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겨울잠
해화는 대피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조용히 앉아 발목에 난 풀까지 다 잘라 내고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런 말을 했다.
“누나 그럼 나 혼자 들어가라고?”
“그게 더 안전할 것 같아.”
지운이 기겁하며 물었지만 해화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단호했다.
“할머니만 보고 나오는 거잖아. 어?”
“괜히 할머니까지 위험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
“…….”
“전주 때 기억 안 나? 이미 내 얼굴도 군인들 사이에서 다 알려졌을 수도 있어. 이름은 당연하고.”
“…….”
“나 화내는 거 아니야. 위험하니까, 너 혼자라도 할머니 뵙고 오라는 거야.”
“누나 두고 왔다고 혼나면 어떡해.”
“데리고 오겠다고 말씀 드려.”
“누나.”
“다음엔 나도 같이 올 거라고 하면 되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절대 그럴 수 없는 말을 하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도 장담하지 못하는 ‘다음’의 시간을 소중한 누군가와 약속한다는 게 너무나 잔인한 행동이 되어버렸다. 그걸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약속뿐이었다.
“줄초상 났네.”
가만히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밤이가 한 마디 툭 던졌다. 해화는 익숙한 듯 픽 웃고 말았다.
“다 죽으러 가? 진짜 요즘 애들 버겁다, 버거워.”
“누나 꼰대야?!”
“이 쪼끄만 게.”
“아야야야야!”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건지, 지운의 볼살은 생각보다 꽤 두툼히 잡혔다. 밤이는 적당히 놀려 주다가 손을 떼어 냈다. 억울한 건 지운밖에 없었다.
“일단 아침까지 여기 있을게. 할머님 곁에 있고 싶으면 안 나와도 돼.”
낙조는 대피소에 들어갈 채비를 마친 지운을 붙잡고 작게 얘기했다. 지운은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다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척 고개를 돌렸다. 대답 또한 하지 않았다. 무조건 돌아오리란 확신을 하지 못하리란 건 알고 있었다. 지운이 지금까지 버텨 준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자신이었다면 하지 못했을 행동들도 빼먹지 않고 다 기억할 것이고.
“홍지운 군대 보낼 때 이런 느낌이려나.”
“쟤 안 갔다 왔어?”
“언니 몰랐구나. 쟤 면제 받았어요.”
“왜?”
“축구하다가 십자인대 아작나서.”
“……왜 난 군필인 줄 알았지?”
“다 보고 들은 거.”
“흠……, 요즘 애들 정말 쉽지 않다.”
멀어지는 지운의 뒷모습을 보면서 밤이는 진심으로 탄식했다.
“누나 방금 진짜 꼰대 같았다.”
“넌 군필이냐?”
“군번부터 총기번호, 복무신조까지 열창해 드려요?”
“어우 됐어. 니도 똑같아.”
지운이 무사히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본 후, 셋은 다시 차에 올랐다.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진짜 날밤 까는 거야?”
“아, 시내라 별도 안 보이네. 산 많은 곳 가면 좀 보이려나.”
“이 오밤중에 산 가자는 말을 참 어렵게도 얘기한다.”
“흐아아암. 어디서 꼰대가 말을 하나. 아 졸려.”
“홍지운 없다고 이제 이게 까부네.”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하는 척한다는 게, 진짜 하품이 나와서 낙조도 당황한 사이 밤이가 선방을 날렸다. 조수석에 앉아 다리를 뻗어 발로 콱콱 찍어 누르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속절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어 일방적인 구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낙조는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고서 머리를 털어 냈다.
“좀 밝을 때 가면 안 될까? 누나 나이 먹어서 피곤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
“진짜 존나 뜬금없고 앞뒤도 없네. 뭔 말을 하고 싶은데.”
“뜻 그대로인데. 누나 나이에 맞는 표현한 거예요.”
“고낙조 니 덜 맞았지.”
“허읍.”
이번엔 딱 한 번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강했다. 정확히 옆구리를 찌른 밤이의 발에 당하고서 낙조는 핸들에 상체를 기댄 채 호흡을 골랐다.
“근데 왜 산에 가?”
“어, 그…….”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일이라 아무리 해화가 괜찮은 척을 해도 얘기를 꺼내면 괜찮지 않을 걸 알기에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웠다. 낙조는 어떻게 말해야 해화가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녀가 따라오지 않겠다고 하면 차에 남아 있으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것도 조금 걱정되긴 했으나, 이곳의 산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남은 방법이 없었다.
“고낙조 씨가 의심되는 게 있으시댄다. 그때 봤던 나무가 여기도 있나, 하고.”
밤이는 그런 낙조가 빤히 보였는지 조용한 목소리로 신발끈을 묶으며 얘기했다. 사실 정확하게 얘기하고 싶은 부분만 꺼낸다면 딱 저런 문장이 되었을 테다. 낙조는 할 말이 없어 콧등을 긁적거렸다.
“왜 말을 못해 그걸?”
“별로, 썩 좋은 기억은 아니잖아.”
“나를 완전 애로 보네.”
해화는 인상을 찡그리고서 고개를 저었다.
“야 나는 너 생각해서―”
“―네 변명 잘 들었습니다. 언니, 가요.”
해화가 먼저 차에서 내리자, 밤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큭큭대다가 따라서 내렸다. 또 나만 쓰레기지. 낙조는 핸들을 쥔 채 멍하니 눈만 깜박이다가 시동을 껐다.
“근데 산까지 걸어가?”
“홍지운 올지 모르니까.”
“아무도 없는 거 보고 울 것 같은데.”
“남매 아니랄까 봐 울보인 것도 닮았네.”
“방구석 찐따가 말이 많네.”
“…….”
완전히 넉다운이 된 낙조를 그대로 지나쳐 해화가 앞장 섰다. 밤이는 여전히 강건너 불구경 중이었다. 조용히 웃는 밤이의 뒤를 따라 걷던 낙조는 그새 차갑게 식은 바람을 맞으면서 생각했다.
‘이곳 산도 변하고 있다면 입구부터 느낌이 다를 거야.’
도연을 잡아먹은 그 나무처럼, 이곳에서도 비슷한 활동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었다. 산이 가까워질수록 일행은 조금씩 말이 없어졌다. 갖은 상황을 다 겪었으니 각자의 감을 잡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외운 것처럼, 이런 재앙에도 패턴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걸 체감한 덕분이다.
“나 노래 하나 불러도 돼요?”
“어, 그래. 하나 뽑아 봐라.”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 떡하니 놓인 산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해화가 가만히 넝쿨로 감긴 나무 표지판을 바라보다가 대뜸 입을 열었다. 밤이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고 자동적으로 대답했다. 이미 정산까지 찍고 내려온 듯한 표정이었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어어 그래. 음침하고 좋다 야.”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해화는 겁도 내지 않고 산을 성큼성큼 올랐다. 분명 도연과 오를 땐 힘에 부쳐하면서 따라오는 걸 무척이나 힘들어 했었는데, 보이지 않는 산길을 용케 찾아 올라갔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 솔-”
낙조는 산이 가까워질 때부터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오른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산에서는 미미했지만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셋이 산길을 오를 때마다 낙엽 부스러지는 소리가 울렸고 그 위를 해화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덮었다.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해화는 느렸지만 정확하게 음을 짚어 내면서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무서워서 부르겠다고 했나, 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산을 높이 올라갈수록 밤이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조용했다. 해화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어두운 산길을 잘도 찾았다.
어떻게 길을 이렇게 잘 아느냐고 묻지도 못했다. 낙조는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하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
지금이라도 물어 볼까. 지금이라도 멈춰 세울까.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팔 때문에라도 더욱 붙잡아야 할 것 같았다.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노래가 끝났다. 사실 첫 소절의 가사만 알고 나머지는 멜로디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동요였는데, 해화는 평소에 자주 부르는 노래인지 꽤 즐거운 목소리로 완창했다.
해화는 노래가 끝나자 산길을 오르던 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럽게 제자리에 선 해화를 보지 못한 밤이가 그녀의 등에 부딪혀 옆으로 넘어졌다. 재빠르게 낙조가 붙잡지 않았다면 아래로 곧장 굴렀을지도 몰랐다.
“…….”
그러나 밤이도, 낙조도 해화에게 단 한마디를 걸지 못했다. 해화는 무얼 보는 건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유심히 관찰하는가 싶더니 심호흡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홍해화.”
일단 밤이를 해화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힌 낙조가 해화를 불렀다. 해화는 낙조의 목소리를 들은 게 분명함에도 고개만 살짝 돌릴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해화를 오롯이 담아 냈다. 낙조는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다 겨우 잠들었어. 깨우면 안 돼.”
해화를 붙잡으려는 순간, 그녀가 목소리를 아주 작게 낮추고서 급히 속삭였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낙조는 해화를 일단 자극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따라서 목소리를 죽였다.
“무슨 소리야.”
“여기 나무들……, 지금 자고 있다고.”
“진심이야?”
“도연이가, 쫓아온다고 했을 때, 나도 들었어. 그 소리.”
“…….”
“산 올라갈 때부터 들었어. 그런데 나한테만 들리는 것 같아서 그냥, 말 안 했어.”
해화는 그제야 뒤를 돌아 낙조와 눈을 마주쳤다.
“도연이 구할 수 있었는데, 그땐 나도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못했어.”
“네 잘못 아니야.”
“낙조야.”
해화가 퍽 다정히 낙조의 이름을 불렀다. 낙조는 불현듯 스치는 불안함에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재빨리 해화를 자신 쪽으로 끌어 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움키기 직전이었다.
“이것도 네 잘못 아니야.”
해화는 그 말을 남기고 순식간에 무언가에 잡혀 뒤로 사라졌다. 사방이 어둠뿐이라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사라졌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숨이 턱 막혔다.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잡히는 게 없었다. 낙조는 몇 번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전히 자신의 몸은 고요했다.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느낌조차 받지 못했다. 낙조는 바닥에 떨어진 낙엽더미를 꽉 움키다가 손톱을 세워 마르지 않은 흙바닥을 긁었다. 손톱과 살끝 사이에 축축한 모래알이 들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