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균열의 시작
차로 돌아오니 동이 트고 있었다. 밤이의 손에 이끌려 산을 내려온 이후론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렸을 땐 지운이 빵빵해진 가방을 앞으로 껴안은 채 서 있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지운의 얼굴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누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면 곧장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끝이 떨리는 물음에 밤이도, 낙조도 입을 열지 못했다.
“무슨 일인데.”
“너 일단 진정하고 들어 봐.”
밤이가 어렵사리 입을 떼어 냈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 지운은 안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리고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어디 다녀 왔어.”
“홍지운, 너 김도연 다쳤다는 산에 가 본 적 있어?”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오는데.”
“똑바로 대답해. 가 본 적 있냐고.”
“……순찰 돌 때 다 같이 도는 거 몰라요? 개인 외출 금지였잖아. 내가 거길 어떻게 가는데요.”
“김도연 잡혔던 산에 갔을 때, 홍해화 옆에 붙어 있던 거 너잖아.”
“누나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때 홍해화 이상한 거 못 느꼈냐고.”
밤이는 생각보다 공격적으로 나왔다. 낙조의 기억에도 그날 산을 올랐을 때, 맨 끄트머리에 떨어져 있던 해화를 부축한 건 지운이었다. 그러나 지운에게도 그리 좋지 못한 기억이 가득 찬 날이었기 때문에 낙조는 밤이를 말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상황 설명 먼저 해 주고 얘기해요. 우리끼리 싸울 일이 아니니까.”
“너는 모르지. 홍지운 쟤 김도연이랑 막시안, 홍해화 데리고서 외출 몇 번 한 적 있었어. 켈리가 막시안한테 시킨 일일 수도 있겠지만, 쟤네끼리 가끔씩 나갔다 오고 그랬다고.”
밤이는 못 참겠다는 듯 낙조를 쏘아 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 말에 흥분한 지운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약수터 물 뜨러 간 거 몇 번이에요! 그것까지 내가 다 보고를 해야 해요?”
“켈리에게 일일이 보고가 되는데, 그 무리에 너희 넷을 굳이 끼워 넣어 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누나 진짜……, 누나 진짜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어떻게 나를 의심해요? 내가 지금 당신들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
기가 찬 듯 지운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낙조는 중간에 서서 이마를 짚고 있다가 밤이를 불렀다.
“왜 갑자기 지운이를 몰아세워요.”
“너 그때 못 들었어? 홍지운이 홍해화한테 뭐라도 해 보라고 계속 그랬잖아.”
“…….”
눈이 느리게 닫혔다가 뜨였다. 낙조는 정확히 기억했다. 생사가 엇갈릴 수도 있었던 산과 아스팔트의 경계에서 지운은 유독 해화에게 무엇인가 해 보라고 몇 번이나 외쳤다. 해화는 산을 오를 때부터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고 말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지운이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지 못했다. 둘 사이에서 대화가 오간 것을 본 것도 지운이 대피소에 들어가기 직전뿐이었다.
“……노래라도 부르라고 했었지, 너 아마.”
낙조가 서서히 몸을 돌려 지운을 응시한 채 중얼거렸다. 의심보다 확신이 앞선 시선에 지운은 잔뜩 기가 눌린 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차분하게 설명해. 홍해화가 무슨 일을 벌였기에 니가 그때 그랬는지.”
“뭘 자꾸 말하래.”
“그리고 지금 니가 왜 말 안 하려는 것까지, 싹 다 말해.”
“아저씨까지 왜 이래!”
“홍해화가 밤에 산에 올라갈 때, 갑자기 노래를 불러도 되느냐고 했어. 노래를 다 부른 뒤엔, 겨우 잠들었다고. 잠들었으니까 깨우지 말라고……, 했다고. 너 뭐 알지. 아니까 노래 부르라고 한 거 아니야.”
지운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그는 꽉 쥐고 있던 주먹을 덜덜 떨다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입을 열었다.
“누나가 갑자기 나한테 그랬어. 식물들이 말하는 게 들린다고.”
“너 그걸 이제야 얘기해?!”
밤이가 버럭 소리쳤다. 낙조 또한 순간 속에서 뜨겁고 물컹거리는 것이 꿈틀대는 게 느껴졌지만 밤이를 막아 세웠다. 지운은 이미 겁에 잔뜩 질린 상태였다. 그동안 함께 다닌 시간도 이제는 세지 않을 만큼 몸 깊게 새겨졌다. 지운이 괜히 자신들에게 비밀을 감췄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지운의 입을 더욱 막아버리는 짓을 벌였다간 스스로에게 화를 낼 게 빤했다.
“그래서. 김도연이 다쳤던 산에 데려갔어?”
“누나가 가 보자고 했어. 도연이가 그랬잖아. 나무가 비명을 질렀다고…….”
“그럼 넷이서만 어떻게 빠져 나갔어.”
“막시안……, 막시안이 도와줬어. 그 사람이 켈리 용병인 건 나도 탈출할 때 안 거야.”
지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끄트머리에 가서는 거의 울음에 젖어 있었다. 낙조는 자신의 앞에 선 작은 지운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면서 꾸역꾸역 차오르는 한숨을 겨우 삼켰다.
“갔을 때 홍해화가 노래를 불렀어?”
“아니. 산 입구부터 말이 없었어. 근데 너무 시끄럽다고…….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가 난댔어. 그러다가 갑자기 누구한테 말을 거는 것처럼, 얘기를……, 했는데.”
“했는데?”
“아저씨 너무 무섭게 말 따라하지 마…….”
“했는데?”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들린대. 무슨 얘기했냐고 물어보니까 그 잠깐 동안 중얼거렸던 걸 기억을 못했어. 그리고 산 올라가니까 도연이도 소리가 안 들린다고 그랬고.”
도연만 들었던 나무의 비명을 해화는 처음 들은 게 아니었다. 자신들과 ‘악어와 새’를 나온 이후 산에 갔을 때가 몇 번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낙조는 해화가 산에서 사라지기 직전, 자신에게 했던 ‘미안하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시선을 밤이에게로 옮겼다.
밤이 또한 지운의 말을 듣고서 생각에 잠긴 듯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낙조는 잠시 숨을 고르고서 지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운은 말을 모두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너 또 숨기는 거 있어?”
“뭐?”
“없음 말고.”
“누, 누나한테 말을 좀 심하게 했어.”
“그건 홍해화 찾아서 직접 사과해.”
“그러니까 우리 누나 지금 어디 있는데!”
지운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정적만 가득 흘렀던 텅 빈 거리에 지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지운은 스스로 소리를 내 놓고 놀라 입을 다물었지만, 낙조와 밤이의 표정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소리 같은 거 신경 안 써도 돼.”
“어? 대피소 근처긴 한데 그래도―”
“다 잠들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동면에 들었다고. 그나마 남아 있던 것들도 홍해화가 데리고 갔어.”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해화의 이름이 낙조의 입에서 나온 순간 지운이 낙조의 멱살을 움켰다. 시퍼렇게 뜨인 두 눈은 낙조만을 바라보며 덜덜 떨고 있었다. 낙조는 무미건조하게 지운을 내려다보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던 남매. 처음부터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었고, 누구 하나 죽으리란 생각 따윈 하지도 않던 둘. 아마 해화가 아니라 지운이 사라졌다고 해도 해화는 지운과 비슷한 행동을 취했을 테다. 더 거침없이 말했을 수도 있겠다.
“말 그대로야. 잠들었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가만히 서 있던 밤이가 입을 열었다. 지운은 고개만 천천히 돌려 밤이를 응시했다. 차게 식은 시선 세 쌍이 서로 허공에서 뒤엉켰다. 지운은 힘없이 두 손을 떨어뜨리고선 헛웃음을 쳤다.
“말이 돼 그게? 걔네가 어떻게 잠을 자. 걔네가 어떻게 눈을 감냐고. 식물이 어떻게 스스로 잠들어!”
골목 어귀에 메아리가 맺힐 만큼 우렁찬 소리였다. 낙조는 안경을 벗어 안경알을 생각 없이 문질러 닦은 후 지운을 불렀다.
“꽃이나 잎이 피고 지는 게 식물의 전부가 아니야. 우리가 보는 식물은 항상 땅 위에 있는 모습뿐이었고…….”
“아저씨는 왜 이렇게 침착한데! 우리 누나가 아저씨한테 얼마나 잘했어!”
“홍해화 안 죽었어.”
낙조는 일부러 지운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며 안경을 고쳐 썼다. 지운이 자신의 앞에서 계속 고함을 질러 댔으나 그 어떤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안 죽었는데 왜 같이 안 왔냐고!”
“하, 진짜. 홍지운 야!”
조용히 지켜보려고 했는지 말이 없던 밤이가 지운의 어깨를 세게 움켜 돌렸다. 지운은 밤이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아등바등 거렸지만 미세한 잔근육으로 가득 찬 밤이의 힘은 이길 수 없었다.
“속상하지. 존나 신경 쓰이지. 아무것도 못하고 여기로 돌아온 신세 자체가 한심하지. 지운아, 근데 너 지금 니가 고낙조한테 지랄할 때야? 내가 물었잖아, 너 왜 홍해화가 식물이랑 교감할 수 있었던 거 알았는데 말 안 했냐고.”
“……누나는 왜 나한테 지랄이에요. 우리 누나가 없어졌잖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확실하지가 않잖아!”
“그러니까 왜 말 안 했냐고! 알았으면 애초에 산에 홍해화를 데려갔겠냐고 우리가! 아 얘기가 안 통하네 이 새끼가. 야, 니는 홍해화가 그럴 수 있는 걸 알았으면 김도연 산에 데리고 들어갈 때부터 홍해화한테 먼저 부탁을 하든가, 아니면 홍해화만 차에 두든가 했어야지 그걸 데리고 와? 어? 넷이서 기어들어 갔을 때부터 알았으면서 그걸 몇 번이고 쳐 가고 앉았어?!”
“홍해화가 말하지 말랬단 말이야! 누나가,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냥 자기 몸이 이상해진 것 같다고, 밤이 누나가 알면 좀 곤란해질 것, 같다고, 말하지 말랬다고…….”
“뭐?”
아무것도 없는 종이에 선 하나를 긋는 것은 간단하다. 반으로 찢는 것도 쉽다. 여러 번 접으면 입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할 수도 있다.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채 그려진 선들과 도형, 점이 난무한 종이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다. 어떤 것이 첫 시작인지, 어떤 게 마지막을 장식했는지 알 수도 없고.
애매한 관계도를 그리게 되면 두 번째의 상황이 된다.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고 선명히 정의내리지 못하는 관계들. 그 사이에서 난무하는 상처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감정들. 누구는 복잡하게만 얽힌 점, 선, 도형을 보며 박수를 치더라도 누군가는 보지도 않은 척할 수 있다.
낙조와 그의 일행들이 딱 그랬다. 몇 달을 함께 보냈지만 서로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서로가 얼마나 친하느냐, 가 지금 세상에서 그리 중요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의 친밀도가 서로의 생존에 기여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오해가 생기면 곧장 풀어야 했고 다시 보고 싶지 않더라도 생존에 필요하다면 살려 주어야 했다.
밤이는 얼이 빠진 목소리로 되묻더니 다시 헛웃음을 쳤다. 결국 모든 걸 다 쏟아 버린 지운은 시선을 떨어뜨렸다. 밤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기울여 판단하니까. 사적인 감정을 최대한 끌어 쓰려고 하지 않으니까.
“홍해화가 날 별로 안 좋아하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 들으니까 기분이 좀 그렇네.”
“누나, 그니까, 누나를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런 걸로 홍해화 구하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야.”
“…….”
“됐다, 다 얘기했으니까 더 말하지 마.”
밤이는 손을 휘휘 저었다. 골치가 아픈 얼굴로 그녀는 홀로 차에 올라탔다. 낙조는 조용히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주워 지운에게 건넸다. 지운이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다가 가방을 받아 들었다.
“타.”
낙조는 간결하게 말했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지운의 호흡은 가라앉아 있었다.
“일단 다시 가 보자.”
“……어디?”
“홍해화 흔적이라도 찾아야지.”
새벽 바람은 시릴 정도로 차가워졌다. 낙엽이 더욱 몸을 웅크릴 시간이다. 낙조가 먼저 운전석에 오르자, 지운이 뒷좌석에 따라 올랐다. 밤이는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동을 걸고 차를 조용히 뒤로 물러 세웠다.
“선충이랑도 관련이 있을까요?”
낙조는 엔진과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울리는 차 안에서 목소리를 냈다. 밤이는 턱을 괴고 있다가 한참 후 대답했다.
“어쨌든 감염의 시작은 식물이야. 변이된 식물에 기생하게 된 선충이 두 번째인 거지.”
“인간은……, 자연적인 감염인가요?”
“숨이 붙은 모든 것에 감염이 된다면……,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구조를 바꾼 거야.”
“감염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말이죠.”
“그래.”
끝여름이 감염의 시작인 줄 알았다. 재앙의 구조는 땅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서히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