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영웅의 껍데기
“왜 이렇게 안 와…….”
구석에 남은 변종의 흔적이 아무래도 거슬렸다. 금방 올 줄 알았던 낙조와 무흠은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소식이 없었다. 오늘 중으로 무흠이 무전기와 비슷한 통신 수단을 만들겠다고 했으니 돌아오긴 할 것 같았지만. 괜히 혼자 남아 돌아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화면에 크게 띄워 놓은 지운의 잠든 얼굴이 문득 시야에 들어왔다. 수호는 확대하여 가만히 지운의 얼굴을 살피다가 생각했다.
‘나랑 나이 비슷할 것 같은데. 청주에 있을 때 평택 대피소서 올라왔던 기록 좀 볼걸 그랬나. 하긴 그때 생각이나 했겠냐……, 청주도 아니고 임실도 아니고 거제도에서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쟤도 몰랐겠지.’
의미 없이 마우스 왼쪽만 딸깍거리며 눌렀다.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는 스크린을 응시하던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모르는 척을 하려 해도 누군가 계속 뒤에서 빤히 바라보는 기분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난리가 났다고 해도 부러진 대걸레 하나쯤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수호는 구석에 남은 진액 몇 방울과 검은색 꽃잎을 내려다보곤 방을 나갔다.
‘눈도 다 녹았네.’
습관적으로 복도에 있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생각했다. 청주에 있을 때와 눈앞에 놓인 풍경은 달랐지만 적어도 꽉 막혀 있던 것보다는 나았다.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낮은 건물들과 백색소음과도 같은 고요함은 금세 익숙해졌고 벌써부터 정이 가기 시작했다.
매일 어수선했던 복도, 식사시간마다 화제가 바뀌어 있는 식당, 거만해지고 나태해지던 직원들, 필요 없이 계속해서 공간을 뒤바꾸던 본부 건물. 청주에 머무를 때 느꼈던 모든 것들이 이곳에선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게 만들 사람조차 없다. 사람이 없어진 사람들의 공간은 그저 묵묵하게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당장 먹는 게 급해진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게 불안하진 않았다. 잠시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던 수호는 아무 생각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계단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빈 복도 바닥을 질질 끄는 소리도 이젠 그리 무섭지 않다.
‘……?’
계단이 이어진 곳엔 조그마한 복도 창문이 하나 더 있는데, 불투명할 정도로 더러운 창문 너머엔 여관과 건물 사이, 그러니까 주차장이 겨우 보일 만큼 작았다.
‘백무흠이……, 차를 저기에 뒀나?’
아무 생각 없이 돌렸던 시선이 그곳에 꽂혔다. 아무것도 없어야 마땅한 주차장에 웬 모를 소형차 한 대가 버젓이 주차돼 있었다. 수호의 기억으론, 무흠은 주변의 산을 둘러본다며 가볍게 고장 난 차나 키가 꽂힌 차를 번갈아 가며 사용했기에 주차장에 제대로 주차를 한 적이 없었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다가 갑자기 차를 갖고 올 이유도 없었고. 게다가 무흠과 낙조는 말다툼을 하다가 변종을 끌고 오더니, 여관으로 옮기겠다며 나가질 않았나. 납득하려 해봐도 모든 게 앞뒤가 안 맞았다.
여전히 고요하기만 한 복도에 홀로 서 있던 수호는 괜히 뒤를 한 번 돌아봤다가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낮임에도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곳은 음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고 1층까지 뛴 수호는 유리문을 열어젖히며 숨을 크게 내뱉었다.
“헉, 콜록, 켁, 컥, 허어억…….”
토기처럼 침이 들끓었다. 아무렇게나 침을 내뱉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소형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수호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먼지가 쌓인 소화기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근데 차가, 좀 익숙한데.’
처음 소화기를 들고 일어날 때만 해도 뭐가 달려들기만 하면 머리를 내려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차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그 모양새와 색이 선명해질수록 수호는 걸음을 천천히 늦췄다.
‘이거……, 홍지운이 타고 있던 차 아닌가.’
분명 내려오기 직전까지 사진을 보고 있었는데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게 배가 고프지도 않고, 잠을 못 잔 것도 아니었고, 정신은 또렷한데 순간의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그랬다.
‘조수석부터 확인하자.’
수호는 소화기를 꽉 쥔 채 차의 뒤쪽을 돌아 조수석에 다가갔다. 사이드미러에 자신의 얼굴이 비칠 만큼 가까워졌을 때, 수호는 반쯤 내려간 창문 위로 솟은 두 개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아아아악, 씨발! 백무흠!”
“아! 깜짝이야!”
먼저 선수를 친 수호가 뒤로 나자빠지며 비명을 지르니, 지운도 적잖이 놀란 듯 안에서 발버둥을 치면서 소리를 쳤다.
“호, 홍지운 씨 맞죠?!”
“누구세요!”
수호는 소화기를 꽉 끌어안은 채 물었다. 지운은 혹시나 수호가 문을 열까 싶어 잠금장치를 걸고서 외쳤다. 숨 막히지 않는 신경전이 오갔다. 수호는 호흡을 일단 가다듬은 채 바지를 털고 일어났다. 수호가 슬쩍 거리를 좁히니 지운은 아주 조금의 틈만 남기고 창문을 올렸다.
“그, 그……, 저는 나쁜 사람 아니에요.”
“누군데 제 이름을 아시는데요!”
“그……, 쪽지! 누가 여기 주소 적은 종이 주고 가지 않았어요?”
“쪽지? ……그쪽이 쓴 거예요?”
“아……, 내가 쓴 건 아닌데, 백무흠이라고, 아시죠?”
“군인?”
지운의 눈빛에서 경계심이 더욱 강해졌다. 무흠의 이름과 쪽지에 대해 얘기하면 그나마 분위기가 풀릴 거라고 생각했던 수호는 허겁지겁 손을 내저으면서 말을 고쳤다.
‘염병 무슨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새끼 왜 이렇게 쫄아 있어?’
따지자면 자신의 영역에 이들이 들어온 것인데, 왜 자신이 이렇게까지 나서서 해명을 해야 하나……, 난데없이 끼어든 생각에 수호는 괜히 허탈해졌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첫인상을 심어 주고 싶진 않았다. 더군다나 변종이랑 싸우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튼 그 종이 보고 온 거 맞잖아요.”
“그니까 누구시냐구요.”
“제 이름은 금수호라고 하고요, 여기 고낙조 씨도 왔고 저희랑 계속 같이 있었거든요.”
“…….”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눈길은 단번에 읽어 낼 수 있었다. 수호는 잠시 허리를 펴고 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장기전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눈앞을 스쳤다.
“그, 있잖아요? 전주 대피소에서 전화 받으신 거 있죠.”
“…….”
“그거 저예요.”
“악어와 새?”
“……아……, 근데 그게 말씀드리자면 저도 거기가 그런 단체인 줄 모르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수석 문이 벌컥 열렸다. 수호는 본능적으로 몸을 젖혀 뒤에 있던 소화기를 잡았다. 조수석에서 내린 지운은 얼굴을 오만상 찌푸리고서 수호에게 다가갔다.
“본부 사람이네. 본부 새끼가 여기에 왜 있어. 그것도 백무흠이랑.”
“백무흠이랑 같이 나왔으니까 본부 쪽 사람이라고 보기엔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너, 너가……, 거기 가라고 알려 주지만 않았어도 사람들 그렇게 죽을 필요 없었어.”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고낙조 씨 얼굴 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동안은 백무흠이 따로 관리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
대화는 진척되지 않았다. 수호는 몇 마디도 섞지 않고서 알아차렸다. 지운은 당장 누군가와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 힘든 상태라는 걸. 말을 길게 끌어 봤자 소득이 없는 상황이었다. 지운이 상황을 이해하게끔 만드는 게 우선이었지만 자신이 내놓을 증거라곤 ‘악어와 새’뿐이니 대화가 통할 리 없었다.
“뒤에선 남의 이름 잘도 부르고 다니네.”
“……어, 어? 뭐야, 그 피 뭐예요.”
“넌 손에 소화기 뭐야. 홍지운 머리라도 치려고 했어?”
“홍지운 씨인 줄 몰랐죠.”
지운이 한 번 더 입을 떼려고 할 때 여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흠이 옆을 스치며 나타났다. 하필 마지막에 수호가 했던 말을 들었는지 그는 정확하게 그 부분을 짚으면서 지운의 앞에 섰다. 무흠을 바라보는 지운의 눈빛은 여전히 살벌했다.
‘그래도 한때 같이 다니던 사람들 아니었나. 그것도 백무흠이 희생해서 나머지 산 거잖아.’
수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무흠의 뒤에서 지운을 지켜봤다. 무흠과 지운은 서로를 한참 바라볼 뿐,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켜보는 수호마저 답답해질 즈음, 다시 한번 여관 문이 열렸다. 낙조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수호는 예상하지 못한 얼굴에 어, 하고 몸을 굳혔다.
“홍지운, 얼굴 풀어. 싸우려고 왔어?”
송밤이다. 수호는 눈을 껌벅이면서 밤이를 바라봤다. 그녀는 수호를 스쳐 지나가면서 무심한 눈빛으로 힐끗 눈을 마주쳤다가 곧장 트렁크를 열었다. 쌓아 둔 짐이 꽤 많았다. 무흠과 지운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수호는 종종걸음으로 밤이에게 다가갔다.
“짐 들어 드릴……, 아, 피…….”
본부에선 낙조와 해화만을 타겟으로 노렸으나 수호는 무흠을 제외하고 낙조의 무리에서 밤이를 가장 오래 지켜봤다. 전주 대피소에서 올라왔던 보고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변이된 기생 선충 발견에 이어 호기심이 갈 만한 정보들을 꽤 많이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이미 무흠과 있던 걸 보니 대화도 어느 정도 되겠다 싶어 다가간 수호는 밤이의 두 손도 마른 피로 흠뻑 젖은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내 피 아니에요.”
“……저 사람 피도 아니죠?”
“네. 이것 좀 내려 주세요.”
“어어, 예.”
밤이는 왠지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걸 꺼리는 듯했다. 그녀가 건네준 가방을 얼결에 받아든 수호는 가만히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로……, 옮길까요?”
“남는 방 아무 곳이나요.”
‘그런데 왜 고낙조는 없지?’
순간 가슴 속이 단숨에 얼 듯이 주변 공기가 차가워졌다. 수호는 고개를 들었다.
백무흠의 피도 아니고, 송밤이의 피도 아닌데, 고낙조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낙조 씨는 어디 있어요?”
짐을 꺼내던 밤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수호는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밤이가 입을 떼기만을 기다렸다.
*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변기 물을 내리고 칸에서 나오니 세면대 앞에 있던 여자가 불쑥 먼저 인사를 해왔다. 연우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곤 물을 틀었다. 거울을 보고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자의 시선이 온전히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일부러 두 번이나 비누칠을 했으나 여자는 화장실을 나가지 않았다. 차가운 물에 손이 굳어갈 때쯤, 여자가 직접 꼭지를 잠갔다.
물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으니 여자의 시선이 더욱 첨예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연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손을 털면서 고개를 들었다.
“…….”
창백할 정도로 흰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 삼백안의 검은색 눈동자가 정확히 자신을 향해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켈리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섬뜩함에 몸을 주춤거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서연우 씨를 드디어 뵙네요. 그동안 바쁘셔서 인사를 한 번도 못 나눴었죠.”
“아, 네…….”
여자는 연구원 가운이 아닌 그저 흰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가운을 입고 있었다면 이름표로 이름이라도 알아봤을 텐데, 그럴 수조차 없었다. 키는 크고 전체적으로 마른 체구였는데, 정면을 응시한 채 입만 움직이면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상황 자체가 기괴했다. 묶지 않은 머리는 허리를 덮을 정도로 길고 아주 새카맸다. 잔머리가 조금도 나지 않을 정도로 곱게 정리된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어디서 일하세요? 제가 연구실에만 있다 보니까 처음 뵙는 것 같아서…….”
연우는 휴지 한 장을 뽑아 젖은 손을 닦아 내며 물었다. 여자는 그때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 하고 까딱였다. 아주 조금의 움직임이었으나 여전히 음산한 분위기가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해보려고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동양적인 선을 갖추면서도 수려한 외모. 한 번 봤다고 잊을 정도의 얼굴이 아니었다. 연우는 찢어질 정도로 젖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고선 대답을 기다렸다.
“서연우 씨 실험실과 가까워요. 언제 한번 찾아뵐게요.”
“아, 근데 제가 요즘 바빠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는 소문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다들 서연우 씨 부러워서 그런 말 한 마디씩 하는 거죠.”
“네?”
“서연우 씨만큼 본부에서 대우받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건 서연우 씨도 느끼지 않았나요?”
“무슨 말씀…….”
“그러니까 지금 동료들에게 너무 서운해하지도 마시고요. 다 업보니까.”
여자는 말을 마치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켈리의 미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섬뜩한 분위기를 단번에 녹일 만큼 자애롭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휴지를 한 장 더 뽑아 연우에게 내밀고서 속삭이듯 말했다.
“파도에 한 번 휩쓸리면 헤어나오기 힘들어요. 잔잔해 보이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죠. 한 번 물면 웬만해선 잘 놓아 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바다를 오래 쳐다보지 말라는 말도 있어요. 파도에 홀리지 말라고.”
그녀는 연우의 눈을 직접 마주한 채 말을 마치고선 화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서서히 멀어지면서 복도에 울려야 할 발소리는, 연우의 귀에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