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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117화 (117/202)

117화. 망자 (1)

저녁이 될 때까지 낙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무흠이 식사 때마다 먹을 것을 주러 들어오긴 했으나 대화 한 번 안 했다. 무흠은 저녁을 주고 문을 닫기 직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피 냄새가 너무 심하니 웬만하면 씻는 게 좋겠다고. 낙조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통조림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문을 걸어 잠근 후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잔뜩 받았다. 찰랑거리는 물에 얼굴을 푹 담그곤 숨이 막힐 때까지 참았다. 본능적으로 숨을 쉬기 위해 입안의 공기를 내뱉을 때, 더 이상 숨이 막히지 않는 게 느껴졌다. 무흠의 피로 몸을 씻어 낸 이후, 가습식물도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한 게 분명했다. 낙조는 허리를 다시 꼿꼿하게 펴고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얼굴에 달린 물이 세면대로 뚝뚝 떨어졌다. 오랫동안 닦지 않아 먼지가 쌓인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창백한 낯빛으로, 무엇을 보는지 모를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핏자국은 거의 긁다시피 벗겨 냈다. 손톱 사이에 낀 굳은 피를 다시 떼어 내고, 찬물에 몸이 부르틀 때까지 씻었다. 배수구가 막혔는지 물이 시원찮게 내려갔다. 종종 배수구의 틈에 걸린 핏덩어리가 구역질을 나게 했다.

지금까지 뭘 위해 이렇게 버텼지? 낙조는 축축하게 젖은 수건으로 닦은 몸을 다시 닦으면서 생각했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졌다. 바닥에 툭, 툭,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다가 벽에 그대로 머리를 짚었다. 눈을 한 번 깜박일 때마다 귓가에서 소낙비 내리는 소리가 났다.

서천에서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개미굴처럼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곳이었다. 아무리 몸을 숨긴다 한들 숨겨지지 않는 게 있었다. 그보다 낙조를 거세게 뒤흔든 건 다시 되돌아온 자괴감이었다. 누군가를 지켜 내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자괴감이 아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나.

일부러 사람과 엮이지 않으려 했고,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애꿎은 관계도, 휩쓸릴 것 같은 감정도 묵묵히 무시했다. 그렇게 평생의 꿈이었던 ‘모두에게 잊히는 삶’을 위해 자신만의 일상에 집중한 인생의 결말이 결국 이런 걸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철저히 스스로 짓밟기로 선택한 어린 자신의 고통도 구제할 수 없었는데,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고통을 무슨 식으로…….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낙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 내가 한 게 아니지.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른팔로 향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른팔은 하루 내내 잠잠했다. 여전히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으나 발광 구체에게서 보였던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저승으로 안내하는 자는 항상 나랑 비슷한 몸을 가진 사람이었나. ……치료를 받은 환자 중엔 식물을 심은 사람이 없다고 했지, 서천 사람이 없다고 하진 않았잖아.’

온전히 자신이 꽂혔던 단어에 몰두하여 중요한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 역할을 하던 자가 죽어서 자신이 대신 그 역할을 하는 거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염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처럼 변종과 교감 비슷한 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없다는 말이 된다. 고국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을 받았던 서천의 사람들도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서천에 보고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 홍해화는, 왜?’

교감이라면 식물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해화가 더 자신보다 적합하다. 식물과 대화하고, 그들을 잠들게 하는 방법까지 아는 그녀가 아니라 왜 자신인가. 낙조는 젖은 머리를 감쌌다가 목이 뻐근해져 두 눈을 아예 감았다. 심한 두통이 오기 전마다 일어나는 신호였다.

“결국 다 가짜구나.”

낙조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흘렸다. 듣는 사람은 낙조 자신뿐이었다.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도, 자신의 상태를 알면서 끝까지 진실을 함구한 밤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길가에 넘어진 이를 일으켜 주는 마음이었는데. 물론 지금까지 내린 모든 선택이 옳았다곤 할 수 없다. 그러나 선심 쓰는 게 아닌, 무의식에서 나온 자신의 행동이 그들에게 얼마나 가볍고 먹기 좋은 사냥감으로 보였을지 생각하려니 입맛이 썼다.

지운도 그랬다. 자신의 곁에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에서야 그 말을 걸고 넘어지는 것 또한 유치한 짓이었다. 그러나 모든 신뢰가 다 무너진 낙조에겐 스쳐 지나간 말 하나하나가 화살이 되어 자신을 찌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눈과 귀가 닫힌 해화에게선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해화에겐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구할 순 있었으나 무흠이 없었더라면 그대로 해화를 놓쳐 버릴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겐 생존수단으로, 누군가에겐 연구의 목적으로, 또 누군가에겐 알지도 못했던 세상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함으로……. 세상이 뒤바뀐 이후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상 ‘필요하다’라는 말로 움직였던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생명의 죽음에 무뎌진다면 그때야말로 자신도 죽을 때가 온 것이라 생각했다. 낙조는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고서 자신의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다.

살가죽을 다 뜯어낸다면 몸에 기생하는 식물들의 뿌리를 다 뽑을 수 있을까. 모두 뽑으면 나 또한 죽을까. 이미 식물에게 점령당한 후라 의미 없는 짓일까. 이 또한 객기인가. 자신 하나 사라진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점점 변해 갔다. 그저 이 설명할 수 없는 허망함과 박탈감을 저버릴 수 있다면, 자신이 생존한 것에 구구절절 의미를 두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건 나름대로 괜찮은 복수가 아닐까 싶었다.

당장 죽인다고 복수의 끝이 보이진 않는다는 생각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죽는 대상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상대에서, 자신으로. 자신에게 그리 목을 매고 있으니, 자신이 사라지고 난 후에 알아서 살아 보라는, 치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남 눈치 볼 필요 있냐.’

사람들의 입에 오르지 않은 채, 가끔 올 수도 있는 누군가의 연락도 받지 못하는 삶을 위해 낙조는 노력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손쉽게 잊히지 않는다. 낙조의 목표는 죽어서도 자신의 이름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망자에겐 혀가 없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떠들어 댈 치들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부모 없이 자라게 된 불쌍한 애, 부모가 죽었는데도 돈에 눈이 먼 새끼 등등, 부모가 떠나면서 꼬리표처럼 붙은 낙조의 호칭은 많았다. 그 호칭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되고 난 후였다. 개명을 할까 싶었으나 과정이 복잡해 관뒀다. 사람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만나야 한다는 이유가 가장 크긴 했다. 삶은 왜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을까. 낙인과 같은 이름이, 자신의 과거가, 그걸 덮으려고 했던 노력까지 모든 게 어째서 화살이 되어 돌아오나.

똑똑.

몸을 짓누를 정도로 무거운 상념을 깨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장 문을 열려는 행동이 없는 걸 보니 무흠은 아닌 듯했다. 낙조는 젖은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털고서 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열진 않고 누구냐 물으니, 상대는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 송밤이.”

열어 주고 싶지 않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낙조는 잠근 문고리를 가만히 내려 보다가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었다.

그래,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보자. 그리고 얘기하지 않는다면, 직접 묻자. 더 이상 그녀가 자신을 보호하거나 자신의 뜻과 맞게 움직일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낙조는 무덤덤하게 문을 열었다.

“오늘 내내 안 보여서.”

밤이는 아무 말도 없는 낙조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살아 있나 확인하러 왔어요?”

“아니, 상처가 안 낫나 싶어서.”

“누나.”

“어?”

“누나 알고 있었다면서요. 내 몸 전체에 식물이 다 달라붙은 거.”

반응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곧장 대답이 나오지 않자 기다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낙조가 말없이 문을 닫으려 하자, 밤이가 고개를 잠깐 숙였다가 문틈에 손을 넣어 막았다.

“나도 확실하지 못한 부분이라, 얘기 안 하는 게 너한테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

“누나 똑똑하잖아요. 차라리 내가 또 속아 넘어갈 법한 말을 해요.”

“진짜야. 너 또 신경 쓰면서 걱정하고 그럴까 봐, 자신 있게 내가 알려 주겠다 해 놓고서 나도 한 게 없으니까…….”

“사사로운 일에 맘 쓰지 말라고 했잖아요. 지금도 안 믿겨요, 사실. 근데 누나가 나한테 일부러 숨겼다는 게 지금 가장, 가장…….”

“그래, 부정적인 생각만 들겠지. 근데 정말 나쁜 맘 먹고 그런 거 아니야.”

“그래 놓고 다 얘기하는 건 뭐예요?”

낙조의 수척한 얼굴 위로 미미한 분노가 스쳤다. 밤이는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내뱉으려는 말을 거두었다. 지금 상태론 무슨 말을 해도 낙조에겐 분노를 일으키는 기름처럼 일을 더 키울 게 빤했다.

“네 시간 좀 갖고, 나중에 얘기하자.”

“누나는 무슨 목적이에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상하니까요. 내 몸 걸어서 이 사태가 벌어지게 된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 희망을 걸고 내가 제안한 걸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인 거부터. 처음엔 정말로 바뀐 세상을 재앙으로 느끼지 않는구나 싶었던 내가 멍청했던 것만큼……, 이상할 정도로 나를 살리려고 했죠. 사실 죽어도 누나한텐 딱히 리스크가 크게 없는 관계였으니까. 내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붕어섬까지 간 것도, 켈리에게 잡혔을 때 어떻게든 날 살린 것도, 다. 뭔가를 잃을까 봐 조급했던 거였죠.”

“…….”

“잃을 게 있는 사람에게서 목숨을 걸 만한 용기가 필요할 땐 반드시 움직여야만 하는 목표가 있어요. 누나를 여기까지 움직이게 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내가 필요했던 거고. 죽어선 안 됐던 거였어요.”

말을 내뱉을수록 어쩐지 밤이가 아니라 자신에게 칼을 꽂는 것처럼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뜨거운 피가 구르고 굴러서 심장이 빠르게 뛰어댔다. 낙조의 마른 입술이 마침내 모든 걸 내뱉었다. 밤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다, 오해다, 등등의 짧은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던 그녀는 끝끝내 사과 한 마디 없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백무흠이 너한테 그렇게 얘기했어?”

“내 몸 전체에 식물이 달라붙어 있다는 걸, 중사님도 알고 있는데 누나가 모를 리 없었겠죠.”

“그래서 이제 날 못 믿겠다는 거지?”

밤이는 울컥 본심을 토로했다. 몸과 마음 모든 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동보다 낙조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거슬렸다. 나름 희생할 만큼 희생했다고 생각했다. 좀처럼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낙조에게 달려 있다는 걸 안 이후론 자신도 어느 정도는 내어 주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참지 않고 움직였다. 자신의 생각으론 배려의 일부였다고 생각한 게 공격적으로 되돌아오니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걸 알았다.

“내가 사적인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네 곁에 있었던 것 같아?”

낙조는 미동 없는 표정으로 밤이를 내려다 봤다. 생각은 조금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어제 그랬죠. 내 곁에 아득바득 있어 준 사람이 없었다고.”

오랫동안 목을 축이지 못해 버석거리는 목소리가 밤이의 말끝을 이었다. 낙조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날 끝까지 살리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

“내가 만약 누나가 아는 ‘고낙조’가 아니었어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애초에―”

“―그죠. 내가 먼저 제안한 거니까, 그걸 수락한 누나한테 내가 잘잘못을 따지는 구도는 이상해요. 그런데 나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내 몸이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누나라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으니 내 몸을 조건으로 건 거잖아요. 허락한 범위를 침범해서 누나의 사적인 목표를 이루는 것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고요. 아무리 작은 정보라도 나와 약속한 거면 얘기를 해 줬어야죠.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걸 누나가 왜 막아요. 그걸 알고 싶어서 누나한테 제안한 건데. 무슨 정보든, 확신할 수 없더라도 언질은 줘야 했어요. 어차피 내 몸이고 내 선택이니 내가 알아서 하는 거예요. 나를 동정하길 바라서 누나를 믿은 게 아니에요. 누나의 목적을 이뤄 주려고 누나를 믿은 것도 아니고, 나는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믿은 거죠. ……이제부터 내 선택은 내가 할게요.”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도 눈물 한 번 고이지 않는 게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운 게 언제였지. 노부부의 집에서였나. 함께 흘려 보낼 물이라도 그땐 있었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잃을 것조차 없던 사람이었는데 눈을 떠 보니 정말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돼 있었다. 더 빼앗아 갈 게 있을까? 이 몸조차,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도.

똑똑하지 못해서 사람들과 일부러 척을 두고 지낸 것도 아니다. 몰랐기에, 사람들끼리 부딪치며 어떻게 신뢰가 쌓이고 무너지는지, 낙조는 그리 많은 경험을 해 보지 못했다. 일부러 회피하고 도망치면서 자신의 이름에서 완벽히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포기한 것들이 많아 이 이상으로 자신이 구차해질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그래도 돼요. 나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낼 거니까.”

낙조는 마지막으로 끝맺는 말을 하고서 잠시 밤이를 응시했다. 그녀는 낙조가 말하는 내내 입을 꾹 닫고 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앞에서 걸음을 떼어 냈다. 천천히 복도 끝으로 멀어지는 밤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낙조는 문을 다시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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