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시체꽃 (2)
“뭘, 어디까지 알고 싶으신 거예요?”
한참 자체 네트워크로 서칭을 하던 수호가 러시아어로 적힌 글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연우에게 물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정보실에 들어왔던 자세 그대로 서서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존나 깨졌나 보네. 백무흠 과거엔 왜 갑자기 꽂혔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당장 연우가 들어오기 전, 라미가 나갔기에 둘이 마주치진 않았나 걱정되는 마음이 일었다. 생각을 하면서 서칭을 하자니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연우는 살벌한 시선으로 수호를 응시하면서 조용히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 그냥, 갑자기 영어 하려니까 머리가 안 돌아가네요.”
“해킹이 필요한 거라도 다 해요. 아, 아니야. 켈리 화이트란 사람이 뭘 했는지, 문서 싹 다 봐요.”
“……예.”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엔 뭐 눈에 들어오는 거 없어요?”
“그냥……, 아직까진요. 근데 꽤 학계에서 유명했었나 봐요. 연구생 땐 중국에서 공부했다는데요.”
수호의 말에 연우가 마우스를 뺏어 잡으며 커서가 멈춘 문장을 읽었다. 중얼거리는 말은 끝이 조금씩 떨렸는데, 누가 보아도 그녀가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친하지도 않았어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 보기도 좀 그렇고.’
수호는 연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야만 했다. 당장 자신이 외장하드에 옮겨 놓은 <백무흠 연구일지>만 들켜도 연우는 자신을 징계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을 게 빤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왜 자신에게 언질을 주지 않았는지부터 해서 이 본부를 뒤집어놓을 것이 눈에 보였다.
라미가 연우에 대해 감상평처럼 얘기했던 말이 떠올랐다.
「망가지기 직전이에요. 저러다가 계획이 틀어지면요.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서 무서워요.」
사람을 잘 봐도 너무 잘 봤다. 승승장구 하던 연우가 위쪽에서 무슨 말을 듣고 온 건진 몰라도, 무흠의 뒷조사를 이제야 시작했다는 건 위측이 먼저 눈치를 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들었다.
‘그럼 켈리 화이트란 사람은 왜 같이 물어보지.’
두 번째로 드는 의문. 연우가 묻는 박사의 이름은 낯설었다. 본부에 오면서 웬만한 학자와 박사들의 논문은 꾸준히 읽으며 중요한 회의에 간간이 참석했기 때문에 주로 불리는 이름들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수호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거기에 그 사람의 정보를 묻는 연우조차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선,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물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됐다.
‘켈리…….’
그러면서도 수호는 그 이름에 집중한 채 무언가가 계속 생각날 것 같은 느낌에 입안으로 혀를 굴렸다.
‘금수호, 쫄지 마라. 쫄지 말고 생각해 봐. 너 천재잖아. 너 존나 똑똑해서 여기 온 거 아니야?’
연우가 내뿜는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있었지만, 이십 대 초반의 패기는 죽지 않았다. 수호는 연우를 따라 진지한 척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이전에 읽었던 <붕어섬 연구일지>의 대화 내용을 한 문장씩 떠올려보았다.
「박사 K가 다시 돌아올 확률은 없어 보이니, 잠시 실험을 미루십시오. 이 병사는 K에게 세뇌당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K?’
섬광탄이 눈앞에 꽂힌 것처럼……, 빛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애니 속 장면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수호는 눈을 번쩍였다가 연우에게 들키지 않으려 혓바닥을 꽉 깨물었다.
‘K? 켈리? Kelly? Celly 아니겠지? 종이에 적혀 있던 것 같은데? 잠깐 봐도 되나? 서연우가 의심하면? 아니야, 얘 지금 완전 눈 돌아가서 모를 거야. 잠깐만, Celly는 셀리 아니야? 맞나?’
자신의 예상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발이 동동 구를 지경이었다. 와중에 연우는 왜 안 나가는지, 연우의 옆에 있는 종이를 들여다 보고 싶어서 수호는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애초에 Celly라는 이름이 있나? 있으면? 그렇게 쓸 수도 있잖아. 아, 금수호 뇌 존나 뭐함? 아까 볼 때부터 이 사람이 그 사람이구나 했어야지. 아오 돌겠네. 그래서 K냐고 C냐고!’
“수호 씨 왜 이렇게 불안해요?”
“예? 저요? 제가요?”
“뭐 생각난 거라도 있어요?”
“어어 아뇨. 그냥 외국어만 줄창 보니까 머리 아파서요.”
“……일 안 해요?”
싸늘해진 연우의 표정에 수호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서 ‘아닙니다.’하고 답했다. 속은 답답해 터질 지경이었지만 연우가 나가기 전까진 섣부른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사실 제가 K 박사라는 이니셜을 봤는데요!’라고 내뱉는 순간부터 지옥일 테다. 지옥이 끝이면 다행이지, 지옥 너머의 세계까지 들어가 처박힐 수도 있었다.
‘아, 이걸 성라미 씨한테 말해 줬어야 했나?’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나는 법. 수호는 아랫입술까지 꽉 깨물며 버텨 봤지만, 지금쯤 연우의 연구실이나 그곳에 연결된 무흠의 방에 접근했을 라미가 떠올라 심장이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그 사람은 뭘 믿고 백무흠을 만난다고 한 거야?’
자신처럼 키 포인트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예측 하나로 움직인 사람이 아닌가. 그녀가 직접 가겠다고 했을 땐 사실 무흠에게 맞서는 게 무서워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것도 있었다. 무흠이 자신의 심기에 거슬린다고 사람을 죽일 것 같진 않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수호 씨, 이거. 이거 해석해 봐요. 내가 본 게 맞나, 나 지금 어지러워서.”
“에, 예, 예.”
모니터를 훑으며 바쁘게 스크롤을 움직이던 연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호는 그녀가 짚어 준 문장을 따라 눈을 굴렸다.
“2000년 2월, 중국에서 불법 마약 제조 및 유통으로 검거―”
“―마약 맞아요?”
“……어, 네. 환각 작용을 심하게 일으키는 풀들을 썼다고 나오는데요.”
“수호 씨 그거 다 번역해서 내 메일로 좀 보내요.”
“에?”
“관련된 문서들도 다. 시간 되면 그 사람이 한국 들어와서 어디어디 돌아다녔는지 확인도 좀 하고요.”
연우는 눈에 불을 켜고서 수호에게 말을 쏟아 냈다. 수호는 얼이 빠진 채로 그녀의 지시를 듣고 앉아만 있었다. 곧 그녀는 책상에 놓은 종이를 생각도 않고서 곧장 정보실을 나갔다.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수호는 머리를 감싸 쥐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미친 거 아니야? 진짜 미쳤나? 드디어 미친 건가? 아니 근데 지금 자기 연구실 가는 거 아니야? 성라미 씨는?’
혹시 마주치는 건 아닐까 싶어 급하게 옆 모니터로 자리를 옮긴 수호는 CCTV가 연결된 창을 올렸다. 위치는 진작 외워 뒀기에 연우의 모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 연우의 뒷모습을 찾아 낸 수호는 그녀의 연구실 복도에 설치된 CCTV를 먼저 확인했다.
‘아무도 없네.’
아직 나오지 않은 건지, 아니면 진작 빠져 나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지난 시간을 확인하려면 다른 직원에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물어봐야 한다. 해킹하는 시간이 더 빠를 수 있겠지만 그 시간 동안 라미가 안전한지 확신할 수는 없다. 눈동자를 굴리며 연우의 뒷모습을 쫓던 수호는 갑작스럽게 정보실을 울리는 전화 소리에 온몸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
“아악!”
적막이 가득했던 공간에 전화기 소리가 가득 찼다. 수호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심호흡 하다가 겨우 손을 들어 수화기를 집었다.
“예, 예. 정보실…….”
-소장실 비서 성라미입니다.
“……예, 소장실, 예?”
-제 말 잘 들리시나요?
“아니 언제 갔어요?”
-저도 일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소장님 곧 저녁 드시고 오실 시간이니 용건만 말하고 끊겠습니다.
전화 상으로 들리는 라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수호는 얼떨결에 두 손으로 수화기를 받친 채 허리까지 숙여 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CCTV 피해 가긴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확인 좀 해 주세요. 그리고 정보실에 중요한 사람 찾아오면 잘 맞이해 주시구요. 약간 탈수가 있으셨던 것 같으니 미지근한 물이 좋겠어요. 아무래도 같이 있는 게 가장 안전할 것 같아서 정보실 위치 알려드린 거니까 놀라지 마세요. 소장님 퇴근하시면 저도 갈게요. 그럼 끊겠습니다.
“저기, 저기요! 잠깐만!”
아무리 수화기를 붙잡고 간절하게 외쳐 봤자 응답은 없었다. 수호는 멍하니 허공에 두고 있던 시선을 떨어뜨렸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야?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귀까지 이상해졌나?’
워낙 빠르게 얘기했지만 중요한 정보만 쏙쏙 빼 준 덕에 라미가 지명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라미의 동선과 겹치는 인물은 꽤 있었겠지만 그녀가 말하는 맥락만 파악한다면 답안지엔 딱 한 사람의 이름만이 나왔다.
‘좆됐다, 백무흠이 여기로 온다고? 뭐 도대체 어떻게 말했는데 그 새끼가 여기로 와? 미쳤다고 여기로 보내? 나는 어떡하라고. 둘이 뭔 대화를 했는지도 모르는데 뭘 내가 어떻게―’
철컥.
머릿속을 완전히 정리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수화기만 들고서 모든 일을 잊은 채 앉아 있는 수호의 등 뒤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는 그대로 굳어 있다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
“그때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군.”
묵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수호는 입만 벙긋거리면서 수화기를 간신히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놀란 수호에 비해 주인공은 무뚝뚝한 얼굴로 수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찰칵. 무흠이 문을 잠그는 것을 보고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리가 꽤 벌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위압감은 여전했다.
“여기, 왜…….”
“오라고 해서 왔더니, 그쪽이 세운 계획이 아니었나?”
“……성라미 씨, 진짜 만났습니까?”
“누가 들으면 내가 죽여서 보낸 거라고 생각하겠어.”
‘합법적 의심 아닌가?’
수호는 공개 훈련 때 보았던 무흠의 인상에 대한 잔해가 진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무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가까이 다가와 의자 하나를 빼 앉고선 책상 위의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옮긴 수호는 급하게 종이를 치우려 손을 뻗었으나, 무흠에게 손목이 먼저 잡혔다.
“이 사람은 어떻게 알지?”
그 어느 때보다 무흠의 눈매가 사납게 구겨졌다. 수호는 손목이 잡힌 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위에서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알아 보라고…….”
“그래서, 뭘 알았지?”
“……진짜, 제가 본 그대로 얘기해도 되나요…….”
“그럼?”
“박사 K가 다시 돌아올 확률은 없어 보이니, 잠시 실험을 미루십시오. 이 병사는 K에게 세뇌당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
“……왜 그렇게 보세요.”
이전에 단 둘이 대면했을 때도 느꼈지만, 사람이 구석에 완전히 몰렸을 때 발악하는 게 어떤 모습인지 잘 알 것 같았다. 머릿속에 돌고 돌아서 그대로 굳어 버린 문장을 줄줄이 내뱉자, 무흠은 말없이 수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시선만으로 발가벗겨진 채 내쫓긴 기분이 들어 수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건 그쪽만 아나?”
“……옥정호, 연구, 아니아니, 실험, 그거 말씀하시는 거면, 아마도요.”
“아마도?”
“제가 몰래 해킹해서 본 거니까 저밖에 없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얻었는지 무흠은 가볍게 수호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똑똑.
문이 잠긴 걸 어떻게 알았지? 문고리를 돌리지도 않고 누군가가 노크했다. 무흠과 수호의 시선이 나란히 문 쪽으로 돌아갔다. 수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라미요.”
“…….”
더없이 해맑은 목소리에 주먹이 떨렸다. 수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빈 틈으로 라미가 안으로 쏙 들어왔다.
“자, 이제 ‘무흠 꽃이 피어났습니다’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