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지옥도
거제도로 들어가는 다리 위를 지날 때쯤 지운까지 잠들었다. 불안한 마음은 주소에 가까워질수록 커져 갔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정말 긍정적인 상황으로 흘러간다면, 고낙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밤이는 그를 만나자마자 묻고 싶은 질문을 가까스로 참아 내고 있었다.
네가 자진해서 온 거야?
약 한 달 동안 버려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에게 무슨 계획이 있었기에, 자신에게조차 말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그렇게나 중요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이곳에 자신들이 아닌 누군가와 왔다는 사실 자체에서 낙조의 어떤 대답이든 믿고 싶지 않을 게 빤했지만.
장승포까지 들어가기 위해선 삼십여 분을 더 달려야 했다. 남은 기름으론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잘 알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 표지판을 따라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버스 터미널 근처까지 온 밤이는 낯익은 도로명을 확인하면서 서서히 속력을 줄였다.
‘이 근처일 텐데…….’
섬이긴 했지만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한 곳이니 잘 아는 프랜차이즈점이나 익숙한 식당 간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터미널 근처이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밤이는 터미널 주차장 안에 몇 대 남지 않은 오래된 버스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앞으로 차를 움직였다.
‘저게 뭐야.’
종이에 적힌 주소 근처에 온 만큼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밤이는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를 차근차근 살폈다. 그러다 시야에 문득 잡히는 광경에 차를 완전히 멈춰 세웠다. 남매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린 밤이는 인도 가운데에 흩뿌려져 있는 두꺼운 잎사귀와 축 늘어진 검은 꽃봉오리들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꽃? 이 겨울에?’
완전한 겨울에 접어든 후부턴 변종이라곤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던 게 사실이었다. 떨어진 모양과 인도가 드문드문 젖은 걸 보아하니 변종과의 작은 소란이 있던 건 확실했다. 검은 꽃봉오리는 움직이지는 않았으나 어쩐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쁠 정도로 괴이하게 생겼다. 그나마 움직임이 아예 없는 것을 하나 챙길까 하다가, 밤이는 고개를 젓고 차에 다시 올라탔다. 주소에 적힌 곳을 찾는 게 우선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변종 한 마리 보지 못하다가 겨우 흔적을 보았다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관……?’
다시 앞으로 서서히 움직이던 밤이는 주차공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투박한 공터를 발견했다. 여관은 생각보다 낡았지만 층수는 꽤 되어 보였다. 여관은 도로 앞에 바로 나와 있는 게 아닌 다른 상가 건물 뒤에 숨어있다시피 서 있었다. 사람이 다녔던 흔적은 이전에 달려온 길과 똑같이 발견할 수 없었다. 불안함이 더 증폭됐으나 이곳까지 온 이상 어떤 것이라도 찾아낼 생각이었다.
차를 주차 시킨 후 먼저 상가 건물에 붙은 도로명 주소를 확인했다. 밤이의 시선이 뒤쪽에 있는 여관을 향했다. 아무리 창문이 있다 해도 뒤쪽은 덜 깎인 산이었기에 햇빛이 잘 들려나, 싶을 정도로 앞뒤가 꽉 막힌 상태였다. 거기에 커튼을 친 창문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밤이는 차로 돌아와 지운을 우선 깨웠다. 그는 도착했느냐며 힘없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단 내가 먼저 보고 올 테니까, 여기 있어.”
“혼자 가면 위험―”
“―홍해화 업고 올 거 아니잖아. 혼자 두는 것도 싫을 거고.”
“…….”
밤이의 말에 지운은 입을 꾹 닫았다. 이곳에 오기까지 해화가 특별하게 반응을 보이진 않았으나 자리를 비운 사이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밤이는 지운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말없이 조수석 문을 닫았다. 민간인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니 자신이 여관 안에서 변종 떼를 마주치지 않는 이상 그다지 큰일이 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두운 여관 문을 열면서, 밤이는 숨소리를 잔뜩 죽인 채 발을 안으로 내디뎠다. 몸을 완전히 안으로 들이자마자 느껴진 것은 한기였다. 사람이 계속 돌아다녔다면 조금이라도 온기가 떠 있을 텐데,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잘못 온 건가, 싶으면서도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온 방을 다 뒤져서라도 무언가를 찾아내야만 이곳에 온 합당한 이유를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1층의 문은 모두 열려 있었기에 안을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쿱쿱한 냄새가 콧속을 찔러 댔다.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걸 보니 밖으로 통하는 모든 창문은 닫아놓은 듯했다. 밤이는 마지막 방까지 둘러보고서 위쪽으로 향하는 계단을 슥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사람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워낙 어두워 플래시 같은 게 필요할 것 같았으나 그런 물건 하나 찾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1층은 방치된 지 오래돼 보이니 그런 수고스러움을 굳이 감당할 필요도 없었다. 밤이는 조용히 몸을 돌려 계단을 올랐다.
‘건물 안에서 잠든 변종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신의 발소리는 완전히 감출 수 있도록 발가락 하나하나에 힘을 준 채 2층까지 올라갔다. 방문은 몇 개 없었으나 아래층과는 달리 모든 방의 문이 닫혀 있다는 게 눈에 띄었다. 밤이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뾰족한 것이라고 할 만한 건 거의 닳아 날끝조차 둥근 식칼뿐이었다. 물론 꽂아 넣기라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은 상태였다.
첫 번째 방엔 아무도 없었다. 1층의 여느 방과 다름없는 모습에 더해 벽지는 모두 곰팡이가 슬어 더욱 불쾌한 냄새가 올라왔다. 밤이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며시 문을 닫곤 두 번째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든 방이 하나의 방을 본 것처럼 구조만 살짝씩 다를 뿐, 행색은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바닥과 마찰되며 복도를 울릴 정도로 소리가 몇 번 나긴 했으나 몰려드는 소리는 없는 걸 보니 가까운 곳에 변종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흐르지 않는 시간과 변하지 않는 공간. 모든 것이 멈춘 곳에 자신 혼자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스멀스멀 돋아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모르는 곳에 갇힌 것은 아닐까. 당장 밖으로 나간다면 해결될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관 안에 내내 갇혀 있던 사람처럼 멋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밤이는 힘이 다 빠진 손으로 2층의 마지막 방문 문고리를 쥐었다.
철컥.
돌아가지 않았다. 이전의 방과는 달랐다. 누군가 단단하게 잠근 게 분명했다.
‘열쇠를 가진 이가 있어.’
밤이는 쓸 데 없는 과정은 생각하지 않았다. 순간 깊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먹먹했던 정신이 확 드는 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더 오른쪽으로 문고리를 돌려 보았지만 여전했다.
열리지 않는 문을 갖고 씨름을 하는 것보다 남은 방을 확인하는 게 더 빠를 듯싶었다. 누군가가 이곳을 어떠한 목적을 가진 채 드나들었다면 분명히 잠긴 방이 몇 개는 더 있을 게 빤했다. 밤이는 소리가 나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서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헉, 허억…….”
몇 계단 뛰지 않았음에도 잔뜩 긴장한 탓인지 숨이 금세 가빠졌다. 밤이는 오른손에 든 볼펜을 꽉 쥐고서 일렬로 입을 꾹 닫고 있는 문들을 응시했다. 3층부터는 1층에서 느껴졌던 한기도 한층 잦아든 기분이었다. 밤이는 덩달아 숨을 차분하게 다잡고 문고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방. 복도의 중앙에 있는 방이었다. 밤이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아 문틈에 먼지가 쌓였는지 확인했다. 다른 방과는 달리 먼지가 쌓인 흔적이 없었다. 무언가에 계속 치인 것처럼 먼지 뭉치가 반대편 복도에 쌓여 있기도 했다.
‘핀 같은 거라도 있으면 열어 보기라도 하는 건데.’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니 호기심에 덧댄 많은 의심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의 인기척을 직접 느끼진 못했으나 누군가 이곳을 들락날락했다는 건 사실이었다. 아직 둘러보지 못한 방은 많았다. 밤이는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4층까지만 둘러 보기로 결정했다.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감추려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맨 위층에 숨긴다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가장 드나든 흔적이 많은 곳과 가까운 곳이 또 한 곳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 개, 세 개……. 밤이는 눈을 돌려 4층으로 올라갔다.
*
“으아아악!”
“아, 잠깐 기절한 겁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기절이요?! 아니 변종한테 기절을 왜 시켜요! 아악! 가까이 데리고 오지 마요!”
“공격성이 그리 강해 보이지도 않았어요. 감염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야 해서 데려온 거긴 하지만…….”
낙조는 꽤 정성스럽게 부연설명을 덧붙이다가 말끝을 흐렸다. 무흠은 기절한 변종을 가장 구석진 곳에 내려두었다. 돌돌 말린 뿌리와 기절과 동시에 오므라든 검은 꽃봉오리들. 보통 마취제보다 강한 것을 쓰긴 했으나 곧장 쓰러진 걸 보면 사람이 사용하는 의약품에 면역이 강한 편도 아닌 듯했다.
“그걸 왜 거기다 놔요!”
수호가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무흠은 한쪽 눈썹을 구긴 채 뒤돌아 말했다.
“혼자 안 두니까 징징대지 좀 마.”
“아 장난하냐고요! 아니 왜 재웠어요! 변종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 너는 진짜……. 똑똑한 거 맞냐? 눈까지 내린 겨울에 돌아다니는 변종 본 적 있어?”
“겨울에도 피는 꽃이 있는데 그럼 한두 마리쯤은 돌아다닐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무흠의 예상과 다르게 수호는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지 오히려 역반하장으로 화를 내면서 무흠을 몰아붙였다. 무흠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허. 기껏 먹여 주고 살려 줬더니 못하는 소리가 없군.”
“뭐래 저 아저씨가! 여기 통제할 수 있는 사람 나밖에 없는 거 알죠?”
수호가 무흠이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함께 오게 된 건지 자세히 모르는 낙조는 가만히 둘의 대화를 지켜 듣다가 나서서 말했다.
“근데 여기가 더 중요한 곳이잖아요. 여관 빈방에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수호 씨 안전도 그렇고.”
“그걸 왜 지금 얘기하나?”
“여기가 군대예요?”
낙조가 인상을 찡그리고 한 마디를 툭 던지니 무흠은 얘기가 안 통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지금 화를 낼 사람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낙조는 속에서부터 깊게 끓는 짜증을 애써 참아 냈다. 아직 그리 가깝지 않은 수호의 앞에서 멱살잡이까지 보여 주긴 했으나 못 볼 꼴을 굳이 더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무흠이 변종을 짊어지고, 낙조가 앞서 여관 쪽으로 향했다. 수호는 썩은 물 냄새가 진동을 한다면서 오는 길에 청소도구를 가져올 것을 부탁했다. 물 냄새……. 낙조는 어쩐지 그 단어가 맘에 걸려 정신을 다른 곳에 둔 채 걸었다.
“……어.”
주차장을 가로지를 때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었던 주차장에 낯선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낙조는 무흠이 무어라 부르기도 전에 차 쪽으로 달려갔다. 뒷좌석엔 해화가, 조수석엔 지운이 잠들어 있었다.
‘밤이 누나는?’
운전석엔 아무도 없었다. 지운을 깨워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낙조는 그대로 여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누나!”
일층에서부터 큰 목소리로 밤이를 불렀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낙조는 흐트러지는 호흡을 정리하지도 않고 무작정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쉬지도 않고 밤이의 이름을 불렀다. 1층을 제외하곤 항상 닫혀 있던 다른 방문들이 열려 있는 걸 보니 밤이가 왔다는 게 확실해졌다. 3층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낙조는 자신의 방이 있는 4층으로 뛰어 올라가 복도를 확인했다.
“……누나, 밤이 누나!”
그녀는 자신의 방앞에 서 있었다. 낙조는 가만히 제자리에 멈춰 서서 그녀를 불렀다.
밤이의 고개가 천천히 자신 쪽을 향했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그녀는 낙조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앞으로 세웠다. 날이 조금 닳긴 했어도 끝까지 뽑은 식칼이었다.
“누나, 저예요. 낙조. 고낙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길에 발걸음이 성급해졌다. 낙조는 밤이에게 달려가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며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밤이는 가쁘게 숨을 내쉬면서 한 걸음씩 뒷걸음쳤다.
지극한 반가움에 생각이 서툴렀다. 낙조는 한 걸음 정도를 남겨둘 만큼 밤이와 가까워지고서야 그녀의 눈빛에서 일어나는 불꽃 같은 것을 보았다. 밤이는 경악과 공포에 질린 얼굴로 식칼을 쥐고 있던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푹.
아무리 여러 물건과 변종의 살갗을 수백 번 쓸었다고 해도 여전히 날카로운 식칼이 낙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