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보이지 않는 추격 (2)
날씨, 화창함. 최저 11도, 최고 27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수호는 손톱을 뜯다가 고개를 내저으며 휴지로 손을 닦아 냈다.
백무흠의 두 번째 공개 훈련 날이다. 연우는 기어코 훈련 일정을 잡았다. 본부에서 일하는 이들이 관람객이자 평가단이었다. 변종이 아닌, 산 사람을 상대로 살상 훈련을 한다는 일정은 진작 공개됐다. 백무흠의 사냥감이 될 이들은 밖에서 잡힌 범죄자들로 이루어졌다. 대부분이 본부를 사칭하여 민간인들에게 제공된 구호물품을 가로채거나 살인을 저지른 경력이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을 잃은 세계에서 범죄자의 인권에 목소리를 낼 사람은 없었다.
2차로 공개된 발표에서, 연우는 범죄자들에게 아주 소량의 변종 혈액을 주사했다고 말했다. 어차피 백무흠의 쇼처럼 끝날 것이고 보는 이들은 백무흠의 역량을 10퍼센트도 보지 못할 것이라면서, 조금이라도 더 백무흠을 자극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거의 일주일이 지나갈 때까지 연우를 회의 이외의 시간에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더 이상 정보실을 찾아오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실험실에만 박혀 살았다. 백무흠이 갇힌 곳도 그녀의 실험실이었기에 가끔 그의 식사를 챙기는 직원이 연우와 마주쳤다고는 했지만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고 했다.
수호는 연우가 조금씩 고낙조보다 백무흠에 열을 쏟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고낙조를 잡고 싶은 거잖아. 굳이 저렇게 보여 주지 않아도 잡을 수 있단 걸 알고 있으면서……. 왜 저렇게 난리지? 고낙조만 잡으면 일이 순순히 풀릴 텐데.’
거기에 연우가 본부로 들어오면서 연구가 시작된 백신 샘플은 얼추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100퍼센트까지는 아니더라도 급속도로 시작되는 세포분열의 시간을 어느 정도 막아 준다는 지점에서 반은 성공했다고 다들 말했다. 어쩌면 청주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은 안전하다’라는 생각이 하나의 법처럼 두꺼워졌을 수도 있다. 수호 또한 매 순간 긴장하며 살진 않으니.
‘인류가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권력욕이 아예 없어 보이진 않았으니까…….’
후세가 인류로서 살아 남아야 한다면 변종이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들을 방어할 줄 알아야 하고 더 이상 생명을 잃어선 안 된다. 서연우는 이 재난에도 끝은 있지만 인류는 끝난다고 보지 않는 걸까.
질문할 수 없는 궁금증에 해답을 찾는 것은 곤란하다. 수호는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 반,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반이었지만 어쨌든 자신의 눈으로 백무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나오자 마침 식사를 끝낸 직원들이 수호를 불렀다.
“그래도 막 찢어 죽이고 그러지는 않겠지?”
“혹시 모르지, 성에 안 차면 그럴 수도 있고.”
“어우, 벌써 피 냄새 나.”
“맨날 피 보는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하네.”
“내가 보는 건 피 몇 방울이잖아!”
수호는 그들을 앞세운 채 계단을 내려갔다. 직원들은 서로 터무니없는 농담을 늘어놓으며 훈련이 개최되는 곳으로 걸음을 향했다. 이미 많은 직원들이 몰려 있었다. 고위직 간부들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는 걸 보니 저번처럼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오는 듯했다.
‘서연우가 백무흠을 설득했느냐, 아니면 백무흠이 서연우에게 협조를 하느냐, 둘 중에 하난데.’
수호는 언제나 그랬듯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택했다. 주변을 둘러 보니 모인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기대감은 저번보다 확실히 높아져 있었다. 백무흠의 사냥감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부터 모든 대화가 시작됐다.
‘살고 죽는 게 이렇게도 단순해질 수 있나.’
감각 자체가 예민한 편인 수호에겐 자신을 둘러싼 이 상황 자체가 깜짝 카메라 같았다. TV라도 볼 수 있다면 한 번쯤은 그런 의심을 했을 텐데, 그럴 가능성 같은 게 존재하지 않으니 그저 자신도 무리에 속한 것처럼 연기를 하며 지내는 게 편했다.
“잠시 후 공개 훈련이 시작됩니다. 직원 분들은 자리에 착석해 주십시오.”
곧 연우를 비롯한 소장, 각 부서의 간부들이 단상 위에 올랐다. 연우는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 하나만큼은 살벌하게 빛나고 있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려나.’
수호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서연우가 팀장 직에서 내려오면, 백무흠은 자유로워지나? 그럴 리가 없다. 다른 누군가를 채용하겠지. 어쩌면 고낙조를 포기하고 백신 개발의 맹점을 백무흠으로 둘 수 있다. 그런 의견이 내부에서도 나왔을 테고……, 아마 서연우가 반대했겠지. 백무흠은 절대적으로 무기로 사용하고 싶으니까.
전광판을 비추는 카메라가 곧 텅 빈 공터에 선 무흠을 찍었다. 그는 여전히 흉흉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이내 무흠의 맞은편에서 눈이 시뻘겋게 충혈 된 이들이 흐느적거리며 나왔다. 몇몇은 바닥을 기었고, 선두에 있던 이들은 무흠을 보자마자 알 수 없는 말을 사방에 외치면서 달려 들었다.
“야, 저게 소량만 넣은 거라고?”
“어……, 너도 들었잖아 회의 때.”
“진액도 먹인 거 아니야? 저 정도면 사람이 아닌데.”
수호의 앞쪽에 앉은 이들이 서로 수군댔다. 수호는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무흠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무흠은 가까워지는 소음에 고개를 돌렸다. 들개떼처럼 달려오는 이들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뛰는 모양 또한 가지각색이었다. 뼈와 뼈를 잇는 연골이 빠진 것처럼 어딘가 괴상한 움직임이었다.
“내가어떻게살아남았는데, 우리아빠가시장에서가장싼고기를팔고, 놀이터에서동전줍자!”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으며 턱이 빠진 듯 침을 줄줄 흘리는 남자가 제일 먼저 무흠의 범위 내에 들어왔다. 무흠은 자신보다 한참 작은 남자를 잠깐 훑어 보고선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무흠의 허리를 잡으려던 남자가 휘청거리며 넘어지려는 사이, 무흠이 그의 머리칼을 손으로 쥐어 들어올리곤, 그대로 땅에 내리꽂았다.
퍽, 으드드드드득.
무흠은 그의 머리를 딱딱한 바닥에 찧다 못해 그대로 얼굴의 안면부를 반원으로 그리며 갈았다. 걸쭉한 피가 무흠의 그림자처럼 따라 남았다. 이미 남자는 움직임을 멈춘 후였다.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그 누구도 훈련을 멈추란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이건 ‘훈련’이었으니까. 자신들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백무흠은 자신들의 편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어……, 야, 열 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전광판을 보던 한 직원이 중얼거렸다. 수호도 그의 시선을 따라 눈을 옮겼다.
‘서연우 작정했네.’
조그마한 전광판엔 무흠의 반대편, 그러니까 범죄자들이 나오는 문이 찍히고 있었다. 그곳에선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서로의 몸을 밟고 올라타면서, 무흠을 향해 달렸다.
족히 삼십은 넘어 보였다. 아무리 개조 당한 백무흠이라고 해도 한 번만 숨을 놓친다면 그대로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럴 가능성은 물론 적었지만 서연우는 백무흠이 지는 승부라고 생각해서 저런 판을 짜지 않았을 테다.
백무흠은 시작에 불과하다. 오늘은 서연우의 이력에 한 줄이 새로 그어지는 날일 뿐이다.
무흠 또한 숫자를 대충 헤아렸는지 슬쩍 미소를 짓는 모습이 전광판에 실렸다. 관중들 중에서 작게 호응을 하거나 응원하는 이도 생겨났다.
무흠은 부름에 응답하는 자인가. 사람들의 환호가 들리기는 하는가. 수호의 눈에 차는 무흠의 모습에선 자신이 느꼈던 공포가 담겨 있지 않았다. 자신이 체감한 무흠의 무게는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무흠에겐 무기 하나 없었다. 온몸이 무기였으니까. 피부 자체도 두꺼워 웬만한 녀석들이 달려 들어 깨물어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무흠은 등에 달라 붙은 놈의 다리를 잡아 가볍게 떼어 내고서 발로 짓밟았다. 피가 튀기고, 뼈가 튀어 나오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진 시체들이 무흠의 옆에 쌓여만 갔다. 그럴수록 관중들의 환호성은 커졌다.
“야, 영웅이다! 영웅!”
“가서 고낙조 잡아와!”
“백무흠! 백무흠!”
관중의 마음을 빼앗는 건 이제 이 세상에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강한 자 하나로 백 명이든 천 명이든 포섭할 수 있는 세상이다.
반 정도가 남았다. 수호는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속에 파묻혀 숨을 죽였다. 무흠이 과연 진심으로 저 훈련에 임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계획의 일부로 이 쇼를 만들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됐어, 신경 꺼, 금수호. 저 사람에 대해 얼마나 더 알아야 속이 시원할 건데.’
더군다나 이렇게 소수의 일원으로 만들어진 사회 안에선 눈에 띄기가 쉽다. 수호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더 구석진 곳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무흠의 이름을 부르짖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수호는 펜스 근처로 다가가 멀찍이서 전광판을 응시했다. 전광판 속에선 무흠이 무표정한 얼굴로 마지막 사냥감의 멱살을 잡은 장면이 포착돼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무흠은 그저 단숨에 그들의 목숨을 끊는 걸로 공개 훈련의 목적을 꿰뚫었다. 마지막까지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관중들은 무흠이 마지막 사람을 붙잡고 벌이는 일종의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흠은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신장의 남자를 때려 눕힌 후 왼쪽 옆구리만 집요하게 발로 걷어 찼다. 키는 비슷했으나 체격 차이로는 훨씬 눌려 보이던 남자는 속절없이 쓰러졌다. 남자가 기절하자 무흠은 공격을 멈췄다. 그리곤 가만히 내려 보다가 훈련장 밖에 있던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무어라 얘기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무흠에게 물병을 건네주었다. 무흠은 사람이 빠져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물병의 뚜껑을 열어 기절한 남자의 입안에 물을 부었다. 그리곤 가슴을 몇 번 눌렀다. 남자가 물을 뱉어 내며 의식을 차리자, 다시 공격이 시작됐다.
연우는 2차 공개 훈련이 진행되는 예상 시간을 약 10분으로 발표했다. 10분은 이미 한참 지났고, 무흠은 30분이 다 되어가도록 남자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다. 전광판으로 보기만 해도 그가 힘을 쏟아 남자를 공격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말 누군가가 말리지 않는 한, 이 훈련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 될 것만 같았다.
“백무흠 씨, 힘을 낭비하지 마세요.”
마이크를 급하게 쥐는 소리가 들리더니, 연우의 조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큰 전광판 중 한 개가 연우의 얼굴을 비췄다.
“전부를 보여 주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 보이시는 행동은 작전 누설입니다.”
무흠은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러 사람의 피가 튀어 말라 붙은 얼굴 위로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누구를 향해 웃는지, 그가 왜 웃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무흠은 이내 다 빈 물통을 아무렇게나 내려 놓고서 반쯤 죽은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
그는 경건한 의식을 치루는 것처럼 정갈하게 두 손을 모아 잠시 눈을 감은 후, 남자의 목을 사정없이 비틀어 꺾었다.
끝났다. 모두가 알아차렸다. 가장 큰 두 개의 전광판 속에 무흠과 연우의 얼굴이 각각 실렸다. 연우는 웃고 있었다.
“여러분, 보셨습니까? 이 사람이 우리의 주역입니다. 백무흠보다 강할 수 있는 생명은 없습니다. 아무리 고낙조라고 한들 어떨까요. 그 자는 그저 우연찮게 샘플과 맞아 떨어져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중입니다. 운이 좋은 것뿐이죠.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백무흠을 이길 순 없습니다. 그는 뒤바뀐 생태계 피라미드에서 변종의 위에 서 있습니다. 고낙조는 변종의 돌연변이고요. 우리가 고낙조만 잡는다면, 이 환경이 아무리 뒤바뀐다 하더라도 숨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완벽합니다. 이제 삼키기만 하면 됩니다.”
와아아아아!
연우의 뒤에서 소장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포커싱이 되지 않아 희미했지만 수호는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백무흠과 서연우의 이름을 번갈아 외쳤다.
오늘의 훈련으로 증명됐다. 백무흠은 서연우의 명령을 따르고, 서연우는 절대적으로 고낙조를 잡겠다는 목표가 선명하다는 것.
수호는 정보실로 돌아가기 위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었고 목이 말라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자신의 눈에 청주 본부는 난장판이었다. 실체가 없는 믿음으로 뒤덮인 이곳은 백무흠을 영웅으로 추앙한다. 그 믿음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건 백무흠을 만든 서연우다. 그들만의 페스티벌이고 그들만의 진흙탕이다.
“수호 씨, 어디 가요?”
건물 쪽으로 빠르게 걷는 수호의 뒤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아, 다 끝난 것 같아서요.”
“……저번부터 봤는데 수호 씨는 다른 곳에 관심이 있는 것 같으세요.”
처음 보는 여자였다. 눈썹을 덮을 정도의 앞머리와 허리까지 오는 검은 긴 머리의 여자.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자의 얼굴 위론 읽을 수 없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따로 알고 있는 게 있으세요?”
‘저 여자는 나를 어떻게 알지. 나를 왜 보고 있었지.’
환호성으로 가득 찬 맑은 하늘 아래, 잠시 산들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