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교감
타이밍을 노리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수를 계산하고 어떻게 될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 멈춰야 했다. 낙조는 다시 구체 덩어리가 뛸 때쯤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발광 구체는 확실히 조금 전보다 잦게 깜박였다. 구체의 일부분이 녹아내리며 위쪽에 얹힌 늘어진 살가죽 사이에 눈알, 입, 손과 발이 들쑥날쑥 박혀 있었다. 이전에 봤던 살덩어리 변종과 더 유사하게 변한 모습이었다.
손이 회복되기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쓰라린 고통이 손바닥부터 타고 올라왔으나 낙조는 벼랑 끄트머리에 다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절벽 아래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뒤로 물러서면 도망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망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라도 해 보겠지만 직접 넘어서야 했다. 넘어서는 것은 다르다.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있는 길을 두고 일부러 돌아갈 필요는 없다.
다시 거리가 가까워지니 잠잠했던 오른팔도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낙조는 발광 구체가 먼저 덤벼들기 전까지, 오른손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정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거라면, 손이 어떤 모양새로 펼쳐지느냐에 따라 추측할 수 있다.
초반엔 잠들었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것처럼 손끝이 틱, 틱, 하고 튕기듯 올라왔다. 그것을 말리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자니 팔은 마치 자신이 허락이라도 한 듯 양 발광 구체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바람이 미미하게 불었으나 몸이, 그것도 한쪽 팔만 움직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빳빳하게 서서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 애를 썼다. 핏줄이 살갗 위에 도드라지며 독이 바짝 오른 것처럼 꿈틀거렸다.
관찰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낙조의 몸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두 다리에 아무리 힘을 줘도 신발 밑창이 아스팔트 위로 긁히는 소리가 나며 이끌렸다. 낙조는 자신의 손에서 시선을 돌려 발광 구체를 응시했다. 십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저지하려고 해도 오른손은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든 발광 구체에게 닿으려는 듯이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적당히 힘을 주고 있지 않다면 저 군데군데 녹은 살덩이 틈으로 다시 파묻힐 것 같았다. 낙조는 부들거리면서 자신의 몸을 이끌고 아등바등 앞으로 나아가는 오른손을 지켜봤다.
‘공격하려는……, 공격하고 싶은 건 아니야.’
당장 눈앞에 보이는 오른손의 움직임으로만 봤을 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변종을 만났을 때와는 달리, 오른손은 그저 ‘접촉’만을 위해 움직이는 모양새로 애쓰고 있었다. 낙조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신 후, 천천히 힘의 방향을 조금 뒤틀었다. 손을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마음을 놓는 건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낙조의 생각대로 오른손은 빛을 발하는 구체와 거의 맞닿을 무렵, 힘쓰는 것을 멈췄다. 눈동자가 사라진 인간의 흰 자처럼 생긴 구체를 가만히 지켜보는 듯하더니 아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그것을 어루만졌다. 낙조의 의지는 아니더라도 손끝에 닿는 감촉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낙조는 이를 악물고서 손을 급히 뒤로 빼려 했으나 오른손은 완강했다. 지금처럼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거부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과 함께 움직이려 하는 ‘합의’ 의지가 보였을 뿐.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간, 살덩이에 짓눌려 소리도 없이 먹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조는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붙잡고 자신의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분이다.”
“그분이야.”
“엄마…….”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죽여 주세요, 흐흑, 으흑.”
“고통스럽습니다…….”
“모두 조용히 해. 심기를……, 거스르지 마라.”
낙조의 손가락이 구체를 몇 번 쓰다듬었을 때, 늘어진 살가죽 사이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양쪽 귓가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속삭이는 듯했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목소리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속삭임 사이에서, 중후한 목소리 하나가 그들을 저지했다. 그제야 영혼처럼 자신의 한풀이를 하던 이들의 속삭임이 멈췄다.
“지옥으로……, 보내 주십시오.”
다른 이들을 말린 ‘그’ 목소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낙조는 그제야 오른팔이 완전히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단단히 고정돼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손끝의 감각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오른쪽 어깨 아래부터 손목까지는 아무리 힘을 주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야.’
모든 오감이 쭈뼛 선 상태였다. 낙조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자신에게 빌고 있는 게 아닌, 자신의 오른손에게 얘기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오른손은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듯,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허공에 뜬 채로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보고 듣는 걸로……, 생각할 수 있는 건가.’
구체에 뒤섞인 살덩이는 여러 변종들이 한곳에 뭉친 것처럼 각각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어떻게 이런 형체가 되었는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처음엔 하나였을 것이다. 하나의 변종이 사람을 통째로 먹었을 수도 있고, 다른 식물에게 조종당하던 변종을 이끌어 잡았을 수도 있다. 처음 만났던 살덩어리 변종은 이만큼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와 같이, 여러 사람의 신체 부위와 목소리가 보고 들린다는 건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지옥으로 보내 달라는 게 무슨…….’
식은땀이 흘렀다. 찬바람을 맞으며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참 움직이지 않던 오른손이 문득 덜덜 떨리면서 시계 방향으로 손바닥을 뒤집었다. 낙조의 힘이 관여할 수 없는 범위였다. 아무리 용을 써 봐도 힘은 오른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추측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오갔다. 낙조는 숨만 겨우 몰아쉬는 상태로 손가락들이 천천히 각자의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걸 지켜봤다. 겉으로 보기에 오른손은 평범했다. 무언가를 움키기 위해 손톱을 바짝 세운 것처럼 손가락 마디들이 안으로 굽혀 있었다. 어떤 걸 하는 거지, 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눈 한 번 깜빡이기도 힘들 만큼 짧은 순간이었다. 오른손은 발광 구체의 정 중앙을 그대로 꿰뚫어 들어갔다.
“흡, 씨발……!”
구체는 생각보다 진득거렸다. 비에 젖은 진흙을 억지로 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억지로 안을 파고 있긴 했으나 휘젓지는 못했다. 팔꿈치를 넘어서서 완전히 팔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낙조는 여러 개의 손들이 자신의 팔을 붙잡는 느낌에 얼굴을 찡그렸다. 어린아이의 손처럼 작은 것도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깎지 않아 긴 손톱이 팔뚝 여기저기를 긁는 느낌도 들었다. 그 와중에도 오른손은 무언가를 찾는 듯 아주 느리게 구체의 안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낯설 뿐만 아니라 온몸 깊숙이 새겨지는 듯한 불쾌함에 낙조의 호흡은 조금씩 불규칙적으로 변해 갔다. 구체를 꿰뚫음과 동시에 살덩이 사이에 파묻힌 손발들이 자신을 찢어 버리지는 않을까 생각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에 침입한 자신의 팔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하는 움직임과 압박에 알 수 없는 공포가 서서히 커질 뿐이었다.
손끝에 무언가 걸렸을 때 손은 그제야 멈추었다. 낙조가 느끼기에도 자신의 팔뚝에 달라붙은 사람의 피부 촉감과는 달랐다. 아주 작은 잔털들이 기다란 것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었다. 오른손은 마침내 찾았다는 듯, 생각할 새도 주지 않고 구체에 박힌 그것을 휘어잡았다. 손바닥 가득 그것이 들어찼다.
‘뿌리……?’
움키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낙조는 꼭 감고 있던 눈을 뜨고서 구체를 응시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팔에 달라붙는 손들은 늘어가고 무거워지고 있었다. 보이진 않았으나 이 덩어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촉으로 추측 정도는 가능했다.
한두 번 쥐어 봤나. 변종의 머리통을 쥐어 녹인 횟수만 세지 못할 만큼 많다. 손바닥 뒤집듯 무너지는 산을 만져 보기도 했다.
직감이었다.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머리를 스쳤다. 지금까지 멋대로 힘을 부리려 해도 움직이지 않던 손에 온전한 자신의 힘이 가득 손가락에 몰렸다. 평소에 변종을 상대할 때보다 엄청난 힘이 구체에 박힌 뿌리를 뽑기 시작했다. 끈적한 것에 달라붙은 것 마냥 뿌리를 쥔 채 밖으로 꺼내려 할수록 팔에 수많은 손과 육체가 엉켰다.
“저도, 저도 데려가 주세요!”
“여기서 이렇겐 못 삽니다!”
“꺼내 주세요!”
말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여 달라, 지옥에 보내 달라 애걸복걸하던 이들은 뿌리를 뽑으려 하자마자 자신들도 함께 꺼내 달라 청했다.
말하는 것은 분명 변종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였으나, 신체들이 분리된 상태에서 바깥으로 꺼낸다 해도 그들이 온전히 살아 있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이 목소리 또한 변종이 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손을 놓으려 했다. 그러나 오른손은 낙조의 힘까지 붙들고서 뿌리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욱.”
팔이 점차 구체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옷 위로 끈적거리는 점액이 박혀 있었다. 공기에 노출되니 누군가 긁었던 부위가 아려오기도 했다. 깊숙한 곳에 박혀 있던 만큼 뿌리는 쉽사리 뜯기지 않았으나, 낙조와 오른손의 힘을 버티진 못했다. 팔꿈치까지 겨우 빠졌다고 생각됐을 때, 순식간에 손까지 밖으로 튕겨 나왔다. 오른손엔 웬만한 어린 나무와 비슷할 정도의 두꺼운 뿌리가 뭉텅이로 붙잡혀 있었다. 뿌리를 뽑으려는 힘의 반동에 의해 뒤로 나가떨어진 낙조는 뒤늦게 구체를 확인했다.
“……허억, 헉, 하…….”
거친 숨이 쏟아져 나왔다. 구체엔 낙조의 팔뚝 크기만큼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그곳으로 구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피가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물을 담은 풍선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구체는 점차 작아지면서 안에 품고 있던 것들을 토해 냈다. 낙조의 머리와 몸 위로도 구역질 나는 피가 쏟아졌다.
주르륵, 투득. 툭…….
마침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내뱉은 구체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진 채 바닥에 달라붙었다. 그제야 오른팔의 감각이 돌아왔다. 낙조는 피와 알 수 없는 덩어리에 둘러싸인 뿌리를 쥐고서 일어났다. 구체를 뒤덮고 있던 살덩이도 구체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서로 엉겨 붙어 있던 여러 사람의 신체가 조각조각 난 채 바닥을 가득 채웠다. 미동도 없었다. 잘려나간 얼굴과 손발이 대부분이었는데, 뿌리를 뽑은 이후 목소리는 환청이었던 것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게, 씨발 무슨 상황이야…….”
낙조는 누군가의 것인지도 모를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중얼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오른손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미친 짓처럼 보이겠으나 자문자답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입을 사용해서라도 답을 듣고 싶었다.
「모든 신체기관에 붙었을 거야. 처음부터 오른팔의 힘만 쓸 수 있었던 건 그 식물이 네 몸에 뿌리를 빨리 내린 결과고. 몇 달은 지났으니 신장기관은 물론이고 식물이 안 퍼진 곳이 없겠지.」
무흠의 말이 낙조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낙조는 여전히 오른손에 쥔 뿌리를 한 번 응시했다가, 발을 뗐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동이 틀 것이다. 그전까지 피 냄새라도 없애야 할 듯싶었다. 여관의 물탱크엔 아직 꽤 많은 양의 물이 남아 있었다. 아예 탱크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이 냄새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여관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정말 그들은 지옥으로 갔을까.
물에 둥둥 떠 있던 죽은 것들을 뜰채로 건진 기분이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낙조는 천천히 여관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뿌리는 방에 던져 두고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코까지 마비됐는지 독한 피 냄새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물이 세면대에 고이기 시작했다. 낙조는 손부터 닦았다. 어두운 와중에도 피가 묻은 곳은 너무나 잘 보였다. 딱지처럼 굳은 핏자국은 손톱으로 긁어내려 해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
당연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덩그러니 방에 앉아 무흠의 방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발광 변종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흔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났는데, 아무도 깨지 않았다는 게 웃겼다. 이상할 정도로 여관은 고요했다. 낙조는 멍하니 뽑아온 뿌리만 바라보고 있다가 동이 트자마자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마침 무흠이 문을 열고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낙조를 본 무흠이 느리게 눈을 깜박거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꼴은 또 뭐야.”
‘지난밤 들었던 걸 다 말해도 되나?’
막상 무흠과 마주하니 생각대로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는 물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겠지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라 주저하게 됐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무흠은 문고리를 쥔 채 꿋꿋하게 낙조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낙조의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낙조가 쥐고 있던 뿌리를 빼앗듯 가져갔다.
“이건 어디서…….”
“중사님.”
무흠의 말을 끊고 낙조가 그를 불렀다. 낙조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았으나 무표정에서 우러나오는 분위기가 평소와는 너무나 달랐다. 단순히 넋을 놓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무흠은 알아챘다.
“변종에게 어떤 사람이 감염이 됐어요. 근데, 의식이 남아 있을 수 있나요? 그러니까……, 보고 듣는 게 다 되는데, 생각이란 것도 할 수 있는데 몸은 내 맘대로 안 되는 거예요. 정말 식물이 몸만 빌려 가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짓들을 벌이는 게……, 가능할까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뭘 보고 온 거냐고.”
“변종도 사람처럼 치명상을 입으면 죽는다고 했던 말이 있었잖아요.”
“…….”
“그럼 죽기 직전까지 사람들의 의식이 살아 있던 거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해요?”
낙조는 교묘하게 무흠의 질문을 피해 나갔다. 무흠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낙조를 응시하다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서 그런 게 왜 궁금한데.”
“켈리가, 서천이라는 곳에서 도망친 후 무덤을 파헤쳤다고 했죠. 무슨 흔적이 남았었나요.”
낙조의 시선이 천천히 무흠에게로 돌아왔다. 무흠은 표정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를 지우려 했는지, 낙조의 얼굴과 손엔 손톱으로 긁어 생겨난 생채기가 남아 있었다.
복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