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하늘마루
방문을 확실히 잠긴 걸 확인한 후 걸음을 떼어 냈다. 밤새 내린 눈은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적당히 얼어 있었다. 수호가 있는 건물에 들어가기 전, 무흠은 계단에 앞코를 툭툭 쳐 눈을 털었다. 손엔 수호의 조촐한 아침이 들려 있었다.
문을 두 번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수호가 기다렸다는 듯 무흠을 불렀다. 그는 자연스럽게 무흠이 내민 생라면을 받아들면서 말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요. 암호도 몇 겹씩 꼬아서 걸어 놨으니까, 당분간은 그쪽에서 먼저 알아채도 접근은 못 할 거예요. 해킹 시도하면 바로 나한테 알림 뜨니까 뭐,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고요.”
“수고했어.”
“그래서 뭐……, 뭐부터 하실 건데요?”
“전화.”
그러면서 무흠은 수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호는 질린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나가 있을 테니까 쓰세요. 나도 눈이나 좀 밟아야겠다.”
무흠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수호는 모든 선이 연결된 수화기를 무흠에게 건네고서 라면을 부수며 밖으로 나갔다. 무흠은 수호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입력되는 전자음 소리가 어쩐지 낯설었다.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무흠은 딱딱한 표정으로 앉아 응답을 기다렸다. 꽤 길게 신호가 이어졌다. 자동응답기로 넘어갈 때쯤, 털컥, 하고 누군가가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먼저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무흠은 목을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삼승님, 백무흠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지체했네.
“죄송합니다. 사정은 만나 뵙는 대로 고하겠습니다.”
-대충 알고 있으니 말 안 해도 돼. 소문이 여기까지 났더구나.
“면목이 없습니다.”
-몸은 괜찮니? 꽤나 고생을 했던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부는 아직 조용하다. 우리 눈치를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벌써 12월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성도 새 환인을 궁금해하고 있다. 하늘마루의 위치는 네가 있는 곳으로 보낼 테니, 너만 알고 있다가 조용히 움직이도록 해라. 우리가 청주에 붙은 것처럼, 켈리도 너희를 뒤쫓았을지 모르니.
“명심하겠습니다.”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삼승은 꽤 늦은 연락에도 무흠에게 쓴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녀와 대면을 한 지도 몇 년이 넘어간다. 무흠은 끊긴 전화를 붙들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홍해화 쪽 소식이 늦어. 켈리 쪽에서 먼저 손을 썼다면 복잡해지는데…….’
무흠의 예상은 보름 정도가 지났을 때 낙조의 남은 일행과 접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주 본부 몰래 네트워크 망을 개설하는 건 수호 혼자서 이루기엔 꽤 힘든 작업이었고, 낙조가 머물렀던 건물 근처 CCTV는 거의 고장이 난 상태라 동선을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먹을 걸 찾아서라도 조금 멀리 나올 법했으나 거리는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물 근처에 두었는데.’
그들이 찾는 척도 하지 않고서 낙조를 포기할 리 없었다. 낙조가 자신을 마주하고서 기절한 후 자신은 분명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의 주소가 적힌 종이를 건물 계단에 두고 나왔다.
‘그쪽은 전화가 터지지 않으니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자리를 비우기도 애매했다. 낙조가 아직 자신의 말을 완전히 믿는 것도 아니었으니 수호 혼자서 낙조를 감당하지 못할 게 당연하다.
세상은 사실 우주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뒤집으며 변해 왔다는 사실을 단번에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다. 자신 또한 거친 과정이니. 낙조를 구석에 몰아 죄책감을 뒤집어씌우며 강요할 생각은 계획에 추호도 없었으나 마음이 급하니 뚫린 입이라고 거침없이 욕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무흠은 이마를 짚고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비틀어진 신뢰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을지 몰랐다.
*
“누나 어디 가?”
해화의 호흡이 그나마 안정되자 지운은 눈물을 멈췄다. 사람의 몸과 동물의 몸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의학 지식으로는 해화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었다. 심장은 분명 뛰고, 맥박도 정확히 잡히는데 도통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되기만 한다면 매 새벽마다 물을 떠 기도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낙조가 사라진 날 아침. 밤이는 지운에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못 들었느냐며 물었다. 현관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고 있었던 사람이 자신이었기에 물을 수 있는 말이었고, 일행 중에서 사지 멀쩡한 이가 둘뿐이었으니 질문을 받을 사람은 당연히 자신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 질문 하나에 예민해져 ‘항상 멋대로 구는 사람이었으니 알아서 잘 올 것이다’라고 홧김에 내뱉었다. 밤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홀로 밖으로 나서더니,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것을 거의 한 달 동안 반복했다.
지운이라고 낙조가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밤이가 문을 박차고 나갔을 때, 건물 근처를 뒤적거리는 게 전부긴 했으나 소심한 목소리로 낙조의 이름을 불러 보기도 했다. 그 순간에도 해화의 숨이 넘어갈까 봐 집과 밖을 살피면서 시간을 보냈다.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경상남도 거제시 능포로 85
수분이 거의 빠진 애꿎은 낙엽만 발끝으로 툭툭 차며 밤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때, 낙엽보다 조금 무거운 덩어리가 신발에 치였다. 그냥 신문 쪼가리라고 생각했던 지운은 두 번으로 곱게 접힌 정사각형의 흰색 종이를 보고 홀린 듯 허리를 숙여 종이를 주웠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뾰족한 글씨체로 적힌 거제도의 주소였다.
충청남도의 구석진 마을에 놓인 거제도의 주소. 아무것도 없이 달랑 주소 한 줄 적힌 게 다였기 때문에 지운은 서두르지도 않았고 그것이 낙조와 관련된 것임을 추측하지도 못했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으니 주소를 검색해 그곳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조차 없는 게 당연했다.
지운은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종이를 넣고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잊어버렸다. 해화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잔뜩 배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밤이는 날이 갈수록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고, 가끔 구한 먹을 것을 지운에게 던져 주었다. 자신이 말이 심했다며, 조금의 대화라도 하려 했던 지운을 상대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통조림 몇 개를 주고서 낙조가 누워 있던 방으로 들어가는 게 끝이었다.
종이에 적힌 주소에 대해 그때 말했어야 했는데.
“누나 뭐하냐고.”
밤이는 지운이 던진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전화선만 매만지고 있었다. 어차피 터지지도 않을 전화기를 왜 매만지는 건지, 지운은 보다못해 선을 빼앗고서 밤이의 눈길을 돌렸다.
“누나!”
“……계획이 없어.”
“뭐라고?”
“너나 홍해화나, 둘 다 계획이 없다고. 나에게 아무런, 아무런 도움이 안 돼.”
“누나 지금 그게 무슨―”
“―이렇게 죽을 거 알았으면 따라오지도 않았겠지. 나도 멍청했는데, 너희는 정말 답이 없다.”
“지금 그게 할 말이에요? 우리 누나는 눈도 못 뜨고 있는데 고낙조만 찾아다니고! 우리 누나 목숨은 사람 목숨도 아니야?!”
“야. 너 할 말 가려서 해.”
밤이는 여전히 전화기에 눈을 둔 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운과 밤이 둘 모두 이성적으로 대화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운은 거의 쉰 목소리로 울부짖었으나 밤이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운에게 약간의 동요도 하지 않는 밤이의 태도에 지운은 바닥에 상체를 납작 엎드렸다.
“나는 이렇게 살려고 지금까지 버틴 게 아니야.”
“누나, 제발, 우리 누나 좀 살려 줘…….”
“알아야만 했어. 알아내는 게 중요했으니까. 근데 지금은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잖아. 알아낸 것들도 일부는 뺏겼어. 혼자였으면 이렇게 쫓겨 다닐 일도 없었을 텐데.”
밤이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운이 발목을 붙잡았으나 그녀는 잠시 멈췄을 뿐 그대로 집을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지운은 그때까지 꼭 쥐고 있던 전화선을 내팽개치고 벽에 부딪쳐 가면서 현관 쪽으로 달려 나갔다.
밤이까지 떠난다면, 다시 둘이 된다. 처음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단코 시작과 같을 순 없다. 해화가 살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밖에 나가서 목청껏 누구를 불러 봤자 아무도 듣지 못할 테고 오지 않을 걸 안다. 폐허와 다름없는 곳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밤이는 이미 계단을 내려갔는지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지운이 헐레벌떡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 내려갔으나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이미 눈이 반쯤은 녹아 발자국조차 근처에서 사라졌다. 주변을 찾아보자니 해화가 걱정이 되어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운은 옴짝달싹 못 하다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힘이 다 풀려나간 느낌이었다. 폐에 헛웃음이 찼다.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 끝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웃음소리는 흐느끼는 소리로 서서히 변해 갔다. 지운은 멍하니 텅 빈 거리를 응시하다가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는 건물 뒤에 숨어 지운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지를 털지도 않고 다시 계단을 힘겹게 올라갔다. 열려 있던 현관문이 닫힌 후에야 밤이는 거리에 발을 내딛었다.
‘공중전화가……, 어디 근처에 있었는데.’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 동네로 보였던 만큼 조그마한 슈퍼 앞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는 걸 기억했다. 밤이는 굽이진 골목길을 힘없이 걷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낡은 슈퍼 간판을 보고 주먹을 쥐었다.
‘뭐라고 하지. 홍해화가 있는 곳을 안다고 해? 홍해화가 확실하다고 말할까.’
아주 느린 걸음으로 공중전화 앞까지 다가간 밤이는 수화기에 손을 올린 채 고민했다. 어떻게 말해야 가장 신고를 빨리 끝낼 수 있을지.
‘홍해화만 데리고 가는 걸까? 홍지운은……, 홍해화가 의식이 없다는 걸 알면 어떻게 할까. 그냥 애초에 고낙조와 같이 다녔던 일행이라고 하면 바로 알아듣겠지. 그럼 나도 데리고 갈까. 나한텐 정보가 있잖아. 계절에 따라 변하는 식물처럼 변종뿐만 아니라 산 자체가…….’
돌고 도는 생각 끝에, 밤이는 수화기를 들었다. 자동으로 연결되는 본부의 음성 메시지에 밤이는 가만히 있다가 0번을 눌렀다. 생각보다 신호음은 오래 갔다. 잠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말이 빠른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네, 청주―
덜컥.
밤이는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생전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게 이리도 무서울지 몰랐다. 밤이는 공중전화 앞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쌌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본부에 간다면 해화를 살릴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살린다면, 해화는 영락없는 백신 개발에 좋은 샘플이 될 게 빤하다. 그걸 지운이 두 눈 뜨고 지켜볼 리도 없고. 아무리 이 순간 그들이 미워도, 당장 자신이 발굴해 낸 것들을 빼앗겼다 해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우러나오는 감정으로 일상의 공백을 채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어딘가 비뚠 다정함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조차 잊고 산 시간을 전부 머릿속에서 밀어버렸을 만큼, 귀한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는 무력함에 짓눌린 채 밤이는 다리에 쥐가 날 때까지 한참을 앉아있었다.
이제 슈퍼에 남은 먹을 것들도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뿐이다. 밤이는 오래된 테이블보 위에 앉아 슈퍼 문틈으로 노을이 지는 걸 내려다보았다. 날씨가 추워진 만큼 해가 지는 시간도 빨라졌다. 밤이는 지평선에 노을의 끝물이 물들 때쯤 슈퍼에서 나왔다. 이곳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바닥만 응시한 채 걷던 도중, 그녀는 문득 무언가가 시선을 끄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 사람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먼 바닥을 확인하면서 다녔다고 생각했다. 모든 길목을 다 뒤졌고 떨어진 것은 없나 확인도 했다. 그럼에도 왜 보지 못했을까. 밤이는 햇빛이 마지막까지 녹이다 간 가로등 밑을 응시했다.
유일하게 도로가 포장된 길. 자동차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길목.
오른쪽으로 치우쳐진 스키드 마크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