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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초-94화 (94/202)

94화. 산불 (1)

머리에 잡생각이 많으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자주 들은 얘기였다. 잔걱정도 심했고 사교성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꽤 가까이 지내는 친구 두 명 정도는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새해 첫날 술을 마신 친구들도 그들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아무개가 군에 입대하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연락이 끊긴 적은 없었다.

컴퓨터나 노트북에 매달려 하루를 거의 쏟는 수호는 언제나 그랬듯 하늘이 감파르게 밝아질 때쯤 잠들었다. 코스모스 졸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도 수호에게 그리 취업을 강요하진 않았다. 전공과는 맞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개발자가 적성인 듯해 호기롭게 수호가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대학을 다니며 종종 IT 기업들이 주최하는 공모전에 나가 수상을 한 경력도 꽤 됐기에 수호의 주장은 그리 터무니없진 않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날 새벽은 참 시끄러웠다. 수호 엄마의 직장은 아빠보다 멀어 새벽 일찍 일어났는데, 분명 수호는 그녀가 출근을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도어락이 잠기고, 다시 고요한 백색소음에 물들어 천천히 깊게 잠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누군가 구두를 콱콱 밟아 가며 복도를 뛰어오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리곤 도어락을 꾹꾹 누르는데, 몇 번이고 비밀번호가 틀려 시끄럽게 경보음이 울렸다. 안방에서 아빠가 일어나 거실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바닥이 장판을 눌렀다가 떼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수호도 그때쯤 겁이 살짝 올라왔다. 침대에서 두 다리를 내렸을 때 마침내 도어락이 맞아 떨어졌다.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엄마였다. 아빠가 ‘여보?’하고 의뭉스럽게 부르자, 엄마가 허겁지겁 구두를 벗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호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너, 너, 안 잤지?」

「왜, 왜 그래 엄마?」

「너 빨리 짐 싸. 그리고, 그리고……, 경찰, 아니, 아니다. 소방서에 연락해. 일일구!」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도 엄마는 사색이 된 채 다시 거실로 나갔다. 열린 문 너머로 아빠와 엄마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수호는 일단 휴대폰을 집어 들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거실로 나갔다.

「엄마 근데 뭐 때문에 전화했냐고 하면―」

「여기 주위에 대피할 곳 없냐고 물어봐. 아니면 집 주소 말하고 데리러 와 달라고 해. 빨리!」

「당신 진짜 왜 그래? 누가 쫓아오기라도 해?」

「티비, 티비 켜 봐.」

아빠와 수호만 얼이 빠진 채 엄마가 허둥지둥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덜덜 떠는 손으로 티비를 켜더니 뉴스만 나오는 채널을 맞췄다. 시간은 새벽 여섯 시. 처음으로 시작하는 아침 뉴스가 나올 시간이었다. 스크린 안을 채우는 스튜디오는 부산스러웠다. 스태프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손짓으로 대화를 주고받았으나 소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속보 | 충남 공주서 시민 무차별 공격하는 집단 발견』

『속보 | 확인되지 않은 전염병인가… 질병관리청 “사실 확인중”』

『속보 | 무성산에 헬기 추락… 소방당국 “탑승 신원 파악중”』

「저게 다 무슨 말이야?」

아무도 입을 못 열고 있을 때, 수호가 조용히 물었다. 무릎을 꿇고 티비 앞에 앉아 있던 엄마가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빠가 엄마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기는 천안이잖아, 당신 도대체 뭘 봤어.」

「……사람들이…….」

가까스로 엄마가 입을 열었다고 생각했을 때, 화면이 전환됐다. 여자 앵커가 가지런히 앉아 뉴스 보도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프닝은 생략됐다.

「그, 남자, 아나운서는 왜 오늘, 없지?」

엄마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수호는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조금씩 밝아지고 있는 하늘, 불도 켜지 않은 집을 유일하게 비추고 있는 티비 화면, 당황한 표정의 여자 앵커. 모든 게 다 수상했으나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속보입니다. 조금 전인 오전 네 시 오십 분 경, 충청남도 논산에서 한 주택에 취객이 난입해 노부부를 무자비하게 공격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용의자는 이미 달아난 뒤였고 피해자들은 병원 이송 중 과다출혈로 사망하였습니다. 뒤이어 오전 다섯 시 십오 분, 사건 현장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주택가에서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닌다’,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지 않고 승용차에 몸을 던지거나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아 공격한다’라는 신고가 잇따랐습니다. 오전 다섯 시 삼십 분, 충청남도 공주 무성산에 산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소방관들이 투입됐습니다. 화재의 원인은 헬리콥터가 추락하며 불이 번진 것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탑승한 승객은 총 여섯 명이었으며, 신원을 조회하는 중에 있습니다.」

앵커는 경직된 얼굴로 준비된 속보를 줄줄이 읽어 나갔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공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알겠는데 왜 엄마가 갑자기 뛰어 들어왔지? 엄마는 뭘 봤지? 공주에서 천안까지 차로 얼마나 걸렸더라, 왜 저렇게 사람들이 초조해 보이지, 이 시간에도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긴 나도 고등학생 때는……. 수호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들의 상처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범인이 한 명이 아닌 하나의 무리로 보고, 계획성 범죄이며, 현재 공주뿐만이 아닌 타지역에서도 신고가 잇따라 들어오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처음 신고가 들어온 주택이 있는 지역에 유 현 기자와 연결해 보겠습니다. 유 현 기자?」

「네, 여기는 충남 공주의 한 주택입니다. 동네의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인 곳으로, 보시는 바와 같이 현장은 주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인도를 봉쇄했으며, 검식반이 매장에 남은 혈흔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범인이 도주한 길로 추정되는 방향은…….」

「유 현 기자?」

갑자기 카메라가 심하게 흔들렸다. 화면 안에서 뒤늦게 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젊은 남성으로 보이는 기자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앵커가 그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곧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카메라가 기자의 시선을 따라 돌아갔다.

「……여기, 여기는, 지금, 어……, 어! 어어!」

「유 현 기자? 무슨 일 있습니까?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나요?」

「뛰, 뛰어요!」

앵커의 표정은 점점 더 나빠져 갔다. 중계되고 있는 화면은 더 이상 기자나 사고 현장을 찍지 않았다. 다급하게 외치는 기자의 목소리와 함께 카메라맨이 숨을 헉헉거리며 뛰는 소리가 이어졌다. 새벽의 소동에 밤잠을 설치고 나온 주민들의 절규 섞인 비명도 함께. 중계화면은 이내 화면에서 사라졌다. 앵커는 작게 입을 벌린 채 눈을 깜박거리다가 다시 자신을 비추고 있는 카메라로 시선을 옮겼다.

「어……, 유 현 기자였습니다. 네, 아, 아. 네. 죄송합니다. 새로 들어온 속보입니다. 첫 신고가 들어온 현장 근처에서 시민을 공격한 무리 중 범인 두 명을 검거했다는 소식입니다. 범인들은 모두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초점이 맞지 않는 눈과……,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범인 두 명 모두 환자복을 입고 있었는데, 병원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아……, 사건 현장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정신요양원의 환자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앵커가 말을 마쳤을 때 수호는 무의식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여섯 시 십 분도 되지 않은 시간. 저 많은 말을 하는데도 십 분도 걸리지 않는구나. 수호는 그저 앵커가 난데없이 들이닥친 사건사고들에 당황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금수호! 전화했어?」

갑작스럽게 엄마가 수호를 불렀다. 수호는 그제야 자신이 휴대폰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답을 얼버무리며 다시 휴대폰 잠금을 풀었다. 화면엔 보지 못했던 알림이 떠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그도 여태껏 잠들지 않았는지 메신저 어플로 단체 메시지 방에 메시지 몇 개를 조금 전 보내왔다. 수호는 119에 신고하기 전에 그 알림부터 눌렀다.

[야야 ㅁㅊ지금난리남]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video……]

[dl이거보라고]

[야이새끼들아 일어나]

[지금심각하다고]

[우리동네도 개시끄러움]

수호는 슬쩍 엄마의 눈치를 한 번 보고 키패드를 톡톡 눌렀다.

[  야 우리 엄마도 출근하다가 갑자기 들어오셔서 뉴스 트심]

[  뭐냐? 산불 난 거랑 정신병원 환자들 탈출한 거 아님?]

시간 옆에 찍힌 ‘2’가 곧장 ‘1’로 줄어들었다.

[내가지금인터넷보고있는ㄷㅔ]

[좀비비슷하대ㅋㅋㅋㅋ]

[아니 나도좀어이없는데]

[동영상있음;; ㄱㄷ]

그는 곧 한 동영상 플랫폼에서 영상 링크를 가져와 채팅방에 올렸다. 1시간 전에 업로드된 영상. 조회수는 벌써부터 폭발적이었고, 댓글도 1천여 개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수호는 영상을 틀어놓고 댓글부터 확인했다. 전국 각지부터 해외에 사는 이들까지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친구가 말한 대로 ‘좀비’였다. 수호는 그제야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영상에 눈을 돌렸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 셋이서 아파트 단지 안을 뛰어다니는 영상이었다. 단지를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크게 울기도 하고, 종종 나무 옆에 가만히 멈춰 서 있기도 했다. 영상을 찍고 있는 이는 고층에 거주하는 듯했다. 최대한 줌을 당긴 상태로 화단을 찍던 촬영자는 갑자기 들리는 비명에 휴대폰을 고쳐 쥐었다. 영상은 곧 아파트 단지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단지 안을 횡단하던 남자 무리 중 둘이서 경비원을 덮치고 있었다. 촬영자가 작은 목소리로 ‘미친…….’ 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 하나가 경비원의 입을 두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찢기 시작했다. 그리고 꽤 진득거려 보이는 것을 경비원의 입안에 게워 냈다. 수호는 거기까지 보고 동영상을 껐다.

[  야 그냥진짜 미친사람들아님?]

[  사람한테 왜 토를 해;;]

수호는 인상을 찡그린 채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답장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

“…….”

술에 만취한 채 언제 잠든 지도 모른 다음날 아침 같았다. 깨질 것 같은 머리에 수호는 몸을 움츠리며 신음을 흘렸다. 거의 죽어 나가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바로 옆에 안경이 놓여 있었지만, 다 깨져 쓸모도 없을 것 같았다. 수호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야?’

정리되지 않은 이불과 베개가 난무한 노란 장판. 가끔 할머니 집에 가면 맡을 수 있었던 오래된 자개장롱의 냄새. 몇 차례의 태풍이 지나가고 흔적을 남긴 것 같기도 했다. 찢어진 커튼들과 묻은 지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은 핏자국, 오랫동안 세탁하지 않아 축 늘어진 이불……. 그럼에도 사투의 흔적인 피 냄새는 고여 있었다.

수호의 옆 침대 위엔 익숙한 옷 하나가 놓여 있었다. 군복. 수호는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확인했다.

“백…… 무흠…….”

백무흠.

순간 정신이 들었다. 수호는 몸을 떨었다가 다시 심하게 일어나는 두통에 머리를 붙잡았다. 그제야 손가락에 얽히는 머리카락 사이로 붕대의 촉감이 느껴졌다.

‘어딜 간 거야.’

본부에서 가장 보안이 취약했던 곳. 변종이 한 번도 출몰하지 않아 경비를 세우지도 않았고 순찰도 하루에 두 번만 도는 그곳. 철조망을 뚫고 언덕을 날았던 지난밤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밤은 맞나? 내가 며칠 동안 잠들었던 거면……, 백무흠이 나 두고 갔나. 어쨌든 미안하니까 치료는 해 주고? 난 이제 어디로 가지? 수호는 무흠의 군복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일어났냐.”

“……혼자 안 갔네요.”

수호의 대답에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무흠은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수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통조림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저 얼마나 잤어요? 일주일?”

“여덟 시간. 좋은 생활 패턴을 갖고 있네.”

“뭐야, 이제 아침이에요?”

“아침이라고 하기엔 좀 늦지? 점심 먹을 시간은 지났으니까.”

“엥. 우리 몇 시쯤 나왔는데요.”

“밤 열 시?”

“뭐야. 그럼 열두 시간 잤네.”

“기절한 건 그쯤이고 잠든 건 새벽 세 시쯤.”

“무슨 소리예요 그게.”

“잠깐 깼었어. 너 머리 꿰맬 때.”

“나 머리 찢어졌어요!?”

“목소리 쌩쌩하네. 빨리 먹어. 떠야 되니까.”

무흠은 통조림 하나를 수호에게 던져 주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의 팔이나 손도 상처투성이였지만 딱히 연고도 바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수호는 통조림 따개를 쥐었다가 무흠에게 다시 내밀었다.

“저 머리 아파요. 따 주세요.”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살벌한 눈빛이 돌아왔지만, 수호는 더 이상 무흠이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그……, 그쪽이 구해 준 것도 맞긴 한데, 어쨌든 내가 더 많이 다쳤잖아요.”

무흠은 빼앗아 가듯 수호의 손에 들린 통조림을 낚아챘다. 찌이익, 따개가 열리는 소리에 수호는 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근데, 어디로 가요?”

“고낙조 있는 곳.”

“에?”

“질문 그만. 빨리 먹기나 해.”

그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를 세우곤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통조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수호는 물끄러미 반쯤 뜯긴 통조림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휴대폰을 켜 보고 싶었다. 그동안 자신이 보지 못한 알림이 오진 않았는지, 오늘은 무슨 요일인지……, 그런 것들이 내심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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