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교차점
“순찰조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왜 들었을까?”
“답답해서요. 내 할 일은 밤에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낙조는 태연하게 굴었다. 이 태도는 모두 켈리를 보고 배운 것이다. 켈리 또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절대로 굴복하는 모양새는 보여 주지 않을 테다. 낙조는 켈리의 허락이 없더라도 순찰조와 함께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자신이 중요한 거래의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켈리도 함부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진 못할 것이다.
“변종을 만나서 고낙조 씨가 다치면 곤란해지잖아요?”
“켈리는 궁금하지 않아요? 지금의 내가 변종과 마주치면 어떻게 될지.”
켈리는 말없이 웃었다. 낙조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이미 그녀의 욕망은 파악한 상태다. 사람의 욕망은 노출되면 쉽게 약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켈리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낙조의 눈에 투시된 욕망에는 이길 수 없었다. 낙조는 막시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막시안과 함께 가겠습니다.”
“사람 보는 눈이 좋네요.”
켈리는 이미 반쯤 낙조의 말에 동의한 듯 말했다. 반면 낙조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란 이들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특히 이 모든 상황을 전달 받지 못한 해화가 가장 놀란 눈을 하고서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좋아요. 대신 오늘은 조금 빨리 돌아오세요. 변종을 만나도 무리하지 말고.”
“…….”
낙조는 대답 대신 살짝 미소를 짓고 막시안의 곁으로 다가갔다. 켈리가 뒤에서 지켜보는 게 느껴졌다. 낙조는 순식간에 미소를 지우고서 막시안의 곁에 붙어 속삭였다.
“이대로 조용히 차로 가.”
“무슨 생각이에요?”
“밤이 누나한테 시간을 벌어 주는 거지.”
낙조는 그렇게만 말하고서 입을 닫았다. 막시안은 답답한 듯 낑낑대는 강아지처럼 그의 뒤를 쫓아갔다.
운전석엔 막시안이 앉았다.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탄 낙조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막시안을 곁눈질로 훑어 보았다.
‘왜 이렇게 나는 이 새끼가 찝찝하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놈이다. 그러나 동시에 켈리의 내부자다. 악어와 새를 지탱하고 있는 구조의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또 동료를 살리고 싶어 한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긴 한데……, 이곳에서 오래 머물렀던 탓일까? 이곳의 삶이 너무나 능숙해 보이는 면이 왠지 거슬렸다.
막시안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더 눈길을 주고 싶지 않았고 지운을 대하는 것보다 행동과 말이 더욱 거칠게 나갔다. 그를 일부러 골려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나 어쩐지 웃는 얼굴에서 피는 기시감 같은 것이 정신을 흩뜨렸다. 겨우 그 기억에서 빠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손 쓸 새도 없이 처박히는 과거에 입술을 절로 씹게 됐다.
“어……,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엉.”
“어디, 어디가…….”
“걍 빨리 가지?”
아무것도 없는 볼을 쓰다듬는 모습도 멍청하다. 예쁘게 포장해 보자면 순진하다고 해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속에서 풀리지 않는 답답함에 낙조는 괜히 막시안에게 심술궂게 굴었다. 막시안은 볼을 긁적이다가 차를 출발시켰다.
대열을 지키며, 적정한 속도를 유지한 채 골목과 골목을 오갔다. 그동안 막시안과 낙조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종종 막시안이 낙조를 힐끔거리긴 했지만, 낙조는 오로지 창밖만 응시했다.
사람의 손길이 떠난 지 오래된 동네는 참 적막했다. 부서진 벽돌 담에는 넝쿨이 자라다 못해 쌓여 있었다. 이미 이 근방의 변종들은 거의 처리했는지 인간형 변종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젠 조금 괴상해 보이는 식물을 중심으로 순찰을 도는 모양이었다.
“너는 언제부터 여기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냐?”
낙조는 시선을 차창 밖으로 던진 채 물었다. 막시안은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면서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켈리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이랑은 안 친해? 왜 김도연만 데리고 떠나?”
“쉽게 물어볼 수 없잖아요. 거기에선 진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막시안의 대답에 낙조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른하게 깜박이던 두 눈이 막시안을 향했다. 막시안은 여전히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녹색 눈을 바라보다가, 낙조가 조용히 물었다.
“나는 그게 싫으니까 떠나는 거예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허.”
막시안의 시덥잖은 대꾸에 낙조는 허탈하게 날숨을 내뱉었다. 겉은 번지르르하고 순진무구해 보일 정도다. 꼬인 마음으로 계속 살펴 봐도 딱히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냥 의심이었나…….’
덜컹, 과속방지턱을 넘어갔다.
“만약 낙조를 만나지 않았다면, 계속 켈리를 따르면서 살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랬으면 내가 미치거나 그 전에 그녀의 용병한테 죽을 거예요. 저기는, 그냥 노동력만 빼앗는 것도 아니에요. 아픈 사람들……, 감염된 사람들. 내가 추방한다고 말했었죠?”
막시안의 말이 길어졌다. 아직 앞쪽에서 발견한 건 없는지 대열은 흐트러지지 않고 정해진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막시안은 정면만 주시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끔 그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이나 두 명씩 실험실에 보내요. 그리고 그때마다 필요한 연구를 해요. 거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약이 있는 이유예요.”
“…….”
“그게 다……, 여기서 먼저 죽은 사람들 덕분에 만든 거예요.”
‘지금 나한테 고해성사 하는 거야?’
낙조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막시안을 응시했다. 막시안의 얼굴은 평온했다. 꼭 낙조에게 이 말을 해 주려고 기다렸던 사람처럼, 조금 들떠 보이기도 했다. 낙조는 굳이 그의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켈리는 똑똑해요. 어떻게 하면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아예 없애 버릴 수 있는지 어떻게든 알아내요. 그저……, 그 수단과 과정에서 피 냄새가 엄청 날 뿐이죠.”
낙조는 조용히 오른쪽 소매를 걷었다. 막시안의 시선이 흔들리는지도 지켜봤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띄운 채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막시안.”
“네.”
“너는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지?”
“…….”
우연히 보았다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상황들이 필요하다. 켈리가 실험에 퍼붓는 열정이 얼마나 무모하고도 잔인한지 알고 있다. ‘악어와 새’가 단단히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했는지 목격한 자다. 지금까지 켈리의 간접적 살인을 이곳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는 가정을 해도 이상했다. 무엇보다 막시안은 켈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마치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막시안은 대답이 없었다. 곧 갈림길이 나왔고, 앞 차량은 천천히 우회전을 했다. 핸들을 틀어야 할 때였다. 막시안은 갑자기 속력을 내며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다. 하필이면 막시안과 낙조가 탄 차는 대열의 맨 끝이었다. 과연 앞차가 목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막시안은 순식간에 다른 차들과 거리를 벌렸다. 이내 좁은 골목으로 방향을 튼 그는, 아까와는 달리 조금 조급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막시안.”
낙조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여전히 그는 속력만 계속해서 낼 뿐이었다. 낙조는 오른팔에 힘을 모으면서 숨을 다스렸다. 차는 무시무시하게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과속방지턱을 날 듯이 뛰어넘고, 온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낙조는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는 막시안을 바라보다가 오른손으로 핸들을 쥐었다.
“차 멈춰!”
목소리를 높였지만 막시안은 듣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에 눈빛은 어쩐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차는 낯선 거리에 빠졌다. 둘이서 다른 세상에 발을 헛디딘 것처럼, 창밖의 광경은 어색하기만 했다. 낙조는 일단 차를 멈춰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남은 손도 뻗어 핸들을 붙잡았다.
차가 방향을 잃고 왼쪽과 오른쪽을 헷갈려 하며 휘청거렸다. 낙조는 이를 악물고 아예 운전석 쪽으로 상체를 옮겨 핸들을 제대로 쥐려 노력했다. 그러나 바퀴가 길가의 어떤 것에 걸렸는지, 돌변하듯 미끄러졌다.
“……!”
미끄러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핸들을 돌리려고 했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바로 눈앞에 전봇대가 보였다. 눈을 깜박하는 순간도 주지 않았다.
쾅.
차는 그대로 전봇대를 박았다. 크게 들썩거리며 몸이 안에서 붕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유리가 깨지면서 파편들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신 차려…….’
온몸이 얼얼했다. 온갖 곳에서 고통이 쏟아지니 어디에 힘을 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꾸만 흐려지는 눈앞에 낙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봤자 어지러움만 심해질 뿐이었다.
‘막시안, 막시안은…….’
안경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낙조는 끙,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들었다. 순간 피에 젖은 두 손이 낙조의 어깨를 잡고, 안전벨트를 풀었다.
“낙조! 빨리 나와요!”
마찬가지로 피를 뒤집어쓴 막시안이 낙조를 붙잡고 소리쳤다.
*
수호는 모자를 꾹 눌러 쓰고서 맨 뒷자리에 앉았다. 앞을 슬쩍 보니 소장과 연우가 나란히 서 있는 게 보였다. 둘은 무엇을 얘기하는지 그리도 즐겁게 웃고 있었다.
‘무슨 애니멀 쇼도 아니고…….’
손자국이 남은 손목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본부 사람들은 거의 다 모인 듯, 자리는 다 차다 못해 서서 구경하는 이들도 있었다. 수호는 괜히 의자에 앉았나, 생각하며 최대한 옆사람과 시선이 닿지 않도록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매일 한 걸음씩 발전합니다. 그게 우리가 지금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지요.”
서연우의 목소리다. 그녀는 마이크를 쥐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연설을 시작했다.
“목표가 없으면 열정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고낙조는 계속해서 덫을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지만, 이젠 그럴 일은 없습니다. 고낙조를 가장 잘 아는 사냥꾼이 태어났으니까요.”
와아. 저 남자야? 진짜 군인이긴 군인이었나 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는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슬쩍 들었다. 앞쪽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스크린에 무흠의 얼굴이 찍히고 있는 것을 보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흠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명령을 기다리는 로봇처럼.
“이 자는 고낙조의 피 냄새에 누구보다 먼저 반응할 수 있습니다. 피를 처음으로 흘린 곳의 위치부터 피를 흘린 지 얼마나 됐는지, 오직 냄새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죠. 추격이 시작되면 게임은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고낙조는 이제 절대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절대로요.”
서연우는 전적으로 백무흠을 믿고 있다. 그가 자신에게 완전히 굴복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보니 저 여자도 그리 똑똑하진 않네.’
연우가 맡은 분야에선 그녀가 최고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서연우는 백신을 만드는 것보다 고낙조를 잡는 것을 먼저 해야 하는 일로 선택했다. 그놈 하나 잡기 위해서 사람 하나를 몇 달 동안 들쑤셔 놨고. 과연 죄책감은 갖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지금까지 벌려 놓은 일들이 마무리 될 생각에 기뻐할까?
“고낙조의 피를 딱 한 방울씩 묻힌 훈련용 소형 마네킹을 곳곳에 숨겨 두었습니다. 맨 앞에 앉아 계신 분들은 조금 놀라실 수도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연우는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로 말을 마쳤다. 그녀는 마이크애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후 무흠을 응시했다. 이미 연우를 바라보고 있던 무흠의 시선과 부딪쳤다. 연우는 시작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야외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무흠에게로 향했다.
“…….”
“뭐야?”
“안 움직이잖아.”
고요함을 뚫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백무흠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서연우를 바라보고 있는 채로. 평온하기 짝이 없는 시선은 그녀를 당황하게 하기 충분했다.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우는 급하게 마이크를 쥐고 외쳤다.
“백무흠 씨?”
무흠의 눈이 한 번 깜박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잘 들린다는 듯이. 분명히 시선은 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흠은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더욱 크게 술렁거리자 그가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훈련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네?”
연우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었다. 무흠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진짜 살아 있는 것을 주십시오. 숨지 않고 도망치거자 맞서 싸우려고 하는 인간들 말입니다. 고낙조는, 마네킹처럼 숨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