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내부자 (1)
“이제 훈련이 다 끝났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연우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소장은 연우를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 중얼거렸다.
“그러니 빨리 좀 하지 그랬어. 나도 짜증나. 그냥 잡을 수 있었던 걸 돈을 퍼주면서 데려와야 한다니까.”
“소장님!”
“거기에 아주 똘똘 뭉쳐서 잘 있다니까, 너는 조용히 있어. 우리에게 없는 것들이 거기에 다 있다고. 이래서야 내가 얼굴 들고 다니겠어?”
소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창문 하나 없는 회의실에 곧 담배 연기가 천장으로 피어올라갔다. 연우는 씩씩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백무흠에게 낙조의 피 냄새를 각인시킨 게 겨우 이틀 전이었다. 백무흠은 생각보다 훈련을 잘 따라왔고 시뮬레이션에서도 아주 좋은 기록을 보여 줬다.
‘사냥개 훈련을 다 시켜 놨더니……, 지들이 다 놓쳐 놓고서 나한테 지랄이야!’
연우의 몸은 사정없이 떨렸다. 소장은 출근을 하자마자 연우를 회의실로 불렀고, 다짜고짜 백무흠이 더 이상 쓸모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 말고도 백신 개발을 하는 곳이 있어. 겉으론 그냥 대피소랑 비슷한 곳인데……, 신약 개발 팀원들이 그곳에 좀 가 있었거든. 그런데, 거기에 고낙조랑 홍해화가 굴러들어왔다고 연락이 왔다. 의심은 하나도 안 하고 있다고 하고. 그러니 간 좀 보다가 애들 내려보내서 잡으면 될 것 같아.’
청주 말고도 백신 개발을 하는 곳이 있다는 점도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가는데, 신의 장난처럼 고낙조와 홍해화가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머리에 열이 몰렸다. 자신은 지금까지 적은 고낙조의 피로 백무흠을 완전히 사냥개로 만들었더니, 고낙조와 홍해화가 순순히 잡혀 버린다면 자신은 아예 버려질 수도 있었다. 백신 개발에 대해서는 진도가 아예 나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 상상을 극대화 시켰다.
“고낙조랑 홍해화가 그런 눈치도 없을 것 같아요? 붕어섬에서 놓친 게 누구인지는 아시죠?”
“서연우, 괜한 독기 부리지 마. 이번엔 탈출할 방법이 아예 없으니까.”
“고낙조를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 것 같은데요. 백무흠을 고낙조랑 비슷하게 만드는 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그게 더 빨랐다면 너를 믿었겠지. 그냥 인정해. 너는 진 거야.”
소장은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며 말했다. 소장의 맞은편에 서 있던 연우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떠냈다.
“그냥 앞으로 할 일에만 집중해. 백무흠은 어떻게 쓰든 상관없어. 이젠 백신 만드는 게 서연우 네 목표야. 이것마저도 거기에 뺏겨 버리면……, 너도, 나도, 여기서 얼굴 들고 못 다녀.”
그는 반도 안 태운 담배를 조그마한 포스트잇에 지져 껐다. 숫자가 적힌 걸 보아하니 그쪽의 연락처인 듯했다. 연우는 아무 말도 않고 서 있다가 소장의 나가 보라는 말에 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로 회의실을 나왔다.
‘백무흠을……, 고낙조를 잡으러 갈 때 끼워 넣어야겠어.’
무모한 생각이란 걸 알았다. 백무흠은 더 이상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지낼 수 없고, 오로지 외부 요인에 인해서 자극을 받아 움직이는 ‘개’일 뿐이었다. 고낙조를 잡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몹쓸 짓을 해가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단계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백무흠이 희생한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연우는 계단에 멍하니 서서 생각하다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
아침 식사를 하러 가기 직전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낙조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지운을 붙잡고 물었다.
“근데, 밤이 누나랑 나 구하러 왔을 때. 저 사람들은 어떻게 만난 거야? 우리 위치는 어떻게 알고.”
“아아. 진짜 아저씨 빨리도 물어본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어. 나는 누나 손 잡고 미친 듯이 뛰었다가, 어떤 슈퍼 앞에서 잠시 쉬는데, 공중전화에서 전화가 오더라. 누나는 받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 몰라서 내가 받았어. 어떤 젊은 남자더라고. 그 남자가 어디로 가라고 얘기해 줬어. 그럼 도와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공중전화에 전화가 어떻게 와?”
“내가 어떻게 알아. 근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쪽 관련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쪽?”
“청주. 아니면 전주 대피소?”
“둘 다 말이 안 되는데.”
“그래, 말이 안 되는데, 아저씨랑 누나가 잡혀 있다는 걸 알고, 해화 누나랑 내 위치를 알아내서 전화까지 걸어준 사람이 그냥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이겠어?”
‘틀림없이 내부자인가…….’
낙조는 잠시 시선을 떨어뜨렸다가 바깥에서 들려오는 식사 시간 알림 소리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운은 도연과 함께 먹겠다며 자리를 옮겼다. 거의 모든 이들이 자리에 앉고, 낙조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밤이 곁에 앉았다. 곧 음식을 하는 자가 낙조 앞으로 그릇을 내려놓았다.
“아, 감사합니다.”
“왜 고낙조 게 더 맛있어 보이지.”
밤이가 수저를 문 채 웅얼거렸다. 낙조는 웃으면서 자신의 그릇을 밤이에게 내밀었다.
“그럼 누나가 먹어요. 내가 누나 거 먹을게.”
“걍 해본 말이야.”
밤이는 손을 내두르고서 자신의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낙조는 어제 첫 출근했던 실험실의 분위기가 어땠느냐고 묻기 위해 분위기를 먼저 체크했다. 모두들 아침이라 말없이 끼니를 챙기고 있었다. 목소리가 새어 나가기 쉬운 환경이었다.
“누나, 아침 먹고 지하 주차장에서 잠깐 봐요.”
낙조는 이곳을 보는 시선이 없나 의식하면서 조용히 밤이의 귀에 속삭였다. 밤이는 눈을 내리깐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었다. 게다가 낙조와 밤이는 경계심이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은 밥을 안 먹나…….’
그릇을 반쯤 비웠을 때 낙조가 부엌 귀퉁이에 선 남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낙조에게 직접 식사 그릇을 가져다준 남자였다. 그는 낙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주쳤던 용병처럼 그리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낙조를 보고 있진 않았다. 그저……, 관찰하는 모양새였다. 자신이 밥을 잘 먹는지, 먹지 않는지.
입맛이 그리 돌진 않았으나 체력을 위해선 먹어야 했다. 낙조는 마지막 입까지 다 해치우고 나서 그릇을 집고 일어났다. 그때 부엌 귀퉁이에 서 있던 남자가 달려와 낙조의 그릇을 빼앗았다.
“제가 갖고 가겠습니다.”
“예? 아니…….”
“괜찮습니다.”
남자는 낙조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부엌으로 쏙 들어갔다. 곁에서 자신의 빈 그릇을 들고 있던 밤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지막하게 한 소리를 흘렸다.
“참 사람 여러 가지로 빡치게 하는구만, 여기는…….”
*
순찰조가 바이크 정비를 하기 전, 아주 잠깐의 시간을 내어 모두가 모였다. 혹여 시선이 따라붙지 않을까 싶어 입구의 사각지대인 곳에서 몸을 숨겼다. 밤이에게도 막시안과 도연이 함께하는 탈출 계획을 간단히 알렸다. 밤이는 생각대로 무심하게 동의했다. 주차장에 인기척이 없나 확인한 막시안은 소리를 죽인 채 말했다.
“도연이 어머니가 문제예요. 이곳이 낙원이라고 생각하셔서, 탈출하자고 하면 켈리에게 말할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모셔야 한다고?”
“도연이가 원하니까…….”
밤이의 날카로운 질문에 막시안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곁에 있던 해화는 이미 전날에 막시안과 함께 일을 하며 들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탈출에 있어서 생각도 못했던 장애물이 생겼다. 세뇌된 사람을 어떻게 안전하게 빼내올 수 있는가.
해화의 시선이 도연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입을 꾹 닫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던 밤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거 먼저 좀 물어보자. 실험실에 온갖 약이 다 있던데. 곁눈질로 본 거긴 하지만 백신에 대한 얘기도 하는 것 같았어. 뭘 하는 사람들이야?”
“……청주 본부랑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대신 그곳은 국가가 운영하고, 이곳은 사설 업체죠. 켈리의 사업터예요. 정당하게 노동을 하고 그에 맞는 보상을 받는 건 먹고 자는 것뿐이에요. 월말마다 켈리는 이곳 사람들의 점수를 매겨요. 그 점수로 약을 사거나 더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죠.”
“그럼 본부도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안다는 거야?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데.”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켈리가 청주와 주기적으로 연락한다는 건 알아요.”
이곳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부터 알면 좋을 텐데. 낙조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생각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간, 노동력에 맞게 지급받는 생활의 필수품들. 그 외의 것은 각자 켈리가 직접 그은 채점표로 구입한다……. 모든 체계가 완벽하게 짜인, 이 조그마한 사회가 과연 재난이 터지자마자 갑자기 생겨난 건 아닐 것이다.
‘실험실엔 웬만한 약들도 있다고 했어. 그럼 꾸준히 이곳에서 연구를 했다거나…….’
낙조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짚어 보자. 이곳은 원래 무슨 일을 하는 곳이었나. 다문화가정을 위한 복지에 힘을 쓰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실험실이 애초부터 존재했을까? 웬만한 병은 고칠 수 있는 약을, 재난이 터지자마자 어디서 구해 왔을까?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식량의 씨앗은 또 어디서 공급해 오고? 궁금증은 수없이 터져 올랐지만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이곳에 대해선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낙조가 막시안에게 물었다. 막시안은 한국에서 오래 산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가정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변종에게 쫓기고 있을 때 켈리를 만났어요. 엄청 큰 버스에 사람들을 태우고 다녔어요.”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만 하면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어요. 이곳은……, 청주만큼 안전하다고 그러면서.”
곁에 있던 도연이 한 마디 거들었다. 그녀는 한참 앳된 얼굴을 갖고 있었지만 그 위에 드러난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본부랑 거래를 하고 있는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밤이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정돈하고서 둥글게 모인 일행들에게 말했다.
“시간 이제 다 됐으니까 일단 지금은 해산. 나는 실험실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알아볼 테니까, 고낙조 너는 켈리 뒤를 좀 쫓아다녀 봐. 아무래도 너한테만 아무 일도 안 맡기는 게 수상하니까.”
“직접 물어봐도 돼요?”
“무슨 소리를 듣고 싶어서?”
“정면승부 하자는 거죠. 술래잡기 하는 것도 아닌데.”
밤이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많이 컸다, 짜식아.”
그리곤 낙조의 코를 세게 꼬집었다.
“아!”
“잔말 말고 올라가. 그리고 너희 넷, 말조심하고.”
막시안, 해화, 도연, 그리고 지운까지 총 넷에게 주의를 요한 밤이는 낙조를 끌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의 말대로 곧 순찰조가 모두 모일 시간이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에선 마주치지 않았다. 밤이는 실험실이 있는 9층에서 내렸고, 낙조는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11층을 눌렀다. 밤이는 낙조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팔짱을 끼고 조용히 내렸다. 실험실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밤이의 얼굴을 스캔한 잠금 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진 시간이었다. 텅 빈 공간을 홀로 걷자니 자신의 발소리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낙조는 지운과 함께 쓰는 방으로 돌아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청주랑 연락한다면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려졌을 텐데.’
침대에 앉은 채 낙조는 생각했다.
‘……홍해화랑 홍지운에게 전화로 이곳에 대해 알려 준 사람. 일부러 이곳을 알려 준 걸 수도 있어. 한 번에, 우리 모두를 잡을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용한 곳에서 혼자 생각하는 건 꽤 오랜만인 듯했다. 뒤죽박죽이었던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낙조는 밤이의 말을 생각하고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켈리는 그럼 이곳에서 주로 무슨 일을 하지.’
물론 용병이라 불리는 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저번엔 밤이와 함께 있을 때 대놓고 모습을 드러냈으니 자신한테는 특별한 명령이 떨어진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방에 틀어박혀 있는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고낙조 씨. 역시 여기 계셨네요.”
방을 나오자마자 낙조는 복도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켈리와 마주쳤다. 그녀는 그곳에서 낙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낙조를 응시했다. 파란 눈동자가 선명히 낙조의 그림자를 덮쳤다.
“다들……, 일하러 갔으니까요.”
“그렇죠. 열심히 일하는 시간이네요.”
“저한텐 왜 일을 주시지 않는 겁니까?”
이건 술래잡기가 아니다. 전주 대피소 때와는 달리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들도 아니다. 이곳에서 머무는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막시안의 말대로 이곳은 켈리의 사업장이다. 어쩌면 자신들을 이용하여 청주에게서 무언갈 더 뜯어내고 싶어 하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고낙조 씨는 일을 하고 계세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결과요?”
낙조가 미간을 좁혔다. 켈리는 말을 마치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무언가 기다리는 사람처럼.
“시간이 다 됐군요.”