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초-85화 (85/202)

85화. 나무의 비명 (2)

“꺼어어어어억……. 어어어어억…….”

도연의 입에선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신음이 흘러 나왔다. 그 소리는 낙조와 일행을 위협하는 소리라기보다 어떤 목적을 갖고서 전하기 위한 패턴을 가진 듯 보였다.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으나 소리를 내기 위해 딱딱 부딪치는 아래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연의 주위를 감싼 다른 시체들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거미줄에 걸린 것 마냥 매달려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리 예측을 하려 해도 말도 안 되는 가설만이 줄을 이었다.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시체는 거미줄에 싸여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인간의 손가락처럼 얇은 나뭇가지가 숨도 못 쉴 정도로 꽉 얽매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여기 땅 자체가 독으로 깔려 있으니까.”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정신이 빠져 있을 때, 밤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 연리지 오른쪽 나무 뿌리부터 뒤쪽까지, 땅이 독으로 가득 찼어. 아마 도연 씨도 독이 묻은 땅에 긁히면서 상처가 생겼을 거야.”

“식물이 변종이랑 비슷하게 변했다는 거예요 누나?”

“안 될 게 뭐가 있니. 사람이 식물처럼 변하는 건 말이 되고?”

지운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대답하자 밤이는 냉철하게 그 질문을 끊어 냈다.

밤이의 말이 옳지 못하다고 할 순 없었다. 사람의 몸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신만의 공간을 유지하면서 사람을 조종하는 건 과연 말이 되는 일이었을까? 여러 매체에서 다뤘던 바이러스의 이야기엔 항상 면역자가 존재했고 그 끝을 암시하는 사건이 생겼다. 누구를 주인공으로 삼느냐에 따라 에피소드가 주장하고 싶은 주제는 달라진다.

낙조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생각했다.

‘그럼 난 무슨 일을 해야 얘들을 돕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변종에게서 일행을 지키기……. 그것 빼곤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이 없었다. 가장 원초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물리적으로 지켜 주고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 무리에서 부끄럼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럼……, 이건 지뢰밭인 거잖아.”

해화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딱히 부정할 순 없었다. 말마따나 자칫해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도연 못지 않은 부상을 입게 될 테다.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던 상처, 간신히 멎었던 피는 이 근처에 와서 다시 반응을 보였고 결국 변종 나무의 표적이 되었다. 상처가 하나의 좌표였던 셈이었다.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낙조가 붙잡고 있던 나무 기둥에서 손을 살며시 떼어 낸 채 밤이에게 물었다. 밤이는 조용히 시선만 내려 땅과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다가 대답했다.

“상상해 본 적은 있지. 이렇게 산 전체를 뒤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나무 하나가 바이러스에 전염되어서, 다른 나무들까지 전염이 된 건가. 간단하게 생각만 해 보자면 인간이 감염되었던 루트와 다를 게 없었다. 최초 감염자가 생겼고, 감염자의 가까운 곳에 있던 이들이 당했다. 바이러스는 속수무책으로 퍼졌을 테다. 식물의 부위 중 외부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빨아들이는 부위가 어디인가.

‘뿌리다.’

낙조는 생각을 끝마치자마자 자신이 밟고 있던 뿌리에서 발을 떼어 냈다.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그 전까진 느끼지 못했던 뿌리의 미미한 움직임이 시야에도 잡혔다. 뿌리는 아주 느린 속도로 움찔거렸고 무언가를 찾는 듯 계속해서 흙 속을 파헤쳤다.

“가아아아아악……, 다다닥, 닥, 딱, 깍, 딱!”

계속해서 비슷한 패턴의 소리를 내던 도연이 갑작스럽게 턱을 부딪치며 어떤 박자를 흉내냈다. 그러나 낙조와 일행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박자에도 맞지 않는 패턴이었다. 음의 높낮이도 없고 마디를 아무리 잘라 낸다 해도 박자가 정확히 들어맞지 않았다. 낙조는 세 번 정도를 반복하여 도연의 소리를 듣다가 마침내 깨달았다.

“저거, 저거 주위 애들한테 말하는 거야. 차 쪽으로 뛰어!”

낙조가 소리를 지르며 올라온 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낙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이들도 이내 말의 의미를 깨닫고 낙조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짓밟고, 얼마 자라지 않은 나무의 껍질을 손톱으로 뜯어 내면서 모두가 입구를 향해 달렸다.

“홍지운……, 지운아…….”

한참을 정신 없이 내려가던 도중, 지운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도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도연의 목소리였는데. 지운은 주춤거리며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눈을 부릅 떴다.

“지운아……, 흐윽, 흑, 허으흑, 나 두고 가는 거야?”

마음을 먹고 다시 입구 쪽을 향해 달리려고 할 때, 뒤통수 바로 뒤에서 도연의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운은 이미 잔뜩 멀어진 해화와 낙조, 밤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그들의 이름을 불러 봤자 대답하지 않을 듯했다.

“……홍지운! 뭐 하는데!”

“……누나, 그때처럼 뭐라도 해 봐. 노래라도, 어? 아무렇게나 불러 보라고.”

도연의 목소리에 발목이 단단히 붙잡힌 것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운은 말없이 주먹만 꽉 쥔 채, 물안개에 갇힌 듯 불투명한 해화의 인영을 겨우 응시하면서 중얼거렸다.

“빨리 뭐라도 해 보라고!”

지운이 온 몸을 쥐어짜듯 소리쳤다. 해화 또한 그와 눈을 마주친 채 온몸을 옴싹달싹 못하고서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

‘홍지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낙조는 의아하면서도 그 질문을 고집스럽게 깨물 시간이 없어 그저 땅을 밟아 내려가는 것에만 신경 썼다.

지운은 중심도 잡지 못하고 낙엽 위에 스러지고서 낙엽 더미를 움켜쥐고 빌었다. 제발 자신을 누나에게 보내 달라고, 낙조와 밤이에게 보내서 너의 억울함을 해소해 주겠다고. 그렇게 빌면서 눈을 오래 감았다가 떴다.

“홍지운, 뛰어!”

누군가에게 붙잡힌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밤이의 목소리가 정수리에 꽂혀 온몸의 감각을 터뜨렸다. 지운은 자신이 눈을 감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서 그저 시야에 잡히는 일행의 모습만을 보고 달렸다. 나무뿌리가 유독 자신의 발목을 감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곤두세워지거나 땅을 울리곤 했으나 생존의 위협을 눈앞까지 들이민 사람으로서는 그리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헉, 허억, 흡, 헉…….”

마치 파이널 라인에 제일 먼저 들어선 것처럼, 지운이 낙조와 해화의 품에 안겨 숨을 토해 냈다.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과연 평평한 곳인지, 아니면 아직 경사진 곳인지는 판가름할 수 없었다.

“또 뛸 수 있어?”

낙조가 지운의 등을 토닥이며 물었다. 지운은 어깨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낙조가 응시하고 있는 곳을 향해 돌아보았다.

우우우우웅-

도연을 집어삼키기 직전과 같은 소리가 산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지운은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김도연 다음의 사냥감을 잡으려 하는 거야.’

지운은 판단이 다 끝나기도 전, 양손에 해화와 낙조의 손을 붙잡고 달음박질 쳤다. 거의 초점이 나간 두 눈이 그저 출구를 향한 것을 보고 밤이도 뒤늦지 않게 따라 그들의 뒤를 쫓았다.

사방이 적인 것을 인식한 후부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중심을 잡으려 주위의 나무에 손바닥을 대면, 그 나무가 뽑힐 것처럼 오르락내렸고 사방에서 작은 바위가 튀기고 모래더미가 위에서 쏟아지는 등 일상에선 볼 수 없었던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어 이어졌다.

“홍지운!”

마치 게임 안에 갇힌 플레이어가 된 느낌이었다. 지운은 발을 딛는 곳마다 흙모래가 쓸려 내려가는 걸 보면서 마른침을 몇 번이고 삼켜 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밤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그것이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표이자 진실이었다. 지운은 밤이의 목소리가 닿는 곳으로 무작정 발을 옮겼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더 빨리!”

간혹 뒤를 돌아보던 밤이가 악을 지르듯 소리쳤다. 지운은 채찍질 당하는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에 더욱 힘차게 발을 굴렀다.

뒤쪽에서 산사태가 난 듯이 땅이 완전히 꺼진 걸 본 것은, 차마 달리지 못할 만큼 숨이 막혔을 때였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뒤를 돌아봤을 때 산은 이미 반쯤 붕괴되어 있었다.

“누나, 누나! 홍해화! 뭐라도 해 봐!”

“넌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빨리 안 뛰어!”

밤이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지운은 그 산사태에 잡아 먹혔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흙모래가 파도처럼 자신들의 코앞까지 떠밀려 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변종이 아닌 다른 것에게서 이만큼의 위협감을 느낀 적이 없었기에 현실감은 그때까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끄으으아아아아…….”

바람이 나뭇잎을 한 번씩 뒤엎을 때마다 그 속에서 도연의 목소리가 엉킨 채 바깥으로 실려 나왔다. 낙조는 콘크리트 위를 밟고 있음에도 눈앞에 드리운 하나의 산이, 점차 녹아 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힘과 속도라면……, 도로를 삼키는 것도 시간 문제야.’

사람을 짓씹고 삼키려는 이빨만 보이지 않을 뿐, 뿌리로 연결 된 산은 바이러스로 오염되면서부터 사람의 맑은 피를 쫓고 있다는 결론밖에 나지 않았다. 눈이 없어도 도연의 피 냄새로 저들은 자신들이 놓쳤던 전 사냥감을 찾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마 변종 하나가 이 산에 들어가 죽었을 확률이 제일 커.”

밤이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그녀는 낙조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붙잡힐 뻔 했던 나무가 있던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땅 전체가 독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 다 처음엔 몰랐잖아. 속았던 거지. 낙엽이 덮여 있었으니까.”

“변종도 할 줄 모르는 가장을 한 거다…….”

“문제는 그거지. 왜 전염시킬 것도, 물어 뜯을 인간 하나 없는 산에 변종이 기어 들어와서 죽었냐, 이거에 대한 답이 없는 거야.”

밤이는 답답한 듯 신발 앞코로 아스팔트를 툭툭 쳐댔다. 밤이의 가정에 모두가 말을 아꼈다. 섣불리 대답 비슷한 것을 하려고 해도 ‘변종이 스스로 죽으러 기어 들어갔다’라는 상황을 납득시킬 만한 근거가 부족했다.

“변종이 조용히 죽을 데를 알아보고 산에 기어 올라가진 않았을 거 아네요.”

조금 길었던 적막 끝에 낙조가 입을 열었다.

“산에 있던 나무 중 한 그루가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단 가정은 힘들어요?”

여전히 산을 바라보고 있는 낙조의 시선은 올곧고 흔들림 하나 없었다. 밤이는 대답을 주저하다가 결심한 듯 숨을 들이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럼 그 나무만 바이러스에 노출 된 경로가 불분명해지잖아.”

“전염병이라는 건 원래 그래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경로로 아주 쉽게 움직이죠.”

“식물들끼리 옮는 전염병이랑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잖아.”

“이 세상이 기존에 있던 법칙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지 않잖아요. 누나가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자꾸 부정하려고 해요?”

“…….”

“그냥 누나가 생각할 때 가장 그럴 법한 거, 얘기해 줘요. 이제는 상식 같은 걸로 사람 납득시키기 어려우니까.”

낙조는 단호히 말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뒤바뀌는 세상에서 뒷걸음질 치며 상황을 파악하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게 관건이었다. 물론 이러한 괴이 현상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이 얼마나 압박적이고 힘든 일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그저 낙조는 밤이의 말 한 마디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현상에 대비하고 싶을 뿐이었다.

“사람이 변종으로 변이된 후에 가장 발달하는 감각……, 다들 알다시피 후각이지.”

밤이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은 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머물러 있었다.

“변종만이 맡을 수 있는 향기. 어쩌면 악취일 수도 있고. 사람은 못 맡는 향기를, 이 산속에 있는 나무가 퍼뜨렸다고 하는 가정은 어느 정도 말이 돼.”

땅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힘, 인간을 서로의 소통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지능, 적이 제 발로 공격 범위에 들어오게끔 향을 풍기는 것 모두……, 변이한 식물이 벌인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가 본 건 일과에 불과하겠죠.”

낙조는 반쯤 무너진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도 그 말에 반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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