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황혼 (1)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발은 완전히 뿌리가 되어 땅에 박혔고,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몸을,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꾸만 일으켜 세운다. 자신의 몸인데도 스스로 제어할 수가 없다. 사지가 다 잘려나간 것처럼 고통스럽다.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 봤자 듣기 싫은 쇳소리만 나올 뿐이다.
쿵.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암흑 속에서 무거운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땅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검붉은 색이 땅과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땅과 하늘이 맞닿는 지점엔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인영이 서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낙조는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반드시, 틀림없이.
“……홍해화!”
가까스로 목소리가 터졌다. 아무리 크게 부른다 해도 들을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러나 인영은 움직였다. 붉디 붉은 허공을 응시하던 시선이 낙조에게로 천천히 돌아왔다. 붉은 빛을 등진 채 가만히 서 있던 인영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절뚝, 절뚝.
그는 한쪽 다리를 절며 힘겹게 다가왔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며, 아슬아슬하게 땅을 딛고, 조금씩 낙조와 가까워졌다. 낙조는 역광에 가려져 있던 인영의 얼굴을 확인했다.
“홍해화.”
“낙조야.”
낙조는 잎이 자라던 해화의 발목을 확인했다. 뼈가 보일 만큼 살이 움푹 패여 있었다. 누군가 잎을 뿌리째 뽑기 위해 아예 날이 잔뜩 선 도구로 살점을 베어 간 듯 보였다. 피는 하염없이 흘렀다. 해화의 발목에서 흐르는 피가 바닥과 합쳐졌을 때 낙조는 알았다.
이 검붉은 빛이 모두 해화의 몸에서 나왔다는 것을.
“너 누가, 누가 이랬어? 어?”
목소리에 잔뜩 힘을 주고 있자니 말끝이 떨렸다. 낙조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에게 속박당한 채 해화가 불안하게 서 있는 걸 보고 있어야만 했다. 팔다리가 풀린다고 해도 낙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낙조는 힘껏 몸부림을 쳐 보았으나 여전히 같은 자리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바닥에 코를 박았다. 분명 그 공간은 해화의 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코끝엔 맑은 아침에 맡을 수 있었던 향긋한 풀내음이 번졌다.
“내가 그때 시간이 없어서, 못 해 준 말이 있어.”
해화는 비틀거리며 낙조의 앞에 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보다 평온에 가까운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에 낙조가 숨을 들이켰다. 해화와 가까워지니 풀내음이 더욱 진하게 풍겨 왔다. 처음에는 향긋하기만 했던 냄새가, 점점 독하리만치 거세졌다.
“내가 그 산을 잠재울 때, 끝까지 잠들지 않고 버티던 나무가 있었어.”
“…….”
“그 나무가 너를 알고 있었어. 그런데 네 이름이 아니더라. 분명히 너를 부르는 것 같은데, 네 이름이 아니었어.”
해화의 말이 이어질수록 독한 풀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숨도 쉬기 벅찰 만큼 냄새가 고약해졌을 때, 해화가 점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어 갔다.
“너 이름이 뭐야?”
“……말도 안 되는, 무슨…….”
숨쉬기가 벅차니 말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러나 독한 냄새만으론 호흡을 완전히 조일 수 없었다. 이 검붉은 공간에선 호흡도 제멋대로였다. 결국 마른기침을 내뱉던 낙조 입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튀어나왔다.
“너가 환인이야?”
끈적하고 말캉거리는 덩어리 하나. 그것은 미미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낙조는 보자마자 자신이 새벽에 마주쳤던 발광 구체와 비슷한 모양이라는 걸 깨달았다. 온몸이 굳었다. 움직이려고 해 봤자 움직여지지 않았으나, 시선조차 얼어붙게 된 건 그 순간이었다.
*
“콜록, 윽, 콜록! 컥, 허억, 하…….”
목구멍이 뜨거운 것으로 가득 찼다고 느껴졌을 때, 낙조는 그것을 기침과 함께 내뱉었다. 동시에 눈이 뜨였다. 검붉기만 했던 세상은 또 지고, 이젠 익숙한 공간이 시야에 들어찼다. 곰팡이가 슨 벽지, 천장, 헤진 이불, 그리고…….
‘내가 방금 뭘 토했지.’
순간 오싹해지는 기분에 낙조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안경을 끼지 않아 시야가 흐려 주위를 잘 확인할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주위가 술렁이는 걸 알아챈 건 무흠이 자신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을 때였다.
“고낙조!”
먹먹하던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낙조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열이 오른 것처럼 몸 안에서 뜨거운 것이 계속 타오르는 듯했고 손끝은 벌벌 떨렸다. 겨우 바닥을 짚어 안경을 찾아 쓰니, 자신을 에워싼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무흠, 수호, 지운, 밤이……, 홍해화.
‘홍해화?’
해화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자마자 낙조의 몸이 주춤거렸다. 바닥을 짚었던 손은 낙조가 내뱉은 물에 미끄러졌고, 그대로 몸이 무너지는 것을 무흠이 받쳤다. 해화는 낙조의 맞은편에 앉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낙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상태에서 낙조는 시선을 피하지도, 그렇다고 계속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다.
“……고낙조?”
그 시선에 해화가 먼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낙조의 이름을 불렀다. 낙조는 가쁜 숨을 정리하면서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아직 켈리가 준 독 때문에 환각을 보는 것은 아닌지. 무흠의 소매를 붙잡고 한 명 한 명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해화는 그 자리에 여전히 앉아 있었고 낙조는 눈을 감으면서 속으로 숫자를 셌다. 아닐 거야, 아니다. 아니야, 꿈이야…….
“정신 차려.”
그때 무흠이 귓가에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심해에 잠긴 것처럼 먹먹했던 귀에서 물이 쏟아져 나온 것 같았다. 옅은 파도 소리가 지나가고, 낙조는 그제야 선명히 들리는 백색소음에 숨을 토해 냈다. 두세 개로 나뉘어 보이던 형상들도 완전히 하나로 겹쳐 보였다. 낙조의 호흡이 점점 가라앉자, 무흠이 낙조의 등을 벽에 기대게끔 놓아 주었다.
왜 이들이 자신의 방에 한꺼번에 모인 건지, 선명하다 못해 섬찟했던 검붉은 공간은 무엇인지……. 낙조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이 뒤엉켜 엉망이었으나 이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건 첫 번째 질문뿐이었다.
“이틀 내내 기절해 있었어. 나랑 얘기했던 날 이후로. 이틀 내내.”
낙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무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조금 날이 선 말투로 ‘이틀’을 강조했다. 낙조는 눈을 깜박이며 자신이 잠든 적이 있었나, 먼저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자꾸만 환각처럼 주위를 떠돌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이사이에 서러움 섞인 자신의 속마음도 중얼거린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눈을 감은 순간이 기억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틀 동안 잠들어 있을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도 아니었다. 깊게 잠들었던 날들은 항상 몸이 심하게 다쳤던 날뿐이었는데. 낙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자, 무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낙조.”
그 틈을 비집고 해화가 낙조를 불렀다. 검붉은 공간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같았다. 조곤조곤하고, 어딘가 바람이 빠진 목소리. 항상 힘에 차 있진 않더라도 중심은 잃지 않았던 목소리랑은 조금 달랐다. 해화는 많이 야윈 얼굴로 낙조를 가만히 응시했다. 대답을 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홍해화…….”
“그래. 나다. 뭘 귀신 보듯이 일어나자마자 기겁을 해.”
해화는 그제야 웃었다. 아주 엷은 미소였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낙조가 아무 말도 않고서 가만히 있자, 무흠이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너 때문에 늦게 생겼다. 기운 차렸으면 얼른 일어나.”
“……또 어딜 가요.”
이틀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목이 심하게 잠겨 있었다. 무흠은 묵묵히 낙조를 응시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등을 돌렸다. 수호도 남은 이들의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무흠은 겉옷을 챙겨 입더니 낙조에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던 곳. 빨리 일어나.”
그리곤 무흠은 수호와 함께 방을 먼저 나섰다. 일부러 넷이서 모인 자리를 만들어 준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반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지내온 사람들이었는데, 너무나도 낯설었다. 특히 해화가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이 낙조의 시선을 잡아먹었다. 시선이 이끌리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면서, 낙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낙조.”
“…….”
“나는 집에 안 가. 네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믿어 줄 때까지 안 갈 거야. 나는 너한테 빚진 것들 다 갚기 위해서라도 못 가.”
아마 밤이가 방에 찾아왔을 때 자신이 내던진 말에 대한 대답인 듯했다. 지운과 해화는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낙조는 단단하기 그지없는 밤이의 목소리에 말없이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일행들은 이미 자신의 속에선 모조리 무너져 내린 탑이었다. 쓸쓸하게 잔해만 남아 마음속을 뒹굴며 할퀴고 또 흠집을 내면서 우울을 돋게 했다. 밤이의 말 한 마디로 곧장 그 탑이 예전의 모습처럼 돌아올 순 없었다.
그러나 그 잔해를 줍는 것이 자신 혼자가 아니라는 걸, 낙조는 어렴풋이 느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들이 얼마나 더 따뜻해질지, 그게 걱정될 뿐이었다.
*
연우의 방 안에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 구석엔 간식으로 나오는 가벼운 음식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켈리와 대화를 나눈 후 이틀이 지났다. 연우는 그동안 간간이 자신의 생사를 확인하러 오는 연구원들의 간식과 물만 먹고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켈리에게 증명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자헌 박사에 대해 켈리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대답해 주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정확히 자신의 능력을 겨누어 조롱하기까지 했다. 왜 기꺼이 자신에게 보고서와 일기가 난장판으로 뒤섞인 파일을 주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연우는 방에 돌아오자마자 소리를 크게 지르곤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켈리가 자헌 박사에 대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 눈치챘으나 티를 낼 순 없었다. 동시에 켈리의 입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타임어택도 시작됐다. 연우는 어쩔 수 없이 릴리의 보고서를 다시 열어야만 했다. 덤덤하게 써 내려갔지만 그저 잔혹한 살인 행위와 다름없는 실험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켈리는 끔찍한 장면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연우가 뒤늦게 의아함을 품게 된 단어들이 등장했다.
「A 식물과 B 식물의 교합은 이뤄질 수 없으나, 서천의 백약초를 사용하면 두 개의 뿌리가 연리지와 같이 하나로 연결된다.」
「식물이 원하는 영양분을 인간의 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삼승만이 키울 수 있는……」
「……자헌 박사는 서천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웃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속을 모를까 봐. 언제든 그곳으로 갈 준비가 되었다는 표정이 우스웠다. 쫓겨났다는 표현은 일부러 쓰지 않았다. 그저 들어갈 수 없는 곳이고, 아마 지금쯤이면 서천꽃밭에 들어가는 문도 닫았을 테니. 굳이 설명해 줄 필요가 없었다.」
켈리가 설명해 준 이야기의 번외인 것 같은 낯선 장소명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처음 들어보는 약초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읽어 봐도, 그녀가 설명한 단어와 닿는 지점이 밀접한 자료를 찾으려 해 봐도 나오는 건 없었다. 무시할 수 없는 걸림돌이었다. 집중하고 기억을 꺼내 본다고 해서 처음 알게 된 공간과 약초의 정보를 깨닫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얘기해 주지 않았으니 마지막으로 찾아가 물어볼까 싶다가도 어김없이 자신을 비웃을 것 같은 느낌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연우는 벌겋게 충혈 된 눈을 바짝 떴다. 키보드에서 손을 뗀 연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켈리가 주었던 파일을 다시 열었다. 처음에 했던 것처럼 생성 날짜순으로 문서들을 정리했다.
‘……이게 뭐지?’
이젠 익숙한 문서들의 제목을 읽어 내리던 연우는 스크롤을 내리다가 뜬금없이 자리 잡고 있는 파일 하나를 클릭했다. 맨 앞에 뜨는 아이콘 자체가 백지였다. 자신이 가진 파일 뷰어로는 읽을 수 없다는 확장자라는 말이었다. 천 개에 달하는 파일 중 단 한 개. 파일명도 알 수 없는 기호로 나열된 상태였다. 연우는 그 파일에 커서를 올려 두고 생각에 빠졌다.
‘변환할 수 있나?’
보지 못한다면 볼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깔려 있음에도 열리지 않는 확장자 파일이라면, 아주 옛날에 쓰였던 파일이거나 작성 중 손상되었을 확률이 높다. 연우는 확장자 변경 프로그램을 켜고서 조용히 커서 밑에 깔아 둔 파일을 클릭해 프로그램 위로 옮겼다.
[확장자 변경 중]
[확장자 변경이 완료되었습니다]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몇 분이긴 했으나 아마도 문서일 확률이 높은 파일을 변환한다고 이렇게까지 시간이 소요 되는 일은 별로 없다. 연우는 턱을 괴고 초조한 시선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변경이 완료되자마자 뷰어로 파일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파일 안에는 사진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찍은 것 같은, 낡은 사진이었다.
“……백약초?”
사진들을 훑던 연우는 사진에 담긴 한자어 어감들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걸 느꼈다. 머리에 빛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곧 눈앞이 번쩍였다. 그녀는 맨 앞의 파일부터 정리하여 큰 화면으로 사진을 띄웠다. 첫 사진에는 책의 표지로 보이는 낡은 종이 위엔 <서천꽃밭> 이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