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시체꽃 (1)
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낙조는 모두가 탄 것을 확인한 후 곧장 핸들을 꺾었다. 비스듬하게 주차되어 있던 차가 후진을 하며 공터를 빠져 나갔다.
도연의 빈 자리는 공허함보다 공포를 더 크게 남겼다. 모두가 동시에 보았지만, 환각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기괴하고 끔찍한 풍경이었다. 하늘을 메운 것은 노을을 품은 것처럼 기운 낙엽이 아니라 나뭇가지에 갇힌 시체들뿐이었다. 땅이 흔들리고 뿌리가 요동쳐 자세히 시체 하나하나를 확인할 순 없었으나 변종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멀쩡한 행색을 한 시체가 더 많았다.
낙조는 산에서 조금 떨어졌다고 생각될 무렵 차의 속도를 천천히 늦췄다.
“……나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곤충을 유인하려고 일부러 사체 썩는 냄새를 풍기는 꽃이 있다고.”
“시체꽃.”
밤이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낙조는 창문 너머로 밖을 한 번 힐끗거렸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 거 비슷한 거 아닐까요. 변종이 꼬이는 냄새를 퍼뜨린 거죠. 바이러스에 노출 된 나무가.”
“지금까지 식물이 변이 된 건 못 봐서……, 그렇다고 김도연이 다쳤을 때 변종으로 변하는 느낌도 없었잖아.”
“변종이 사람에게 퍼뜨리는 바이러스랑은 다를 수 있지 않아요? 식물이랑 인간이 구조 자체가 다른데.”
“고낙조 니가 말하는 건 그럼, 식물에게만 퍼지는 바이러스가 있다는 가정이네?”
“바이러스는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변하니까요. 살려고 뭔들 못하겠어요.”
“그럼 목적을 찾아야 해. 변이 된 나무가 왜 변종이나 사람 구별 없이 공격하는지, 왜 그렇게 매달아 놨는지도 그렇고.”
“잡은 사냥감을 자신들끼리의 소통 수단으로 사용한 것도 이해가 안 가요. 서열이 생긴 건가.”
녹아 내리듯 쏟아진 흙더미를 생각하면 자꾸만 상상이 부풀었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어마무시하게 부푼 상상에선 최악 중 최악의 상황만이 흘러 나왔다.
아무리 얘기를 하면서 가정을 해 본다 한들, 자신들이 나열한 가정 속에서도 일치하지 않거나 예측하지도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그 산으로 돌아간다 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마땅히 갈 곳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배고파.”
정적을 깬 건 해화였다. ‘악어와 새’를 빠져 나올 때부터 한 마디도 없던 그녀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차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두 눈엔 총명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막시안과 얼마나 깊은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구도 예고해 주지 않은 이별에서 언제나 괜찮은 척을 할 수 없다는 것쯤은 이해해야 했다.
빼앗기며 사는 것 같은 삶은 사실 세상이 이렇게 뒤바뀌기 전에도 존재했다. 지금은 생존하는 것이 원초적인 개념이 돼 버렸어도 인간은 항상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환경에 맞는 옷을 갖춰 입고 집을 지었다. 신체를 이루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각자의 역할을 이뤄 가고 위치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걷고 움직이며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많은 이가 알고 있듯 생존 본능이 워낙 강하기에 인간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무너진 세계를 보면서도, 살아남으려 하는 사람들은 고집을 지킬 테다.
지키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는 약속 또한 그렇다. 항상 함께일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에서 가장 많이 보내는 시간은 홀로 있는 시간이다. 홀로 남았을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지켜 낼 줄 아는 법이다. 우리는 당연한 얘기를 매번 하고, 잊고, 다시 늘어놓는다. 당연하지만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잊어버리기에. 반복할 수밖에 없다.
“할머니……한테 가면 안 돼?”
지운이 낙조를 향해 물었다. 낙조는 차를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해화는 여전히 창밖을 향한 채 넋을 놓고 있었고, 지운 또한 기운 없는 얼굴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느껴지는 에너지 자체가 달랐다. 낙조는 산에서 지운이 해화에게 쏘아붙였던 말에 대해 묻고 싶었으나, 대화를 나눌 타이밍이 아니라고 단정 짓곤 애써 질문을 삼켜 냈다.
“거기가 어딘데?”
밤이라고 항상 기운이 넘칠 순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척’을 꽤 잘하는 편이었다. 홍씨 남매를 바라보면서, 밤이가 위치를 물었다. 지운은 조금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충남 공주요.”
“그렇게 멀지 않네.”
낙조는 기어에 손을 올려 둔 채 잠시 고민했다. 대피소는 과연 무사할까. 만약 그곳도 안전하지 못하면 어디로 가야 할까. 남매의 할머님께선 잘 계실까. 온갖 상황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마치 홍씨 남매의 보호자였던 것처럼, 할머님을 뵈면 저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자신이 책임감을 갖고 설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공주 대피소가 공격당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어봤잖아.”
“……그래요, 가 봅시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물 만한 곳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만 안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자신의 정보만 알려지지 않는다면 다른 일행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듯했다. 전주 대피소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해화의 정보도 어느 정도는 퍼진 것 같았는데. 눈속임을 할 방법은 없나. 입으로는 공주로 가자 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가시밭이었다. 공주로 가는 길이라도 순탄하다면 걱정은 줄 테다. ‘악어와 새’에서 급하게 도망쳐 나오다 보니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하면서 오히려 홍씨 남매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됐다. 자신이야 홀로 견디는 것이 익숙하니 그렇다 쳐도, 저 둘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르니 자신의 줏대를 들이밀면서 억지로 끌고 다닐 순 없었다.
“원래라면 청주에서 군인을 이쯤 보냈을 텐데. 딱 그쯤이죠?”
“그러게. 공주 가는 길에 마주치는 거 아니냐.”
적막만 흐르는 차 안을 채우는 목소리는 낙조와 밤이뿐이었다. 낙조는 간간이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둘을 힐끗거리며 생각했다.
‘너무 지쳤어. 더 이상 뭘 견딜 상태가 아니야.’
어딘가는 안전하리라 믿으면서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해 준 그들에겐 미안함이 가장 컸다. 자신의 존재 자체로 목숨을 위협 받고, 위험하기만 했던 날들을 어떻게 버텼을까. 그저 거리에서 만난 인연이 이렇게까지 이어져 올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자신은 이들과 함께 하며 오히려 새롭게 배운 감정들이 넘쳐나는데. 세계가 조금씩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낯간지러운 말 한 마디를 고백하지 못한 것조차 미안했다.
“운전 내가 할까?”
생각만 가득 머릿속에 띄운 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니 밤이가 먼저 말을 건네 왔다. 낙조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피곤해 보여요?”
“그냥……, 차도 없는데 괜찮겠지만 그러다가 레일 박을까 봐.”
“해 지기 전까진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쟤네 자. 급하게 안 그래도 돼.”
밤이의 말에 백미러를 다시 쳐다보니 그녀의 말대로 홍씨 남매는 각자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낙조는 어깨에 가득 깃들었던 긴장을 풀어 내면서 숨을 내쉬었다.
“너는 공주 가면, 어떻게 할 건데.”
“홍해화부터 안 들키고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생각하게요.”
“염병을 떤다……, 노숙하다가 잡혀갈 소리 하네.”
“가끔 면회 갈 테니까 그때 햇반이나 좀 줘요.”
“지랄하지 마. 내가 대피소 같은 곳에서 짱박혀 있을 성격 같냐?”
“뭐 어떡하게요 누나는. 방법이 있어요?”
“너는 생각 좀 하고 살아. 진짜 말하다 보면 짜증나 죽겠어.”
“내가 똑똑하진 않아도 이만큼 참는 거 보면 나도 참 착해.”
“아 지랄하지 말라고!”
“누나 애들 깨요.”
“…….”
밤이는 뒤를 힐끗 바라봤다가 작은 목소리로 툴툴거리면서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도로는 여전히 한적했다. 이상할 정도로 날은 따뜻했고 모두가 잠든 듯 고요했다. 백야 현상에 감기면 이런 기분일까. 심지어 그 산에서 내려온 이후로 변종의 낌새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악어와 새’에 머물렀던 시간이 며칠이었지. 그렇게 길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달력을 보는 일이 줄었다 보니 확실히 날짜를 세는 것도 낯설어졌다.
“뭔가 많이 바뀐 느낌 들지 않아요?”
“조용해서?”
“네.”
“좋은 거지. 긴장 안 해도 되니까. 쟤네도 긴장 풀려서 자는 거잖아.”
“누나 똑똑한 이유가 약간……, 남들한테 공감하는 감정 대신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서 그런 건가?”
“이 새끼가 아까부터 자꾸 시비 터네.”
‘타격감이 아무래도 좋은 편이란 말이야.’
낙조는 실없이 웃으면서 조금 속력을 높였다. 오랜만에 이런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즐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언제 또 이런 낭만을 빼앗길지 모르니.
낭만이라도 불러도 되나.
“시체꽃이라는 거, 근데……, 제가 그 다큐에서 봤을 땐 사막 같은 데서나 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누나.”
“어, 맞아.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지. 우리가 본 건 산속이었으니까.”
“하, 근데 모르겠다. 바이러스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이제 뭘 봐도 그러려니, 할 것 같아요.”
“너처럼 생각하면 속은 편하겠다.”
“누나가 제일 편하게 사는 것 같은데.”
“너 정말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니?”
“자꾸 주제가 틀어지잖아요. 시체꽃 얘기하는데.”
곁에서 노려보는 밤이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낙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따라 핸들을 돌렸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계속 차의 엔진 소리에 달려 드는 변종은 없나 밖을 예의주시하는 중이었다. 밤이는 잠시 말이 없더니 고개를 돌린 후 입을 열었다.
“시체꽃은……, 이틀만 꽃을 펴. 그 이틀 동안 곤충을 꼬여 내는 거고. 근데 식충식물이 아니야. 그저 수정이 어려우니까 더 먼 곳까지 악취를 퍼뜨려서 곤충을 부르는 거지. 그 이틀 때문에 7년 동안 영양분을 모으고.”
“7년…….”
“시체꽃과 유사하긴 해도 많은 게 달라. 잠깐 봤지만 감이 그래. 약간……, 식충식물의 느낌도 강하고.”
“김도연이 잡히기 전에 했던 말 기억 나요?”
“아. ……누가 쫓아온다고.”
밤이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기억하기 싫은 부분이겠지만 대화를 하면서 무언가라도 캐 내야 한다는 생각에 낙조는 아무렇지 않은 척 수긍했다.
“독 성분에 노출돼 갖고 환청 증상을 보인 거라고 하기엔,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어서 이상해요.”
“그건 동의. 좀 더 생각해 보면……, 그 산에 들어간 후에 그런 거잖아? 변종이 가진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 나무에게서 얻은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했다고 가정을 해 봐. 아직 나무가 가진 바이러스가 뭔지 몰라서 말은 잘 못하겠는데, 그 바이러스끼리 충돌이 되는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
“나중에 잡혀서 그 나무의 입이 된 것까지. 그리고 김도연이 처음에 그랬잖아요. 나무가 소리를 냈다고.”
“……소리. 그래. 소리.”
밤이는 낙조와 대화하다가 ‘소리’라는 단어에 눈을 잠시 크게 떴다. 그리곤 깊게 생각하는 듯 아무 말도 없다가 손가락을 튕기며 ‘아!’하고 외쳤다.
“일반 변종들은 후각이라면, 그 식물 변종은 청각이다.”
“알아 듣기 쉽게 얘기해 주세요.”
“야, 봐봐. 그냥 애들은 진액 냄새나 썩은 냄새, 막 이런 게 났잖아. 근데 그 식물은 공통적으로 소리를 냈다고. 김도연이 겪은 환청도 증거라고 하면, 우리도 들은 게 있잖아. 김도연이 낸 그……, 듣기 싫은 소리.”
“아, 따다다닥. 이거?”
“따라하라고 했냐 내가? 분위기 파악 좀 하고 입 놀려.”
“화 좀 내지 마요. 알아 들었으니까.”
낙조는 한숨을 쉬면서 슬쩍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너 안전운전 해라.’ 곧장 밤이의 잔소리가 들려왔지만, 머릿속은 방금 밤이와 나눈 대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이러스라면, 그 나무만 그런 건 아닐 텐데.”
“……바이러스를 옮겨 줄 게 지금 날씨에 있나? 곤충이 묻힌다 해도 걔네는 감염 안 되는 게 이상하잖아. 당장 머리 두 개인 개미떼만 봐도 이상할 게 없는데.”
“혹시 모르죠. 사람이 뿌렸을지.”
낙조가 툭 던진 말에 밤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 사태 시작도 어떻게 시작됐어요. 사람이 사람 가지고 실험하다가 이 꼴 났잖아요. 붕어섬에선 비슷한 바이러스에 감염 된 식물도 있었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백 중사님 일도 그렇고, 몇 년 전부터 작업 친 걸 수도 있다고 봐야죠.”
“……그럼 왜? 굳이, 그런 걸 퍼뜨려?”
“뿌린 놈한테 물어 봐야죠 그건.”
낙조의 시큰둥한 대답에 밤이는 조금 더 심각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까지 고민하라고 한 말은 아닌데.’
낙조는 밤이의 얼굴을 흘낏 바라보고서 조금 더 속력을 높였다. 해가 질 시간이었다. 해화와 지운이 잠에서 깨기 전까지, 공주에만 도착한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맘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