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탈피하는 시간
4층에 올라오자마자 눈에 띄는 방이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듬성듬성 떨어진 문. 문고리에도 핏자국이 번지듯 묻어 있었다. 밤이는 곧장 그 방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한참 쳐다보았다.
문고리를 만지자마자 발끝부터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돌았다. 열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이고 문고리를 잡아 돌렸는지 모른다. 밤이는 아래층부터 누군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온전히 잠긴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에 대해서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
귀를 관통하는 소리가 들린 건 복도를 울리는 소리가 아주 가까워졌을 때였다. 변종일까? 사람일까? 변종이라면 다른 층을 살필 때 진작 마주쳤을 텐데. 그렇다면 소리의 원인은 후자에 가깝다. 게다가 사람이라면, 무기를 소지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자신이 가진 뭉개진 식칼 따위로는 애초에 맞붙을 수 없다. 밤이는 떨리기 시작하는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꼿꼿하게 세웠다.
‘나는, 나는 누군가 남긴 주소를 보고 온 거야. 애초에 여기는 집도 아니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자신의 입장을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 생각했다.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누군가 침입자의 흔적을 알아챈 후 자신을 찾는 듯한 외침이 거세졌다. 소리가 점차 자신과의 거리를 좁힐수록 생각은 좀처럼 얌전해지지 못했다. 며칠간 제대로 먹은 것도 없어 약해진 기력도 문제였으나 심리적으론 더욱 예민한 상태였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대책을 생각해 냈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번져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야엔 자신이 쥐고 있는 식칼뿐이었다.
‘온다, 온다, 온다…….’
그 생각도 얼마 가지 못했다. 끝내 4층까지 올라온 이는 자신을 발견하고서 잠시 멈춰 서 있었다. 그의 인영이 시야 끄트머리에 희미하게 걸쳐져 있었지만, 고개를 돌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밤이는 칼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었다.
‘그냥 바로 찔러 버려. 심장 위치 잘 알잖아. 기억하지, 송밤이!’
그가 다시 빠른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자마자 밤이는 고개를 돌렸다. 키는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훅 끼쳐오는 냄새. 여관 방문을 열 때마다 맡았던 쾨쾨한 냄새와 뒤섞인, 어딘가 익숙한 향이 스쳤다.
향을 머리가 인식하기도 전이었다. 손은 이미 올라갔고,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정확히 그 사람의 가슴에 깊게 꽂았다. 그래 봤자 몇 센티미터도 안 되는 길이였지만, 선공의 자리를 쟁취한 셈이었다.
“허억, 헉, 헉…….”
“……누나, 나, 라니까요.”
눈물까진 흘리진 않았으나 그새 눈가에 고인 땀 때문에 눈앞이 흐릿했다. 밤이는 칼이 정확히 박힌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눈가를 닦아 냈다. 시야가 환하게 트이면서 혼미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아…….”
자신의 팔을 조심스럽게 쥔 사람. 비에 한껏 젖어 올라오는 흙냄새가 어울리는 사람.
“고낙조.”
“알아보네요.”
“……어?”
낙조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가슴에 꽂힌 식칼을 뽑아냈다. 생각보다 깊게 꽂혔는지 빼낼 때 고통이 상당했고, 빼내자마자 뜨거운 피가 울컥거리며 흐르는 게 느껴졌으나 밤이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고낙조!”
뒤쪽에서 무흠의 목소리가 들렸다. 밤이는 또렷해진 눈으로 낙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서서히 입을 벌리다가 문득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툭, 투둑.
검은색 옷이라 피가 번지는 것이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급소 근처를 찌른 만큼 피는 거세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말도 나오지 않아 밤이는 서둘러 두 손을 상처 부위에 대고서 피를 막았다. 낙조는 칼을 바닥에 버린 후 밤이의 손목을 가볍게 쥐었다.
“용케 찾아왔네요.”
“……아, 아아……, 고낙조…….”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는데.”
낙조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변종을 어딘가에 가둬 두고 뒤늦게 달려온 무흠이 바닥에 고인 피를 보고선 낙조의 몸을 낚아챘다. 그는 밤이를 한 번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신고식 한 번 거하게 치르시는군. 겨우 살려 뒀더니.”
무흠은 한쪽 손으로 주머니에서 열쇠뭉치를 꺼내 낙조의 방문을 열었다. 밤이는 두 손바닥 가득 묻은 피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피 냄새…….’
낙조의 방안에 몸을 들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피비린내라고 하기엔 쇠 냄새가 조금 약했지만, 분명히 오랜 시간 동안 곳곳에 배인 특유의 냄새는 피가 확실했다. 당장 낙조가 흘린 피의 냄새는 아니었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냄새는 순간에 퍼진 냄새보다 더 역하고 기분 나쁘다. 무흠은 일부러 눈을 뜨고 있는 낙조를 바닥에 눕힌 채 니트를 벗겼다. 상처는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피 때문에 그 크기가 눈으로 가늠되지 않았다.
“화장실에 수건.”
“…….”
“당신도 정신 나갔어? 빨리 수건 갖고 와야 뭐라도 할 거 아냐!”
무흠이 신발도 벗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던 밤이에게 소리쳤다. 밤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역한 냄새가 풍겼으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밤이는 마른 수건 한 장을 들고 나와서 낙조의 곁에 앉았다. 낙조는 느리게 눈을 깜박거리며 간간이 숨을 토하고 있었다.
“알잖아요, 누나. 나 잘, 안 죽는 거.”
“말하지 마, 말하면 안 돼…….”
밤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낙조가 자신에게 자꾸 말을 걸려는 것을 막았다. 무슨 말이든 낙조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듣고 싶었다. 자신이 당장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낙조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더라도, 그의 상처가 괜찮아졌을 때 얘기하고 싶었다.
“당신도 미치긴 하는군.”
무흠이 피를 지혈하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밤이는 낙조의 피로 젖은 두 손을 어쩌지도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여기 왜 있어?”
“그걸 이제야 묻나?”
“당신이, 고낙조 데리고 갔어?”
“하아……, 그나마 똑똑했던 사람이라 불렀더니 완전 엉망진창이군.”
무흠은 혼잣말을 하는 듯했지만 말속에 숨길 수 없는 가시는 정확히 밤이를 향해 있었다. 밤이는 어느 정도 사리분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돌아오니 그 매서운 기색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장 맞받아칠 수 없는 건 자신이 저지른 짓이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 순식간에 정신이 망가져 눈앞에 놓인 것도 인지하지 못 할 정도였으니, 당장 저 말을 받아치기엔 명분이 없었다. 그럴 양심도 없었고.
“일이 좀 있었어. 봤을진 모르겠지만 홍해화는 그냥 식물인간이야.”
식물인간……. 밤이는 스스로 그 단어를 내뱉고 헛웃음이 차 웃었다. 무흠은 말없이 화장실에서 마른 수건을 하나 더 꺼내오더니 다시 피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산이 변종을 불러들이고, 잡아먹고, 그 양분으로 겨울나기를 준비했어.”
“…….”
“그런데 홍해화가 식물이 말하는 걸 들었대. 노래를 부르니까 다 잠들었다더라. 그리고 잡혀갔어. 이렇게 됐고. 홍지운은 반 정신이 나가서 당신이 남긴 종이를 기억도 못하다가 어제 나한테 보여 주더라.”
“지금 동정심을 바라는 건가, 아니면 나한테 보고를 하는 건가?”
“내 말의 요지를 파악해. 홍해화가 식물이랑 대화를 했다고.”
“몸에서 잎이 났는데도 변종이 되지 않았으니 가능하지.”
“……홍해화가 그럴 줄 알고 있었다고?”
“당신이 먼저 알아챌 줄 알았는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랬던 건지, 끝까지 모르더군.”
무흠은 낙조의 맥을 짚으며 말했다. 피는 다행히 금세 멎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쇼크가 일어날 수 있었겠지만, 낙조의 신체기관이라면 말이 달라졌다. 무흠은 조금 젖은 수건을 떼어 내고서 상처의 범위를 살폈다. 딱 볼펜의 지름 크기의 상흔에선 아주 조금씩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왜 진작 얘기해 주지 않았냐고 묻고 싶나?”
“…….”
“말했다면, 믿었을 것 같아?”
무흠이 고개는 낙조에게 둔 채 눈동자만 돌려 밤이를 노려보았다. 날카롭고도 예민하게 뻗친 시선은 금방이라도 밤이의 숨통을 움켜쥘 듯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과학자에게 신의 존재를 이해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짓이었을 게 당연하다.”
“비유가 잘못됐어. 나는 과학자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니야. 이 세상에 뛰어들기로 한 건 오로지 내 의지였고, 내 선택이었어. 가능성을 애초에 닫아 둔 장본인이 왜 남 탓을 해?”
“내가 미리 언질을 줬다면, 당신은 홍해화를 압박했겠지. 변종을 데려다가 놓고 대화해 보라고 시켰을지도 몰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을 지켜본 바로는 그런 예상이 가.”
“사람을 뭐로 보고……, 고낙조랑 당신 만나기 전에도 나는 사람들 살려 주면서 살았어. 나도 죽을 뻔한 걸 몇 번이고 살렸다고!”
“타인을 살리는 의지와 알지 못했던 외부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건 달라. 당신은 아직도 당신 세계에 갇혀 있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지. 성립이 되지 않으니까.”
“똑바로 말해. 빙빙 돌려서 얘기하지 말고.”
무흠이 꺼냈던 말들은 대부분 밤이의 주위를 겉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맞았으나 이해를 할 수 없으니 대답할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었다. 밤이는 결국 참다못해 본심을 토로했다. 낙조는 기절하듯 잠들었고, 이 대화를 듣지 못할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간사하고, 악하다. 무슨 짓을 저지르든 그 명분을 먼저 찾지. 무리 중 대다수의 동의를 얻으면 그건 암묵적으로 합법이 되는 거야. 아주 작은 집단이라도, 의견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그때부터 반대쪽 의견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절대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
“절대적인 증거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가 많다면 그건 사실이 아니게 되지. 그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론들로 구성된 세상이야. 당신이 읽고 이해한 모든 지식이 그런 식으로 정립됐다고. 그런 식으로 몇십 년을 산 당신이 홍해화의 힘을 바뀐 이 세상과 맞게 받아들였을 것 같아? 이론적으로만 이해했겠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사실처럼 얘기해? 나는 지금 당신이 직접 고낙조를 데리고 갔는지, 청주에 잡혀간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 물었는데.”
“회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무흠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그는 몇백 년은 산 사람처럼 짐짓 침묵을 지켰다. 함께 붕어섬을 지켰을 때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밤이는 무흠이 자신에게 내놓은 말들을 찬찬히 정리했다. 호흡을 고르게 지키는 낙조, 낙조를 응시하는 무흠, 그리고 그런 무흠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 엇갈린 시선을 천천히 주워 담아 곱씹었다.
“똑바로 말해. 내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서 당신이 얘기하지 않은 거니까.”
“…….”
무흠의 차가운 시선이 곧장 꽂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곳까지 온 이상, 낙조가 깨어나기 전에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따라잡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시 낙조 없이 남겨지게 된다면, 다시 혼자가 된다면…….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속에서 밤이는 지나칠 정도로 몸을 축냈다. 죽은 연인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가 어째서 산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이유까지 다 홀로 알기 위해 살았으니까.
“고낙조가 당신들을 애타게 찾지 않았다면, 나는 홍해화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
“사람이 동력을 얻을 수 있는 바탕은 무한하지. 고낙조가 내 뜻을 이해할 만큼 정신을 차리게 하려면 당신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부러 이곳 주소를 남긴 거야. 그게 가장 큰 이유다.”
“결국……, 가장 필요했던 건 고낙조였네. 나도 그럼 좀 대놓고 물어보자. 고낙조가 왜 그렇게 필요해? 당신도 그렇고, 서연우 그 년도 그렇고……. 왜 그렇게 못 잡아서 난리야? 아, 생각해보니 켈리 그 개년도 그랬네.”
“당신도 살아남기 위해선 고낙조가 필요하지 않았나?”
“나는 혼자서도 살아남고 있었어. 고낙조가 나한테 제안한 거지.”
“착각이야. 고낙조의 일행이 된 이후론 그의 힘을 믿고 있었을 테니까. 게다가 고낙조는 당신을 우선으로 믿었어. 먼저 만났던 나보다. 자신이 변한 이유를 보다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했지. 당신이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무흠은 붕어섬을 떠난 이후에도 밤이와 낙조의 사이를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줄줄이 얘기했다. 밤이는 주먹을 꽉 쥔 채 무흠만 바라보고 있었다. 둘 사이엔 낙조의 숨소리만 오갔다.
“당신은 따로 원하는 목적이 있었잖아. 그랬기 때문에 고낙조의 몸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대충 고낙조가 이해할 만큼만 얘기했을 테고……, 캐내면 캐낼수록 당신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겠지. 안 봐도 빤해. 사람은 궁지에 몰릴수록 강해진다지만 그만큼 연약해지니까.”
“……결론을 말해. 그동안 나한테 품었던 원한 같은 걸 들으려고 여기 앉아 있는 거 아니니까.”
“그런 사고방식부터 고치란 말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나? 얼마나 더 쉽게 얘기해 줘야 알 것 같아? 어떤 개인적인 목적인지는 자세히 물어볼 생각도 없지만……, 당신처럼 사적인 목적으로 고낙조를 실험에 빠뜨린 실험쥐처럼 쓰진 않을 거란 얘기지. 나는 내가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자신의 말을 마친 무흠이 낙조의 호흡을 확인했다. 깊은 잠에 빠졌는지, 아니면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밤이는 냉랭하기 그지없는 무흠과 자신 사이에서 깊어지는 갈등의 골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여기서 한 마디라도 더 얹었다간 무슨 말이 돌아올지 몰랐다. 아미 이 재앙에 곁들여진 자신의 목적을 꿰뚫고 있는 자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사적인 감정이 덧붙여진 이유라는 걸 들먹여 당장 자신에게 총구를 들이밀지도 모를 일이었다. 밤이는 잠자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죽고 싶으면 얼마든지 떠들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고낙조가 여기서 이탈하지 않도록 잘 살피고.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고낙조를 감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