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무장승
‘저 아저씨 단단히 미쳤네.’
수호는 조금 거리를 두고서도 잘 들리는 무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다가 생각했다. 서천이니 뭐니, 수호의 귀에 들려오는 말은 그저 수많은 설화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걸 또 가만히 듣고 있는 낙조도 한 번 바라보고서, 수호는 의자에 앉았다. 저 의미 없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낙조가 머물렀던 곳의 CCTV를 확인하는 게 더 생산적인 일일 듯싶었다.
공주시 우성면…….
키보드를 두드리는 수호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뒤쪽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든, 수호는 스크린을 확인하는 것에 집중했다.
“어?”
무심코 입 밖으로 내뱉은 탄성은 절대 인위적인 것이 아니었다. 수호는 눈을 씻고 다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길로 연결된 CCTV를 멈춘 채 확대하니,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이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송밤이, 홍지운.’
수호는 저절로 부르게 되는 이름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면 속 얼굴은 흐릿했지만 그들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전주 대피소에서 낙조의 일행을 붙잡아 두었을 때, 그들의 신원 확인을 했던 대피소가 보낸 사진 속 얼굴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수호는 화면을 가장 큰 스크린에 띄우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수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낙조와 무흠의 시선도 스크린을 따라 옮겨져 있었다.
“고낙조 씨! 찾았어요! 지금 계룡 IC 쪽 근처예요. 경로를 대충 예측해 보면, 이곳으로 오는 길이 맞아요!”
어쩐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수호가 외쳤다. 낙조는 무흠의 멱살을 틀었던 손도 놓고서 스크린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수호가 띄운 얼굴들을 확인하는 건지, 그는 목을 꺾어 스크린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바로 해 정면을 응시했다.
“그런데, 왜 여기로 불렀어요?”
낙조는 무흠에게 묻는 듯했다. 자신에게 고맙다고 해줄 줄 알았던 수호는 머쓱해져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까까지는 직접 찾아가겠다고 발악을 하더니.”
무흠은 구겨진 옷매무새를 정돈하면서 내던지듯 대답했다. ‘저 사람은 이제 낙조 씨한테도 말 함부로 하네.’ 수호는 귀만 쫑긋 열어 둔 채 한기가 도는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저 사람들도 그 서천이라는 곳이랑 관련이 있어요?”
“다는 아냐.”
“……홍해화?”
“그렇지.”
무흠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긍했다. 낙조는 허탈한 웃음을 몇 번 터뜨리더니 무흠을 돌아보았다. 수호는 둘의 사이에 앉아서 일촉즉발의 상황을 가만히 주시했다. 적어도 새우 등이 터지지는 않겠지, 꼼짝없이 책상에 달라붙은 채 숨소리조차 죽여야만 했다.
“그럼 나는 무슨 관련이 있어요.”
낙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흠은 수호의 뒤통수를 잠시 응시하더니 먼저 밖으로 나섰다. 낙조는 스크린을 다시 올려다봤다가, 그의 뒤를 쫓아 나갔다.
‘저 얘기를 진짜 믿는 거야?’
수호는 뒤따라 나간 낙조가 문을 닫는 걸 확인하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CCTV 화면으로 돌아갔다. 일행이 탄 차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곳곳에 사고 난 곳만 잘 지나친다면, 늦어도 자정 전까진 도착할 것이다.
‘그럼 나는 누구 편이 되는 거지.’
수호는 얌전히 앉아 그것부터 생각했다. 무흠과 낙조가 함께 있긴 하나, 아직 둘의 의견이 완전히 합쳐지지는 않았으니 완벽한 일행이라곤 할 수 없었다. 수호는 괜히 문 쪽을 한 번 돌아봤다가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
무흠은 낙조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눈이 녹은 자리엔 물이 고여 있었다. 낙조는 옥상 난간에 가까이 붙어 선 무흠의 등을 주시한 채 가까이 다가갔다. 무흠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층수가 아무리 높다 해도 5층을 넘는 건물이 없다 보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낙조는 두 걸음 정도를 남겨 두고 걸음을 멈춰 세웠다. 낙조의 걸음 소리가 멈추자, 무흠은 살짝 뒤를 돌아 낙조가 어디 서 있는지를 확인했다.
“지금까지 내가 한 얘기가 어느 정도 믿기지?”
“켈리……, 그 여자랑 관련된 부분만요.”
“다 믿어야 한다고 하진 않을 거야. 믿기지 않겠지, ‘환자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고서 병을 고쳐 주는 집단이 있었다’, ‘만병을 치료하는 약초를 키우면서도 세간에 알리지 않았다’, 뭐, 이상한 부분이야 많지.”
“당신 피를 먹이는 것도 이상했어요. 그럼 중사님도 서천이라는 집단 사람입니까? 애초에 종교 집단 같은데―”
“―서천엔 특정된 신이 없다. 모시는 신이란 건 없어. 병든 자들을 치유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이고, 그에 걸맞은 일을 하는 것뿐이지. 그 과정이 밖에 알려져 봐야 잃을 것밖에 없으니 침묵하는 거고.”
“그렇게 철저하게 운영됐는데 켈리 같은 사람을 어떻게 일하게 만들었어요.”
“그 여자가 들어올 때는 나도 그곳에 있지 않았어서 잘 몰라. 거의 35년은 된 일이니까.”
무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런 집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도 잠시, 켈리가 그럼 얼마 동안 서천에서 공부를 했는지 궁금해졌다. 낙조는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서천이란 그곳에서……, 인체실험도 했겠네요. 못 고치는 병이 없었다면.”
“못 고치는 병이란 건 아직 없다. 물론 고칠 수 있는 방법이야 있겠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고. 고칠 수 있는 병에 한해서 환자에게 연락처를 긴밀히 전달하고, 환자 스스로 치료 의사가 아주 확실할 때만 서천으로 데려왔다.”
“그럴싸하게 말씀하시긴 하네요. 그렇게 떳떳한 집단이라면서 잃을 게 많다는 건 모순인데요.”
“……고낙조 당신도 그간 많은 일을 겪긴 했나 보군. 말하는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말대답하는 걸 보면.”
“지금 중사님 행동이 가장 수상하고 싸이코 같은데 누굴 뭐라고 하십니까.”
“잃을 게 많다는 게 꼭 물질적인 건 아니야. 고낙조 당신도 잘 알잖아. 평범한 일상. 그것 하나 잃는 것만으로도 사람 인생은 박살이 나.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겠어?”
무흠은 전과 달리 차분하게 설명했다. 나긋나긋한 말투는 예전과 같았으나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눈빛은 음험했고 생체실험을 오랜 시간 동안 거친 몸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머리가 조금 자랐기에 망정이지, 예전만큼 짧았다면 이만큼 험악한 인상을 볼 일도 없었을 테다. 그나마 이전엔 잘 웃어서 선명하다 못해 파이는 곳마다 그림자가 졌던 이목구비가 선하게 보였을 뿐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잃는 건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잃은 게 아니라 거의 빼앗긴 수준이죠. 모두 타의에 의해서.”
낙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흠이 손가락을 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마치 그가 원했던 대답을 냉큼 해 준 것만 같아 심기가 언짢아졌다.
“도둑맞은 일상을 돌려받아야지.”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인데요.”
“…….”
야생과도 같은 무흠의 날 선 눈빛이 꽂혔으나 낙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시선만 돌렸다. 할 말은 다 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지금까지 얌전히 있어 준 대가는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
“켈리 같은 사람이 여러 명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남은 이들은 누군지 알아요?”
“그건 그 여자를 상대하면서 차차 알 거다.”
“남은 사람들도, 서천에서 일했던 사람들입니까?”
“…….”
낙조는 무흠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단순히 사건만 놓고 본다면 그리 대단한 시작은 아니었다. 선한 목적을 갖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능력과 노동의 시간을 횡령한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부분열이 있었고, 틈에서 새어나가기 시작한 불행을 일찍이 막지 못한 탓이다.
“……그럼 내가 맡은―”
아직 그 ‘서천’이라는 단체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정확히 어느 과정을 거쳐 약초를 제조했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어째서 그들과 얽혔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열 때였다. 아무렇게나 건물 밑으로 던져내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낙조의 말이 멈춘 것을 이상하게 느낀 무흠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 건너편 건물 입구. 변종일까요?”
낙조가 숨죽인 채 물었다. 무흠의 시선이 재빠르게 돌아갔다. 낙조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오래된 식당 옆이었다. 건물 안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오는 움직임이 보였다. 무흠은 몸을 낮춘 채 옥상 난간에서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종이나 사람이라고 확실히 단정 짓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의 몸 위엔 아직 녹지 않는 눈덩이 사이로 연두색 꽃들이 빽빽하게 피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뿌리는 피부까지 뚫고 나와 이곳저곳을 돌돌 만 상태였다. 흙더미에서 발만 솟아난 것 같은 모양새. 영하로 떨어진 온도에서도 피어난 장미와도 같은 꽃. 보는 눈을 의심케 하는 모습의 그것은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멀리서 본다면 꽃을 무자비하게 꽂아 둔 화병 같기도 했다.
“내려가서 봐야겠어요.”
낙조는 순간 머릿속에 스친 생각에 황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흠이 뒤에서 낙조를 불렀으나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추위에 강한 식물이 깨어날 수도 있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분명 공주에서 산불을 지르기 전, 밤이와 지운과 나눈 대화에서 낙조는 그런 가설을 세웠다. 추위에 약한 식물이 산에서 하나의 겨울눈이 되어 잠들었다면, 산이 부분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지형을 바꿀 수 있다면……, 땅속에 파묻혀 있던 추위에 강한 식물이 깨어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방금 발견한 그것이 그 식물에게 잡아먹힌 변종이 아닐까. 낙조는 쉬지 않고 1층까지 뛰어 내려가 붉은 꽃 변종이 있던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변종은 온몸에 뿌리가 퍼진 것 때문인지, 아니면 촘촘하게 박힌 꽃 때문인지는 몰라도 걷는 속도가 무척 더뎠다. 낙조는 자신의 걸음 소리가 변종에게 들리지 않게 천천히 그것에게로 다가갔다. 그것은 무엇을 찾는 듯 두꺼운 머리를 까딱대며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뭘 하려고.”
어느새 따라붙은 무흠이 중얼거렸다. 낙조는 조금씩 간질거리기 시작하는 오른쪽 팔의 감각에 대답하는 것도 잊고서 변종의 뒤를 쫓았다.
진액이나 포자 변종을 봤을 때처럼 격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으나, 미미하게 찌릿거림과 간질거림이 올라오는 것으로 봐선 변종이란 건 확실했다. 공격성이 크게 보이지는 않아도 먹잇감이 나타나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일이다. 낙조는 주먹을 꽉 쥐어 언젠가 고속도로 위에서 변종들에게 뿌렸던, 그 뜨거운 액을 부풀렸다.
“끼이이이익.”
날카로운 손톱으로 옛 칠판을 긁는 소리와 같은 비명이 앞에서 터졌다. 변종은 낙조의 손에 담긴 액의 냄새를 맡았는지 곧장 몸을 돌려 세웠다.
‘눈은 없어.’
낙조는 변종이 눈으로 길을 찾는 게 아니라, 냄새로 길을 찾는다는 걸 확신했다. 무흠은 조용히 뒤에 서서 낙조를 말리지 않고 지켜보았다.
‘죽이는 게 맞을까?’
변종이 삐거덕거리면서 자신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의 움직임은 무척 둔했다. 덕분에 낙조는 잠시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사님. 죽여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변종을 기절……,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낙조의 시선은 오롯이 변종에게 꽂혀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에 변종의 몸에 피어난 꽃도 더욱 자세하게 보였다. 꽃잎이라고 생각했던 꽃잎은 두꺼운 이파리였다. 다섯 장의 이파리 가운데에선 까만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뿌리는 두껍고 여러 갈래로 뻗어 있어 변종이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낙조는 가만히 변종을 응시하다가 몸을 뒤로 물러 세웠다.
“저거, 가운데 까만 거……, 저게 입일 거예요.”
“무슨 근거로?”
“뿌리 대부분이 말려 있어요. 꽃도……, 정상적으로 핀 게 아니에요. 움직일 때마다 저 까만 꽃이 움찔거리는 걸 보니까 저쪽에 신경이 몰려 있는 것 같아요.”
낙조는 눈앞에 놓인 변종에 대해 순식간에 정리한 정보를 줄줄 외웠다. 무흠은 낙조를 힐끔 내려다봤다가 고개를 옆으로 한 번 까딱이곤 품에서 총을 꺼냈다.
“뭐해요!”
“소리 그렇게 안 커.”
“자극하지 말라니까!”
“기절시킬 방법이 필요하다며.”
무흠은 아무렇지 않게 총구를 변종에게 겨눈 채 대답했다. 낙조는 그의 팔을 잡아 내리려 했으나, 무흠도 만만치 않았다. 오른손엔 이미 액으로 가득 차 있기에 왼손으로만 무흠을 붙잡아야 했다. 무흠은 팔에 매달린 낙조를 신경도 쓰지 않고서 그대로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을 안쪽으로 당겼다.
픽.
‘픽?’
분명 방아쇠를 당기는 걸 봤는데,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키이이이…….”
투두두둑, 흙더미가 곤두박질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변종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사방으로 흙을 털어 대고 있었다. 비명도 그리 크지 않았다. 까맣고 작은 꽃잎들이 쉬지 않고 부풀었다가 사그라드는 걸 반복하면서 불투명한 액을 쏘아 댔다.
“나도 서천에 속한 사람이냐고 물었지.”
무흠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낙조와 눈을 맞춘 채 말을 맺었다.
“나는 서천을 지키는 이였다. 서천 안에선 장승이라고 불렸지.”
그의 목소리가 파동을 일으키듯 낙조의 온몸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