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나무의 비명 (1)
차 안은 고요했다. 해화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바리게이트를 뚫고 나오니, 노을이 지는 게 보였다. 적막과 잘 어울리는 석양이었다. ‘악어와 새’에서 며칠을 보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한가한 도로를 달리다가, 낙조는 정면을 주시한 채 도연에게 물었다.
“그 산 어디에 있어요?”
“……진짜로 가요?”
“알아야 피할 수 있다니까요.”
도연 또한 막시안을 잃은 충격이 큰지 목소리가 많이 죽어 있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 살아남아야 함에 있어서 일상이 되었다. 도연은 포기한 듯 낙조에게 길을 안내했다. 가는 길은 그리 험난하지 않았고 산의 경사 또한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차를 주차한 후 낙조가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렸다. 가만히 산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입안이 텁텁했다.
“와, 담배 피우고 싶다.”
“자.”
뒤따라 내린 밤이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낙조가 말없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것을 물고선 불을 피웠다. 한 모금을 빨아 들이는 소리에 낙조도 담배를 물었다. 밤이는 조용히 라이터를 켰다.
“뭐예요?”
“거기서 만들었지.”
“……누나라면 뭐, 못 할 것도 없지.”
두께가 상당한 걸 보니 담뱃잎을 꽤 많이 넣은 듯 보였다. 낙조는 꽤 두터운 연기가 순식간에 가슴 안쪽을 가득 채우는 걸 느끼고서 눈을 감았다.
“근데 여기 왜 온 거냐?”
“저 여자애, 여기서 나무한테 물렸대요.”
“나무한테?”
“내가 듣기론 그랬어요.”
낙조는 그저 지나가는 얘기를 주워 들은 듯 얘기했다. 밤이는 입에서 담배를 떼고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나무한테 물린다고? 살아 오면서 가진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이었다. 이빨도 없고, 스스로 움직이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식물에게 어떻게 물리나. 그러나 켈리의 말대로 불가능이 가능해진 세상에서 비문 같은 것을 의심할 시간은 없다. 도연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나무가 소리를 질렀다’지만, 그 비명에 넘어진 상처가 낫질 않으니 연관은 있다고 생각했다. 낙조는 금세 타들어 간 담배를 지져 끄고서 도연을 불렀다.
“위치 기억해요?”
“대충요.”
“앞장 서긴 좀 그래요?”
“…….”
“그럼 안내해요. 내가 먼저 갈 테니까.”
이제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나서서 잘도 한다. 당장 몇 개월의 자신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낙조는 능숙하게 산을 오르면서 가끔씩 뒤를 확인했다. 차례로 밤이, 도연, 지운, 해화가 줄을 이었다. 해화는 생각보다 산을 타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지운이 종종 손을 잡아 위로 끌어올려 주었다.
“여기서……, 여기서,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한참을 올랐을까, 거기서 거기인 풍경이었다. 도연도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 듯 길을 헷갈려 했다. 그럴 법도 했다. 등산을 주로 하는 산이 아닌지 사람의 발길이 자주 닿은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변종의 냄새에 반응하는 팔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이래저래 종잡을 수 없어진 상황에, 낙조는 작은 바위에 걸터 앉았다.
“그럼 잠깐 쉬었다 가죠.”
낙조의 말에 해화가 먼저 근처의 나무뿌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악어와 새’에서 재회한 이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어 내심 맘이 쓰이긴 했다. 지운은 해화와 도연을 챙기면서도 씩씩해 보였다. 가만히 넋을 놓고 있자니 밤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나무에 물렸다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이야.”
“사실 진짜 나무에 물린 건 아니고, 나무가 비명을 질렀다는데요.”
“이 개새끼가.”
“아야.”
밤이가 단호하게 낙조의 머리를 내려쳤다. 낙조는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별 감흥 없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꽤 기대한 듯 오만 인상을 찌푸리면서 낙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도 좀, 자제해요. 나무가 비명을 질렀건 사람을 물었건……, 입이 달렸으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냥 고성방가한 거랑 사람을 다치게 한 거랑 같아?”
“비명에 놀라서 넘어져 갖고 다친 거랬으니까―”
아악! 낙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연이 별안간 비명을 질렀다. 고개를 돌리니 도연은 옆구리를 부여 잡은 채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 날 쫓아와요! 악! 쫓아온다고요!”
“아무도 없어, 우리밖에 없어 여기에!”
지운이 도연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의 몸을 부축하며 소리쳤지만 도연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더욱 크게 비명을 질렀다. 지운의 품에서도 도연은 살려 달라며 울부짖었다.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 도연이 봤다는 나무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발 한 발자국 뗄 수 없게 됐다. 그저 도연을 중심으로 정말 누군가가 자신들을 따라온 건 아닌지, 낙조는 잔뜩 경계심을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은 그저 고요한 숲속이었다. 인적도 없는 산길의 중턱에서 들리는 건 도연의 울음뿐이었다.
“아저씨, 상처가 심해지는 것 같은데.”
지운이 다급한 목소리로 낙조를 불렀다. 밤이는 서둘러 도연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붕대는 꽤 오래 돼 보였고, 피로 흠뻑 젖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다들 옷도 소독된 게 아니라 지혈할 게 없어.”
“누나, 피가 너무 많이 나와요.”
덩달아 지운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도연은 여전히 누가 자신을 쫓아온다며, 거의 따라 잡혔다면서 죽어 가는 목소리를 흘렸다.
‘반응이 너무 미미해. 변종이긴 한 것 같은데…….’
도연의 발작이 심해질수록 낙조는 오른팔이 조금씩 움찔거리는 걸 느꼈다. 다만 변종을 제대로 마주했을 때만큼 힘이 고이는 느낌과는 달랐기 때문에 쉽사리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나무와 낙엽뿐이었다.
어딜 보아도 사람이나 변종이 달려 오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오감을 곤두세워도 마찬가지였다. 도연이 끙끙 앓는 소리가 꽤 커서 집중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
“꽉 잡아!”
우르르르르릉!
두 발을 땅에 완전히 딛고 있었음에도 순간 중심이 흔들렸다.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겨우 나무 하나를 붙잡은 낙조는 여전히 흔들리는 땅의 움직임에 뒤를 돌아보았다. 땅의 진동은 모두가 느꼈는지 서로의 손을 잡고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쩌저적, 쩍, 쩍…….
땅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낙조는 미미하게만 느껴졌던 변종의 기류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팔이 움직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땅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산만 우렁차게 뒤흔들릴 뿐, 시야에 잡히는 건 소복하게 쌓인 낙엽뿐이었다.
“아, 아아아악!”
시선을 아주 잠깐 돌렸을 때였다. 정말 찰나였는데. 낙조는 등 뒤에서 울리는 도연의 찢어질 듯한 비명에 나무를 붙잡은 채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땅 속에서 치솟은 굵은 나무뿌리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도연의 몸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자신의 팔에 돋아난 혈관처럼, 굵직한 뿌리들은 생생하게 움직이면서 도연을 꽉 죄었다. 몸을 압박하는 강한 힘에 도연의 비명은 점차 멎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뿌리가 마른 땅을 터뜨리면서 올라오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김도연!”
허공에 치솟은 도연의 몸을 보고 지운이 뿌리에 달라 붙었다. 낙조는 순간 몸이 튀어 나가 지운을 뜯어 함께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아악!”
쿠드드드드득!
이번에도 눈 깜짝할 사이였다. 도연은 짧은 비명과 함께 땅속으로 꺼졌다. 뿌리가 땅을 찢으며 나온 흔적을 제외하고선 도연의 행방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왜 잡았어!”
“니 생각으론 구할 수 있었을 것 같아? 괜한 영웅감에 사로잡혀서 피해 줄 생각은 안 해?”
지운이 낙조에게 몸을 떨며 소리쳤다. 예민했던 신경에 목소리가 확 꽂혔다. 낙조는 숨을 들이키고 내뱉는 동시에 말을 쏟아 냈다. 겁을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지운은 입을 꾹 다물고서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진이 멎었어.”
낙엽이 스러지는 소리만 들리던 와중에 밤이가 입을 열었다. 비명과 진동이 난무하는 와중에 정신 없이 서로를 챙기다 보니 땅의 움직임이 멎은 줄도 몰랐다. 모두가 도연이 사라진 땅의 흔적을 응시했다.
낙조는 지운을 진정시킨 후에야 자신의 오른팔도 잠잠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미미하게나마 느껴졌던 꿈틀거림이 완전히 멈췄다. 지금까지는 겪어 본 바가 없어 의견을 강력하게 내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찌이이익, 드드드득.
다들 허망함에 사로잡혀 시선만 피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뭇가지가 기이하게 꺾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눈을 움직였다. 그리곤 함께 뛰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헉, 윽, 김도연!”
가장 먼저 소리가 난 곳에 도착한 지운이 걸음을 멈추자마자 악을 질렀다. 시선의 끝에 달린 것은 도연의 몸이었다. 흙투성이인 나뭇가지가 도연의 몸을 돌돌 감싼 채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지운은 도연이 잡혀가기 직전처럼 그 나무에 달려 들려고 했으나 해화와 낙조가 간신히 막아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구해야 될 거 아니야, 씨발!”
결국 참다 못한 지운이 온몸을 떨며 외쳤다. 핏발이 잔뜩 선 눈동자는 분을 참지 못하고 열기를 뿜어냈다. 그 사이에 외부의 공격을 알아차린 건지, 도연의 몸을 감싼 나뭇가지가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움직임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제야 하늘이 보였다. 더없이 깨끗한 하늘과, 그 아래에 주렁주렁 매달린 시체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저게, 미친, 뭐야?”
밤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꼭 환각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낙조는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끼고서 마른침을 삼켜 냈다.
“식물이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가 있어요?”
“영화에서만 봤지, 아오 씨발! 무슨 영화 세트장도 아니고!”
“식물이……, 식물도 감기에 걸리죠?”
“아 씨발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럼 그거네요. 변종이 된 거예요. 저 나무도.”
잔뜩 신경이 예민해진 밤이의 욕설에도 낙조는 차분히 결론을 내렸다. 이 나무에 가까워진 만큼 다시 오른팔이 욱신거리는 것도 그 증거가 되었다. 낙조의 말에 밤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숨을 고르며 나무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리지야.”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낙조는 밤이의 말을 듣고서 도연을 삼킨 나무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연리지連理枝. 뿌리가 다른 두 개의 나무가 하나의 기둥으로 만나 나뭇가지를 펼친 형상. 관련된 많은 설화가 있으나 드문드문 들었던 설화 중 하나는 남녀가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죽었는데, 서로의 몸에 손톱이 박힐 정도로 껴안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도연을 움켜 쥔 나뭇가지의 모습이 그 설화와 가장 유사했다. 살가죽을 파고 드는 것도 모자라 몸을 완전히 삼키려고 하는 움직임은 애틋했던 설화를 비틀어 잔혹하게 묘사했다.
도연은 완전히 의식을 잃은 듯 보였다. 모두가 그녀의 감은 두 눈을 올려다보고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숨소리마저 낙엽 쓸려 가는 소리에 섞여 들어갔을 즈음, 미라처럼 빳빳하게 감겨 있던 도연의 턱이 떡, 하고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