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신기루 (3)
오전 열한 시 삼십사 분, 막시안과 고낙조는 순찰조의 대열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이 분 뒤, 사거리로 진입하는 주택가 길목에서 전봇대와 충돌했다. 막시안과 고낙조 모두 큰 부상을 입었으며 그들의 차량을 발견한 다른 순찰조가 그들을 싣고 센터로 돌아왔다. 막시안은 상처 출혈이 커 수혈을 받아야 했지만 그가 가진 점수론 피를 살 수 없었다. 고낙조는 머리와 복부에 상흔을 입었으나 센터로 돌아오면서부터 회복이 시작됐다. 센터에 도착한 이후엔 피가 완전히 멎었고 새 살이 돋아났다.
‘……켈리인가?’
살점들이 서로 엉겨 붙더니 상처는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해졌다. 오후 한 시, 나는 고낙조의 피를 뽑아 적혈구가 규칙적으로 보이는 분열과 결합의 패턴을 확인했다.
‘영어로 말하니까 뭐라는지 모르겠는데.’
적혈구는 끝없이 생성된다. 지치지도 않고 탄생한다. 나는 고낙조의 오른팔에서 피를 다시 뽑았다. 놀랍게도 오른팔에선 새로운 DNA가 검출됐다. 고낙조가 본래 갖고 있는 식물의 것이 아니다. 그의 피와 신경을 가장 많이 자극하는 DNA는 식충식물인 ‘퍼포리아 사라세니아’ 라는 식물이었으나 발현되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그 수치는 현저히 낮았다.
고낙조의 몸은 새로운 생태계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연이 이미 신체의 대부분을 삼켰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완전히 귀속된 힘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 생존이 위협받는 고통을 깨달아야 진짜 숨겨진 힘을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러므로 당신에게 말해 주겠어. 당신이 두려워해야 할 존재. 고낙조는 켈리 화이트라는 사람을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그녀의 말에 복종하고 성실히 숭배하라. 당신을 구원해 줄 신은 없지만 죽음이 항상 당신을 빗겨나가게 할 능력을 가진 이 사람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이마에 미지근한 손바닥의 온기가 느껴졌다. 낙조는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을 고스란히 들으면서 손가락 하나하나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온갖 외국어로 점칠된 말들은 머릿속에 딱히 박히지 않았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억센 끈들이 하나씩 낙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뜯어지는 듯했다. 마침내 손가락 하나가 들썩였을 때, 켈리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져 들리지 않았다.
“헉, 허억, 콜록……!”
눈이 번쩍 뜨였다. 낙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흰 천장을 바라보았다. 끈질겼던 가위에서 풀려났지만, 마음처럼 몸을 쉽게 뒤집는 건 힘들었다. 텅 빈 방안에 침대 하나만 덜렁 있는 공간이었다. 낙조는 바싹 마른 입을 열어 누군가를 부르려 했다. 그러나 말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 목소리가 쉬이 나오지 않았다.
“헉, 으으, 아…….”
발음이 자꾸만 짓뭉개졌다. 혀가 마비된 듯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낙조는 아직도 미미한 압력이 느껴지는 몸에 힘을 주어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바깥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자신이 얼마나 잠들었는지, 언제부터 까마득한 무의식에 잠겨 있었는지 알아야 했다. 낙조는 깨어나기 직전까지 들었던 켈리의 목소리를 기억하고서 직접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안경……?’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협탁 위에 놓인 자신의 안경이었다. 분명 막시안이 차를 전봇대에 박으면서 다 깨졌던 걸 눈으로 봤는데. 안경은 멀쩡하다 못해 새것처럼 얌전히 놓여 있었다. 낙조는 한참 안경을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안경을 썼다.
‘도대체 뭐야?’
그녀가 심어 둔 사람이 당장 방문 밖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자신의 동태를 확인할지도 모른다. 낙조는 쉬이 움직여지지 않는 손을 뻗어 자신의 팔에 박힌 수액 주사기를 뽑아냈다. 날카로운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발을 침대 아래로 내려 바닥을 딛자, 찌릿거릴 정도로 차가운 온도가 온몸을 타고 올랐다.
“후, 후우, 후…….”
계속해서 숨을 쉬어야 했다. 소리가 제멋대로 엉켜 목구멍을 꽉 막아 버린 듯한 상태에서 섣불리 소란을 일으키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낙조는 금방이라도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 같은 두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서 한 발자국씩 문 쪽으로 걸어갔다.
벌컥.
문고리에 손도 대지 못한 상황이었다. 바깥에서 다가오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방문이 홱 열렸다. 낙조는 주삿바늘을 허공에 치켜들고서 문을 연 이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지운이었다.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가 낙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아무 말도 없이 달려와 낙조를 껴안았다. 발바닥을 적시는 바닥의 온도와는 달리 따뜻한 체온이 가슴을 뭉근하게 짓이겼다.
“언제, 언제 일어났어?”
“아…….”
낙조는 자신의 눈앞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지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다. 핏자국도 없고, 옷차림도 정갈했다. 지옥과도 같았던 꿈속에 누워 있는 지운이 아니었다.
“방금……, 깼어.”
그렇게 무거웠던 혓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운을 보고서 완전히 긴장이 풀린 건지, 낙조는 그 한 마디를 겨우 내뱉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에 꽉 쥐고 있던 주삿바늘도 떨어뜨렸다. 지운은 덩달아 쪼그려 앉아 낙조를 이리저리 살폈다.
“괜찮아? 어지러워?”
“여기, 여기가 어디야.”
낙조는 이리저리 헤집어진 목소리로 지운에게 물었다. 지운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문을 닫고 돌아온 후 낙조와 시선을 맞춘 채 대답했다.
“센터야. 아저씨 사흘 동안 누워 있었어.”
“사흘?”
낙조가 미간을 좁히며 되묻자, 지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탄 막시안 차, 전봇대에 들이박은 걸 나랑 도연이가 발견했어. 아저씨랑 막시안 둘 다 의식이 없었고, 일단 데려오긴 했는데…….”
“차에서, 날 발견했다고?”
자신이 가진 기억의 순서가 모두 어지럽게 흩날렸다. 낙조가 가진 마지막 기억은 분명 켈리와 밤이가 있었던 실험실 안이었다. 차가운 철제 침대의 촉각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나는데. 낙조는 눈을 깜박이다가 자신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지운을 붙잡았다.
“너, 너……, 살아 있는 거 맞아?”
“아저씨.”
이 공간 또한 무의식이라면? 나는 아직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라면. 며칠 동안의 기억을 몽땅 잃은 사람은 현실 속 시간의 흐름과 쉽게 발을 맞출 수 없었다. 지운은 낙조의 손등을 감싸고서 목소리를 낮춘 채 낙조를 불렀다. 다 이해한다는 뉘앙스의 그 높낮이. 낙조는 살갗으로 느껴지는 지운의 체온에도 그저 자신을 감싼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켈리가 아저씨 일어난 거 알면 바로 찾아올 거야.”
“여기서 나가야 해. 그 사람 진짜, 위험한 사람이야. 홍지운, 여기 있다가 그 사람한테 다 죽어.”
“그래, 나갈 거야. 나도 나가고 싶어. 그러니까 아저씨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
“지난 사흘 동안, 아저씨 열 번은 더 일어났었어. 아무것도 기억 안 나지. 그때마다 눈이 뒤집어져서 누구를 계속 죽이겠다고 하는 걸 매번 진정제 놔서 다시 재웠어.”
자신이 가진 기억은 도로 위에서 막시안과 대치하던 것과 실험실을 감싸는 서늘한 공기뿐이다. 낙조는 지운이 말하는 걸 도통 믿을 수 없었다. 환각과도 같았던 붉은 색의 공간에 갇혀 끔찍한 악몽을 꾼 것도로 모자라 자신을 나무라는 것 같은 말이 낙조를 고립시키는 듯했다.
“지금처럼 제대로 말하는 거, 이번이 처음이야. 그러니까 얘기해 주는 거야. 아저씨 정신 차리라고.”
“넌……, 넌 지난 사흘 동안 뭘 했는데 그걸 다 알고 있어?”
“사흘 동안 아무도 센터에서 못 나갔어. 켈리가 문을 다 막았어.”
지운은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굴었다. 항상 기운이 넘치고 활기를 채워 주던 목소리엔 힘이 없었고 얼굴 위에 남은 표정도 그림자와 다를 게 없었다. 텅 빈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자니, 서로를 향해 하는 말임에도 픽픽 쓰러져 비껴 나가는 것 같았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흘 동안 지운을 비롯한 주변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어째서 시간의 흐름이 딱 맞는 기억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낯선 공간일수록 겁을 먹기는 쉽다. 그렇다고 외지인의 안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낙조에게 내부인은 지운과 해화, 밤이뿐이었다. 소란을 피워 봤자 스스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낙조는 잠시 시선을 떼어 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밤이 누나는?”
“얼굴 못 본 지 이틀 됐어.”
“그래…….”
낙조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자신이 깨어나기 직전 들었던 켈리의 말이 무슨 뜻인지만 알았더라도 이렇게 배회자처럼 굴고 있진 않을 텐데. 눈을 감고 있던 동안 자신은 너무나도 무력했고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주차장에서 켈리와 나눈 대화도 다 가짜야?’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 자신이 품고 있던 기억에게 추궁하듯 괴로움이 소용돌이 쳤다. 할 수 있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낙조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는 흰 벽을 응시하다가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고개를 돌렸다.
여러 사람의 발자국 소리였다. 지운 또한 표정을 굳히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끼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지운이 급하게 바닥을 기어 문을 막으려 몸을 던졌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으로 밖에서 열린 문을 완전히 밀지는 못했다. 외부인들은 힘으로 밀어 붙여 문을 열었고, 곧 지운을 붙잡았다.
“끌고 가. 얘도.”
처음 보는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마네킹처럼 어딘가 부조화스러운 이목구비를 가진 채 표정도 없이 입만 움직여 대화를 나누었다. 맨 앞에 선 이가 낙조를 가리키며 지시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낙조를 바라보던 두 명의 남자가 낙조의 양쪽을 꿰어찼다. 평소대로라면 조금만 힘을 줘도 뿌리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온몸의 기가 어딘가로 빨려 나간 것처럼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남자들은 낙조와 지운을 질질 끌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낙조의 예상과는 달리 엘리베이터는 지하 주차장이 아닌 1층에 멈춰 섰다. 남자들은 낙조를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끌어 내렸다.
널찍한 로비 가운데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캐쥬얼한 수트 차림에 양손엔 아무것도 들지 않고서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잠가 놓은 정문 때문에 유리문 너머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들은 낙조를 켈리의 뒤까지 끌고 갔다.
“얼마나 잡아 놨지?”
“적어도 열은 됩니다.”
켈리는 남자들과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낙조는 멍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유리문을 응시하다가 몸을 움츠렸다. 켈리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몸속에서 끓기 시작한 힘이 점점 오른팔로 모이기 시작한 게 느껴졌다. 이윽고 켈리가 고개만 돌려 낙조를 내려다보았다. 진하게 파란 눈은 여전히 그 안을 꿰뚫어 보기 어려웠다.
“중문 열고, 넣어 봐.”
켈리는 딱딱한 어투로 남자들에게 지시했다. 낙조를 잡고 있던 남자들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잠긴 문 쪽으로 낙조를 끌고 갔다.
‘씨발, 몸이 말을 안 들어……!’
이런 삭막한 분위기의 기류를 읽지 못한다면 바보나 다를 게 없다. 낙조는 어느 정도 힘이 돌아온 것을 느끼고 몸부림을 치려 했으나 자신을 꽉 짓밟는 무언가의 존재에 막혀 질질 끌려 갔다. 남자들은 잠긴 유리문을 열고서 안으로 낙조를 던졌다. 형편없이 나뒹군 낙조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우우우웅.
여태껏 ‘악어와 새’에 머물면서 드나들었던 통로는 지하뿐이었기 때문에 1층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낙조는 육중한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들어 올려지는 정문을 응시하면서 이를 갈았다.
‘가까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아주 오랜만이었고, 동시에 지겨울 정도인 고통이 타올랐다.
햇살이 무척이나 따뜻했다. 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낙조는 눈을 찡그렸다. 그러나 곧 자신의 얼굴을 뒤덮는 수많은 그림자를 마주하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카아아악!”
“허어억, 커어억, 컥!”
쾅!
코를 벌름거리며 주위를 들쑤시던 변종들이 일제히 낙조에게로 달려 들었다. 낙조는 황급히 몸을 굴렸지만 등에 닿는 건 이미 굳게 잠긴 유리문밖에 없었다. 발이 닿는 대로 변종들을 걷어 차면서 문을 두드렸다. 켈리와 남자들은 그저 스크린 속 영상을 보는 것처럼 아무 감흥도 보이지 않았다. 지운만이 남자에게 붙잡힌 채로 낙조를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문 열어―”
“―고낙조, 움직여.”
카가가각, 푹!
자신의 말을 듣지도 않는 태도로, 켈리가 한 마디를 꽂아 넣었다. 아주 짧은 문장이었고 찰나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의 순간이었다. 낙조는 잠시 멈췄던 숨을 풀어 내면서 앞을 응시했다.
‘방금 뭐지?’
평소보다 더 굵직하게 뻗친 나무줄기가 낙조의 근처에서 이를 딱딱거리던 변종들을 단숨에 꿰뚫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변한 게 아니었다. 켈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입력되자마자 기계처럼 팔이 반응했다. 낙조는 진액을 토해 내는 변종의 포자로 뒤덮인 얼굴을 마주했다.
“고낙조, 모두 잡아.”
시간을 초월하는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눈앞에 번개가 꽂힌 듯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