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D-3
무흠은 수호가 복도를 완전히 떠나길 기다렸다. 아주 조금이라도 흘려선 안 되는 대화였다. 겉으로 행동하는 것만 봐도 수호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지난 하루 동안 있었던 낙조와의 대화가 아무래도 맘에 걸렸다. 정말 알려고 했다면 낙조를 몰아붙여 뿌리의 출처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마음이 조급해진 건, 낙조가 의도치 않게 이 사태의 근원이 서천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애매하게 둘러서 말한다면, 서천꽃밭에서 식물과 인간의 융합 치료 방법을 개발해냈고, 이후 켈리가 서천에 들어와 약초를 훔쳐 일을 키웠으니 치밀하게 관리하지 못한 서천에게로 잘못이 돌아간다.
거기에 낙조가 얹었던 질문들이 무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감염된 인간은 변종이 된 이후 죽기 직전까지 인간으로서의 의식이 있냐, 켈리가 서천에서 도주한 후 무덤에서 발견했다던 흔적은 도대체 무엇이냐.
쉽게 답해 줄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낙조가 한 질문은 모두 이 재앙의 과녁에 걸려 있었다. 그것을 꿰뚫었다고 해도 낙조에겐 확신이 없었다. 간밤에 무엇을 본 것인지 알 수 없어 내내 주변을 돌아다녔으나 변종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찾은 건 웅덩이처럼 고인 핏물 하나뿐이었는데, 그곳에서 일이 벌어졌다는 것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게 증발 된 상태였다. 하다못해 살덩어리 한 점이라도 볼 수 있길 바랐는데. 무흠은 빈손으로 돌아와 한참을 고민했다.
하늘마루는 서천의 어르신들이 주로 상주하는 곳으로, 무흠이 붕어섬에서 피마자 실험을 당한 이후 장소를 옮겼다. 켈리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무흠 또한 붕어섬에서 기억을 잃어 다시 서천의 사람이 찾아올 때까지 일반적인 군인의 생활을 하며 지냈으니 하늘마루가 어디에 있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힘이 돌아오는 대로 장승의 역할을 돌려주겠다는 삼승의 말을 믿을 뿐이었다.
통신망을 구축하자마자 무흠은 삼승과 대화를 나누었다. 삼승은 모든 걸 보고 있던 것처럼 무흠을 달랬고, 하늘마루의 위치를 알려 주겠다 얘기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삼승은 무흠이 있는 곳으로 아무 정보도 보내지 않았다. 처음엔 초조했고 시간이 갈수록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낙조였다. 무흠은 수호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걸 듣고서 수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몇 번의 통화음이 걸리고, 이윽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대답도, 숨소리도 없었다. 텅 빈 것 같은 허공에 무흠은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을 겨우 참고서 입을 뗐다.
“삼승님, 백무흠입니다.”
-…….
“아직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무흠아.
“예.”
어째선지 삼승은 말이 없었다. 무흠은 더 떨리기 시작하는 손을 반대쪽 손으로 붙잡고 마른침을 삼켰다.
-사흘 동안 버틸 수 있겠니.
“……무얼 말입니까.”
-사흘 동안 그곳에서 환인을 붙잡을 수 있겠냔 말이다.
“알고 계셨습니까?”
-너와 이야기를 나눈 이후부터 산이 울기 시작했다. 내년 봄까진 괜찮으리라 생각했는데, 켈리가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 귀도가 청주에서 보내오는 보고로 알게 됐지. 아직 눈에 띄는 건 없는 것 같으나, 서연우라는 작자도 상대해야 한다는 게 벅차구나.
“청주에서 자리를 온전히 잡기도 전일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 여자는 어떻게든 상황을 만들어 내지. 너도 곧 보게 되겠지만.
“……그럼 왜 하필 사흘입니까.”
-사흘 뒤 인시寅時가 끝날 무렵 통영항으로 오거라.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눈을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눈과 입, 귀를 조심하고 있으니 너도 이해해 주렴.
삼승은 무겁게 말을 이어 갔다. 전화를 오래 하는 것도 청주의 눈에 걸릴 수 있어 최대한 빨리 끝내야 했다. 무흠은 가만히 주먹을 쥐고 있다가 전화를 끊으려는 삼승을 붙잡았다.
“삼승님. 환인이 먼저 눈치를 챘습니다.”
-……어떤 걸.
“심방의 힘을 알아챈 것 같습니다. 스스로 한 짓은 아니지만, 정황으로 봤을 때 이미 신체의 일부는 심방의 기운에 휩싸인 게 분명합니다.”
삼승은 무흠의 보고에 오래도록 말을 잇지 못했다. 큰 충격일 게 당연했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의 원인이 낙조라는 것부터 골이 아플 일이었으니까. 무흠은 덩달아 착잡해지는 기분을 억누르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사흘 뒤……, 어쩌면 나흘째 되는 날에 뵐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 무탈하십시오.”
삼승이 대답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무흠은 수화기를 내려놓고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근처에 봐 둔 차는 많았다. 낙조를 자신의 차에 태우는 게 중요했다. 그가 어떤 마음을 먹고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지는 몰라도,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길게 주게 되면 그것대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홍해화가 문제군.’
이제 눈을 뜨긴 했으나 사흘 안에 정신을 완전히 차리게 하는 게 목표였다. 두 발로 걸을 수는 없더라도 하늘마루에 가선 스스로 대답을 해야 했으니. 아무리 필요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삼승이 해화를 아무 이유 없이 내쫓지는 않을 테다. 그러니 해화가 지난 시간 동안 들었던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했다.
*
“어디 가.”
2층에서 3층으로 뛰어갈 때였다. 3층 쪽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밤이가 지운을 막아섰다. 지운은 벅찬 숨 사이사이에 말을 끼워 넣으며 겨우 한 문장을 만들어 냈다.
“청주, 청, 주에, 켈, 리가, 헉, 허억, 그 여자가―”
“―그래서 뭐. 고낙조한테 말하러 가겠다고?”
“콜록, 콜록. 말해야지, 그럼. 서연우에다가, 켈리까지 있으면 잡히는 거 시간 문제야!”
“가지 마.”
“……무슨 소리야 누나.”
“고낙조도 알고 있을 거라고.”
지운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밤이는 그걸 보면서도 묵묵히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매캐하고 희뿌연 연기가 밤이와 지운, 수호를 차례로 얽었다.
“알고 있는 게 말이 돼?”
“모르는 게 비정상 아니냐? 백무흠이랑 저 사람도 청주에서 왔어. 그걸 모르겠어?”
밤이는 평소보다 날카롭게 지운을 꾸짖었다.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곤 담배를 계단에 지져 끈 후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홍지운.”
“또 가르치려고 하는 거지. 내가 모르는 거라고.”
“모르잖아. 모르니까 가르치지. 너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니가 다 알아?”
“고낙조가 여기에 있으니까! 우린 고낙조 없으면 나가자마자 죽어!”
지운은 울분을 터뜨리듯 소리쳤다. 동시에 밤이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시선으로 지운을 응시하던 밤이는 계단에서 몸을 일으켰다. 몇 계단 위에 앉아 있었던 터라 시선의 위치가 단번에 엇갈렸다.
“넌 그럼 죽을 때까지 고낙조 덕만 보고, 고낙조 탓만 하다가 뒤질 거야?”
“……나도 내가 왜 이런 생각하는지 몰라. 모르겠는데, 그냥 억울해서 죽을 것 같다고. 그냥 얌전히 할머니랑 누나랑 대피소에 있었으면, 배고프든 목이 마르든!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고……. 나 진짜 죽고 싶어.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면 그냥 죽을래.”
결국 지운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수호에게 그렇게 길게 중얼거렸던 것도, 어떻게든 낙조를 만나려고 했던 것도, 그저 저 생각 하나를 떨치기 위해 쉬지 않고 머리나 몸을 움직였던 것뿐이었다. 수호는 한 걸음 물러나 밤이와 지운을 지켜보았다. 지운의 말에 밤이도 숨을 한 번 참고서 가만히 서 있었다.
“지운아.”
밤이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지운을 불렀다. 지운은 고개만 똑 떨어뜨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밤이는 잠자코 대답을 기다리다가 뒤에 있던 수호를 보고선 지운의 손목을 살며시 잡아끌었다.
“올라가서 얘기 좀 하자. 다 들어줄게.”
밤이의 말에 지운은 생각보다 쉽게 그녀를 뒤따라갔다. 밤이는 수호에게 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한 후 지운을 데리고 복도 안으로 사라졌다. 수호는 쓴 한숨을 내쉬고서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
“…….”
“지금도 죽고 싶어? 혼자 있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세상에선……, 그 어떤 일에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야.”
지운은 완전히 주눅이 든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대답했다. 밤이는 지운을 먼저 바닥에 앉힌 후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지운은 가만히 밤이의 손길을 받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누나가 저렇게 누워 있는데도, 나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했어. 소독약이랑 붕대만 갖고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숨도 겨우 쉬면서 눈만 감고 있는 모습이……, 보호소 봉사 갔을 때마다 봤던 애들이 생각 나서 미칠 것 같아. 교통사고로, 누가 길가에 버려서, 너무 어릴 때 사람 손을 타고 마지막으로 보호소에 온 애들 중에는 꼭 아픈 애들이 많았거든? 너무 작아서 수술도 못 해. 멀리서 보면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보호소에 들어와서 하루도 못 버티고 자연사하는 애들도 있고,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안락사시키는 애들도 있어.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한심했어. 근데 지금 누나가 누워 있는데……, 유리관 안에서 숨만 쉬는 애들이랑 똑같아. 그냥 시간만 흘러가고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 이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야?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살아도 돼?”
지운은 수의학 전공하던 시절에 자주 갔었던 동물보호소 얘기를 꺼냈다. 그는 손바닥에도 담기지 않을 만큼 작은 아이부터 품에 덥석 안기는 아이들까지 모두 봤다고 했다. 처음에 갔을 땐 건강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사라져 있을 때, 혹은 조그마한 감기 때문에 몸도 가누지 못하고 누워 있을 때가 가장 억울하다고 했다. 그저 동물들이 좋아서 시작한 공부였음에도 막상 죽음의 문턱까지 간 아이들을 보면 몸이 얼음처럼 굳는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모습과 해화가 다를 게 없다는 말을 할 때, 아무 표정 없던 지운의 눈에서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눈물에 밤이는 말없이 지운의 이야기만 잠자코 들었다.
자신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절망감, 허무함, 미안함……. 갑자기 이런 감정들이 치솟진 않았을 테다. 분명히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얇은 것이 맨 아래에 깔리고, 그것을 발판 삼아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다 못해 터져 버린 거다.
“살아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고 죽어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
“그리고 내 허락을 왜 맡아.”
“누나.”
“응.”
“동물들은 인간보다 빨리 알아채는 게 많아.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에게 우호적인지, 아닌지, 자기 주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귀찮아하는지……. 그리고 환경이 변하는 것도 잘 알아채지. 역사에 쓰인 재난이 오기 전에 쥐 떼가 길을 지나다니고, 개구리가 뭍으로 올라오고, 그런 것들 다……, 동물들이 먼저 알아채고 움직인 거야. 어떻게 말하면 신호지.”
지운은 여전히 멍한 눈을 둔 채 중얼거렸다. 밤이는 지운이 중얼거리는 것을 가만히 듣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동물의 부재. 자신도 전주에 내려온 이후 의아한 점을 짚다가 발견한 의문이었다. 갑자기 사라진 동물들. 그 많은 아이들이 어디로 갔을까. 곤충은 임실에서 낙조와 해화가 주워 온 변이 된 선충이 다였다.
“그럼……,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있던 강아지는? 걔는 봤잖아, 우리 다.”
“노견이었어. 그 아이가 선택한 거야. 떠나지 않기로.”
지운의 대답은 빨랐다.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밤이는 두 손을 들어 입가를 감쌌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인간 아니면 변종과 충돌하느라 빈자리의 이유를 너무나 늦게 찾았다. 재앙이 시작과 동시에 알고 있었다면, 그 전부터 동물들은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그럼 사라진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거야?”
“…….”
“어? 홍지운.”
“아마…….”
지운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어떠한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입만 벙긋거릴 뿐 목소리가 막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밤이는 그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가정에 있던 아이들이 도망쳤을 확률을 빼고, 야생에 있던 동물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것부터라도 알아야 했다.
“아마, 땅속에…….”
밤이의 손에서 힘이 단숨에 빠져나갔다.
스스로 움직이는 산. 뒤바뀌는 길. 공중에 매달려 있던 시체. 얼어 있던 땅. 불을 지펴도 열지 못한 산의 뿌리.
뒤바뀐 생태계 전쟁에서 동물은 예외가 된 게 아니었다.
도망치려 했으나 그들이 밟고 있던 곳 모두가 덫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