.
“내릴 준비 하십시오.”
항구에 거의 다다랐는지 무흠이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도망칠 곳이 없어질 때마다 혼자서 왔던 곳을 누군가와 오게 되리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낙조는 뿌옇게 올라온 안개 속을 파헤치는 것처럼 바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바퀴에 자잘한 모래 갈리는 소리가 났다. 주차장에서 핸들을 돌릴 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헤드라이트 없이는 길을 구분할 수 없었음에도 무흠은 별 탈 없이 주차를 끝냈다. 잇따라 불을 쫓아온 밤이의 차도 다다랐다. 말없이 짐을 챙기면서, 낙조는 무흠이 건넨 손전등을 켰다.
아무리 빛을 쏘아 대도 안개까지 헤칠 순 없었다. 연기처럼 손사래를 친다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묵묵히 막히지 않은 길을 찾아 나아갈 뿐이었다.
‘이제 다시 안 오려나.’
언젠가부터 어딘가를 떠날 때쯤 드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다시 오지 못할까. 다시 온다 해도 이 모습 그대로일까. 마지막으로 보는 남해가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도 버무렸다. 무흠은 이곳에 많이 와 본 사람처럼 앞장섰다. 줄지어 손전등을 켠 채 걸었다. 서로의 등을 쫓으며, 거리를 좁히지 않고,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으면서.
“배 타기 전에 알려 준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낙조의 뒤에서 따라오던 해화가 낙조를 건너 뛴 채 무흠에게 말을 걸었다. 뒤에 있는 일행들은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던 순간을 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화는 무흠에게 해맑게 물었다.
“아, 그랬죠.”
무흠은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가며 대답했다. 낙조는 둘의 사이에 끼어서 침묵을 유지하며 무흠의 뒤통수만 바라보았다. 정직한 자세로 걷는 그의 뒷모습에선 스산함이 느껴졌다. 손전등을 쥔 손에 힘을 준 채 무흠과 눈을 마주한 것처럼 낙조는 눈을 바짝 떴다. 꼭 그의 뒤통수 두피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괴이하게 생긴 이목구비가 자신에게 말을 걸 것만 같았다.
“먼저 그걸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서천꽃밭에 들어갈 때 주의할 점.”
주의할 점? 마치 지금까지 꽁꽁 숨겨 둔 이야기를 펼치듯 말하는 무흠의 어투는 어딘가 낯설었다. 낙조는 플래시를 무흠의 머리에 겨눈 채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서천 입구엔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자주 돌아다닙니다. 그것들과 눈을 마주하지 마십시오.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한 척하시고, 눈앞까지 와서 얼굴을 들이밀어도 놀라지 마십시오.”
“귀신이 있어요?”
“갈 곳 잃은 망자들입니다. 넋을 달래 주지 못해 한이 남아 서천 주변을 떠도는 것입니다. 죽어서도 저승 갈 다리를 건너지 못할 만큼 생전에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자들이니 말을 섞어서 좋을 것 없습니다.”
“귀신과 말 세 번 섞으면 죽는다, 약간 그런 건가요?”
해화는 무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물었다. 한 달 간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모든 것을 보고 들은 것처럼 구는 해화의 행동도 낙조에겐 낯설었다. 모습은 익숙했지만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낙조를 앞뒤로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그럼 세 번 이미 끝났네!”
‘뭐?’
해화가 뒤쪽에서 웃으며 손뼉을 치는 소리에 소름이 쭈뼛 섰다. 반사적으로 손전등을 뒤쪽으로 비춘 낙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 눈부셔. 뭐 해?”
“……방금, 뭐라고 했어?”
“뭐? 아무 말도 안 했어. 중사님만 얘기하고 있었잖아.”
얼굴에 빛을 쏘인 해화가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린 채 짜증을 부렸다. 낙조는 그녀에게 몇 번이고 물었으나 대답은 같았다.
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낙조는 해화의 얼굴을 마주한 채 이를 악물었다. 다시 앞을 볼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